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12월. 오랜 산고 끝에 탄생된 에드훠의 첫 앨범에는 총 14곡이 수록되었다. 발표 당시 폭넓은 대중에겐 수용되지 못했지만 진보적인 일부 엘리트층에게는 주목을 받았다.
화두는 역시 한국최초의 창작 록으로 공인된 ‘빗속의 여인’. 펄시스터즈, 김추자, 조영남, 장현, 일본 혼성트리오 하파니스, 김건모, 서울패밀리, 김목경, 박강성, 태진아, 소명, 김연숙, 까치와 엄지, 강촌사람들, 백미현 등 장르를 초월한 수많은 국내외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된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한국대중음악의 빛나는 명곡이다.
“트로트가 대부분인 시절이라 ‘빗속의 여인’이 처음 나왔을 때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삼천만의 주제가가 됐다. 길을 가다 옷 가게에 들르면 여자 종업원까지 ‘빗속의 여인’이 좋다고 했을 정도로 이 노래는 여성들이 특히 좋아했다.” 신중현의 증언처럼 발표 당시에 이 음반은 전혀 빛을 보지 못했다. 팀 해체이후에 관심이 증폭된 저주받은 ‘걸작’이다. 60년대 후반 3번이나 변형재킷으로 재발매된 음반들이 증거다.
초반은 멤버들의 KBS TV 출연사진이 재킷으로 담긴 LKL레코드다. 수록된 음원은 동일하지만 신진레코드에 의해 리드보컬 서정길의 독집으로 포장된 재킷과 ‘신중현의 첫 작곡 앨범’으로 타이틀을 넣어 재발매된 음반이 2장이나 존재한다. 특이한 점은 하얀 바탕에 멤버들의 흑백사진으로 장식된 재발매 음반에서 ‘내 속을 태우는구료’로 발표된 오리지널 곡명이 펄시스터즈의 취입 이전에 이미 ‘커피한잔’으로 변경된 사실이다.
이 음반 속에 담겨있는 20대 청년 신중현이 신선한 목소리로 신나게 부르는 '커피 한잔'의 오리지널 곡 ‘내 속을 태우는 구료’와 한국적 이미지가 선명한 ‘소야 어서가자’는 빼놓을 수 없는 흥미로운 트랙이다. 후에 퀘션스의 객원보컬로 참여한 임성훈이 노래해 유명해진 ‘명동거리’의 원곡 ‘나도 같이 걷고 싶네’도 재미난 곡이다. 흥미로운 사실이 또 있다. '헬로아', '안녕하세요'로 70년대를 풍미했던 장미화가 이 앨범을 통해 '천사도 사랑을 할까요', '굿나잇 등불을 끕시다' 2곡을 취입하며 정식 가수로 데뷔한 사실이다. 1964년 KBS 아마추어 톱싱어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그녀는 ‘신중현 사단 1호 여가수’라는 영광스런 기록의 소유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노래들은 비트 강한 록 창법이 아닌 일반무대 활동을 염두에 둔 팝 스타일의 가요들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한국 최초의 창작 록 음반에 대한 반응은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먼저 감지되었다. 이에 부산 제일극장 무대에서 활동을 하다 야심을 품고 서울로 재 입성했다. 당시 시민회관(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서울 세종로의 '아카데미' 음악 감상실, 젊은이의 명소였던 명동 '오비스 캐빈'의 꼭대기 층에서 공연을 했다. 티켓은 어느 정도 팔렸다지만 영향력이 막강했던 '쇼 단장'들의 횡포에 생계가 힘들었다고 한다. 결국 가수 김영국의 세션그룹으로 음반취입에 참여하고 ‘한국의 벤처스’로 포장한 몇 장의 ‘연주음반’으로 그룹의 명맥을 이어갔지만 음악적 야망을 이루기엔 시기상조였다. 1966년 결국 밴드를 해산했다.
당시 대중적 인기는 화려한 무대매너와 외국 히트곡들의 번안 곡을 주 레퍼토리로 활동했던 라이벌 밴드 키보이스의 몫이었다. 먹고살기조차 힘들어진 신중현은 다시 동두천 미군 클럽으로 돌아갔다. 록음악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한 그는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블루즈테츠’, ‘액션스’등을 거쳐 68년 록그룹 덩키스 결성 후 펄시스터즈의 빅히트까지 데뷔 이래 10년의 무명시기를 감내해야 했다. 한국 최초의 록 음반이란 역사성 때문에 최근 LP와 CD로도 복각이 된 이 음반은 90년대 청계천에서 ‘일본인에게 300만원에 거래되었다’는 전설을 남겼다. 하지만 이 기념비적인 앨범은 록의 대부 신중현의 빛나는 신화를 위한 전주곡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