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2000-09
결 실(結 實)
박 병 민 목사(새터공동체)
서울에 바로 밑의 여동생이 사는데, 이름이 “실”로 맺음을 하는 현실(顯實)이다. 전에 그 이름을 빌려, 나는 그런 “실”로 마침을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고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성실(誠實)한 사람과 진실(眞實)한 사람, 그 다음에 신실(信實)한 사람을 이야기하였다. 실없는 사람이 아니라 알토란(土卵) 같은 사람이면 좋겠다. 가을이니 덜컹대는 빈 수레보다는 가득히 실려져 있는 수레가 보기 좋다. 자라갈 때는 필요로 하지만, 숙기(熟期)가 들어 익었을 때에는 내어준다. 자양분(滋養分)을 받아 자란 나무는 열매를 안겨준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것이다(마태복음 10:8).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따르지 못한다. 나는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짐스럽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순 없을까, 욕심도 없이 어둔 세상 비추어 온전히 남을 위해 살 듯이......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순 없을까, 남을 위하여 당신들의 온 몸을 버리셨던 것처럼, 주의 사랑은 베푸는 사랑 값없이 그저 주는 사랑, 그러나 나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 더욱 좋아하니, 나의 입술은 주님 닮은 듯 하나 내 맘은 아직도 추하여, 받을 사랑만 계수하고 있으니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
컴퓨터를 잘 다루는 친구 목사님이, 그 것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고쳐놓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였다. 부모님께서 공부를 게을리 하는 아이 앞에서 하시는 말씀 “배워서 남 주냐?”고 전에 그렇게들 꾸중하셨는데, 그 친구 목사님은 이곳 저곳 다니면서 “배운 것 남 주러 다닌다”는 푸짐한 말을 하였다. 몇 해 전에 서울에서 배우는 모임이 있어 참여하였다. 건물이 한국 옛 가옥처럼 지어졌기에 그 예배당을 구경오는 사람이 많다는 교회의 목사님께서 가르침을 주셨는데, 기억되는 말은 집에 찾아드는 사람에게는 가실 때에 작은 것 하나라도 꼭 손에 들려 보내신다는 말씀이셨다.
나무는 아낌없이 준다.
공동체 이야기
중 보 기 도
우리의 예배실에는 “중보기도”라는 이름으로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귀가 붙여 있다.
중보기도는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립보서 2:4) 하신 말씀처럼 주안에서 나보다는 모두의 기쁨을 위한 우리의 기도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지금도 예수님의 시대와 같이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누가복음 4:17-19)들이 있습니다. 온 세상에 있는 이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한 기도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밤이 되면 낮 동안의 일들을 돌아보며 기도의 시간을 갖는다. 우리 안을 보기보다는 우리 밖을 보려고 한다. 어느 학자는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신문을 들라”고 말을 하였단다. 눈이 어두워 신문 보기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신문이나 테레비 속의 벌려진 일들을 잘 다물어지게 해주십사 하고 기도하는 격이다. “나”라는 말 대신 “우리”라는 말을 앞 세워서 기도 드리는 시간이다. 등에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도 그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여인들에게 “예루살램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누가복음 23:28)하셨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줄 것이 많지 않다. 오히려 많이 받아가며 살아가고 있다. 신학생 때에 선배님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네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널 위해 항상 기도 하겠데” “그 사람이 누군 데요” 내가 물었던 적이 기억난다. 그 선배님의 말이 생각 될 때마다 다음의 노래를 불러 보기도 한다. “마음이 지쳐서 기도 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약함을, 사랑으로 돌봐 주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우리네는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했던 세상을 위하여 기도한다.
예전에 전도사님께서 예배 시간에 하셨던 우스개 말씀이 스쳐간다. “우리 같은 종들은 하나님께 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다”라고 하셨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복 빌어 줘가면서 사는 사람들, 얼마나 좋은 일인가?
공 동 체 소 식
☻ 새터 공동체 가족
박병민,진선미,한솔,진솔. (99. 7.16)
어귀녀 (00. 1.15)
박종만 (00. 5.28)
정무래 (00. 7. 1)
박영훈 (00. 7.30)
문창수 (00. 8. 9)
* 김창준 선생님이 6월 18일에 경기도 여주로, 김병만 형제가 7월 19일에 대전으로, 박성규 선생님이 8월 17일에 서울로, 각각 가셔서 오지 않음으로 우리에게서 빼었습니다.
☻ 새터 공동체에서는 거처를 정하지 못하는 노인, 장애인 분들을 모시고자 합니다.
☻ 기도하며 함께하신 분들
문창수.대덕교회(이중삼.허완희)정진일김형곤(변현주).황선업.어득자.낭월교회4여전도회.박종덕(신경자).이옥우(정인종).서문교회(조유성)1마리아여전도회.낭월교회사랑회.대화교회(김재석).일양교회.왕지교회.진수정.권용춘.박종만.대전서노회.이원교회.한삼천교회.영운교회.예수마을.대덕교회.이광승(김미경).판암제일교회.빈들교회(김규복).어득자.김성두.신평교회청년부.이종국.유인숙.채윤기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