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강령 6월 1일 ~ 6월 3일
사대강령의 교리적 위치를 확실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교리도 전체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교리도 구조를 종적구조와 횡적구조로 나눈다.
종적구조로 보면 처음 상징구조이다. 이 부분은 교리도 전체를 포함하고 있는 일원상 진리를 모신 부분이다. 그 다음이 강령구조인데, 신앙의 강령(사은, 사요), 수행의 강령(삼학, 팔조)를 제시한 부분이다. 세 번째는 종합실천구조로, 신앙구조 밑에 처처불상 사사불공, 수행구조 밑에 무시선 무처선 부분이다.
초입자들은 강령따라 하면 되고, 숙달된 사람은 한 마음속에서 신앙하고 한 마음속에서 수행해야 하는데, 종합실천구조에 따라서 신앙(보은불공), 수행(선)해야 한다.
한마음 나오는 것을 잘 보는 것이 사리연구, 한 마음을 잘 거두어 드리는 것이 정신수양, 한 마음을 잘 내는 것이 작업취사이다. 한 마음속에서 수행전체를 실천할 수 있는 구조가 종합실천구조이고 그것이 바로 무시선 무처선이다.
횡적구조는 처음이 진리핵심구조이다. 이 부분은 “법신불은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심인이요 일체중생의 본성이다” & 게송 이다. 일원상의 진리를 가장 간단한 문장으로 해석하고 표현한 것이다. 두 번째는 신앙수행구조인데, 신앙문(인과보응의 신앙문), 수행문(진공묘유의 수행문)을 통해서 진리핵심구조를 내 것 삼을 수 있는 길을 밝혀 주셨다. 마지막으로 대외실천구조인데, 이것이 사대강령이다.
교리적인 체계를 자기 머릿속에 정리되어야 한다. 교리가 낱낱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된다. 대종사님께서 깨치신 일원의 진리에 바탕해서 진리의 맥락이 연역(본원에서부터 현실로 나오는 것)되어 나온다.
우리교리는 전체를 연결해서 이해해야 한다. 전체연결해서 이해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이 교리도이다.
교리도 어떤 부분 하나로도 전체와, 일원상 진리와 연결된다.
교리도를 가지고 의두화해서 연마를 계속 해나가길 바란다.
사대강령
1. 교리적 위치
진리의 핵심을 신앙수행으로 자기 것 삼아 밖으로 실천하는 강령을 네 가지로 제시해 주신 것이 사대강령이다.
사대강령을 실천하면 개교의 동기에서 말씀하신 광대무량한 낙원세계가 실현되는 것이다.
정전 교의편 제일 마지막에 넣어주신 뜻은 일원상의 진리를 섭렵해서 네 가지 강령을 잘 실천하자는 것이다.
2. 내용
⑴ 정각정행
“일원의 진리 곧 불조 정전(正傳)의 심인을 오득(悟得)하여 그 진리를 체받아서 안·이·비·설·신·의 육근을 작용할 때에 불편 불의(不偏不倚)하고 과불급(過不及)이 없는 원만행을 하자는 것”
- 정각: 불조 정전의 심인을 오득 = 일원상의 진리를 깨친 것
-> 일원상의 진리가 불조 정전의 심인이라는 것을 규명해 주심
- 정행: 그 진리를 체받아서 안·이·비·설·신·의 육근을 작용할 때에 불편 불의(不偏不倚)하고 과불급(過不及)이 없는 원만행을 하자
- 편착되고 의지하면 정행이 나올 수 없다.
- 과불급이 없이 적당한 선에서 취사하는 것이 정행공부이다. 적당한 선이 중도행이라고 한다.
삼학공부의 목적은 정각정행하자는 것이다. 삼학팔조의 종합적 실천이 정각정행이다.
깨치지 못하면 정각정행을 못하는 것인가? 정각정행은 알면 안 만큼 실천하는 것이다. 원불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면, 아는 것이 정각이고, 안 만큼 실천하는 것이 정행이 되는 것이다.
안 만큼 계속 실천하는 공부를 통해서 일원상의 진리를 대외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⑵지은보은
- 신앙문교리를 체받아서 밖으로 실천하는 강령
“은혜 입은 내역을 깊이 느끼고 알아서 그 피은의 도를 체받아 보은행을 하자”
: 종합실천구조 속에서 신앙문의 결론은 보은불공이다.
