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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12:1-25) 전지현보다 여자 친구가 더 좋은 이유
오늘 말씀으로 <전지현보다 여자 친구가 더 좋은 이유>라는 제목으로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전지현보다 여자친구가 더 좋은 이유'
전지현! 여러분이 다 아십니다. 아주 아름답게 생긴 유명한 여배우 아닙니까?
'전지현보다 여자 친구가 더 좋은 이유'라고 하는 질문은 모 회사의 핸드폰 광고입니다. 어느 특별한 핸드폰 광고에 나오는 카피입니다. 전지현보다 여자 친구가 좋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답을 주고 있습니다.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핸드폰 중에 손으로 화면위에 나온 그림이나 아이콘을 터치하면 옮겨 가는, 이전에 핸드폰들이 눌러야 되는 거라면 화면위에 직접 손을 대고 만지는 그런 핸드폰이 있습니다. 접촉을 하는 핸드폰이 있는데 그 핸드폰 선전에서 ‘전 지현보다 여자 친구가 더 좋은 이유는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광고 카피가 나옵니다. 이 말은 아름답게 생긴 전지현에 대해서, 우리가 많은 것을 알 수 있고 정보를 가질 수 있고 늘 그녀의 사진을 방에 걸어 두고 마음으로 사모하며 좋아할 수 있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전지현 이라고 하는 실제 인격체와 관계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반면에 여자 친구는 혹시 전지현 보다 조금 미모가 떨어진다 할지라도, 실제로 관계할 수 있지 않습니까? 만날 수 있고 만나서 함께 식사할 수 있지요. 또 기쁘면 함께 손을 붙잡고 또 함께 포옹할 수도 있지요. 실제 관계가 성립하고 오고 감이 있습니다. 전지현 연예인은 일방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뿐으로 끝나니까, 그러므로 실제 관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만큼 생동감 있고 더 좋다는 말을 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이 핸드폰 광고의 포인트는 '만질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접촉으로 여러 가지 기능을 선택하며 사용할 수 있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기발한 광고 카피를 만들어 냈다고 보여 집니다. 이 광고 카피의 의미를 염두에 두면서, 오늘 욥기12장에 나온 욥이 너무너무 답답해 하면서 친구들을 향해서 말하는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오늘 12장의 말은 친구인 소발이 욥에 대해서 비난조로 ‘왜 회개하지 않고 있느냐? 너는 그야말로 허망한 사람이 아니겠느냐?’라고 하는 말에 대해서 욥이 반응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허망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직접 들은 말이 아닌 것을 계획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업을 한다고 하면, 사업장에 나갔을 때라도 지금 그 사업장이라고 하는 현실에서 최고 통치자 되시는 대통령과 같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닌 것을, 내가 만들어 계획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다 허망한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신약성경에 보면 “너희의 말은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다 죄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처음에 그 말씀을 읽을 때 너무 빡빡하다는 느낌을 가졌었어요. 이렇게 빡빡할 수가 있겠는가? 어떻게 사람이 살면서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 하겠는가? 그런데 거기에 참 자유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말 허망한 것은 내 옆에 지금 현재 살아계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해 주신 것이 아닌 것을 내가 생각하고 내가 말하고 내가 계획하고 사는 동안에 우리는 정말 거짓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거짓말의 오랏줄에 나 스스로 얽혀 버리고 마는 거예요. 하나님께 들은 말이 아닌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 하면서 살면 되는 것이에요.
하여간 이렇게 허망한 사람에 대한 비난을 욥을 향하여 '네가 허망하다’라고 하는 소발이 오히려 허망하다는 얘기를 우리가 함께 생각했는데, 정말 이 허망한 사람이라는 비난에 대해서 욥이 기가 막힌 것이에요.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하나도 이루지 않은 것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6:10절),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데, 너는 지금 만약에 이 자리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생각을 한다면, 허망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음성을 듣고 사는 사람이라면, 나한테 이렇게 까지 얘기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이게 무슨 문제입니까? 욥은 7:18절에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초마다 시험 하시나이까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나의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라고 할 정도로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던 사람이에요.
