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황태연 교수(동국대)의 '孔子'관련 중앙일보 기사를 소개한다. 앞서 카페에서 황 교수 관련 언론 보도를 여러 차례 소개한 바 있다. 그 중의 하나는 https://cafe.daum.net/well48/UTZO/68("공자의 民本 사상이 동서양 넘어 근대화 이끌었다”: 동아일보 2020.09.30)이다. 황하문명 유교문화권의 종주국이자 중심지인 중국에서 해야 될 일을 황 교수가 이루어낸 것이다. 한국사회 지성인 지식인의 무능력과 무기력에서 황 교수는 한 줄기 빛의 역할을 했다. 한국이 중국에 맞서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이는 맑시즘을 벗어나지 못한 중국의 한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특히 사회주의 혁명을 토대로 한 문자[漢字]의 간체자 변환은 중국 사회의 지식생태계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국내 언론도 그동안의 서구 편향적인 지식 보도 행태를 반성해야 한다. 서구 선진국들의 사상적(철학적), 문명적 토대는 헬레니즘(그리스.로마문명)과 히브리즘(기독교)과 유목문화이다. 이를 바탕으로 산업화,근대화를 성공시켜 선진국으로 부상하였다. 반면에 황하문명 한자문화권의 나라인 중국과 한국은 일본과 서구의 식민지 침탈로 인해 열등감과 자기부정에 정체성을 잃고는 오로지 서구 문명을 쫓아 가기 바빴다. 그 결과 중국은 유럽에서 발원한 맑시즘을 도입한 사회주의 국가로, 한국은 미국 방식의 자본주의 물질국가로 변모하였다.
이에 따라 중국과 한국은 권력자와 지식인이 공자의 유학사상에 亡國의 원흉이라는 죄과를 덮어 씌우고는 온갖 비난과 탄압을 자행했다. 그런데 황 교수가 서구의 근대화 사상의 출처가 공자의 儒學경전임을 밝혀낸 것이다. 쾌거이다. 황 교수의 연구 실적을 계기로 향후 유학사상이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國運을 상승시키는 중심 규범 내지는 가치관으로 재정립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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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테제 : 공자의 民本 사상이 동서양 넘어 근대화 이끌었다. 서양 민주 공화정도 공자서 비롯,
아주 오래된 상식, 그래서 도전할 수 없는 진리인 것처럼 여겨져 온 관념의 틀을 깨려는 학자가 있다. 정치철학자 황태연 동국대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자유와 평등의 이념에 기초한 민주공화정 체제, 이를 지탱하는 자유시장경제와 복지제도, 이를 구현하기 위한 관료제 등은 서양 고유의 것이 아니라 동양의 공자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황 교수는 주장한다. 우리가 채택한 헌법, 체제, 시장 등은 모두 공자의 사상이 서천(西遷)해 지금의 형태로 만들어진 뒤 환류 내지 역수입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근대화 과정에 커다란 저항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볼테르, 흄 등 근대를 잉태한 서양의 계몽주의자의 90% 이상은 공자 숭배자였고, 영국 민주주의의 기초를 만든 윌리엄 템플, 공화국가 미국을 만든 제퍼슨, 프랭클린 등은 ‘공자 광팬’이었다. 제퍼슨 등에 의해 미국 헌법에 종교의 관용 조항 등 공자 철학의 영향이 혼입되었고, 연방대법원 청사 꼭대기에 구약 영웅 모세와 함께 공자 입상이 새겨져 있는 것도 그런 연유로 설명이 된다는 것이다.
