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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일정 등 참고 하여 파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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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3 INEB 5일째, 정토회 대중 활동가 만남, 질의응답
“혼란기 시대, 어떤 관점을 가져야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을까요?”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808
2024.06.06.
안녕하세요. 오늘은 INEB 방문단이 정토회 견학을 시작한 지 5일째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3시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하여 서울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를 4시간 달려 오전 7시에 정토사회문화회관에 도착했습니다.
INEB 방문단은 스님보다 1시간 30분 늦게 출발하여 오전 9시에 정토사회문화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숙소에 짐을 푼 후 휴식을 취했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 오랜만에 여유로운 일정이 주어졌습니다.
11시에 지하 1층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서울제주 지부와 강원경기동부 지부에서 봉사자들이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태국에서 온 비구 스님이 봉사자들을 위해 축원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동남아 스님들도 본인이 먹은 그릇은 본인이 설거지를 했습니다.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쌀뜨물을 재활용하고, 3단으로 세팅이 된 설거지 시스템에 대해 모두 흡족해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2층 카페에서 차담을 나누다가 12시부터 정토사회문화회관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정토회 공동체 지부에서 INEB 방문단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2층 카페와 에코샵, 재봉실을 시작으로 3층 설법전, 6층 스튜디오, 7층 재활용센터, 지하 3층 대강당, 15층 옥상법당, 11층 JTS, 10층 평화재단을 차례대로 둘러보았습니다.
동남아 스님들은 7층 재활용 센터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시간이 부족하여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자세히 둘러보지 못해서 쉬는 시간에 틈틈이 방문해 보기로 하고 9층 강당에서 투어를 마쳤습니다.
오후 1시부터는 어제에 이어서 스님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은 정토회의 운영 시스템이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첫날 정토회에 대해 소개를 했지만 그때는 아직 직접 본 것이 없어서 이해를 못 했을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정토회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어서 공동체, 대중부, 법사단, 사회활동 기구, 지부, 지회, 모둠, 의결방식, 조직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져 있고, 실제로 의사가 결정되기까지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 설명했습니다.
“정토회는 의사를 결정할 때 항상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합니다.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하더라도 소수자가 의견을 철회하면 다행인데 소수자가 자신의 의견을 계속 주장하면 그 소수 의견을 위해서 최대 세 번까지 계속 논의를 해야 합니다. 세 번까지 논의를 했는 데도 소수 의견이 계속 3분의 1 이하의 소수로 남으면, 소수자가 스스로 자신의 의견을 철회해야 합니다. 만약에 그들이 자신의 의견을 철회하지 않고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회원의 자격이 없다고 판단해서 징계를 받게 됩니다. 의사 결정도 되지 않고, 의견을 철회하지 않은 사람도 징계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만장일치로 의사가 결정이 됩니다.
소수 의견을 경청하여 만장일치에 이르는 방법
예를 들어서 하나의 안건이 올라왔습니다.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했다면 그 안건은 폐기가 됩니다. 그런데 3분의 2 이상을 넘겼다면 소수자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철회할 것인지 물어봅니다. 그런데 그들이 계속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겠다고 하면 그들에게만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발언권을 줍니다. 그리고 다시 투표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반대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생겨서 찬성하는 의견이 3분의 2를 넘지 못하게 되면, 다음 논의에서는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 양쪽에 똑같이 발언권을 주게 됩니다. 그런데 찬성하는 의견이 3분의 2를 넘겼다면, 소수자에게 의견을 철회할 것인지 다시 물어봅니다. 그들이 철회하지 않겠다면 한 번 더 기회를 줍니다. 그들이 의견을 철회하면 만장일치로 안건이 통과됩니다. 그런데 두 번째 토론에서도 찬성이 3분의 2를 또 넘기지 못하면, 그 안건은 폐기가 됩니다.
여러분들이 듣기에는 좀 복잡하죠?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소수자에게 세 번의 기회를 준다는 것은 충분히 소수의 의견을 듣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세 번 이상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그럴 때는 그 의견이 옳든 그르든 간에 수행자는 다수의 의견을 기꺼이 수용해야 합니다. 상가의 전통에는 만장일치로 의사결정을 하는 갈마 제도가 있는데, 그것을 계승한 의사결정 방식입니다. 옛날부터 상가에는 갈마 제도가 있어서 대부분 만장일치로 의사결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모든 결정을 만장일치로 해야 한다고 정해버리면, 한 사람의 반대자 때문에 아무런 의사도 결정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이것을 약간 변형을 한 겁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는지 심의하는 과정
이런 방식으로 대중이 의사 결정을 내렸다 하더라도 반드시 법사단의 심의를 거쳐야 합니다. 대중이 만장일치로 결정을 했더라도 그것이 부처님 법에 어긋나는 결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 결정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대중의 의사를 따르지만, 부처님 가르침에 어긋난 결정이다 싶으면 다시 한번 심의할 것을 결의해서 안건을 다시 부의시킵니다. 물론 대중들도 다 수행자이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에 유의하지만 그들은 어떻게 하면 효율적인지에 초점을 맞추기가 쉽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부처님의 가르침과 어긋난 방향으로 흘러갈 위험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결정에 대한 거부권을 법륜 스님이 가지고 있었는데, 현재는 이러한 권한이 법사단으로 넘어갔다고 보시면 됩니다.”