반면에 친구들의 얘기는 하나님에 대한 모든 지식이 언뜻 보면 올바른 지식도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신앙관이 현세적 신앙관이요, 기계적인 인과응보의 도식 안에서 잘못된 신앙이기도 합니다만 맞는 지식들도 있어요. 그러나 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전부 다 평면적입니다. 그 지식을 자꾸 들이대는데 욥이 미치겠는 거예요.
욥이 오늘 뭐라고 하는가 하면 “너희가 알고 있는 지식은 짐승들도 다 알고 있고 공중에 나는 새들도 다 알고 있고 땅에게 물어봐라 땅이 대답할 것이다.”라고 합니다.
너희가 알고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자꾸 나에게 들이대면서 ‘죄인이니까 회개하라’고 말하는데 내가 너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없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바로 이점에서 그 광고의 카피를 생각하면 좋다는 것이에요.
'전지현보다 여자 친구가 좋은 이유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는데 다시 말하면 '우리가 믿음 생활 한다'고 하는 것이 마치 하나님에 대해서 성경으로 교리 공부하고 또 이런 저런 프로그램에 참석해서 예를 들어 성경일독학교를 하고 아버지학교를 하고 성경적인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배웁니다. 많이 압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다 결국은 전지현 이라고 하는 연예인에 대해 갖고 있는 정보가 늘어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실제적인 내 여자 친구가 되지 않은 상태로 전지현이 연예인으로 머물러 있는 상태로 그 전지현에 대한 정보만 자꾸 늘어납니다. 전지현의 키가 얼마다. 전지현의 형제가 몇 명이고, 전지현의 아버지는 뭘 하는 사람이고, 그 사람은 하루의 스케줄이 어떻고, 일주일의 스케줄이 어떻고 정보만 가득 갖고 있어요. 아무리 정보가 많아서 컴퓨터의 파일에 가득가득 차 있어도, 전지현과 실제로 한 번도 만나서 악수 한 번도 해 보지 않고 전화 한 통화 주고받지 않는 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일 경우에, 하나님에 대한 관계가 이럴 수 있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아요.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셨다.’라는 것은 대단한 앎입니다. 대단한 지식 이예요.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고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독생자를 죽게 하셨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다.'라고 기가 막히게 아는 것이 많아요. 그 뿐입니까? '하나님은 전지하시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다.'라고 별의별 정보와 지식을 다 갖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처럼 우리를 택하시고, 아브라함의 후손과 자손으로 우리를 영적으로 인치셨다.'라고 하는데 기가 막힙니다. 다 알아요. 다 알아요.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를 맺고 살지 않습니다. 기껏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전지현의 사진을 방에다 걸어 놓고 ‘야, 예쁘다. 예쁘다.’라고 하는 정도로, 내 급한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내 일을 이루어 주세요. 이루어 주세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누구와 관계합니까? 내 일과 관계하고, 내 문제와 관계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내 사업과 관계하는 것이지, 진짜로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굉장한 정보를 갖고 있는 거예요. 목사님들의 하시는 설교도 설교가 아니라 연예가 중계 같아요. 연예가 중계.
실제 하나님과의 관계 안으로 돌입하도록 돕는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정보만 늘어놓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시다. 이런 하나님이시다. 당신들이 원하는 소원을 들어 주신다.'라고 하는데 누가 그래요? 누가 우리가 원하는 소원을 들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그래요? 그런 이상한 정보만 자꾸 흘리는 것이에요. 하나님과 실제 관계로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전지현보다 여자 친구가 좋은 이유가 뭡니까? 만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실제 관계를 통해서 관계가 통로이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것들이 그에게 가고 그에게 있는 것들이 나에게 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복중의 복이 정말 좋은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이에요. 내가 사랑하고 싶고 사랑할 만하고 사랑해도 되고 사랑이 잘 진행될 수 있는, 그런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내 마음과 내 육신과 내 생활 전반이 업 됩니다. 업 돼요. 애들 말로 방방 뜨는 거예요. '관계'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이 관계를 통해서 우리의 삶이 완전히 질이 바뀌어 지는 것이에요. 주고받는 것이 달라짐에 따라서 완전한 차이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지현 이라는 배우와 관계를 맺는 남자는 기가 막힐 거예요. 아마 하늘을 나는 것 같을 것이에요. 그렇지 않겠어요? 그런데 연예가 중계예요. 기독교인들이 목사님의 설교도.
