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 사월에 천사 김형렬의 집에 머무르시며 공사를 행하시니 김자현, 김갑칠, 김보경, 한공숙 등이 차례로 따르니라.
계묘 정월에 전주부에 이르사 서원규 약방에 머무르시니 원규와 김병욱, 김윤찬등이 따르니라.
한 사람이 물어 가로대 금년에는 어떤 곡종을 심음이 좋으리이까 천사 가라사대 일본사람이 녹(祿)줄을 띠고 왔으니 일본종을 취하여 심으라 또 생계의 모든 일에 그들을 본받으라 녹 (祿) 줄이 따라 들리라 하시니라.
장익모가 그 어린 아들을 심히 사랑하거늘 천사 일러 가라사대 복은 위로부터 내리는 것이요 아래에서 치오르지 아니 하나니 부모를 잘 공경하라 하시니라.
천사 비록 미천한 사람을 대할지라도 반드시 존경을 하시더니 형렬의 종 지남식에게도 매양 존경하시거늘 형렬이 여쭈어 가로대 이 사람은 나의 종이오니 존경치 말으소서. 천사 가라사대 이 사람이 그대의 종이니 내게는 아무 관계도 없느니라 하시며 또 일러 가라사대 이 마을에서는 어려서부터 숙습(熟習)이 되어 창졸간(倉卒間)에 말을 고치기 어려울지나 다른 곳에 가면 어떤 사람을 대하던지 다 존경하라 이 뒤로는 적서(嫡庶)의 명분과 반상(班常)의 구별이 없느니라.
하루는 형렬이 어떤 친족에게 합의치 못한 일이 있어서 모질게 꾸짖거늘 천사 일러 가라사대 악장제거무비초(惡將除去無非草)요 호취간래총시화(好取看來總是化)니라. 말은 마음의 소리요 행사는 마음의 자취라. 말을 좋게 하면 복이 되어 점점 큰 복을 이루어 내 몸에 이르고 말을 나쁘게 하면 재앙이 되어 점점 큰 재앙을 이루어 내 몸에 이르느니라.
을사년 봄에 함열 회선동 김보경 집에 이르사 여러날 동안 머무르실 때 보경이 함열읍 사람 김광찬을 천거하여 추종케 하고 또 소진섭과 입피 군둔리 김성화가 차례로 따르니라.
하루는 이미 오성산에 가셔서 세상이 칭찬할 만한 곳이라 하시니라.
하루는 심심하니 세상이 한번 욱끈하게 웃을 일을 꾸며 보리라. 너희들은 앉아서 웃어 보아라 많이 미칠 것이라 하시니라.
병오 시월에 예수교당에 가사 모든 의식과 교의를 문견하신 후에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족히 취할 것이 없다 하시니라.
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세상에 학교를 널리 세워 사람을 가르침은 장차 천하를 크게 문명케하여 천지의 역사를 시키려 함인데 현하에 학교 교육이 학인으로 하여금 비열한 공리에 빠지게 하니 그러므로 판 밖에서 성도하게 되었노라.
천사께서 함열에 많이 계셨는데 이것은 만인 함열의 뜻을 취함이라 하시더라. 천지공사를 행하심으로부터 두루 순회하시는 곳은 전북 칠군이니 곧 전주, 태인, 정읍, 고부, 부안, 순창, 함열이니라.
정남기가 일진회원이 되어 천사의 가입을 강권하며 회원 십여인으로 더불어 천사의 두발을 늑삭(勒削)코저하여 가위로 베이되 베어지지 않는지라. 천사께서 머리 한 모습을 친히 베시며 가라사대 내 이것으로써 여러 사람의 뜻을 풀어주노라 하시고 웃으시며 정남기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의 보좌가 되리라 하신 후 다시 남기에게 탈회하기를 권하사 네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면 일후에 후회막급이리라 하시더니 과연 그 후에 남기는 패가망신하고 그 유족이 유리(流離)하니라.