설명을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두 명이 추가로 질문을 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온 콩(Kong) 스님은 불교를 구시대적이라고 여기는 젊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포교를 하면 좋을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고, 태국에서 온 사카다라니(Sacchadarani) 비구니 스님은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전법을 하면 좋을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혼란기 시대, 어떤 관점을 가져야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을까요?
“서양인으로서 불교의 역사를 공부해 보니까 승속이 분리되었다가 다시 통합이 되는 모습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60년 전에 히피들은 인도에서 서양으로 불교를 가져올 때 알아차림과 명상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했던 명상에는 한계가 있었고 결국 길을 잃었습니다. 알아차림의 방식을 취하긴 했지만 붓다 담마는 아니었기 때문에 명상을 하고 나서 ‘그다음은 뭐지?’ 하고 깊은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심리학적 또는 인지적인 상담을 통해서 마음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찾아가기도 하는 등 불교가 현대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다양한 방식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저도 굉장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변화의 분위기 속에서 제가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가서 할 수 있는 만큼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도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좀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에 대해 스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불교도 그렇고, 큰 혼란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혼란기를 나쁘게만 볼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에는 매우 좋은 시기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안정된 시대에는 기존의 권위에 억눌려서 새로운 것이 일어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혼란기는 사람들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혼란이 있는 반면에 누구나 다 그렇게 해야 되는 줄 알았던 것이 무너져 버림으로 인해 새로운 길을 한 번 찾아가 볼 수 있는 자유로움이 생깁니다.”
이어서 스님은 붓다가 혼란기에 어떻게 새로운 길을 찾아갈 수 있었는지, 대승불교를 일으킨 사람들이 혼란기에 어떻게 새로운 길을 찾아갈 수 있었는지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런 후 왜 INEB(참여불교국제네트워크)이 필요한지 그 이유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바로 붓다가 태어난 시기에도 브라만의 전통적인 권위가 무너지고 사문들의 새로운 문제 제기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렇다고 사문들 역시 뚜렷한 대안이 되지 못했고, 그래서 세상이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였습니다. 바로 그때 붓다가 출현했던 거예요.
붓다가 살았던 시대에도 사문들의 많은 주장들이 생겨났듯이 지금 시대에도 많은 주장들이 생겨나고 있는 겁니다. 이에 대하여 우리는 무조건 비판적으로 보거나 또는 무조건 옳다고 보지 말아야 합니다. 붓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의 주장을 무조건 옳다든지 무조건 나쁘다든지 하지 말고, 그들의 주장을 귀담아 들어 보고 진리에 합당하면 수용하고, 합당하지 않으면 버려라.’
이런 이유로 INEB(참여불교국제네트워크)가 필요한 것입니다. 환경 위기의 시대, 대립과 갈등이 있는 시대, 물질문명의 한계가 온 시대에 인류가 안고 있는 과제들을 극복해 나가려면, 각 나라에서 또는 각 종파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시도를 모두 수용하면서 동시에 인류 문명이 가야 할 새로운 길을 찾아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불교의 경험만이 아니고 과학적인 것, 역사적인 것, 사회적인 것을 포함해서 인류가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모든 성과들을 다 수용해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합니다.
