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몇 개나 될까?
자갈치, 해운대, 광안리 및 광안대교, 태종대, 오륙도, 용호동 이기대, 송도, 송정, 해동용궁사, 롯데자이언츠, 갈매기, 밀면, 돼지국밥, 남포동, 부산국제영화제, 산복도로, 도시고속도로, 동백섬, 을숙도(현재 존재 않음), 영도다리, 동래온천, 꼼장어, 활어회, 완월동, 용두산 공원,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인 범어사를 비롯한 크고 작은 사찰, 성지곡 수원지 및 어린이 회관 등등 필자가 나열하기엔 너무 많아 대표적인 것만 기록해 본다.
대한민국 방방곡곡이 관광지요 명소겠지만 특히 한 도시에 누구나 공감하는 명소 명물이 이처럼 많은 도시는 단연코 부산이라 자부한다.
수많은 시대적인 아픔과 애환을 간직한 도시이며, 제2의 수도이자 제1의 항구도시 부산!
부산사람들은 경상도 특유의 기질과 급한 성격으로 알고 있지만, 무뚝뚝한 성격 이면에는 깊은 정도 있고, 한번 시도한 일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 의리와, 정절은 부산사람들의 공통분모일 것이다.
일찍이 바닷바람 속에 이어져 온 인류 역사를 거론하지 않아도, 마도로스 기질과, 뚝심 그리고 후한 인심은 전국 어느 지방 사람과도 잘 통하는 인간 특유의 멋이 넘치는 사람들로 잘 알려져있다.
여성 또한 몸에 밴 경상도 여자의 애교와 구수한 사투리 속에 담긴 깊은 정은 전국 사내들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는다.
‘용두산 엘레지’를 비롯한 ‘이별의 부산정거장’, ‘자갈치 아지매’, ‘해운대 연가’, ‘해운대 엘레지’, ‘돌아와요 부산항에’, ‘남포동 부르스’, ‘경상도 아가씨’ 등 광복 전후와 6•25 전쟁으로 이산가족의 아픔을 대변했던 노래는 부산 피난민들과 원주민들의 쌓인 정이 휴전(休戰)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시대적 배경에는 부산이 반드시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교야구가 전국을 강타하는 시절이 지나가고 칼라 TV 시대와 함께 태동한 프로야구는 부산사람들을 영광하게 만들었다.
광주에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 선수가 있다면, 전무후무한 기록의 소유자 무쇠 팔 부산의 최동원 선수는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야구인들 사이에는 아직도 전설 중의 전설로 통한다.
부산에서 야구가 열리는 날이면, 세계 최고의 노래방으로 변하는 사직구장은 상대 투수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고, 전 구단이 벤치마킹할 정도의 응원 문화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파도타기 응원이나, 쓰레기종량제 봉투를 이용한 응원 등은 프로구단의 응원 문화를 선도하는 역할로 잘 알려져 있다.
응원단장 출신의 유퉁 씨는 코미디언으로 유명 가도를 달렸고, 박기량 씨 등을 비롯한 롯데의 치어리더들은 몸매와 인물은 화려한 율동을 겸비한 연예인보다 더 미모를 인정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 10개 구단으로 늘어난 프로야구는 스포츠 방송국에서 생중계를 하다 보니 경기 후의 자세한 해설로 여성 앵커들이 대거 등장하여 이 또한 장안의 화제로 자리 잡은 지 오래 되었다.
해운대 백사장은 여름 피서객들의 선택 1번지에 충분하고 태종무열왕이 다녀간 곳으로 유명한 태종대는 신선바위, 자살바위, 등대 등이 자리하여,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송정에 위치한 해동용궁사는 바위 위에 사찰이 세워져, 밀물 때면 흡사 물 위에 절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태종대 자갈 해변에서 파도를 만끽하며 맛보는 해산물은 입안 가득 바다의 향연이 연출되어 이 순간은 그 무엇도 부럽지 않다.
자갈 해변에서 올라오는 중턱에는 하얀색 담벼락과 빨간 모자를 쓴 것 마냥 아름다운 등대가 기다린다.
동굴을 연상하는 출입문처럼 생긴 공간에는 등 뒤의 바다를 배경으로 너도나도 사진 촬영에 잠시 기다리는 여유도 필요하다.
이어서 태종대 산책길을 돌아오면, 곤포의 집 앞에는 유람선을 기다리는 관광객들의 늘어선 줄도 볼거리요, 유람선을 타고 흔들거리는 뱃전에서 오륙도와 거북섬 등을 바라보며, 갑판에서 흘러나오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구수하다 못해 헤어진 연인과 이산가족 등의 아픔을 상기시켜준다.
