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2046]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7절-聞歌(문가)
聞歌(문가)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 1571-1637)
江頭誰唱美人詞(강두수창미인사)
正是孤舟月落時(정시고주월락시)
惆悵戀君無限意(추창연군무한의)
世間惟有女郞知(세간유유여랑지)
강가에서 누가 미인곡을 부르는가
지금은 강물에 배 한척, 달 지는 시간
쓸쓸히 님 그리는 끝없는 내 마음
세상에선 오직 저 처녀만이 알아주리
訥=말더듬을 눌. 말 더듬거릴 눌.
惆=슬퍼할 추. 실심할 추
悵=슬퍼할 창.원망할 창
惆悵=실망·낙담하는 모양. 슬퍼하는 모양.
원문=청장관전서 제32권 / 청비록 1(淸脾錄一)
송강(松江)의 묘(墓)
석주(石洲) 권필(權鞸)이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호)의 묘를
지나다가 느낌이 있어 지은 시에,
낙엽진 빈 산에 빗소리 쓸쓸한데 / 空山落木雨蕭蕭
상국의 풍류가 이곳에 잠들다니 / 相國風流此寂寥
슬프구나 한 잔 술 다시 올리기 어려워 / 惆悵一杯難更進
지난날 가곡을 오늘에 부른다오 / 昔年歌曲卽今朝
하였는데, 가곡이란 곧 송강이 지은 장진주사(將進酒詞)를 말하며,
중국의 시인(詩人)들은 이 시를 해성조(諧聲調)라 한다고 한다.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이
송강의 사미인곡(思美人曲)을 부르는 것을 듣고 지은 시에,
강가에서 누가 사미인곡 부르는가 / 江頭誰唱美人詞
바로 외로운 배에 달 질 무렵이구나 / 正是孤舟月落時
그대 그리며 슬퍼하는 무한한 이 마음 / 惆悵戀君無限意
세상에서 알아주는 이 저 여자뿐일세 / 世間惟有女娘知
하였다.
송강이 시대를 슬퍼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정성을
언가(諺歌 한글 가곡)에 붙인 것이
《이소(離騷)》의 충분(忠憤)과 같은 점이 있었으므로,
그의 장가(長歌)나 단요(短謠)가 지금까지 많이 불려지고 있다.
[주-D001] 《이소(離騷)》 : 초(楚) 나라 때 굴원(屈原)이
간신(奸臣)의 참소로 왕에게 신임을 잃고 쫓겨난 뒤에
자신의 실망(失望)과 충분(忠憤)을 내용으로 하여 서술한 글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차주환 (역) | 1980
원문=東岳先生續集 未釋褐時所著 / 詩
續集 未釋褐時所著 / 詩
龍山月夜。聞歌姬唱故寅城鄭相公思美人曲。
率爾口占。示趙持世昆季。
江頭誰唱美人詞。강두수창미인사
正是孤舟月落時。정시고주월락시
惆悵戀君無限意。추창연군무한이
世間惟有女郞知。세간유유여랑지
원문=惺所覆瓿稿卷之二十五○說部四 / 惺叟詩話
[鄭松江善作俗歌]
鄭松江善作俗謳。其思美人曲及勸酒辭。
俱淸壯可聽。雖異論者斥之爲邪。而文采風流。亦不可掩。
比比有惜之者。汝章過其墓。
作詩曰。
空山木落雨蕭蕭。相國風流此寂寥。
惆悵一杯難更進。昔年歌曲卽今朝。
子敏江上聞歌詩曰。
江頭誰唱美人辭。正是江頭月落時。
惆悵戀君無恨意。世聞唯有女郞知。
二詩皆爲其歌發也。
정송강(鄭松江 송강은 정철(鄭澈)의 호)은 우리말 노래를 잘 지었으니,
사미인곡(思美人曲) 및 권주사(勸酒辭)는
모두 그 곡조가 맑고 씩씩하여 들을 만하다.
비록 이론(異論)하는 자들은 이를 배척하여 음사(陰邪)하다고는 하지만
문채와 풍류는 또한 엄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를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연달아 있어 왔다.