붓다가 당시에 존재했던 모든 학문과 사상을 기초로 해서 새로운 길을 찾았듯이 우리도 붓다와 같은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저는 불교의 연기 사상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토회는 불교의 근본 가르침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관점을 갖고 시작했습니다. 테라밧다, 마하야나, 바즈라야나, 젠 등 나중에 나온 이런 역사적인 산물이 아니라 처음에 붓다가 가르친 그 말씀과 행위에 초점을 맞춰서 새로운 길을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럴 때 수행을 중심에 둘 것인지, 사회 실천을 중심에 둘 것인지, 이런 논쟁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둘 다 우리의 삶입니다. 내 마음도 좋아져야 되고, 내가 사는 세상도 좋아져야 되기 때문에 따로 분리하여 대응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에 확산이 된 불교의 예를 든다면, 1960년에서 1980년대까지는 일본의 선불교가 유행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달라이 라마에 의해서 티벳 불교가 30년간 유행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불교는 비록 숫자는 작지만 가장 성장하는 종교였어요. 그러나 최근에는 다시 정체가 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 확산되고 있는 불교는 크게 두 가지로 성격이 나뉘는데, 하나는 주로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는 명상을 중심으로 한 불교입니다. 현재 광범위하게 확산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회실천 운동으로서 환경 운동, 소수자 운동 등 사회변혁 운동에 굉장히 적극적인 불교입니다. 이들은 사회 전체로 보면 극단적 좌파라고 불릴 만큼 행동이 적극적입니다. 그러나 명상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은 사회적인 실천 활동이 거의 없고,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붓다 담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두 가지 흐름에 대한 제3의 대안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질문자가 태국에서 불교를 배우는 것은 좋은데, 활동은 태국에서가 아니라 영국으로 가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현재 세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려면 미국이 변하거나 영국이 변하는 게 태국이 변하는 것보다 더 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 경우에는 미국에 영향을 주고 싶어도 언어가 안 통하기 때문에 영향을 줄 수가 없습니다.
또 영어만 할 줄 안다고 해서 전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은 굉장히 미세한 것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눈빛이라든지 목청의 떨림 같은 것을 보고 아주 디테일한 것까지 파악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외국인과 얘기할 때는 그냥 큰 틀에서만 얘기가 될 뿐이지 직지인심이라고 하듯이 마음을 꿰뚫어 보고 대화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의 경우에는 어떤 얘기를 해도 입에서 나오는 말만 듣는 게 아니라 그의 마음 상태가 어떤지를 바로 직시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즉문즉설이 가능한 겁니다. 더 나아가 그 사람의 인생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도 가능한 거예요. 여러분들도 큰 틀의 원칙은 어디에서든 배울 수 있지만, 한 명 한 명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할 때는 가능하면 자기가 자란 모국어를 쓰는 나라에서 전법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붓다의 가르침에는 정해진 것이 없어요. 마치 거울 앞에 무언가 나타나면 그 모습 그대로 비치듯이, 붓다가 무슨 말을 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붓다의 거울에 그들의 고뇌에 대한 해결책이 그냥 비치는 것입니다. 거울은 헤아릴 수 없는 그림을 비출 수 있지만 거울은 한 그림도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것처럼 붓다는 수많은 설법을 하고도 ‘나는 한 마디 설법도 한 적이 없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대승불교의 경전인 금강경에서는 ‘무유정법’이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중도’의 다른 표현입니다.”
궁금한 점이 계속 있어서 스님은 원래 예정에 없었던 저녁 시간에도 질의응답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여기까지 대화를 하고 잠시 휴식을 했다가 오후 4시부터는 정토회 대중부 활동가들을 초대해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원래 함께 대화를 하려고 했지만, 입안이 헐고 목이 붓는 증상이 심해져 이비인후과를 다녀왔습니다.
INEB 방문단이 문경 수련원과 두북 수련원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절에 들어와서 사는 출가 수행자들이었습니다. 오늘은 자신의 집에 살면서 전적으로 정토회 활동을 하는 재가 수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토회 대표님, 사무처장님, 행복운동본부 활동개발위원장님, 세 분이 자리한 가운데 궁금한 점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INEB 방문단의 대부분이 봉사활동을 10년 내지 20년 이상 지속할 수 있는 동기가 무엇인지 가장 궁금해했습니다.
알코올 중독, 동생의 죽음, 남편에 대한 미움 등 여러 가지 가정사가 어려웠지만 세 분 모두 수행과 봉사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해 낸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사연은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점은 수행과 봉사를 통해 괴로움이 줄어드는 경험을 계속해서 해나가고 있기 때문에 봉사활동을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질문을 했던 동남아 스님들은 세 분의 수행담에 큰 감동을 받고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대화를 마치며 사카다라니(Sacchadarani) 비구니 스님이 짧게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지난 5일 동안 스님이 해준 설명이 현실에서는 어떤 모습인지 잘 몰랐는데, 그 모습을 세 분의 이야기를 통해 직접 만나게 된 기분입니다.”
감동을 뒤로하고 지하 식당으로 내려가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저녁 7시에 3층 설법전에서 테라밧다 방식으로 예불을 했습니다. 오늘은 태국에서 온 프라설트(Prasert) 스님이 마이크를 잡고 빨리어 예경문을 염송 했습니다.
