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는 페인트칠을 하면서 다시 가곡을 들었다. 그 사이 내가 모르는 가곡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내가 좋아하고 듣고 싶은 가곡들을 언제든 이렇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 이번에는 내가 처음 듣는 가곡이 흘러나왔다. 아마도 내가 자꾸 가곡만 들으니까 유튜브가 “이것도 들어보세요, 저것도 들어 보아요.” 하고 자꾸 가곡을 들이미는 것 같았다. 이 노래 저 노래 따라서 부르며 흥얼거리다가 나는 문득 일손을 멈추었다. 어깨와 가슴을 타고 흘러내리는 전율 때문이었다.
저 잔잔히 넓은 하늘 먼 곳에
그리워 사무치는 가슴 속에 그 사람
떠오르는 그대 모습 꽃잎처럼 흩어지고
남모르는 내 가슴은 눈물 젖어오네
잊을 수 없는 사랑하는 그대여
슬픈 과거와 후회를 그대는 알까
떠난 그대 이젠 다시 찾을 수 없고
이 밤도 그대 그리움이 지워지지 않는데
저 색지 같이 넓은 하늘 먼 곳에
보고 싶어 사무치는 마음속에 그 사람
떠오르는 그대 모습 파도처럼 부서지고
어느새 흐른 세월은 눈물 젖어오네
잊을 수 없는 그리운 그대여
지난 상처와 아픔을 그대는 알까
떠난 그대 이젠 다시 찾을 수 없고
이 밤도 그대 그리움에 잠들 수가 없는데
(그대 그리움-정성심 시, 박경규 곡)
아니 이렇게 애절하고 좋은 선율의 가곡이 있었나 하고 놀랐다. 어떤 이는 시를 쓰고, 어떤 이가 곡을 붙이고, 어떤 이가 섬세한 인간의 악기로 노래하였으며, 나는 이를 듣기만 하였으니 얼마나 고맙고 황송한 일인가.
나는 이 가곡이 명곡(名曲)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이 가곡을 듣는 순간 마치 찬란한 광채가 나는 무슨 예쁜 보석을 선물로 받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이 노래가 내게 주는 감동이 크고 황홀했다. 아, 이 얼마나 엄청난 기쁨인가. 이 한 곡의 선율이 내 가슴을 전율케 하는 행복이여.
나는 문득 이 가곡을 알게 된 것을 계기로 내가 그동안 잘 모르던 가곡들을 유튜브로 계속 찾아서 듣게 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시인들이 시를 쓰고 수많은 작곡가들이 곡을 붙여 가곡을 창작하였는데, 내가 이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 부끄럽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그렇게 우리 가곡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던 내가 모르던 가곡들이 그동안 이렇게나 많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였다.
아, 정말이지 내가 가곡을 알게 된 것은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인가. 이것도 아내가 나에게 알려준 것이니 그녀가 아니더면 내가 어떻게 이렇게 가곡에 깊이 빠져들 수 있었으랴.
말해 무엇 하랴. 가곡은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가곡은 전부 시(詩)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시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욱 좋았다. 내가 그동안 가곡을 통해 알게 된 시만도 얼마나 많았던가. 그리고 요즘은 가곡을 단지 바이올린이나 피아노연주로만 들어도 좋았다. 특히 바이올린으로 연주되는 가곡을 듣고 있으면 예전과는 다르게 금세 눈물이 났다. 예전 같으면 그냥 흘려 듣고 말았을 짧은 한 구절에도 나는 내 스스로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날도 그랬다. 「그대 그리움」은 나를 더욱 더 슬프게 하였다. 노래 전체가 듣는 이의 가슴을 후벼 파는 듯 하였지만 바로 이 구절 때문이었다.
슬픈 과거와 후회를 그대는 알까
마치 요즘의 내 마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 슬픈 과거와 후회를 그대는 알까. 아픈 동생이 내게 보낸 편지를 계기로, 지난날의 일기와 편지를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후회하고 부끄러워하는지 그녀는 알까. 다시 2절이 흘러나왔다.
지난 상처와 아픔을 그대는 알까
지난날 나는 얼마나 많은 상처와 아픔을 그녀에게 드렸던가. 말로는 앞으로 잘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나는 정녕 그녀를 편하게 하지 못하였고 괴롭게만 하였다. 아, 그 많은 부끄러움과 죄악을 어떻게 한단 말이냐.
내가 그때 눈물이 흐른 것은 아내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불과 스물한 살 시절의 아내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그녀가 내게 오지 않았더라면, 1976년 2월 10일, 그리고 그 이후 수많은 날들 속에 그녀가 내게 없었더라면... 나는 결코 지금 이렇게 살아 있지도 못하였으리라고 단언할 수 있다.
나는 오늘에 와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전에도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오늘 지금 이 시점에서 더욱 더 절실하게,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해야 맞는 말일 것이다.
나는 요즘 내가 처음 일기를 쓴 시점부터 아내를 만나기까지의 내 일기를 자세히 읽어보았다. 부끄럽고 슬프고 가련하고 답답하고 화가 났다. 나는 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가. 아무리 가난하고 못 배우고 철이 없었기로 나는 정말이지 너무 한심하고 못난 녀석이었다.
가난하다고? 어설픈 변명은 하지마라. 그 시절 가난한 사람이 어디 너 뿐이었는가? 가난하다는 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무기력하고 무능하고 한심하고 인내심도 없고 정말 보잘 것 없었다. 맨날 입으로만 어머니가 가엾다고 말하면서, 세상의 온갖 고뇌를 전부 짊어진 것처럼 떠들었지만, 정작 그러한 삶을 극복하고 보다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도 정신력도 없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다.
가난은 나를 슬프게 하였다.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한다는 현실이 나를 슬프게 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는 현실을 슬퍼하기만 하였지 이를 극복하려는 용기도 자신감도 구체적인 계획도 실천력도 없었다. 어머니가 불쌍하다고 가련하다고 늘 생각하면서도 그런 어머니의 희생 아래서 나는 기생(寄生)하는 기생충이나 다름없었다.
(후략)
https://youtu.be/oY-C0UM37xU?si=03rrGYHHg76bAJUf
첫댓글
김성만작가님
이렇게 오늘 인생 한 페이지에
그려내신다는 것엔
성공의 인생 후일담이 아니 신지요
앞으로의 큰 건승을 기원드립니다
작가님
시인 님~
잘 읽었습니다~👍
박경규 작곡가 님의 '그대 그리움' 곡은 제거 제일 좋아하는 애청'곡입니다
시도 곡도 너무 좋아요~
시인 님으로 작곡가님으로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제가 유튜브를 통해서 처음 가곡을 접한 것도 체칠리아님 체널에서 였습니다. 체칠리아님 채널은 정말 음악의 보고 입니다. 늘 즐겨 듣고 있답니다. 감사드려요.~^^
고운 시향에 젖어봅니다..수고하셨습니다..김성만 시인님..+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