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며칠 전 어떤 분의 다급한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된....(음...어....)
거의 다 썼는데 다음 카페 시스템을 찰떡같이 믿고 임시 저장 해 놨다가 글이 통째로 사라져서(ㅠㅠ)
기억을 더듬어 급하게 다시 쓰는 후쿠시마에 소풍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왠지 이 사진으로 후기를 시작 하고 싶었어요. 이유는 모름.............)
나리타 공항에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낸 우리 몽당연필 선발대 방문단!
다 모여 함께 사진 찍고 후쿠시마로 출발했지요.
표정들은 다들 좋아 보이지만 앞에 공항 경찰이 부릅뜨고 지켜 보고 있어서 은근 쫄았습니다...
(현수막이 좀 컸을 뿐 우리 이상한 사람들 아닌데.....)
버스에 타자마자 이바라기 학교 어머님들이 준비해 주신 도시락을 나누어 받았어요.
도시락마다 붙어 있던 아이들 손편지가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떼어서 잘 보관하고 있어요!)
나리타공항까지 오셔서 오는 방문단 한 명 한 명 다 반갑게 반겨 주시고, 맛있는 도시락도 준비해 주시고
(다음 날 소풍 콘서트에서 노래도 하시고 공연 전 먹을 김밥도 마시던데) 눈코뜰새 없이 바쁘셨던 우리 이바라기 어머님(언니)들!
이 언니들이 없었으면 이바라기 소풍이 이만큼 즐거울 수 없었겠죠? 정말 고맙습니다.
도시락을 다 먹자마자 노래 연습부터 하기 시작했어요. 방문단이 '하나'라는 노래를 무려 화음까지 넣어
준비해 갔었잖아요. 화음을 자꾸 먹는 것인냥 먹어버려서 민망했던 저는....(왠지 좀 사색 중인듯...?)
내친 김에 '버스를 타고 전차를 타고' 율동 연습까지 완벽하게 끝내고 후쿠시마로 향했습니다.
구비구비 긴 언덕길을 돌고 돌아 (사무총장님도 헷갈리던 그 고갯길!) 오른 고개 끄트머리에서
방문단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을 때,
먼 발치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점점 더 가까워질 때, 눈가와 마음이 뜨거워지셨던 분들 많았을 것 같아요.
드디어 만나게 되었네요, 후쿠시마 우리학교를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 동포들을요.
박수로 환영해 주시던 후쿠시마 학교 아이들, 어머님 아버님들, 그리고 후쿠시마를 오랫동안 지키며 살아 오신 마을
어른들.
(영화 <60만번의 트라이>에 자기도 나왔다며, 상현이만 찾지 말라고 부르짖던)
후쿠시마 우리학교의 진정한 일꾼! 고세주 선생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몽당연필 방문단과 후쿠시마 동포들이 반갑게 맞절하며 후쿠시마에서의 아주 짧은 만남의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학교에 들어가는 게 불허되는 해프닝(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으로 학교 교문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었는데요,
한걸음만 들어가면 학교인데, 학교인데...하는 아쉽고 절망적인 마음을 안고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모임 장소로 가는 길에 한 어르신이 혹시 몰라서 방사능 오염 제거도 다시 해 두셨다고 하셨어요.
후쿠시마 동포들도 멀리서 손님이 오는 게 은근 기다려지셨나 봐요.
크고 작은 준비들을 많이 해 주셔서 정말 편하게 먹고 마시고 이야기 나누고 왔습니다.
처음 만난 어르신들과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길을 걸으니
멀리 사는 친척을 오랜만에 만나는 그런 정겨운 기분이 들었어요.
불고기 모임을 하기 전에 공연단이 준비한 짧은 공연을 함께 보았지요.
함께 웃으며 노래 부르고, 그동안 쌓인 마음에 눈물 짓기도 하고, 감동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큰 공연장에서 조명과 사운드가 완전한 상태에서 보는 공연도 좋았지만
이렇게 자그마한 공간에서 서로 어깨 겯고 보는 공연도 따뜻하고 좋았던 것 같아요.