“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
예불을 마치고 저녁 7시 30분부터 다시 스님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부탄에서 좋은 소식이 도착했다고 하면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부탄에서 지속가능한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마을 주민들이 자원봉사를 적극적으로 해주고 있다는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농사철이 오기 전에 농수로 공사를 마무리하기로 했는데, 정부 관료들은 주민들이 참여하지 않을까 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들어온 소식에 따르면 주민들이 아주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정부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시작했다면 주민들이 ‘우리한테 인건비를 안 주고 그걸 공무원들이 떼먹으려고 하는구나’ 하고 생각해서 참여도가 낮았을 겁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JTS가 우리 마을을 위해서 지원해 주는 것이다’ 이런 취지로 시작했기 때문에 ‘부모도 지원해 주지 않는데 외국에서 스님이 지원을 해주니 너무 고맙다’ 하면서 아주 열심히 참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주 기뻐하면서 농수로 공사를 했다고 해요.”
이어서 부탄에서 JTS 활동가가 촬영하여 보내 준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영상을 보고 나서 모두 큰 박수 보냈습니다. 특히 부탄에서 온 도르지 스님이 가장 기뻐했습니다.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낮에 질문하고 싶었지만 순서가 돌아오지 않았던 분들이 질문을 했습니다. 계속해서 질문과 대답이 이어지는 가운데 마지막 질문은 태국에서 온 차이야폰(Chaiyaporn) 스님이 했습니다.
중도의 가르침은 어떻게 일상생활에 적용될 수 있나요?
“스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중도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궁금합니다. 부처님이 설한 중도의 가르침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나요?”
“언제 우리의 기분이 좋아지는지 관찰해 보면, 주로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때 기분이 좋아지고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기분이 나빠집니다. 즉, 욕구가 충족이 될 때 기분이 좋고, 불충족될 때는 기분이 나쁩니다. 이것을 ‘즐거움과 괴로움’이라고 말합니다. 쾌락주의는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욕망이라는 것을 관찰해 보면, 욕구가 충족되어 만족감을 느끼면 욕망이 거기서 멈추거나 사라지지 않고 더 큰 욕망이 생깁니다. 욕망이 충족되어서 생긴 만족감은 그것이 반복될수록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만족감이 점점 감소합니다.
예를 들어, 누가 나한테 백만 원을 주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한 달 후에 그 사람이 또 백만 원을 줍니다. 또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회수가 반복되면 그 즐거움이 점점 줄어듭니다. 그러다 일 년이 지속되면 백만 원을 받아도 기분이 처음만큼 좋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직도 백만 원인가?’ 하는 불편한 감정이 일어납니다. (웃음)
백만 원을 처음 받았을 때의 기분 좋음을 유지하려면, 다음에는 이백만 원을 받아야 하고, 그다음에는 사백만 원을 받아야 합니다. 마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마약에 중독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처음 느낀 즐거움을 느끼려면 마약의 양을 늘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칭찬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칭찬을 들을 때는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무감각해집니다. 욕망이 충족되는 정도가 점점 커져야만 우리는 그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욕망이 계속 충족되지 않으면 오히려 불만족에서 오는 괴로움이 생깁니다. 이런 이치를 깨닫게 되면 욕망을 따르는 방법으로는 지속 가능한 즐거움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래서 쾌락주의와는 반대로 ‘욕망을 완전히 없애야 한다’, ‘욕망은 작은 씨앗부터 없애야 한다’ 하는 고행주의가 나옵니다. 그런데 욕망을 억제했을 때는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이처럼 욕망을 따르는 세계에서는 욕망이 충족되면 즐거움이 생기고, 욕망이 충족이 안 되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그래서 즐거움과 괴로움이 끊임없이 되풀이됩니다. 이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윤회의 세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도의 전통 사상에서 윤회는 사람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하지만, 붓다가 말한 윤회는 우리의 삶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반복되는 윤회의 사슬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요? 그러려면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됩니다.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욕망이 충족되었다고 즐거울 것도 없고, 욕망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괴로울 일도 없습니다. 이러한 상태를 니르바나, 즉 ‘열반’이라고 말합니다. 니르바나를 우리는 ‘행복’이라고 번역을 하지만, 이것은 즐거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즐거움과 괴로움을 떠난 고요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없으니까 행복이라고 부를 뿐입니다.