'장동건 씨가 어디 가서 자선사업을 했고, 배용준 씨가 얼마를 벌어 들였고 그렇습니다. 배 용준 씨가 몇 년 안에 결혼을 한다고 했습니다.'라고 연예가 중계하잖아요. 아무도 장동건이나 배용준과 관계를 맺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이런 상태로 연예가 중계를 듣고 있는 것처럼, 내 기분에 내 필요에 내 소원에 겨워서 그냥 내 멋대로 사업이 바쁘고, 내 자식 기르기가 빡빡하니 내 풀에 겨워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대는 그런 믿음의 상태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의 실질적인 관계에 돌입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실질적인 관계는 교회에서 성경공부나 교리공부와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서 교육을 받는다고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 정보가 필요해요. 필요하지만 그것 가지고는 절대 안 되고 실제 생활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럼 실제생활이 뭐냐? 실제 내 자녀 앞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하려면 하나님으로 오는 것을 받아야 합니다. 전지현씨가 진짜 내 여자 친구가 되려면, 전지현씨로부터 한 번이라도 전화를 받아야 할 것 아닙니까? 전지현씨가 선물도 하고, 전지현씨가 만나자고 제안도 하고 같이 식사도 하자고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야 여자 친구가 되잖아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것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뭐가 옵니까? 우리는 맨 날 생각하기를 내가 건강을 원하니까 건강주시고, 사업을 원하니까 사업 잘 되게 해 주시고, 자녀 일류대학 붙여 주시고 이런 식으로 받기를 원합니다. 그건 오는 것을 받는 게 아니지요. 강요하는 것이지. 그리고 내가 지배하는 겁니다. 공손한 어투로 하나님을 지배하는 것이지. 이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받는 게 아니에요. 진짜 하나님은 연예인 차원에서 머물러 계시고, 나는 팬 차원에 머물러 있고 정보만 늘어 가는 겁니다. 그리고 설교를 통해 정보가 자꾸 확산되어 가는 것이지요. 실제로 오는 것을 받아야 합니다.
자식을 앞에 두고 실제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서 하나님이 연예인이 아니라, 만질 수 있는 여자 친구의 입장이 되어서 관계를 맺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야 돼요. 그 하나님의 뜻은 죽는 것처럼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으로 현실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뜻을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과 실제적인 관계에 돌입할 수가 없습니다. 절대로 돌입할 수 없어요.
그래서 어제 주일 날 오후에 남자 분들이 하는 동서남북에서 말씀드렸어요. 이 새해가 되면 희망과 꿈과 비전에 대한 얘기가 더 강화됩니다. 그런데 꿈과 비전이 엄격하게 따져보면 딴 게 아니잖아요?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상실감입니다. 지금을 부족한 상태로 볼 수 있는 기준이므로 지금이 부족하게 보일 수밖에 없지요. 꿈이 있고 비전이 있고 바라는 것이 있으니까, 거기를 기준으로 볼 때 지금은 항상 부족할 수밖에 없어요. 거기에 감사가 없어요. 희망차게 앞으로 달려 나가겠다는 의욕은 있을지 모르지만, 진정한 만족과 감사가 있을 수 없는 것이에요.