해는 점점 지고, 노래 소리는 더 크게 울려 퍼지는데, 지금 이 상황이 잘 믿겨지지가 않고
자꾸만 울음이 터질 것 같아서 입술도 깨물어 보고, 물도 마셔 보고 했던 시간들.
후쿠시마에 한 명 밖에 없는 중학생 친구의 반가운 편지 낭독을 시작으로
후쿠시마 학교 아이들의 축하 공연이 시작됐습니다.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불러 주는 노래에 감동 받고, 일당 백을 해내는 아이들에게 또 한 번 더 감동 받았던 시간.
드디어 불고기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직도 이 때 먹은 호르몬 맛을 잊을 수가 없어요.
손이 안 보이게 굽고, 구운 고기가 안 보이게 먹어 치우고...(이 두 가지 동작의 무한 반복....)
그렇게 신나게 고기를 먹다가 급 소환되어 방문단 공연을 시작했죠.
공연은 어땠느냐구요? (라고까지만 쓰고 다음 날 이바라기 호텔 주차장에서의 땡볕 특훈을 떠올려 본다...)
장원봉 회원님께서 몽당연필 판박이 스티커를 가져 오셔서 아이들과 어머님들과 나눠 붙이면서
또 애틋한 시간을 가졌더랬습니다.
스티커 붙이면서 아이들하고 어머님들하고 더 많이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마에 붙이신 교장 선생님, 세수도 안 하신다고 하셨는데 다음 날 어찌 되었는지 (스티커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몽당연필에서 작년에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 스토리펀딩 기금을 일부 어머니회에 전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준비해 간 선물도 나누었고요, 맛있는 술도 선물받았습니다.(이거 정리 모임때 다 마셨다는 게 참트루...?)
어깨동무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도 부르고, 여럿 모여 사진도 마구 찍고,
헤어져야 할 시간인데(이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사무총장님은 얼마나 아쉬우셨을까요.)
아니, 우리를 떠나 보낼 후쿠시마 아이들, 어머님 아버님들, 어르신들은 또 얼마나 더 아쉬우셨을까요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발을 못 떼고 물끄러미 바라만 보던 시간을 보내다
(기분으로는 시간이 평소보다 세 배는 빨리 간 것 같았어요.)
타고 온 버스를 타고 후쿠시마 시내로 향했습니다.
후쿠시마에서의 하룻밤, 뒷풀이 장소로 향하는 거리를 걷는데
술집 아케이드를 지나자마자 조용하고 어두 컴컴해지는 거리가
마치 목포나 군산같은 지방 소도시의 적막한 밤거리가 생각났어요.
몽당연필이 모이게 된 계기가 2011년 3월 11일 일어난 후쿠시마 대진재 때문이라고 들었어요.
몽당연필이 일어나게 된 계기가 된 곳에 방문해서 함께 시간을 보내어 더 애틋했던 것 같습니다.
첫댓글 그렇지요. 처음 이 학교 아이들과 동포들의 사연을 통해 몽당연필이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왔지요. 한분 한분 얼굴 보며 다정한 이야기 나누고 싶었는데 시간은 왜 그렇게 빨리 가는건지. 언젠가 다시 꼭 다시 방문하게 되면 그 때는 학교에 서린 동포들의 사랑도 함께 느끼고 싶네요. 왜 이 작은 학교마저 들어갈 수 없는지, 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이다지도 힘들었는지 질문을 많이 하게 되는 만남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더 애틋한 시간들이었습니다. 후쿠시마 동포 여러분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세요. ^^
아, 정말 좋은 느낌이 전해지는 군요. 마음을 담아낸 글 고맙습니다.
어두워진 후쿠시마의 숲사이로 흐르던 ㅎㄹ이의 "고향의 봄"을 잊지 못합니다.다시 방문하고 싶네요
후쿠시마를 못간 서운함이 이글로 위로가 됩니다. 작은 학교일수록 더 애틑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