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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琵瑟山)의 줄기가 남으로 뻗어 천왕산(天王山), 화악산(華嶽山)에 이르고, 화악산의 줄기가 다시 동남으로 뻗어 우령산(牛齡山), 종남산(終南山)에 이른다. 서로는 천왕산의 줄기가 다시 남으로 내려와 도리산(道理山), 덕암산(德岩山)에 이른다. 그 사이에 청도면에서 근원한 청도천이, 동쪽의 정곡천(鼎谷川)과 서쪽의 중산천(中山川)을 무안리에서 합류하여 낙동강으로 흘러 가는데 이를 끼고 대부분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북으로는 청도면, 동으로는 부북면, 남으로는 창녕군 영산면, 서로는 창녕군 계성면과 창녕읍에 접하고 있다.
무안면은 1933년에 밀양군 하서면과 상서이동면을 병합하여 형성되었는데, 무안이란 어원은 물안에서 생겼다고 한다. 즉 지금의 창녕군 학포와 인교 근처에 낙동강물이 치받쳐 올라와 호수처럼 물이 많이 괴여 있는 안쪽이란 뜻으로 물안이란 말이 쓰였다고 하는데, 일설에는 사명대사(泗溟大師)의 불력(佛力)으로 안전한 피난처가 된다는 뜻에서 나왔다고도 한다. 하여간 수안(水安)이란 말이 속언으로 바뀌어 소안이라 칭해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고려 시대에는 영안(永安)으로, 조선 시대에는 수안(水安)으로 쓰여졌다.
하서면은 무안리, 부로리, 신법리, 삼태리, 화봉리, 죽월리, 양효리, 내진리, 판곡리, 운정리, 마흘리, 정곡리, 덕법리, 근기리, 요지리 등 15개이를 관할하였고, 상서이동면은 원래 초동면에 속한 지역이었지만 1769년(영조 45년) 경에 본군의 방리 개편에 따라 상서면은 상서초동면과 상서이동면으로 분할되었다. 이 때 상서면은 서가정리, 다례리, 고라리, 웅동리, 중산리, 덕암리, 모로리, 연상리, 성덕리 등 9개리를 관할하였다. 또한 1912년 행정 구역의 통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청도군 외서면에 예속되었던 동산리가 밀양군 하서면에 다시 편입되었고, 청도군 외서면의 영역 내에 있었던 근기리, 요지리, 덕법리 등은 밀양군 청도면에 편입되었다. 따라서 하서면은 무안리, 신법리, 삼태리, 화봉리, 죽월리, 내진리, 동산리, 판곡리, 운정리, 정곡리, 마흘리, 양효리 등 12개리로 개편되었고, 상서이동면은 가례리, 고라리, 중산리, 웅동리, 덕암리, 모로리, 연상리, 성덕리 등 8개리로 개편되었다.
그 후 1933년 행정 구역의 병합에 의해 상서이동면과 하서면의 병합으로 무안면이 형성되어 20개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지금은 20개의 법정리와 28개의 행정리동으로 편성되어 있다.
무안땅이 처음 형성될 때의 설화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옛날 어떤 장수가 큰 말을 타고 태산 준령을 끌면서 태극과 같이 끝없이 빙글빙글 돌며 달리고 있었다. 온 천지가 진동을 하며 우렁차게 들리는 말발굽 소리에 들판이 열리고, 강물이 출렁거렸다. 이 때 무안 강변에서 빨래하던 할머니가 산이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너무 어지러운지라, "왜 이리 요란하냐" 고 하며 멈추라고 소리치면서 빨래 방망이로 말의 옆구리를 쓸쩍 밀었더니 그 말이 그대로 주저 앉았는데 그것이 바로 무안리의 앞동산이 되었고, 그 때 방망이로 밀어서 쑥 들어간 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무안면은 선사 시대부터 중요한 유적지였던 것 같다. 동산리, 내진리, 삼태리, 신법리, 무안리, 연상리, 운정리, 판곡리 등의 지석묘군과 선사 시대 유적지가 있고, 양효리, 삼태리, 무안리, 가례리, 정곡리 등에도 고분군이 널리 분포되어 있다.
절터로는 연상리의 안수사지(安水寺址), 웅동리의 구표충사지(舊表忠寺址-원래는 백화암), 내진리의 비진사지(飛進寺址)와 용안사지(龍安寺址), 그 외 마흘리, 무안리, 고라리, 가례리, 화봉리, 운정리, 성덕리 등지에도 있었다고 전한다. 또한 마흘리고개(出嶺), 앞고개(前峴), 납달고개, 보름고개, 정덕고개, 지룻등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타군과의 교통로로서의 큰 역할도 담당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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