그런데 지금이라고 하는 현실은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의 의견으로 우리에게 최고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는 받지 않고, 하나님과 무슨 관계에 돌입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는 항상 지양됩니다. 꿈에 의해서, 비전에 의해서, 지금이 최선이고 지금이 만족할 만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고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에요. 항상 꿈과 비전을 향해 나가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지양돼야 되고, 없어져야 되고, 극복돼야 되고 이런 것으로만 느껴지게 된다면 하나님과의 실제적인 관계에 돌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소발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자꾸 들이대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는데 다 알고 있는 얘기예요. 자꾸 '전지현의 키가 얼마고, 전지현의 형제가 누구고, 전지현이 좋아하는 음식이 김치찌개인데, 전지현이 제일 잘 하는 것은 된장찌개다.'라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욥은 전지현이 끓여 준 된장찌개를 전지현과 함께 먹고 있는데, 자꾸 욥에게 와서 '전지현이 된장찌개를 잘 끓이거든?'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답답한 것이지요.
전 지현이 코 잔등에 점이 있지 않습니까? 전지현의 코 잔등에 점이 있어요. 친구들은 '전지현의 코 잔등에 점이 있다.'라고 하는데 욥은 전지현의 여자 친구로서 겨드랑이 밑에 점 있는 것도 알거든요. 알고 있는 사람한테 자꾸 들이대고 있어요. 실제로 관계하고 있는데. 실제로 여자 친구가 돼서 만지고 있는데, 느끼고 있는데, 말하고 대면하고 식사하고 함께 행동하고 있는데 욥의 답답함을 통해서 자꾸 우리에게 신앙이 분명해 집니다.
신앙이 무엇이냐?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갖고 계십니까? 하나님에 대한 정보는 따로 놀아요. 그러다가 내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고 간구합니다. ‘이것을 이루어 주세요. 이것을 이루어 주세요.’라고 죽을 때 까지 그렇게 믿어도 하나님과 관계 맺지 못해요. 제가 아주 장담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관계로 실제로 돌입해 들어갈 수 없어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내 뜻을 실질적인 삶의 사건, 사건 앞에서 죽여야 돼요. 자녀에 대한 내 뜻을 죽이고, 사업에 대한 내 뜻을 죽이고, 건강에 대한 나의 소원을 죽이고 다 죽여 가면서 ‘뜻 살’과 ‘사랑 살’을 먹어야 돼요. 하나님만을 사랑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면서 내가 마음으로 사랑하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가 주어져야 됩니다. 독립해야 돼요. 구애받지 말아야 돼요. 이 세상에서 사랑하던 것들을 십자가에서 내가 죽음을 통하여, 내가 그것들로부터 독립해서 그것들의 상황과 관계없이 내 마음이 평강으로 유지되는 것이 독립한 것입니다. 자유를 지키는 것이에요. 그런 마음 상태가 아니면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로 돌입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정보로 가득 차 있는 연예인 수준으로 머물러 있고 절대로 내가 만질 수 있는 여자 친구와의 관계처럼 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만이 그것도 구체적인 현실에서 적용할 때 여러분! 이거 명심하셔야 돼요. 구체적으로 돈 몇 억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내가 사기를 당한 상황에서, 내 자식이 죽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에서 십자가에서 내가 죽음을 통하여 그런 일에 구애받지 않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하나님과의 실제적인 관계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게 내가 하나님과 실제적인 관계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하신 말씀처럼 내 삶의 세상적인 모든 영역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붙잡아 가실 것입니다.
여러분! 전지현보다 여자 친구가 더 좋은 이유는 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연예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정보만 늘여 가지 마시고, 실제로 하나님을 여자 친구와의 관계처럼 만드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하나님은 나에게 정보로 나 일방적인 흠모함의 대상인 연예인이 아니십니다. 전지현보다 더 아름답고 더 좋은 하나님께서 나의 여자 친구가 되시기 위하여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관계의 대상이 되시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주셨사오니, 주님의 십자가에 내가 죽음을 통하여 그렇게 준비되신 우리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는 실질적인 축복을 2009년 동안 내내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