‘서양 민주공화정도 공자에서 비롯’
2001년부터 공자를 천착하기 시작한 황 교수가 본격적으로 연구 성과물을 내놓기 시작한 것은 대략 10년 전부터다. 우선 저작의 방대함에 압도된다. 그가 펴낸 공자 관련 저서는 모두 16부작 30권이다. 2020년판 『공자와 미국의 건국』은 상ㆍ하권 1786쪽인데 활자는 일반적인 단행본보다 더 작다. 이 책들을 조금만 펼쳐보면 황 교수의 논지가 희망적 상상의 소산이거나 허황한 가설과 비약으로 쌓은 모래탑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방대한 문헌을 섭렵하고 치밀하게 검증한 뒤 촘촘하게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가령 이런 식이다. 황 교수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 프랭클린과 제퍼슨이 남긴 저술과 편지, 일기 등을 샅샅이 읽고 그들의 독서 목록과 장서 목록까지 조사했다. 그랬더니 프랭클린은 『중국철학자 공자의 철학과 도덕』을 탐독하고 ‘13개 덕목 리스트’를 작성해 자신의 수신(修身) 지침으로 삼으며 일일삼성(一日三省)을 실천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그가 발행하던 주간신문에 공자 경전의 발췌문을 연재한 것도 알아내 내용을 원전과 비교 분석했다. 물론 황 교수의 논지는 대단히 논쟁적인 데다 기존 상식을 뒤집는 것이어서 짧은 시간 안에 검증과 평가가 이뤄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황 교수를 인터뷰한 것은 동서고금을 두루 섭렵한 학자의 눈으로 보는 한국 정치의 현주소와 과제를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현실정치에도 참여한 적이 있다. 김대중 정부의 탄생 원동력이었던 DJP연합도 그의 아이디어를 DJ가 수용한 것이다. 황 교수는 원래 독일에서 7년 반 동안 마르크스 원전을 파고들어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대 초반 그는 진보 진영 또는 변혁운동을 추구하는 진보진영의 이론 매체에 자주 등장했다. 그가 마르크스 연구자에서 공자 연구자로 변신한 지적 여정의 편력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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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의 눈에 마르크스와 공자는 대척점에 선 인물로 보인다. 연구 테마를 바꾼 계기는.
“학문적 관심의 출발은 이상국가, 즉 좋은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란 물음이었다. 나는 마르크스 공부를 대충이 아니라 아니라 끝장까지 했다고 자부한다. 마르크스의 두 가지 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나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정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수월하거나 효과적이라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봤다.
반대로 폭력 사용이 효과적이지 않은 데도 그렇게 하는 건 바보짓이 된다. 철저하게 공리주의(功利主義)에 입각한 것이다. 여기에 윤리는 없다. 폭력이 용인되는 것은 정당방위에 국한되어야 하는데 마르크스 원전 43권을 다 뒤져도 그런 말은 단 한 줄도 없다. 폭력혁명론의 기원을 레닌에서 찾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오독(誤讀)이다. 폭력혁명론의 원조는 마르크스고 책임도 마르크스에 있다.
또 하나 계급투쟁의 문제다. 인류 사회에 계급투쟁이 일어난다는 설명은 역사적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계급투쟁을 해야 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게 바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투쟁밖에 없다는 투쟁 유일주의와 투쟁 만능주의로 이어진다. 사실은 마르크스뿐 아니라 서양 역사철학과 사회과학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얘기한 홉스나 ‘권력투쟁이 정치의 본질’이라고 한 막스 베버에서 보듯 투쟁을 빼면 사회과학이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동양철학으로 선회한 것인가.
“사실 마르크스의 공산사회나 공자의 대동사회나 목표는 비슷하다. 다만 이상사회에 도달하는 방법론이 정반대다. 폭력투쟁으로 도달하려 하면 피투성이 정치판이 되고 예(禮)와 의(義)로 도달하고자 하는 정치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관용의 정치가 된다.”
‘천하를 영유하되 관여하지 않는다’
황 교수는 젊은 시절 그토록 천착하던 마르크스를 '의미 있게 틀린 사람'이라 표현했다. '틀린 것'은 보지 않고 '의미'만 찾는 일각의 지적 풍토를 경계하는 말로 들렸다. 공자 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정치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발견된다. 바로 제왕적 대통령제다. 『논어』 태백편에 ‘천하를 영유하되 천하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有天下而不與)’는 말이 나온다. 이는 17세기 영국에서 템플이 말했듯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사상으로 이어져 군주의 권능을 제한하고 내각제로 발전했다고 황 교수는 설명한다. 제왕적 대통령은 ‘유이불여’ 사상을 거스르는 것이다...
.(...이하 중략, 2022.01.19, 중앙일보 예영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