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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유심시조아카데미 원문보기 글쓴이: 홍성란
<<현대시학>> 2019년 3,4월호 -화제의 시집 리뷰 충담(沖淡) 자연(自然), 침묵의 언어 홍사성 시조미학
홍성란
도리 없는 도리
입을 여는 순간 곧 어긋난다(開口卽錯)는데 도리 없이 입을 열어야 하는 때가 있다.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으니 “틀”린 것이 있고 “맞”는 것이 따로 있을까(「잣대」). 도리 없는 도리로 더듬어 간다. 홍사성의 첫 시조집 『고마운 아침』(책만드는집, 2018) 뒤에 올린 약력에서 겸양을 본다. 강원도 강릉 출생, 2007년 『시와시학』등단, 시집 『내년에 사는 법』. 덜어낼 것 다 덜어낸 청고(淸高)를 본다. 그러나 시는 그 시인의 삶을 떼어놓고 말할 수 없으니 감추려 해도 드러나는 것이 인생 이력이다. 그가 무엇을 공부했고 무슨 일을 해왔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드러나지 않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지난해 5월 26일 적멸에 드신 설악산 큰스님 무산 조오현 시인과는 은사스님이 같은 사형사제지간이다. 법명이 지오(知吾)였던 그는 그러나 무슨 인연으로 환속하여 속가에 살면서도 불가의 인연을 버리지 못했다. 이 말은 산문(山門)에서의 수행은 끝났어도 세간에서의 수행은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고, 그가 불심(佛心)이 몸에 밴 불교 언론인이요, 불교학자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는 수많은 불교 관련 서적을 출간했고 불교 언론에서 중책을 수행해 왔다. 현재 계간『불교평론』주간으로서 올해 창간 20주년, 올봄 77호를 냈다.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지만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서울사무소에서 매달 세상과 불교계의 이슈를 가지고 모여 공부하는 ‘열린 논단’을 100회째 이끌어 온 공덕은 들어 올리지 않을 수 없다. 눈감고 코끼리 다리 더듬듯 살펴본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이런 이력을 가진 시인이 한국시단에 있다. 그가 첫 번째 단시조집을 냈다.
티 없는 향훈
그의 시는 화려한 수사나 기교 없이 말을 버린 침묵으로 다가온다. 침묵은 말하지 않는 말이다. 그의 시에는 신구의(身口意) 삼행(三行)을 닦아온 수행자의 불심이 단시조의 절제 속에 드러나지 않게 드러나 있다. ‘불심은 지혜 위에서 작용하는 자비의 마음이다’. 이 지혜와 자비가 자연의 모습 속에, 삶의 이야기 속에 허리 구부려 주운 듯 소박하게 드러난다(俯拾卽詩). 이 지혜와 자비가 무작묘용(無作妙用), 담담한 침묵의 언어 뒤에 숨어 있다(沖淡). 그러니 불심이 배어있다고 해도 그의 시조에는 불교관련 용어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 향훈만이 티 없이 은은하다. 이 은은한 시조는 충담의 예술혼과 자연의 시경(詩境)에 가깝다. 상묵 스님의 『금강경 강의』에서 홍사성 시조미학이 충담 자연에 이른 연유를 알게 된다. 불교는 신학(神學)이 아니라 인간학(人間學)이기 때문이다. 불교는 우리 삶을 떠난 멀고 높은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우리 삶의 모습 자체이기 때문이다. 고고하면 고고한 대로 못나면 못난 대로 살아가는 우리 모습 자체가 불교라는 것이다. 시란 눈에 보이는 자연의 모습을 보통의 말로 꾸밈없이 소박 담담하게 표현하면 된다는 옛사람의 말씀 그대로다. 넘어져도 불법이고 일어서도 불법이라니 우리 사는 모습에 시 아닌 게 없다. 우리가 보통 사는 모습을 보통의 말로 표현한 것이 좋은 시라는 것이다.
이렇게 산다
우리 사는 모습에 시 아닌 게 없다니 누군가를 이겨보겠다는 마음이 있는가 하면, 아무도 못 이길 때까지 끝까지 지겠다는 증도(證道)의 시가 있다.
