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씀)
1.5 2.0
소싯적 내 두 눈 성적표(?)
오호~! 통제라
바야흐로
이제 원시 시대로 돌입한 나의 눈.
언젠가부터 미간을 찡그려도
작은 글씨가 안 보여.
그럴 리 없는데 그럴 수는 없는 거라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청바지 꽉 끼게 입고
청춘인 양 용을 써 보아도
두 눈 부릅뜨고
개미 눈 만한 활자들을
생짜로 읽어 보겠다고
애써 겨루어 봐도
가물가물 안 보이는 것은 어쩌겠어.
사정이 답답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내 처지를 인정하기로 했어
돋보기 보러 가자 결심했지.
마음 한쪽에는 요즘 돋보기들은
디자인도 색깔도 멋진 것 많다는
기대감도 슬쩍 숨어 있었어.
멋 내기용 선글라스도 아니고
노안으로 인한 보조용 안경 사야 하는
현실 앞에서도 기어이 예쁜 것 타령을 해
여자니까
유행을 따르는 패셔너블한 감각의
돋보기 파는 가게를 찾아갔지.
아기자기하게 전시된 여러 종류 중
반짝이는 큐빅으로 장식한
연한 가지색 돋보기를 골랐어.
요즘 돋보기들은 대체로
작고 앙증맞더라.
예전 할아버지들이 쓰시던 검정 태로 된
투박하고 둔한 돋보기와는 달라.
몰랐는데 돋보기도 도수가 있다길래
제일 단계가 낮은 거로 샀지
그것만큼은 초짜인 게 좋더라.
구매 첫날 일단 책을 펴고
나비 모양의 내 생애 첫 돋보기를 쓰고 보니
노안 학교 입학 한 어색한 다른 내가 있네.
그래도 지성미 뚝뚝 흐르도록
폼을 잡아 보는데
지나다 보게 된 그 사람
흠칫 놀라 당황하더니 킥킥~!
"할멈! 흐흐~ 할망! "
뭐가 그리 쌤통인지
남의 불행이 자신의 행복인 것이
사람 속성 맞아.
아이들도 놀려대고 신났네! 신났어
"엄마 할머니다! 히히"
그놈의 돋보기는 늘 찾다가 볼 일 다 봐.
어쩌다 필요해 찾다가
금방 눈에 들어오면
횡재한 것 같다니까.
아예 끼고 살면 안 그럴 텐데
가끔 찾으니 심통을 부리나 봐.
거실에서 찾으면 안방에 있고
침대에서 찾으면 컴퓨터 앞에 엎드려 있으면서
애를 태운다니까.
아무도 없는 조용한 저녁
'고독'이라는 제목의 팝송을 들으며
집안에 굴러다니는
책 한 권을 집어 들었어.
모처럼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며
독서에 빠져보려고
그런데 돋보기 쓰고 책 보면
예전 같지 않고
오래 버티기가 힘들더라.
몇 장 넘기다 나도 모르게 잠들어
혼수상태에 빠졌나 봐.
한참 자다 깨서 다시 읽으려고
필수품 돋보기를 더듬어 찾아보니
헉!
곤충의 다리를 닮은
가느다란 안경다리 한 개가
베게 밑에서 나오는 거야.
깜짝 놀라 다리 몸체 부분을 찾았지
침대 머리 구석에서
다리가 부러진 채로 초라하게
날 바라보고 있더라
원망의 눈빛이었어.
아마 잠결에 안경을 벗어 놓고 자다
육중한 몸으로 가녀린 다리를 덮쳐
부러뜨린 사고를 친 모양이야.
잘 살펴보니 전치 몇주가 아니라
구제 불능 상태
아이고 미안해라.
그런데 다리가 부러진 안경은 어디다 쓰냐?
아.....!
나의 첫 돋보기와 헤어져야 하네
정을 쌓기도 전에 보내야 하다니.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도
내 곁에서 머물던 사랑스런 널 기억할께
안녕 ....안녕!
카페 게시글
2006년
다리 부러지다 (2006년)
산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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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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