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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만을 따라 내려오던 버스가 서쪽 내륙 지방을 향하여 “ 저 건너에 실리콘 벨리가 있습니다. 매년 미국 벤처 캐피탈의 30 % 이상이 유입 된다는 실리콘벨리! 실리콘 벨리에는 밤낮의 구별이 없습니다. 낮고 안정감 있는 건물들에는 24 시간 조명이 꺼지지 않지요. 수 백 년 동안 이어 온 인간 문명의 바탕을 근본 부터 바꾸어 놓은 엔진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0 년을 기점으로 실리콘 벨리에도 심한 불황이 닥쳐 실업 율이 늘고, 사무실 공실 율도 심각하게 늘었었지만 최근에는 친 환경 에너지 개발로 이전의 활기를 다시 찾고 있습니다.
컴퓨터, IT 산업의 발전은 인간을 달나라까지 보내고 우주 유영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통신 위성을 쏘아 올려 몇 만 리 밖에서도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한, IT 산업의 혁신적인 발전은 그 동안 지속 되어 온 인간 생활의 패턴을 바꾸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가치관마저 송두리 채 바꾸어 놓았습니다.
과연 실리콘 벨리는 어떤 곳인가요? 실리콘 벨리! 실리콘 벨리! 이 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과연 실리콘 벨리가 어느 곳에 있느냐고 질문을 합니다. 벨리(Valley)라고 하니까 산속의 계곡을 연상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계곡은 보이질 않습니다. 다만, 서쪽 산타 쿠르즈 산맥과 동쪽 디아불러 산맥이 흘러내리다 평지에서 만나 만들어 놓은 높지 않은 언덕이 있을 뿐입니다.
실리콘 벨리는 샌프란시스코만의 남단, 스탠포드 대학이 있는 팰로 앨토 시에서 엘 까미노 리얼 도로를 따라 동쪽 세노제이(San Jose )를 거쳐 총 길이 48 Km, 너비 16 Km 에 이르는 띠 모양의 지역을 말 합니다. 시리콘 벨리가 있는 곳은 행정 구역도 하나가 아닙니다. 야후 본사가 있는 서니베일, 인텔이 있는 산타 클라라, 애풀이 사업을 시작했던 로스앨토스, 휴렛 팩커드와 네스케이프가 있는 마운틴 뷰, 등의 자치 구역이 캘리포니아 주의 우산아래, 벤처 기업들을 경쟁적으로 육성 보호하고 있습니다.
지난 3 년간 이 지역은 다시 벤처 기업들의 증가로 그 지역이 북쪽으로 확대되어 샌프란시스코 만까지 그 영역을 확대하여 많은 벤처 기업들이 샌프란시스코 시에 까지 진출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12월부터 3월까지를 제외하면, 이곳은 년 중 비가 내리지 않고, 습기 없는 건조한 날이 계속되어 전자 산업에는 아주 적합한 지역입니다. 뿐만 아니라 근처에는 스탠포드, 버클리, 산타 클라라 같은 명문 대학이 있어 우수한 인재의 수혈이 용이한 장점이 있지요.
이 곳에는 반도체와 컴퓨터 관련기업, 연구소,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컨설팅 회사, 창업비를 지원하는 엔절스, 유망한 벤처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케피탈 회사, 등 약 4 천개 이상의 기업이 밀집 해 있습니다. 휴렛 팩커드(HP), 야후, 선마이크로 시스템, 구굴(google), 옥션을 전문으로 하는 이베이(e-bay), 포토 샾의 아도비(Adobe ), 애풀 컴퓨터, CPU 제조엄체인 AMD, 보안솔루션 맥 아피(Mc Afee),등 수도 없이 많은 세계적인기업들이 이 곳에 진을 치고 있지요. 이 곳에서는 신제품이 하루에도 수백 가지가 쏟아져 나옵니다. 신기술 개발뿐만이 아니라, 기술 제휴, 기업의 합병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전자 산업이 적용되는 분야는 워낙 광범위하여, 어느 한 개인, 또는 어느 한 기업이 모든 것을 해결 할 수는 없습니다. 전문 분야 별로 분업이 이루어지고, 종국에는 기간업체가 이들을 취합하여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요. 반면, 이 과정에서 기술 침해에 관한 소송도 만만치 않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곳의 변호사들이 호황을 누리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요.