개를 만나면 개에게 지고 돼지를 만나면 돼지에게 진다 똥을 만나면 똥에게 지고 소금을 만나면 소금에게 진다 낮고 낮아서 더 밟을 데 없을 때까지 새우젓처럼 녹아서 더 녹을 일 없을 때까지 산을 만나면 산에게 지고 강물을 만나면 강물에게 진다 꽃을 만나면 꽃에게 지고 나비를 만나면 나비에게 진다 닳고 닳아서 무릎뼈 안 보일 때까지 먼지처럼 가벼워서 콧바람에 날아갈 때까지 꽃잎 떨어져야 열매 맺듯 이기면 지고 지면 이기는 것 썩은 흙이라야 거름 되듯 무조건 진다 지고 또 지고 또 진다 썩고 문드러져서 잘난 척할 일 없을 때까지 끝까지 져서 아무도 못 이길 때까지 -「승부(勝負)」 전문
지고는 못 산다는 아상(我相)으로 가득 찬 마음이 있는가 하면,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바른 지혜로써 깨달아 얻은 증도의 시편이 있다. ‘나’라는 아상을 버리니 더는 이를 데 없는 경지가 있다. 아무도 이기지 못하는 그 마음에 고개 숙여 합장하며 시 읽기의 실마리로 삼는다. 좋은 시는 해설이 필요 없다. 읽는 대로 마음에 와 닿으니 이러니저러니 사족을 달 이유가 없다.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읽고 그저 함께 읽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의 시를 옮긴다.
가다가 막히면/돌아서 흘러갑니다// 깊고 넓어질수록/소리 낮춰 흘러갑니다// 강물은 바다를 향해 그렇게 흘러갑니다 -「강물」
끝까지 져서 아무도 못 이기겠다는 마음은 수행자의 하심(下心)이겠다. 하심은 무언가. 세상을 공경하는 마음이니 사유가 깊고 넓어질수록 소리 높이지 않고 몸 낮추어 낮은 데로 흐른다. 어떤 기교나 수사도 없이 허리 구부려 주은 자연 아닌가.
키 자랑 낙락장목/허리/여럿 꺾였다// 뿌리째 뽑혀 나간 놈들도 여기저기// 낮추고/낮춘 것들만/푸르고 싱싱하다 -「태풍일과후(颱風一過後)」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있고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있다니 작다고 슬퍼하고 크다고 뽐낼 일 아니다. 자주 나는 새가 그물에 걸린다. 낮추고 낮추어야 다치지 않는다.
팔다리 부러져도/울지 않았습니다// 입코 다 뭉개져도/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천년을 그렇게 견뎌 돌부처가 되었습니다 -「남산 돌부처」
세상은 인토(忍土). 참고 견뎌야 한다. 고통을 견디고 견뎌 마음은 지극히 청정하고 번뇌 없는 생이 있으니 아상을 깨부순 그가 부처 아닌가.
바다는 물고기 헤엄치는 대형 수조// 하늘은 뭇별들 담아주는 우주 창고// 고요는 번뇌 잠재우는 끝 모를 심연(心淵) -「용적량」
꺼내 보일 수도 없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마음. 이 없는 마음의 작용으로 번뇌 망상을 지으니 괴로운 거라지. 아상을 내던져 버리면, 지고 끝까지 지겠다는 마음이면 어떤 일에도 휘둘리지 않는 고요에 이르리. 번뇌 끊어져 고요에 이르면 어떤 바다보다 어떤 하늘보다 마음의 연못(心淵)은 크고 넓으리.
어찌해도 안 되면 어찌해야 합니까// 눈 감고/귀 막고/입 닫고/돌아앉으세요// 그리고 기다리세요/곧 결론이 날 겁니다 -「결론」
일본 동경 어디 가서 눈 가리고 귀 막고 입을 가린 원숭이 모형 열쇠고리를 사온 적 있다.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말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게 제일 큰 힘이다. 꾹 참고 견디는 거다. 언제나 견디는 동안 결론은 나버렸다.
백아 종자기처럼
시는 그 시인의 삶을 떼어놓고 말할 수 없으니, 몇 편의 시에서 설악 큰스님을 본다.
세상 끝/천리만리/떨어져 있다 해도// 사모하는/이 마음/어찌 멀다 하랴// 국화차/같이 마시던/이마 푸른 그대여 -「지음(知音)」
은사 성준스님 아래 “이마 푸른” 시절 동문수학했으니 서로 알아주어 “사모하는/이 마음”에서 백아와 종자기를 읽는 것도 무산과 지오를 떠올리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은가.
흙이 삼 할/나머지는 바위로 된 산// 품에는/두꺼비와 구렁이가 함께 산다// 눈보라 몰아칠 때는/혼자 울기도 하는//큰산 -「설악산」
계간 『문학나무』(2017년 여름호)에서 무산 큰스님을 주제로 한 인물시 특집에 발표한 시다. 설악산에 주석하신 무산 큰스님의 자호는 설악. 그러므로 설악산은 무산 큰스님을 대유한다. 설악산은 바위산이다. 험한 산에 착하고 악하고 약하고 힘센 것들이 함께 사니 감당할 수 없는 나쁜 일에는 울기도 하겠다.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다니 걱정하지 말자. 불이(不二)라 했으니, 무상(無常)이라 했으니.