영도 섬을 떠나기 전에 거치는 곳은 제주 해녀들이 이주하여 터전을 잡은 제2 송도이다.
해녀들이 직접 물질하여 잡아 올린 멍게, 해삼, 성게, 조개 등의 신선한 해산물은 현장에서 마시는 소주 한잔의 안주감으로 최고 대접을 받는다.
하루 2번씩 들어 올렸다는 영도다리는 바로 옆의 부산대교 건설로 중단되었다가 몇 년 전부터 정오가 되면 다리 절반이 갈라져 들어 올리는 모습은 추억을 떠올리는 또 다른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영도 섬을 관광하고 나면 어느새 해는 기울고 영도다리를 건너서 돌아오면 바로 자갈치 시장 입구에 당도한다.
맨 먼저 마주한 건어물 상가에는 각종 해산물을 말린 상품들을 만나게 된다.
멸치부터 김 미역 등, 대한민국 건어물 백화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맛보기로 내놓은 멸치를 한입 넣고 우물거리면, 남포동 전철역과 마주한 자갈치 시장 정문이 나타난다.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란 문구가 부산 특유의 사투리로 정감을 더하는 간판이 떡 버티고 서있는 정문을 통과하면 바다를 뒤로하고 좌판을 깔고 생선을 파는 아낙네들의 손님을 부르는 소리, 흥정하는 소리, 생선을 설명하는 소리 등이 어우러져 마치 삶의 체험 현장처럼 느껴진다.
부산 앞바다에서 잡은 고기, 먼바다에서 잡아 온 고기, 외국에서 수입한 고기 등 없는 생선 빼고 다 있는 자갈치 시장의 또 다른 명소는 꼼장어를 빼놓을 순 없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비닐 천막 속에 앉아 아낙네들이 연탄불에 구워주는 꼼장어는 양념구이도 맛있지만 굵은 소금을 뿌린 소금구이도 별미 중의 별미로 통한다.
등 뒤로 통통배 움직이는 소리와 끼룩끼룩 우는 갈매기 소리는 입안의 꼼장어 맛을 더욱 풍미롭게하고, 아는 사람만 안다는 장어껍질로 만든 장어피 묵은 특유의 고소한 맛에 농축된 단백질과 장어 기름 등이 풍부해 스테미너 음식으로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가까운 지인과 나누는 꼼장어로 행복을 만끽하며, 저녁 불빛 속에 빛나는 남포동으로 자리를 옮긴다.
일사 후퇴 때 피난민들의 애환과 그 당시 공장에서 일하는 처녀, 총각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유명한 곳 남포동은 극장가로도 유명하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메인 장소로 잘 알려진 남포동은, 극장 앞에 줄지은 포장마차의 부산 떡볶이는 찰지고 걸쭉한 고추장 양념에, 굵은 가래떡과 부산 오뎅이 어우러져 최고의 맛을 탄생시키고, 널따란 철판에 구워내는 씨앗호떡과 군만두는 둘이 먹다가 하나가 쓰러져도 모르는 맛으로 정평이 나 있다.
남포동 극장가와 연결된 좁은 골목은 70~80년대에 낭만을 간직한 음악다방이 줄지어 있었으나, 현재는 상점가로 유행의 첨단을 걷는 옷과 모자, 악세사리 등이 차지했으며, 유흥주점과 각종 오락실 등도 점령했다.
남포동에 오면 꼭 들리는 곳이 먹자골목이다.
먹자골목은 남포동보다 광복동과 국제시장 중간으로 표현하면 더 잘 어울리겠지만, 이곳에서는 신사 숙녀를 막론하고 비빔당면과 충무김밥 등을 쟁반에 받쳐 들고 길거리에 퍼져 앉아 먹는 모양은 누가 봐도 욕하거나 손가락질을 하지 않는다.
이 모양 그대로 가 이곳의 낭만이요 법칙이다.
2부는 다음 호에
첫댓글 남포동 국수는 부산에는 없어지고 천안에는 있다
천안에 사는 작가가 부산을 못잊어 용두산 에레지를 부르고 있다는 느낌
저 또한 황금기를 부산에서 겪은 사람으로 정덕진 작가의 글속에 멍하니 잠겨 보았다 .
시인등용의 관문을 통과 하였고 편집국장의 필치가 또 한번 픽션 차원의 수필 문학에 일가견을 이룬것 같아서
늦은밤 물개박수를 보낸다
늦은밤 졸필을 감수해 주셔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더욱 정진하라는 말씀을 새겨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비빔당면과 충무김밥!!
부산이란 명칭자체가 낭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