여장이 그의 묘를 지나며 시를 지었는데
빈산에 나뭇잎 우수수 지니 / 空山木落雨蕭蕭
상국의 풍류는 이곳에 묻혀 있네 / 相國風流此寂寥
서글퍼라 한 잔 술 다시 권하기 어려우니 / 惆悵一杯難更進
지난날 가곡은 오늘 두고 지은 걸세 / 昔年歌曲卽今朝
라 했다.
자민이 강 가에서 노래를 듣는다[江上聞歌]의 시에
강 어귀에 그 뉘라서 미인사(美人辭)를 부르니 / 江頭誰唱美人辭
때마침 강 어귀에 달이 지는 시각이라 / 正是江頭月落時
서글퍼라 님 그리는 무한한 마음을 / 惆悵戀君無恨意
세상에선 오로지 여랑만이 알고 있네 / 世間唯有女郞知
라 했는데, 두 시가 모두 송강의 가사(歌辭)로 인해 나온 것이다.
東岳 李安訥은 16C말ㆍ17C초의 시기를 살았던 인물로
목릉성세의 시대에 시에 있어서 권필과 二才로 병칭되었던 문인이다.
그가 남긴 2913제 4379수의 한시는
『東岳集』의 체재가 작자의 다양한 現地 체험에 따라 그 시기에 지어진 작품을 한 권으로 묶고,
이를 시대 순으로 합하는 편차방식을 택하고 있어 저작 시기의 추정이 용이하다.
창작의 시공간을 중심으로 합한 방식을 취한 이안눌의 자편고는
철저한 ‘一官一錄’의 원칙 하에 만들어진 문집이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이와 같은 『東岳集』의 시고에 따른 연대별ㆍ시간별 체제는 작자의 행적을 쉽게 알 수 있게 한다.
이에 본 연구는 동악 이안눌의 한시가 여러 지역의 목민관을 역임하였던
작자의 특별한 체험을 바탕으로 각 지방과 관련된 구체적 정보를 상세히 기록하여
보충하는 인문 지리적 특성을 가진다는 점에 주목하여 시세계를 고찰하여 보았다.
먼저 인문 지리적 인식의 배경으로
첫째, 전국의 8도 중에서 황해도를 제외한 7곳의 걸친 넓은 지역의 지방관을 역임하였던
특수한 관력을 들 수 있다.
둘째, 임ㆍ병란 등의 전란을 겪은 후 국토 산하와
민족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것이다.
셋째, 地志를 치정의 한 방편으로 인식한 관인문학으로서의 자각을 들 수 있다.
넷째, 이안눌이 基韓範杜의 시학을 기초로 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이러한 점은 그가 두보의 시를 萬三千讀 했다는 여러 시화의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이안눌 한시의 인문 지리적 인식은
첫째, 관할지에서의 장소와 시간에 관한 각별한 의식을 토대로
기후, 풍물, 풍속 등을 시어로 수용한 작품을 창작하였다는 점이다.
각 지역의 鄕土的 특색을 시화하는데 남다른 식견을 가지고
새로운 풍물, 관련 지역의 풍토, 그곳에 사는 이들의 삶에 관심을 보인다.
관할지의 구체적인 사항을 담은 地志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시의 형식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전국에 걸친 다양한 現地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土風民物을 형상화한 이러한 시편들은 輿地志로서의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둘째, 산과 강, 마을의 이름을 포함한 고유 지명이나,
호, 벼슬 이름 등 사람을 지칭하는 고유명사 등을 거리낌 없이 시 속에 삽입하였으며,
단군을 비롯한 혁거세, 온조왕 등의 역사 속 인물들을 차용하여
민족의 긍지와 역사의식을 되새기고 자 하였다는 점이다.
관할지의 토풍민물이나 조선의 고유지명ㆍ인명 등을 비롯한 인문 지리에
관한 제반사항을 시어화한 이러한 태도는 생경한 어감이라든가
시의 흥취라기보다는 시의 내용상 사실성과 구체성 확보의 차원으로 해석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