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왕이 되어보지 않겠소?" 아내에게 물었더니 활짝 반기며 웃음꽃이 피었다. 수원에 이사와 살게 된지도 십 수 년이 흘렀지만 화성행궁 한번 들어가 본 적이 없다는 아내였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우리 속담도 있지만 그동안 내가 너무나 무심했다는 미안함 속에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우리 환갑잔치도 못하고 넘어갔으니 행궁에 가서 만조백관들 다 모아놓고 제대로 멋지게 받아보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거드름을 피우니 아내는 아침부터 단장을 하며 몇 시에 가겠냐고 달떠 물었다.
수원화성문화제 마지막 날인 일요일, 그러니까 오늘 10시30분부터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혜경궁홍씨 진찬연이 열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한 시간쯤 전에 미리 서둘러 집을 나서야만 했다. 그래야만 자리를 잡고 여유 있게 편히 앉아서, 정말로 왕이 된 기분으로 회갑연을 내 것 인양 즐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진수성찬의 회갑잔치 상을 받은 혜경궁홍씨라 할지라도 바라만 봐야 하는 것은 주인공이나 손님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그 거리만 조금 멀고 가까운 차이가 있을 뿐일 것이다. 언감생심, 왕이 된다고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어리며 기분을 마냥 싫지 않았다.
행궁의 봉수당 앞에 도착하니 무대에는 진행자들이 나와 있고, 앞자리에는 벌써 많은 손님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햇살이 워낙 따가운 관계로 그늘을 찾아 서있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되자 봉수당 마당은 들어설 뜸 없이 대 만원을 이루었고, 이 행사에 대한 사람들의 높은 관심도를 알 것 같았다.
진행을 맡은 사회자는 남녀 두 명이었는데 우리말과 영어로 진찬 연을 소개했다. 조선왕조실록 국조오례의 원행을묘 정리의궤를 바탕으로 전통 복식 및 의궤절차로 궁중 문화 축제를 재현하고, 이를 통해 우리 전통 문화의 우수성과 정조대왕의 효 사상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고 했다. 또 1795년(정조19년)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펼쳐진 여기 혜경궁홍씨 진찬연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행사로 궁중무용과 궁중음식을 직접 보고,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당시 진찬 연에 동원된 인원은 8천여 명이란 기록이 있으며 이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것과 또 장용영 군사를 비롯하여 축성하는 노역자들과 잔치에 초대 된 민초들이 3천여 명에 이르며, 특히 오늘 재연 행사에는 수원에서 40년 이상 살아오신 분들 중에서 초대된 것이라고 했다.
행사는 먼저 수원시의회의장의 인사말에 이어 제1부시장의 인사말이 있고, 전주도립국악단의 궁중음악연주로 식이 거행되었다.
궁중무
혜경궁홍씨가 봉수당으로 가고 있다. 찬자의 호명에 따라 출연자들이 단상에 자리를 잡고 난 뒤, 혜경궁홍씨가 궁녀의 진홍빛 차일아래 걸어서 단상을 거쳐 봉수당 마루에 좌정을 하였다. 그 뒤 정조대왕께서 내관이 받쳐 든 금빛 차일을 따라 단상에 올라 어머니에게 진찬, 헌화, 헌주, 헌시를 하였고,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천세삼창을 모두가 손을 높이 들어 만세 부르듯 세세라고 외쳤다.
예식 중의 설찬에는 초대된 분들에게 궁녀들은 저마다 독상으로 차려진 음식을 전하였다. 진중한 가락에 맞춰 근엄하신 정조대왕의 거동이나 혜경궁홍씨의 모습 또한 실제 인물을 연상케 하였고, 이는 마치 시대를 거슬러 200 년 전의 그 시절로 흠뻑 빠져들고 있었다.
나는 그런 장면을 보며 문득 예전에 고모님의 환갑잔치 때가 생각났다. 시골 농촌 마을의 촌부였지만 초대된 동네 손님들에게 각자 음식을 따로 마련하여 독상을 차렸던 것이다. 일꾼들은 번거롭고 힘들기는 하여도 남의 눈치나 체면을 볼 것 없이 마음대로 손님들을 편하게 들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통 환갑잔치에서 대접하는 음식상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여보, 수원화성문화제에서 왕과 왕비가 되어보지 않겠소?_3
식은 정조대왕이 다시 어머니께 술을 전해 올리고 몇 가지 예를 치른 다음 철상을 하며 끝났다. 뒤풀이로 흥겨운 노래 가락과 춤을 추었고, 마지막으로 수원화성문화문제 효행상 수여가 있었다. 효행상은 그동안 부모에게 효도를 한 자녀들로서 각 구청이나 동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수원시장이 수여하는 것이라 했고, 제1부시장께서 대신했다.
권선동에서 왔다는 김아무개씨는 친구가 상을 받게 되어 꽃다발을 준비해왔다고 했다. 아흔여섯 살 되신 아픈 시어머니를 26년 동안 봉양하며 잘 모셨다고 했다.
수원을 일컬어 효의 도시라고 한다. 이는 정조대왕의 부모에 대한 효심을 바탕으로 하여 그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나가려는데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오늘에 재연되는 이 회갑연 또한 그런 부모 숭상의 효 정신을 기리는데 있지 않겠는가싶었다.
여보, 수원화성문화제에서 왕과 왕비가 되어보지 않겠소?_4 600년 이상 되었다는 이 노거수 느티나무는 정조대왕을 얼마나 보았으며 또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 효심의 정신이 이어져 살아나듯 신비감 속에 수원의 명소를 지켜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봉수당을 나오며 왕의 회갑연, 소감을 물으니 아내는 이만하면 먹지 않아도 터질 듯이 배가 부르다며 너스레를 부렸다. 가을빛이 완연한 고목나무 위로 파란 하늘이 가슴을 물들여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