지친보다 가깝던 사형님이 입적했다// 회자정리라/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나// 거짓말 할 곳 없는 게 가장 허전하다 -「호천망극(昊天罔極)」
외로울 때면 가끔 전화를 하셨는데 가까이 있으면서도 벗들과 술을 마시느라 지방에 있다고 둘러대곤 했으니, 이제 그 거짓말 들어줄 도량이 없다. 사형님이 입적하시고 아파도 아프지 않게 다함없는 그 은덕 그 슬픔을 표현했다. 눌러 참고 참아 찾은 말이 “허전”이다.
가끔은 화도 내고 웃기도 하더니// 하루 종일 쳐다봐도/똑같은 표정이다// 그 흔한/희로애락/다 어디로 보내놓고 -「영정 사진」
목석같은 마음이 적멸이고 해탈이고 열반 아닌가. 향을 피우고, 울어도 삼배를 올려도 돌덩이 같고 나무토막 같이 변하지 않고 웃는 저 표정. 웃지만 말고 그 음성으로 ‘대갈통을 깨 뿔라’ 한번만 꼭 한번만 말씀해 주시지.
모든 것은 마음에 있으니
가고 없는 이의 그 음성 듣고 싶은가. 없는 사람이거나 볼 수 없는 그 무엇이 보고 싶은가. 보고 싶으면 눈을 감으라는 동시 같은 노래가 있다.
하늘은/구름이 지나가야 보이고요// 바람은/나무가 흔들려야 보이지요// 사람은/눈을 감아야 더 잘 보이지요 -「심안(心眼)」
나무가 흔들리니 바람이 지나간 거고 구름은 하늘을 바탕으로 있는 거구나. 가고 없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마음은 눈 감고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더 잘 보이는 거구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건 마음에 달렸다니 이루지 못할 게 없으리.
장맛비 억수로 쏟아지는 날이었다// 우산을 썼는데도 온몸이 다 젖었다// 차라리 비에 젖으니 되레 마음 편했다 -「안심(安心)을 얻다」
젖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 발버둥치는 마음을 내려놓으니 편안이 찾아왔다. 집착을 버리고 안심을 얻었다. 방하착(放下著).
변하지 않는 건 없다는 것만이
제행무상(諸行無常). 만물은 항시 변전하여 멈추는 일이 없다지. 만들어진 것은 어딘가 이동해 간다지.
어디로 갔을까//햇살 이리 따뜻한데 꽃잎들 저리 붉고 소나무는 푸른데// 여기에 살던 사람들 다들 어디 가고 없을까 -「고궁 뜨락」
화창한 봄날 고궁 뜨락을 거닐며 거기 거닐던 왕과 비를 생각한다. 한 천년 살 것처럼 호령하던 원삼 족두리 금관옥대 그 영화는 어디 두고 다들 어디로 떠나갔을까. 생자필멸(生者必滅). 왕과 비도 변하고 변하여 거짓말처럼 사라져 갔다.
대나무를 사랑해/마당에 심었더니// 사방에 뿌리 번져 온 집안이 대숲이다// 이 세상/모든 번뇌가/사랑으로 생긴 병이듯 -「뿌리」
사랑하여 사랑이 깊어지니 무거운가. 무거워 그 사랑 버리고 싶은가. 사랑이 번뇌가 되었으니 사랑도 변하는 거구나. 변하지 않는 건 없다는 것만이 변하지 않는 거구나.
바람이 불었다//어느 날 갑자기 더위가 사라졌다//언제 그랬냐는 듯// 사는 일 다 그렇다//기쁨도 슬픔도 -「바람의 힘」
변한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시나브로 나타난 것들 시나브로 사라져 간다는 건 그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변화에는 힘이 있다. ‘낙엽이 썩어서 거름이 되’어 가는 것을 허영자 시인은 「소멸의 기쁨」이라 하였다.
즐거운 세간
참으로 그렇다. 시는 시인을 떠나면 시인의 것이 아니라 했으니, 이런 독법은 어떤가.
작은딸/산바라지 간/아내가 돌아온다// 내일부터/만행 끝내고/결제에 들어간다// 동안거/몇 십 번인데/아직도 먼 성불의 길 -「결제(結制)」
아내 없는 사이. 과음을 해도, 어디를 다녀도, 누구를 만나도 잔소리 들을 일 없으니 만행은 마냥 즐거웠다. 아내가 돌아오면 결제에 들어간다. 안거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읽으면 아내 없는 사이 멋대로 놀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인의 이야기 같아 큭, 웃음이 난다.