“원망할 일이 있더라도 먼저 모든 은혜의 소종래를 발견하여 원망할 일을 감사로 돌리자”
: 실천이 쉽지 않다. 못 하는 원인을 생각해보니, 비교하는 마음이 있어서 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제 점심에 초대받아 식사하러 갔다. 지금 뜨는 강사가 된 여자교무가 나와 남자교무 한명을 초대해서 비싼 곳에 가서 먹었다. 남자교무와는 나는 짜장면집 등에 같이 먹으러 다니는데, 남자교무가 나에게 그동안 얻어 먹은 것은 다 잊어버리고 “오늘같이 은혜롭게 대접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라면서 굉장히 감사하더라. 은혜의 조건이 되는 것은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는데, 사람들이 비교하는 마음이 있어서 작은 것은 잊어버리고 큰 것만 감사를 한다.
명함을 하나 팠는데, 제일 위에 “감사디자이너”라고 적었다. 교무로서 가질 수 있는 직책은 다 놨으니 “감사디자이너”라고 적었다. 앞으로 감사를 디자인하는 운동에 열정을 바치고 노력을 할 것이다. 지은보은이다.
피은된 은혜를 깊이 느껴야 한다. 감사도 학습해야 늘어난다. 하지 않으면 보은이 되지 않는다. 감사하다, 고마워요 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느 책에서 ‘사랑해요’라는 말보다 ‘고마워요’라고 하는 말이 훨씬 더 파워가 있다고 한다.
어제도 하루를 지나면서 감사해야 될 조건 3가지를 적었다. 점심을 여자교무님에게 거하게 대접받은 것, 오전에 녹즙을 만들어 갖다 준 것, 일정이 겹쳐서 고민되었는데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준 것..
인간이 태어나서 제일 먼저 배우는 단어가 ‘엄마, 아빠’ 이고, 그 다음이 ‘thank you’라고 한다. 감사가 얼마나 중요한가. 지은보은의 실천을 대외적으로 해나가자. 우리는 보은의, 감사의 실천자가 되어야 한다. 인과보응의 신앙문을 전체적으로, 대외적으로 실천하는 길이다.
⑶ 불법활용
과거시대에는, 교법의 총설에 나온 것처럼, 불제자가 불교에 입문하면 세상일도 못하고 가정일도 못하고, 세상과 떨어져 격리되어 살았다.
대종사님은 과거 불교의 병폐현상, 잘못된 통념을 불법활용으로 깨버렸다. 불제자가 되어서 세상일을 더 잘하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 핵심이다.
무용한 사람, 유용한 사람을 말씀하셨다.
어떤 조직에 몸을 담더라도, 조직에 몸을 담으면 조직의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면 인생이 잘 못 산 것이고, 가장 슬픈 일이다. 자기존재감을 잘 느끼고, 조직생활을 잘 하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의 자존감이 강하다.
어느 여자교무님이 이야기하다가 “자기가 잘 사니까 옆에 있는 사람들이 계속 도와준다.”는 말을 하더라. 그 사람은 자존감이 있는 사람이다. 자존감이 없으면 엉뚱한 곳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
불법활용은 자기가 사는 직장, 조직 속에서 불법을 한없이 물같이 써서 유용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잘 사는 것이 원불교 교도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는 것이다.
⑷ 무아봉공
무아, 어렵다. 살다보면 직책을 맡게 되고, 직책에 충실해야 하는데, 충실하다보면 직책에 얽매이게 된다.
무아가 자기를 없앤다, 소아(小我)를 대아(大我)로 바꾼다고 이론으로는 잘 알고 있다.
봉공은 진정한 무아가 되지 않으면 봉공이 되지를 않는다.
무아봉공의 실천을 다른 말로 하면 “이타적 대승행”이다.
상대방,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살면서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것, 자기 본위로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본위로 사는 것이 이타적 대승행이다.
이타적 대승행으로 보면, 나에게 잘해주기도 하지만 못해주는 것도 생기는데, 그 때는 원망심도 생긴다. 냉장고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사람이 적당한 시기에 와서 내 냉장고를 다 정리해주고 간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런데, 한번 정리해주고 가면 내가 물건들을 찾지 못한다. 고마운 마음이 안 들더라. 내가 놓아둔 대로 안 두고..먹기는 내가 먹는데..
대승은 탈 것이 크고, 소승은 탈 것이 적다.
자전거는 혼자만 타고, 승용차는 4~5명 타고, 버스는 더 타고, 기차는 더 많이 타고...
차안에서 피안으로 중생들을 실어 나르는데 탈 것이 적은 것은 소승이고, 탈 것이 큰 것은 대승이라 한다.
무아봉공을 이타적 대승행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을 피안, 극락, 마음공부하는 세상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서 무아봉공하라는 것이다.
정각정행, 지은보은, 불법활용 세 가지를 몰아서 말하면 무아봉공하자는 것이다. 그만큼 중요하다.
교리 전체를 대외적으로 실천하는 네 가지 강령을 정전 교의편 마지막장에서 정리해주신 것이 사대강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