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쌍화점'....
쌍화점은 고려 충렬왕 때 만들어진 가요로서 퇴폐적이고 문란한 성윤리를 노래하고 있어요.
영화 속에서 공민왕(주진모)이 이 쌍화점을 노래부릅니다.
원나라가 시시각각 압박해오던 고려 말, 왕은 어린소년들로 이루어진 '건룡위'를 만들어요.
이 꽃미남 소년들 중 홍림(조인성)은 왕의 총애를 받아, 왕에게서 직접 무술도 배우고, 악기도 배우고,
같이 겸상을 하는 등 동성애 관계에 빠집니다.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빌미로 원은 공민왕을 폐하고, 연경에 가 있는 중원군(?)을 왕위에 앉히려고 하지요. 게다가 중신들도 모두 원과 손을 잡고 왕을 폐하는데 가담하는데....
홍림을 아끼면서, 왕후에게 보내는 왕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그는 초조해합니다.
초조함과 질투심으로 파르르 떨리는 얼굴 연기를 보는 순간, 전율이 일었습니다.
그만큼 비극적인 내면 연기를 잘 하고 있었어요, 주진모 라는 배우는....
그런데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역사'와 사람과 애증을 얘기하면서, 왜 은밀함만을 강조하는 것일까?
은밀함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영화는 다소 지루해지고, 감동이 사라지고, 맥이 빠집니다.
영화 개봉 전부터 '조인성이 벗었다'는 것에 온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영화 속에서 조인성은 그다지 만족한 연기를 보여주지 못했어요.
약간 어눌한 듯한, 말이 새는 듯한 유아적인 대사 처리와
내면 연기도 별로.......(사실 저는 조인성 광팬입니다. 하지만 그는 아직 멀었어요.)
고려 시대의 화려한 복식(특히 왕과 왕비의 옷은 그야말로 천사의 옷입니다. 너무 멋진 옷)
연등회 장면, 무사들의 검무 등은 대단한 볼거리였어요.
하지만 보고 나서, 아쉬움이 남는, 그다지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이 느낌...
그건 아마도, 요즘 역사를 다룬 영화들이 너무 한 주제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이유가 아닐지요.
예를 들어,
고려말의 공민왕은 개혁주의자로서 참 많은 일을 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건 너무 가볍게 처리되고
왕이 홍림을 사랑하여 집착하고 소유하여 결국 죽음에 이른다는 너무 끈적한 이야기에만 집중한 건 아닌지....그리고 왜 그렇게 벗은 몸이 오래, 자주 나와야 하는 건지(아무리 볼거리를 주려고 했다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너무나 아쉬운 게 많아 집에 돌아와 '고려왕조실록'을 다시 읽었습니다.
제31대 왕이었던 공민왕은 배원정책과 고려의 국권 회복에 힘썼던 왕이었습니다.
나라를 잘 이끌기 위해 많은 일을 했지요.
노국공주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져 신돈에게 정권을 맡기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지요.
나중에 신돈이 제거되고 난 후 공민왕의 행동은 예전같지 않았어요.
즉위 초의 개혁적인 성향은 찾아볼 길 없고, 자주 술에 취해 있거나 노국공주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미행을 나가는 일이 잦았어요.
어쨌든 영화 속에서 보듯, 그는 변태적인 행동을 그때부터 했던 것 같아요.
영화 속 '건룡위' 같은 '자제위'를 만들어 난삽한 음행을 하도록 하고 자신은 문틈으로 엿보곤 했다네요.
동성연애를 즐겼고, 후계자가 없음을 염려하여 홍륜과 한안 등을 시켜 왕비와 동침하게 했고,
그들 사이에 아들이 생기면 후계자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익비가 아이를 잉태했다는 사실을 보고 받고 그 사실을 아는 무리들을 몽땅 죽이라고 하였지만, 거꾸로 술에 취해 자다가 그들 무리에게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그때 나이 45세....
영화는 마치 공민왕의 말년을 보는 듯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왕이 기울어가는 고려를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좀더 알려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물론 이 영화는 19세 미만은 관람하지 못하지만,
이 영화로 인하여 공민왕이 잘한 부분이 가려지고, 못한 부분만 드러나는 듯하여
역사적 사실이 다소 왜곡될 듯하여 걱정이 됩니다.
영화 만들기, 참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수많은 엑스트라하며 소품들, 배경들....옷들....촬영장소들....음악들...
영화 만드는 사람들, 정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존경하고 또 존경합니다.
하, 지, 만.....
눈앞에 화려하게 펼쳐지는 볼거리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화끈하고 은밀함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스토리가 탄탄하여, 보고나서도 가슴 속에 묵직하니 남는 게 있었음 좋겠습니다.
가끔 눈물도 감동도 느낄 수 있었음 좋겠습니다.
너무 큰 욕심인가요?
첫댓글 재미있겠다, 저도 아빠 쫄라서 보러가야겠습니다,
지현아, 19세 미만 금지 영화란다.
선생님의 하루가 48시간인듯 합니다 ...아침-취미생활-등산-점심-시장-청소-저녁-컴퓨터 ..이러다보면 언제 하루가 훌쩍 가 버리는데요...언제 영화보시고 이렇게 긴글 을 적으시고 ..요즘엔 자꾸만 제 자신이 한심하고 열등감이 생겨 미워집니다..ㅎㅎㅎ
글을 쓰는 건 그저 제 취미일뿐이랍니다. 저마다 일이 다르니까요. 장도 보시고, 취미생활도 하시고 얼마나 좋으세요. 저는 장 보는 일이 왜 이렇게 싫은지...
영화를 보고 감상평을 적으려면 아주 세심한 안목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평소에 많은 영화를 보면서 안목도 키워야 할테고...덕분에 본 영화를 되새김해봅니다. 주진모의 표정연기는 일품이었습니다.
저랑 같은 생각이시네요. 주진모의 표정연기....저는 왜 그 표정에 가슴이 아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