책 읽어도/금방 잊으니/잘난 척 할 일 없고 큰 욕심 부리지 않으니/ 마음 편하네// 뒤늦게 철들었는가 세상과 싸울 일 없네 -「요즘은」
이럴 땐 워낙 입력되는 정보가 많으니 좀 잊어버려가면서 머리가 알아서 하는 거라고 서로들 위로하는 나이가 되었다. 좀 어리버리해져서 누구랑 각을 세워 싸울 일 없는 내 이야기 아닌가.
어제는/구름만 조금 끼었을 뿐이다// 오늘은/바람만 조금 불었을 뿐이다// 내일은/기온만 조금 더 떨어질 것이라 한다 -「기특한 일」
말이 시가 되게 들어 올리는 힘. 그 힘의 절반은 제목에 있다. 큰 탈 없이 굴러가는 소소한 일상을 기특하다고 보아주는 품.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기특한 힘 아닌가.
열흘쯤 집 비웠더니 잡풀 무성하다 주인 없는 줄 알고 마음껏 자랐구나 고맙다, 나를 기다려 너희들이 집 지켰구나 -「귀가-차마고도 시편15」
시는 어디에 있는가. 높고 먼 데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우리 곁에 있지 않은가. 나 없는 사이 집 지켜준 잡풀에게 고맙다 인사하는 만유 공경의 마음. 하기 어려운 말 하나 없이, 알아듣지 못할 말 하나 없이 만유(萬有)가 일체(一體)라는 무설설(無說說) 아닌가.
가만한 사랑
지고 또 져서 아무도 이길 수 없을 때까지 지겠다는 마음은 은은하다. 아상을 버릴 만큼은 버린 마음의 시. 선생님! 하고 무거운 말꼬리를 내리면 왜 또오! 하고 걱정스레 받아준다. 들뜬 마음 지그시 눌러 주고 불화는 은근히 다독여 풀어준다. 목소리 높이는 법이 없이.
먼 훗날/다시 만나면 어떤 모습일까// 꽃잎 아직 붉을까 향기 그대로일까// 선암사 꽃구경 갔다/문득 해본//그대 생각 -「홍매」
향기 따라 걸으며 붉은 꽃잎을 보며 먼 훗날의 모습을 생각하다니. 그대는 홍매여도 좋고 함께 걷는 이여도 좋겠다. 산은 옛산이로되 물은 옛물이 아니로다. 선암사 홍매는 환히 피어 있으되 그때 그이는 지금 여기 없으니 그대가 문득 은은히 떠오르는 것일까.
가만히 고개 숙인 그대를 바라보네// 조용히 늙어가는 그대를 바라보네// 언제나 봄꽃이었던 그대 생각에 목이 메네 -「분홍 철쭉」
여기는 어디일까. 가만히 고개 숙여 피어 있는 분홍 철쭉. 조용히 아무 말 없이 아주 조금씩 사라져가는 봄꽃. 우리도 이와 같이 사라져 가리라. 폭포처럼 숨어 울지언정 목메지 말자. 나도 가고 너도 가는 것. 무상이라는 화려한 슬픔을 이렇게 은은히 내보일 수 있다니.
아침마다 주름 얼굴/무덤덤 바라보며 마주 앉아 밥 먹고/빈말도 섞으며 사네// 이보다 더 고마운 일 세상 어디에 있는가 -「고마운 아침」
흔들리지 않는 꽃이 꽃인가 묻는 시도 있으나 목석(木石)에도 꽃은 피니 흔들리지 않는 꽃도 있다. 출렁이지 않는 고요. 아무 말 건네지 않고 종일 함께 있어도 편안한 마음. 무덤덤 바라볼 수 있다는 건 애욕을 버린 마음이다. 무심(無心). 울지 말자. 무심은 세월이 준 선물 아닌가. 고마운 것을 고맙다고 말할 줄 아는 귀한 나이가 되었으니 조금은 슬프다.
말하지 않는 말, 말 뒤에 숨은 뜻
도리 없는 도리로 더듬어 홍사성 시조미학을 ‘충담 자연, 침묵의 언어’로 읽는다. 그는 눈에 보이는 자연을, 소박한 삶의 이야기를 꾸미지 않은 보통말로 담담하게 표현한다. 아상을 버린 세간 수행자의 지혜와 자비가 단시조의 절제 속에 숨어 있다. 말하지 않는 말 뒤에 뜻, 의행(意行)이 숨어 있다. 좋은 시는 해설이 필요 없다. 일체의 불교적 용어 없이 전하는 무설설의 시학을 그저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함께 읽는다.(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