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 다듬기
박갑순
초록 기운을 소진하고 누르스름 시든 겉잎을 떼어낸다. 남은 초록의 끝도 곧게 뻗지 못하고 휘어져 시든 부분을 똑 자른다. 불필요한 것일수록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간추린 것들의 몸을 휘감거나 그것을 떼는 손끝에 앙탈을 부리듯 달라붙는다. 손끝을 뿌리치며 떼어내려는 손에서 힘이 빠진다. 몇 번의 손질로 힘겹게 떼어내고 나니 싱싱한 초록만 남는다.
네모반듯한 호남평야의 모내기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든 5월 셋째 주말 고향에 갔다. 다급한 연락을 받고 내려갔다가 일이 잘 마무리되어 가벼운 마음으로 귀경길에 올랐다.
문득 고향의 따듯한 땅심과 햇살 바람을 먹고 자란 서리태를 구입하기 위해 지인의 농장을 찾아갔다. 기름진 평야를 양옆으로 너울처럼 두르고 나지막한 산 아래 담긴 수아사슴농장. 깜이와 사슴의 요란한 환영 인사 사이로 지인의 흙 묻은 포옹이 따스하다. 그녀의 안내에 따라 사슴들의 쉼터를 돌아보고 깜이의 집 앞에서 총명한 그의 소개를 받는다. 낯선 사람도 주인과 함께 오면 짖지를 않는 영민한 개란다. 그 앞을 지나 붉은 빛깔로 진입 중인 앵두나무 앞에 섰다. 바닥에 떨어진 주홍빛은 새들이 먹다 떨군 알맹이라니. 나무도 주인을 닮아가는가. 첫 열매를 새들에게 먼저 내주는 앵두나무의 배려도 배운다. 주인은 부추와 상추, 당귀 등등의 야채를 검정 봉지 가득 담아 서리태 자루와 함께 차에 실어주었다.
언제부턴가 도심에서 사는 내게 가장 귀한 선물은 무공해 농산물이 되었다. 트렁크에 실린 그것들이 상할까 자꾸만 올라가는 기온에 마음 졸이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다행히 트렁크에 실린 야채들은 긴 여행에 지친 듯 풀이 조금 죽었을 뿐이었다. 상추 겉잎은 버리고 여린 속잎과 당귀와 오가피 잎을 깨끗이 씻어 풍성한 시골 향기로 저녁 식탁을 차렸다.
부추가 산더미다.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자리를 만드니 거의 빈 공간이 없을 지경이다. 한 주먹씩 쥐고 다듬으면 수월하겠지만 상한 잎들이 잘 골라지지 않아 더디지만 한 개씩 손에 들고 꼼꼼하게 다듬는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도록 절반도 다듬지 못했다. 여리고 연한 부추를 다듬는 일이 이렇게도 힘에 겹다니.
누르스름 변한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은 푸른 잎이라고 주장하며 살아온 나를 생각해본다. 이제껏 나의 기준으로만 상대를 흑백논리로 재단하려 드는 성질은 분명 누렇게 변해 짓무른 부추의 겉잎이리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겉잎을 나의 자존인 양 지키려 했던 날들이 있다. 내가 살아오면서 체득한 것들로 세상을 다 재단할 수는 없을 터인데도 가끔 내가 가진 자로 재고 판단하고 목소리를 높인 적이 있다. 내 기준에서 그르다는 판단이 서면 타협의 여지가 없는 성격. 세상의 빛깔이 어떻게 정확히 흰색과 검정으로만 딱 구분 지을 수 있던가. 분명 무어라 딱 구획할 수 없는 회색의 구간이 있을 터인데 그 구간을 넘어서지 못해 각을 세웠던 자신의 모습이 짓무른 부추의 겉잎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추의 겉잎이 누렇게 변해 짓물러서도 쉬 떨어지지 않는다. 왼손으로 멀쩡한 부위를 잡고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야무지게 잡아당기면 형체도 없이 뭉개진 것은 지문에 달라붙고, 겨우 형체를 유지하고 덜렁거리는 것은 고집을 부리며 씩씩거린다. 억지로 제압을 당한 떨어진 것들이 깨끗하게 다듬어진 부추 무더기에 내려 튕겨져 앉는다. 납득이 되지 않는 것에 억지로 이해라는 휘장을 씌워 그럴 듯하게 무마한다면 오히려 싸울 때처럼 엉뚱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쓸모없는 겉잎이지만 조심스럽게 내면까지 살피면서 떼어낼 때 깔끔하게 다듬어지는 것을 보며 나를 다듬는 일도 그러겠지 싶다.
부추 다듬기는 다음 날까지 계속되었다. 혼자서 부추를 다듬으려니 쑥을 다듬던 날이 떠오른다. 깔끔하게 잘 살피면서 캤어야 했는데 더 많이 캐고 싶은 욕심에 마구잡이로 뜯어온 탓에 다듬는 일이 더뎠다. 흙을 털어내고 끼어든 잡풀을 하나씩 골라내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종일 다듬고 일어설 때 허리와 무릎 뼈가 삐걱대며 아우성을 쳤다. 다시는 쑥을 캐지 않으리라는 다짐까지 하면서 무언가를 다듬는 일이 이렇게도 힘이 드는 일임을 실감했었다.
나는 나를 얼마나 다듬으며 살고 있는가. 작은 일에도 곧잘 화가 솟는 다혈질을 잘 다듬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속잎까지 물고 늘어져 결국 전체를 버려야 하는 부추가 되었다. 조금씩 누렇게 변하다가 어느 결에 상한 성미를 빨리 다듬고 잘라내지 못해 자리를 잡아버린 것이리라. 많은 일들을 내 식으로 판단하고 옳다 그르다 목소리를 높이는 내 다듬어지지 않은 성미. 다듬지 않은 부추 같다.
어떤 일을 시작해서 펼쳐놓은 채 휴식을 취하기는 또 처음이다. 부추를 다듬다가 잠시 쉬기로 했다. 몸에서 힘들다는데 참고 견디라고만 해선 안 되는 체력이 된 지 오래다. 쉬다 다듬다를 반복하며 예정된 약속까지 취소하고 부추 다듬는 일에 매달렸다.
한해살이 부추를 다듬는 데 이틀이라는 시간이 소요됐으니 내 오십 중반을 넘게 살아온 삶을 다듬는 일임에랴. 부추를 하나씩 살피며 다듬듯 하루하루를 잘 다듬어 깔끔하게 정돈된 맛깔스런 삶으로 버무려야겠다. 고향 냄새 그득한 부추김치 향긋하고 맛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