실리콘 벨리의 탄생은 193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스탠포드 대학 출신, 윌리엄 휴렛과 데이빋 팩커드, 두 청년은 어느 날 의기투합 하였습니다. 스탠포드 대학 캠퍼스가 있는 팰로앨토에 있는 허름한 차고를 하나 빌렸지요, 그리고 두 사람은 제품 개발에 몰두 하였습니다. 차고에서 만든 첫 번째 개발품은 음향을 측정하는 오디오 오실레이터 입니다. 이 제품은 8 개가 만들어져 월트 디즈니사에 납품되었고, 월트 디즈니사에서는 이 제품을 “ 환타지아” 란 영화에 활용하여 종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사운드 시스템으로 공전의 히트작을 내 놓게 되었 습니다.
첫 번째 제품 개발에 성공하자 두 청년은 회사 설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회사 이름 짓기 동전 굴리기를 하였지요. 결과는 윌리엄 휴렛의 승리! 결과적으로 휴렛의 이름을 앞에 붙인 휴렛 팩커드 란 회사명이 탄생 하였습니다. 실리콘 벨리에 최초의 벤처 기업이 탄생 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프린터기 제조업체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데스크 탑과 노트북 컴퓨터는 물론, 인터넷/ 인트라넷 솔루션, 통신 기기, 측정 솔루션 등 여러 첨단 정보기기들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오늘 날 휴렛 팩커드는 전 세계 178개 국가에 사업 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2007년의 기록에 의하면 매출 1천 40 억불, 순 이익 73 억불, 종업원이 3 십만 9천명에 달하는 초우량 글로벌 기업 입니다.
실리콘 벨리란 이름의 탄생은 한 참 후 이야기 입니다. 1956년, 벨연구소 (Bell Labs)에 근무하던 윌리암 쇼클리(William Shockley)가 마운틴 뷰 (Mountain View)에 페어차일드(Fairchild Semiconductor)라는반도체 회사를 설립한 것이 그 유래입니다.
반도체의 소재가 바로 실리콘(Silicon-규소)이기 때문에 실리콘이란 명칭이 자연스럽게 불려지게 되었던 것이지요. 정식 명칭보다는 상징적인 별명을 더 즐겨 부르는 미국인들의 습성이 작용 했는지도 모르지요. 윌리암 쇼클리, 1950년대를 살아 온 이 지역의 많은 공학도들은 아직도 모이면 윌리암 쇼클리에 대한 이야기들을 끝이지 않습니다. 그에 대한 에피소드가 많고 실리콘벨리에 실리콘을 가져 온 주인공이기 때문 입니다. 미국의 물리학자이며,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그는 1910년 영국 런던 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으로 건너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을 다녔고, 1936년 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후에 그는 벨연구소에서 같이 연구하던 존 바딘과 월터 하우저 브래튼과 함께 트랜지스터를 발명하여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그의 실적과는 달리, 그는 그의 독단적이고, 괴팍한 성격 때문에 실리콘 탄생의 과정에서 적지 않은 악역을 감당 했습니다. “ 8 인의 배신자 ” 라는 용어는 전자업계에 전설처럼 쓰이는 용어 입니다. 윌리암 쇼클리가 자기 회사를 떠난 8인의 직원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 페어 차일드에서 근무하던 핵심 연구원 닥터 로버트 노이스의 집적회로 발명을 기념하는 팻말. 그러나 그는 후에 8 인의 배신자 멤버로 회사를 떠났다. 1968년 그는 고든 무어와 함께 인텔사를 설립하였다.)
전자기기에 진공관을 사용하던 시절, 처음으로 트랜지스터를 발명하고, 이 제품을 좀 더 업그레이드 시켜, 상용화 하려던 연구 과정에서 8 인의 핵심 연구원이 그의 곁을 떠난 것입니다. 그의 돌발적이고 독선적인 성격이 핵심 연구원들을 몹시 괴롭혔던 것입니다. 윌리암 쇼클리는 트랜지스터를 개발한 장본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품을 상용화 하는 데는 실패하여 돈을 벌지 못한 불운의 발명가이기도 합니다. 8 인의 배신자들 중에는 훗날 개인용 컴퓨터 업계의 선두 주자인 인텔의 공동 창업자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가 포함 되어 있었습니다. 고든 무어는 기술 개발 속도에 관한 “ 무어의 법칙 ”으로도 유명한 인물 이지요. <새로이 개발되는 메모리 칩은 18~24 개월 만에, 그 성능이 2 배가 된다. 이 주기를 지키지 못하면, 결국 기업은 도태되고 말 것입니다.> ( 13 편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