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의 순교자들
기독교인들이라는 이유로 죽음당할 수밖에 없는, 혹독한 박해가 점점 심해지고 장기화되면서 기독교인들에게는 피신할 장소가 절박했다. 그리하여 적어도 1세기말부터 로마나 지중해 여러 대도시에서 피신할 수 있었던 유일한 장소는 지하 공동묘지였던 카타콤이었다. 이런 카타콤이 로마 근교에만 42개정도 발견되었는데, 카타콤의 흙은 모래처럼 쉽게 부서져 간단한 도구로 쉽게 파 들어갈 수 있고 흙이 단단하여 일단 파놓으면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특히 로마 경관의 눈을 피하기 위해 몇 십층까지 한없이 깊이 파 들어간 미로는 자칫하면 길을 잃고 거기서 헤매다 죽을 수 있다. 워낙 깊은 지하라 산소가 통하지 않아 길 찾기 위해 가지고간 불도 소용이 없다. 실지로 기독교인들을 잡아내기 위해 들어갔다 미로를 헤매다 빠져 나오지 못하고 죽은 경관도 많았다. 어떤 경우에는 길이가 수백 킬로미터나 되었고 무덤의 수는 몇 백만까지 되었다.
그들의 화장실이요 무덤, 심지어 시체 썩는 악취로 가득 찬 카타콤이었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그곳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진한향취가 피어오른 곳이었다. 음침한 동굴이 곧 예배당이요 침실이요 화장실이요 심지어 그들의 무덤이기도 했지만 밖에 나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에 나갈 수도 없었다. 그러나 굶어가는 동료들의 먹을 것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밖에 나간 몇몇 용감한 성도들 때문에 먹을 것이 해결되기도 했다. 때론 밖에 나갔다가 죽음당해 다신 못 돌아오는 성도들도 많았다.
햇볕이 전혀 들지 않고 먹을 것이 부족해 주린 배를 움켜쥐고 그들은 무엇을 했을까? 몇 십 층의 지하보다 더 캄캄하고 냄새나는 곳에서 그들이 한일은 오로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 수많은 박해에 굴하지 않고 카타콤에서 죽을 수 있도록 해주신 은혜에 감사, 자신들을 핍박하는 이들에 대한 가슴 절절한 용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마라나타) 등이 지하묘지를 뚫고 향연이 되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피어올랐다. 당시 기독교인들의 삶 자체가 죽음과 영원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드렸고 죽음이 매우 가까운 곳에 있음을 인식할수록 그리스도를 친밀히 느꼈다. 특히 굶주림과 박해가 심하면 심할수록 영혼의 불멸과 육체의 부활에 대한 소망은 이 세상 것에 초연할 힘을 주었다.
글/ 김귀춘
첫댓글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잠언 6장 20절로 21절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