욕망을 쫓는 쾌락주의로는 윤회의 세계를 벗어날 수가 없으니까 그에 반하는 고행주의가 나온 겁니다. 붓다도 깨닫기 전에 몇 년 동안 고행주의를 따르는 스승을 찾아가 많은 수련을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붓다의 6년 고행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가까운 다섯 친구들도 놀라워할 정도로 고행을 했는데도 결국 붓다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이 가장 편안했던 때가 언제였는지 돌이켜보았습니다. 가장 편안했던 때는 어릴 때 새가 벌레를 쪼아 먹는 것을 보고 ‘왜 하나가 살기 위해서 다른 하나는 죽어야 할까?’ 하고 염부수 아래에서 고요히 명상을 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자신의 수행 방법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했습니다.
출가하기 전에는 욕망을 따랐고, 출가한 후에는 욕망을 억압했습니다. 이 두 가지 방법은 정반대입니다. 그러나 욕망에 대해서 반응을 한다는 측면에서는 똑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나를 잡아당긴다고 합시다. 잡아당기는 대로 끌려가거나, 안 끌려가기 위해 반대로 힘을 써서 저항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두 가지 방법은 정반대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당기는 것에 반응을 한다는 면에서는 같습니다. 그래서 붓다는 욕망에 반응하지 않는 길을 찾은 것입니다. 욕망에 끌려가지도 않고, 욕망에 저항하지도 않고, 욕망을 욕망인 줄 다만 알아차릴 뿐입니다. 바로 이것이 붓다가 발견한 새로운 길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도입니다.
중도란 양쪽의 중간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양쪽을 뛰어넘은 한 단계 더 높은 길입니다. 붓다는 이 길을 발견하고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욕망에 끌려가지도 않고, 욕망에 저항하면서 긴장하지도 않습니다. 욕망에 끌려가지 않으니까 밖에서 볼 때 그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도 욕망에 저항을 하지 않으니까 스트레스도 없습니다. 욕망을 따르지도 않으면서 또한 긴장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다만 욕망이 일어날 때 욕망인 줄 알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깨달음을 얻은 후, 그는 냇가에 가서 목욕을 하고, 건강을 위해서 유미죽을 얻어먹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이 볼 때는 수행을 포기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목욕을 하지 않고, 부드러운 음식을 먹지 않고, 자리를 깔고 앉지 않는다는 것이 당시 수행자가 지켜야 할 계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께 수행하던 다섯 친구들은 그곳을 떠나버립니다. 붓다는 건강을 회복하고 새로 발견한 길을 따라 마지막 정진을 해서 마침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이 길을 가르칠 때 중도를 첫 번째로 가르쳤습니다.
인도 사람들이 말하는 ‘윤회’는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지만, 붓다가 말하는 ‘윤회’는 괴로움과 즐거움이 되풀이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도의 전통적인 사상에서 해탈과 열반은 태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붓다의 열반은 괴로움과 즐거움이 되풀이되지 않는 것, 즉 괴로움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탈과 열반은 누구나 증득이 가능합니다. 모든 수행자는 해탈과 열반을 목표로 수행해야 합니다. 정토회에서는 죽어서 다음 생에 어떻게 태어나는지에 대해 전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복을 비는 것도 일절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이상은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목표를 놓는다면 붓다의 제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종교화된 불교의 수많은 종파들이 해탈과 열반이라는 목표를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죽어서 좋은 데에 가거나 복을 받는 것은 윤회의 과정에 불과합니다. 천 명의 제자를 가진 우루벨라 가섭이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 나서 한 고백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붓다를 만나기 전에 저는 윤회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붓다를 만나고 나서 저는 윤회의 씨앗을 버렸습니다.’
윤회의 씨앗을 심었다는 것은 그것이 현생이든 내생이든 복을 구하는 행위를 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까지 대화를 나누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원래 산책 시간도 가지려고 했지만, 밤이 늦어서 아쉽지만 곧바로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가자 대부분이 스님이 설명한 중도가 너무나 명쾌하고 좋았다며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마음 나누기를 마치고 나니 밤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오늘도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서울공동체 대중과 발우공양을 하고, INEB 스터디 투어를 마치며 소감 나누기를 한 후, 오후에는 조계사를 참배하고 총무원장 스님을 접견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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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5.30 INEB 1일째, 문경수련원 도착, 정토회 소개
사람들이 괴롭지 않을 때 불교를 배우게 할 수는 없을까요?
202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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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5.31 INEB 2일째, 수련 안내, 행복한대화(5) 대구
“어떻게 하면 시어머니 노릇을 잘할 수 있을까요?”
2024.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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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1 INEB 3일째, 농사 체험, 운문사
“사람들이 자원봉사를 지속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20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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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2 INEB 4일째, 농사 체험, 불국사, 질의응답
“즉문즉설을 할 때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무엇이었나요?”
202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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