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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 4: 1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 벧전 4: 2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제 4 장 : 하나님의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1.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 ( 4: 1 – 6 )
①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②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③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④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⑤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⑥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벧전 4: 1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성도를 가리켰다고 본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우리의 죄 때문에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기 때문에(3: 18) 우리도 같은 마음과 생각으로 무장해야 한다. 즉 우리도 죄에 대해 죽은 자로 여겨야 한다.
로마서 6: 6-7은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고 확증한다.
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고난(苦難, Suffering)은 영과 육신이 겪게 되는 어려움을 의미한다.
인간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고난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현실이다. 사람마다 고난의 상태는 다르지만 모든 자에게 고난은 주어진다. 그러나 그 고난은 생각하기에 따라 크게, 또는 작게 작용할 수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고난의 이유들로는
(1)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2) 다른 사람의 불해에 대한 감정이입
(3) 다른 사람의 형벌에 대한 대속적 담당
(4) 진정한 회개와 신앙의 증거에 따른 결과
(5) 보다 더 큰 악을 막기 위한 경고
(6) 그리스도를 닮기 위한 연단 등이 있다.
고난 문제는 성경 중에서도 예리하게 추구되어 있고, 그 중에도 욥기는 '의인의 고난' 문제를 취급하고 있는 대표적인 글이다.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인간에 대신하여 친히 고난을 받으신 것을 전하고 있다.
* 막 8: 31 -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 히 2: 10 -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이 그리스도의 고난이 인간의 고난을 이해하고, 높이며, 뜻있게 하는 열쇠이다.
사람마다 자기의 악으로 고난 받는 일이 없도록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 때문의 고난이라면, 이것은 적극 짊어져야 할(벧전 4: 15-16) 자기의 십자가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고, 그것을 통하여 사람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과 영광에 참여하는 자로 되기 때문이다.
* 롬 8: 17 -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 고후 1: 5 -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 빌 3: 10,11 -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롬 8: 18)고 했다. 소망을 가지고 현재의 고난을 극복하라는 것이다.
베드로는 본 절에서 그리스도의 본(本)을 강조하고 있다.
'육체의 고난'은 문자적으로 '육체 안에서 고난을 받으셨다'라는 의미로(KJV, RSV, NASB) 그리스도께서 '육의 생활영역'에서 죽기까지 고난받으셨음을 시사한다(3: 18, Michaels, Stibbs, Blum).
2]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갑옷'(호플리사스데)는 '무기'를 뜻하는 '호플론'에서 유래된 단어로 여기서는 전장(戰場)에서 사용하는 것처럼 싸움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현세의 삶 속에서 사상이나 이념들을 방어하기 위한 것을 의미한다(Lenski).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갖추어야 할 갑옷으로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같은 마음'은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위해서 고난 속에서도 인내하며 온유했던 대속적인 마음을 의미한다(Cranfield).
* 빌 2: 5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지상 생활 속에서 고난당하시는 가운데 가지셨던 마음으로 무장해야 한다.
3]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에 대해서 혹자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Kelly).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받으셨던 고난에 동참한 '그리스도인들'을 일컫는다(Calvin, Bigg, Selwyn, Michaels, Blum).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과 죽음에 동참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죄의 유혹과 권세가 이기지 못하여 죄가 끊어지게 된다.
* 롬 6: 8, 11 - ⑧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⑪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깨끗한 삶을 영위하는 성화의 한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Selwyn, Cranfield, Stibbs).
베드로는 수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의 동참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으로 무장함으로 죄의 권세가 지배할 수 없는 성화의 삶을 영위하도록 권면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위해 육체의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들은 죄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벧전 4: 2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대속의 고난을 받으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는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하심이다.
사람의 욕심은 죄를 만드는 원인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사람의 욕심을 따라 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고 선한 생활을 해야 한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4: 22-24에서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고 가르치셨다.
갈라디아교회를 향하여서는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라디아서 5: 16-17)고 하셨다.
또 로마교회를 향하여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 1-2)고 하셨다.
1] 그 후로는 ...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본 절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야 하는 삶을 제시한다.
'육체의'(엔 사르키)는 '육체 안에서'라는 의미로 육체로 살아가야 하는 지상 생활을 나타낸다.
'남은 때'는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생명이 남아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2]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람의 정욕'과 '하나님의 뜻'은 강한 대조를 이룬다. '사람의 정욕'(안드로폰 에피뒤미아이스)에서 '안드로폰'은 본서에서 한번을 제외하고는(3: 4) 모두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6절).
* 벧전 2: 4, 15 –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에피뒤미아이스'는 단순히 성적인 욕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본성에서 비롯된 모든 죄악 된 욕망을 의미한다(Selwyn, Michaels).
