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13 22:44:06
게으름뱅이가 모처럼 마음먹고 연분홍으로 곱다는 봄 마중을 나갔다
집 앞 작은 동산을 화사한 햇살과 친구 삼아 천천히 걸으니 마음까지 가벼워진다
아직 어린 싹들은 껍질을 까고 세상에 나오지 않은 설익은 봄인가보다
나목들이 봄바람에 곧 잉태할 그날을 기다리며 씨눈을 품고 있다
간간히 연둣빛으로 여린 새싹을 틔운 나무도 보인다
오랜 지기처럼 개나리도 익숙한 얼굴로 한무리를 이뤄 피어 있다가 나를 화들짝 반겨준다
노란색 옷은 여전하고 와글와글 작은 얼굴들이 모여있는 것이 떠들썩하니 절로 흥겹다
숨이 차게 언덕을 오를 즈음에
연한 꽃분홍색 얼굴을 한 친구 진달래를 만났다
살면서 지금 껏 진달래를 자세히 들여다본 적 없다는 걸 깨닫는다
알고 지낸 친구의 재발견처럼 한참을 서서 진달래를 눈여겨 보았다
생명도 없어 보이는 건조하고 앙상한 가지에
동글 동글 꽃잎을 공작시간에 누군가 만들어 총총 붙여 놓은 것 같았다
이파리도 없는 나뭇가지는 흡사 말 안들어 손바닥 맞을 때 쓰는 회초리 같은데
진달래 꽃잎은 분홍색 볼을 한 여리디 여린 계집아이 얼굴 같이 앙증맞고 사랑스럽다
나무와 꽃잎의 조화가 언발런스하다
새삼 알았네 진달래가 이렇게 생겼었구나...
유치원에 가면 아기들이 일제히 맑은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는 것처럼
진달래 꽃잎들이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며 천진난만히 나를 향해 웃고 있는 듯했다
그들의 티 없이 고운 모습에 나는 왠지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밝은 봄 햇살 아래서 야들야들한 진달래 유치원 친구들이 무겁게 굳은 나를 보게 한다
동산을 내려오는 길
진달래를 보았다는 감동을 나누려고 지인에게 전화하니
이제 알았냐고 벌써 피어 있었다네
새봄 새롭게 조우한 진달래와 수줍게 인사했다
처음 본 것도 아닌 해마다 이맘때는 어김없이 만나는
연분홍 꽃잎은 또 다른 모습 해맑은 얼굴로 돌아와
가는 세월에
가는 인생에
가는 청춘에
가는 사랑에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아련한 봄 날을 기억하라며 서러운 마음을 닦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