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2004.1.25)
적선(積善)과 적덕(積德)
-이재창(편집국 부국장 겸 문화체육부장)
사람의 생각은 사람의 개성만큼이나 입장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위주로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 자기 자신과 완전히 똑같은 입장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어쩌다 비슷한 경우는 있을지 모르지만 완전히 같은 경우를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어머니의 한 배에서 낳은 일란성 쌍둥이조차 똑같은 삶을 살 수 없는 것처럼 다른 경우에 있어서도 더욱 그렇다. 사람 사는 게 그 나름이듯이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적지 않은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을 흔히 사회적 동물이라도 한다. 이 말은 인간은 결코 혼자서 살 수 없다는 말이다.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경우가 그저 소설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인간의 삶은 수많은 타인과의 연관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자기 자신의 삶의 행복과 불행은 오로지 나 하나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연관을 맺고 있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의 어깨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자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만의 노력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들의 도움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뭔가를 도모해서 성취하자면 남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저마다 개성과 입장과 현실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따르고 도와주게 한다는 것은 결고 쉽지 않은 일이다. 이것이 바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자주 부딪히게 되는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이다.
사람은 어릴때부터 조직생활을 경험하면서 커간다. 가족의 성원에서부터 유치원, 학생시절, 그리고 군복무, 사회생활의 조직에 이르기까지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이해관계 속에서 하나의 행위에 대한 평가를 받으면서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행위의 평가에 대한 평가 또한 조직의 이해관계 속에서 수없이 변질되고 음모된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 두 눈에 똑똑히 보이는 사실마저도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이중인격적 모습들에 진저리를 치곤 한다.
조직생활을 아는 사람들은 늘상 느끼는 것들이 있다. 포스트에 서있는 사람들은 항상 자기 사람과 수족만들기에 혈안이 돼 있다. 그러나 그것은 타인의 마음을 얼마나 움직이느냐에 있다. 한마디로 미더움과 신뢰를 얼마나 그들에게 제공하느냐에 있다는 말이다. 그 수족 만들기가 좋다는 말이 아니라 장단점이 있다는 말이다. 전횡을 일삼고 상대를 죽이기 위한 파워게임이라면 그것은 없음만 못하고 결국을 파멸을 가져올 뿐이다. 이중인격적인 행위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를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또 하나의 자기 자신에 대한 욕심이며 위선이며 파렴치한 짓이다.
본보기를 보이거나 물리적인 힘을 써서 남을 따르게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잠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나 제 목숨이 아까워 할 때 가능하다.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목숨, 그러나 사람들은 궁지에 몰리면 그 목숨을 돌보지 않으니, 무력이나 엄한 법이라 해도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사회에 사형같은 극형이 존재하지만, 그에 해당하는 범죄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그 한계이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결코 싶지 않다.
인간관계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미더움, 신의 또는 신용이다. 부모와 형제자매 등은 하늘이 맺어준 사이지만,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만나 그 사이가 돈독해짐에 미더움 이상 가는 것은 없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듯이 혈연관계는 인간의 모든 관계 중에서 가장 근원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물보다 진한 피가 돈보다 묽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와 우리의 사회를 통해 빈번하게 느끼곤 한다. 그놈의 이익 때문에 부자, 또는 형제자매가 서로 칼을 들이대고 싸우는 걸 한두번 보아온게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추구하는 이익이란 것도 결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제의 동지가 오늘이 적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익으로 맺어진 사이는 잠깐은, 그러니까 이익이 일치하는 순간만은 피보다 진하다 해도 그 이익이 조금이라도 상치되면 죽기살기로 싸우는 원수지간으로 삽시간에 변할 변수는 언제나 시한폭탄처럼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신의로 맺어진 사이는 그렇지 않다. 신의라는 것 자체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순식간에 무너지는 일도 없다. 이렇게 피보다 돈보다 진한 신의, 신용 또는 미더움을 갖추지 못한 자는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하나의 조직을 풍지박산 내고 나라까지 말아먹는 원흉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적선(積善)과 적덕(積德)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아왔다. 지위가 높을수록 책임의식과 덕망도 높아야 한다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란 말이 더욱 더 생각나게 하는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