* 요일 2: 16 -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 육신의 정욕
W. Jones 에 의하면 외적인 것들에 대한 집착 (attachment to the outward)을 가리킴.
* 벧전 2: 11 -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2) 안목의 정욕
W. Jones 에 의하면 일시적인 것들에 대한 집착 (attachment to the transitory)을 가리킴.
(3) 마음의 정욕
* 롬 1: 24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4) 죄의 정욕
* 롬 7: 5 -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5) 청년의 정욕
* 딤후 2: 22 -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6) 이 세상 정욕
* 딛 2: 12 -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하나님의 뜻'은 문맥상 죄를 그치고(1절) 부끄러운 죄악들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2, 3절). 비록 베드로는 본 절에서 '하나님의 뜻'에 대해 정의하지 않았다. 본서 내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왕을 공경하며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19절).
* 벧전 2: 15, 17 –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 벧전 3: 17 -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인간의 타락된 본성에서 비롯된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만 한다.
3] 인생의 두 때 : 글쓴이 성경 벌레
스위스의 한 노인이 자기의 80인생의 삶을 시간의 양으로 재미있게 계산해 놓은 통계가 있습니다. 80년 중에 취침이 26년을 빼앗아갔고, 노동하는 것이 21년, 식사하는데 소요된 시간이 6년, 남이 약속을 안지켜 허비한 시간이 5년, 불안스럽게 혼자 고민하며 보낸 시간이 5년, 세면하는 시간이 228일, 넥타이 착용한 시간이 18일, 담뱃불 붙이는데 12일, 아이들과 노는데 26일, 그 중 가장 행복했고, 보람찬 시간은 불과 46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에 보면 우리 사람들의 생애를 두 때로 구분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육체의 지나간 때'와 그리고 '육체의 남은 때'를 말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 인생의 두 때 사이에 끼어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의 내 모습이고 현재의 내 위치이며, 오늘이 바로 내 인생의 두 때를 가르는 구분점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인생의 참 가치와 생의 의미를 발견하시고, 말씀의 진리가 주는 자유의 기쁨이 여러분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육체의 남은 때'를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 과거를 청산해야 합니다.(3절)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이 말씀은 과거 지나온 내 인생의 때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저질렀던 죄된 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어제까지로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만족하게 생각한다는 사고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어떤 것에 만족을 느끼면 더 이상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입니다.
여기'족하도다'라는 의미는 완전히 망각해 버려라, 뿌리채 뽑아버리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완전히 망각해 버리지 않으면 언젠가 또다기 그것을 반복하게 됩니다. 완전히 뿌리채 뽑아 버리지 않으면 또다시 싹이 자라나서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여전히 죄악헤 물들었던 구습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마음 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죄성들을 쳐서 물리치지 않으면, 그 순간에는 죄를 뉘우치고 깨끗케 되었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또다시 과거의 죄로 돌아가게 됨으로써 온전히 경건하게 살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2. 고난으로 죄와 맞서야 합니다.(1절)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사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본절에 보면 전투적인 용어가 나옵니다. '갑옷'이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육체의 고난이 죄와 싸워 그 죄를 그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과거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행한 모든 죄악된 옛 생활을 청산하게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고난이라는 것이 단순히 성도들을 힘들게 하고, 고통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옛 생활을 청산하게 하고 새로운 생활을 만들어 주는 축복의 보따리인줄 알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야 합니다.(2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에 인간의 대조적인 삶의 두 기간이 나타납니다. '사람의 정욕'을 따라 살아온 기간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기간입니다. 즉 이것들을 좇아간다는 말로보면, 이 두가지는 우리 인생들의 안내자라는 말입니다. 사람의 정욕을 따라 간 사람은 멸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은 생명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 40) /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 16-18)
<맺는말>
여러분, 우리 육체의 남은 때가 얼마나 됩니까? 이제는 과거 지나간 때의 세상일을 족하게 여기고, 오직 육체의 내 얼마남지 않은 때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남의 유익을 위해서 무엇인가 이 땅에 왔다간 족적을 남길만한 일을 합시다. 보람된 일을 합시다.
후회없는 내 인생의 마무리를 위해서 힘을 다하십시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합시다. 무엇보다 열심으로 서로 사랑합시다. 서로 원망하지 말고 대접하기에 힘을 다하십시다.
선한 청지기와 같이 서로서로 남을 위해 봉사합시다. 이러한 인생은 하나님 앞에 이르렀을 때 즐거움과 기쁨이 충만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에게 이 말씀대로 이루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은혜 목회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