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과의 경제전쟁
미국과 일본, 일본은 철광석의 99.6%를 오세아니아, 인도양, 라틴 아메리카에 의존한다. 원유의 99.8%, 천연가스의 79.2%, 석탄의 92.7%, 망간의 94.0%, 크롬의 93.5%는 페르시아만, 오세아니아, 인도양, 서남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중국, 동남아 등 먼 곳들에 의존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자원의 보고이며 과학 기술의 요람지이자 현대 경영학이 싹튼 곳이다. 모든 분야에서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앞서 있는 미국 경제가 이후 20여 년 동안 일본에 수모를 당했던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일본의 경영능력이 미국을 능가했기 때문이었다.
일본 기업들은 미국 기업들보다 더 많은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기업의 경영제도는 종신고용, 근무환경 개선, 직장교육, 연구개발 투자, 가치문화, 품질문화 등 모든 면에서 세계의 교과서가 되어 있다.
이는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조성한 '블루리본 위원회의 평가다. 일본 기업들이 장기적인 투자를 해 가면서 2~3%의 투자 대 수익율 (ROI: Return on Investment)를 올리는 동안 미국 기업들은 15% 이상의 투자 수익율을 단기에 올리기 위해 성장 동력인 장기투자를 생략했다. 이 차이가 일본을 품질 일등국으로 만든 것이다. 이 역시 미국의 불루리본 위원회의 평가였다.
미국은 변호사 천국이다. 1980년 당시 미국에는 50만 명이 넘는 변호사가 있었고 매년 4만 명 정도의 변호사가 배출되고 있었다. 이들은 그들의 역할을 부각시키기 위해 일부러 사건을 만들어 일을 지연시켰다. 사건이 해결되면 판결 금액의 65%를 챙겼다. 이에 미국의 지식인들은 미국이 변호사들 때문에 망해가고 있다고 탄식들을 했다.
반면 일본은 과학기술의 천국이었다. 인구는 미국의 절반 수준이지만 겨우 2만 명의 변호사가 있었을 뿐이다. 매년 300명 정도의 고시 합격자들이 나오지만 이들은 판사, 검사, 변호사로 쪼개지기 때문에 변호사가 귀했다. 따라서 분쟁이 생기면 당사자 간 타협으로 해결했다. 일본인들의 독서문화, 대화 문화, 예절문화가 이를 충분히 가능하게 했다. 이처럼 미국이 변호사들을 양산하는 데 교육비를 쓰고 있을 때 일본은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을 양산하는 데 교육비를 썼다. 당시 일본은 미국보다 2배 이상 많은 엔지니어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인문계 교육을 줄이고 자연과학 육성에 자원을 배분했다. 머리 좋은 학생들이 법대로 몰리는 대한민국의 교육 현상은 이래서 비관적인 것이다.
일본 기업들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때마다 미국 기업들은 언 발에 오줌만 누었다. 변호사들을 이용해 특허 소송을 냈다. 1975년 소니가 Betamax를 개발했다. TV 방송 프로를 녹화했다가 퇴근 후에 볼 수 있는 VCR (Video Cassette Recorder)이었다. Time Shift, 특정 시간에 방송되는 귀중한 프로를 시청할 수 없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신의 선물이었다. 일본이 이 VCR을 발명하자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월터 디즈니' 제작사가 소니에 즉각 소송을 제기했다. VCR이 공중 전파를 녹화(Taping from the air)하여 저작권(Copy Right)을 침해하는 기계라는 것이었다. 이 소송은 8년 동안이나 지속됐지만 결국 미국 법원은 소니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우리나라 김능환과 김명수 같은 대법관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판결이었다.
미국 기업들은 소송으로 앞서가는 일본 기업들을 제지시키려 했지만 이는 미국인에 대한 국제적 이미지만 추락시켰다. 이러는 동안 미국의 대일 무역 적자 폭은 해마다 늘어났다. 미국과 일본 사이에 무역 분쟁이 일었다. 미국은 일본을 무역 침략자로 규정했다. 갖가지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미국을 홍수처럼 침략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1,000억 달러어치의 일본 상품을 수입해주면 일본도 그만큼의 미국상품을 수입해야 한다는 상호주의(Reciprocity) 원칙을 내세우며 일본을 공격했다. 이에 일본은 미국의 주장을 보호무역주의적 발상이라고 받아쳤다. “인구만 하더라도 일본은 미국의 절반인데, 어떻게 밥량을 2배씩이나 올려 먹을 수 있느냐? 동등주의 (Equal Treatment)로 하자. 일본도 미국에 가서 미국법을 지키면서 미국인과 동등한 조건에서 뛰었으니, 미국도 일본에 와서 동등한 조건으로 뛰어라.”
1980년에 미국은 일본에 통신 시장을 개방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통신장비는 일반고객이 아니라 기술 전문분야 사람들만 사용하는 기계다. 미국인 통신전문가들도 미국제품과 일본제품을 놓고 비교해서 일본제품이 우수하니까 쓰는 것이다. 기술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무역역조 현상을 정부가 개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바로 이 시기가 Made in U.S.A가 Made in Japan에 밀리는 전환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