정미년 사월에 신원일을 데리시고 태인 관왕묘 제원 신경원의 집에 가서 머무르실 새 경원에게 일러 가라사대 관운장이 조선에 와서 극진한 공대를 받았으니 보답으로 당연히 공사에 진력 협조함이 가하리라 하시고 양지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경원은 처음 보는 일이므로 이상히 생각하더니 다음날 경원이 다른 제원들로 더불어 관왕묘에 들어가 봉심할 때 삼각수의 한 갈래가 떨어져 없어진지라 모든 제원들은 이상하게 생각하되 오직 경원은 천사께서 전날 하신 일을 회상하고 관운장이 공사에 진력 협조하였음을 표시하기 위하여 소상에 그 표적을 나다낸 것이라고 생각하니라. 이 뒤로 신경원, 김경학, 최창조, 최내경, 최덕겸 등이 따르니 모두 태인사람이더라.
오월에 천사 형렬의 집을 떠나시며 가라사대 이 길이 길행이라 한 사람을 만나려 함이니 장차 네게 알리리라 하시고 용암리 물방앗 집에 머무르시다가 그 앞 주막에서 정읍 사람 차경석을 만나시니라. 경석은 전주로 가는 길에 이 주막에서 잠깐 쉬더니 천사 대삿갓에 푸단님으로 김자현등 두어 사람을 데리고 오시니 경석이 그 소탈한 가운데 씩씩한 기운을 뛰우신 의표와 순진한 가원데 꾸밈이 없는 언어동지를 보고 비범히 여겨 말씀을 청하니 천사 온화하게 대답하시고 술을 마시실 때 닭국 한 그릇을 경석에게 권하시니 경석이 받음에 문득 벌 한마리가 국에 빠지거늘 경석이 수저를 멈추니 천사 가라사대 벌은 규모있는 벌레니라 하시더라.
경석이 물어 가라사대 무슨 업을 하시나이까 천사 웃으시며 가라사대 의원 노릇을 하노라. 또 물어 가로대 어느 곳에 머무르시나이까 가라사대 나는 동역 객서역객 천지무가객이로다. 경석이 천사의 지식을 시험코자하여 다시 물어 가로대 어떻게 하면 인권을 많이 얻으리이까 가라사대 폐일언(廢一言) 하고 욕속부달(欲速不達)이니라 가로대 자세한 뜻을 알지 못하겠나이다. 가라사대 사람 기르기가 누에 기르기와 같아서 일찍 내이나 늦게 내이나 먹이만 도수에 맞게하면 올릴 때에는 다같이 오르게 되느니라 하시더라.
경석의 이번 전주 길은 세무관과 송사할 일이 있어서 그 문권을 가지고 가는 갈인데 문권을 내어 뵈이며 가로대 삼인회석에 관장의 공사를 처결한다 하오니 청컨데 이 일이 어떻게 될지 판단하여 주사이다. 천사 그 문권을 낭독하신 뒤에 가라사대 이 송사는 그대에게 유리하리라. 그러나 이 송사로 인하여 피고의 열한 식구는 살길을 잃으리니 대인으로서는 차마 할 일이 아니니라. 남아가 반드시 활인지기를 띨 것이요. 살기를 띰이 불가하니라. 경석이 크게 감복하여 가로대 선생의 말씀이 지당하오니 이 길을 작파하나이다 하고 즉시 그 문권을 불사르니라.
경석은 원래 동학신도로서 손병희를 좇다가 그 처사에 불만하여 다시 길을 고치려 하던 차라 이날 천사께 뵈임에 모든 거동이 범속과 다름을 이상히 여겨 짐짓 떠나지 아니하고 저물기를 기다려서 천사의 뒤를 따라가니 곧 용암리 물방앗집이라 식사와 범절이 너무 험악하여 잠시라도 견디기 어렵더라.
천사 경석이 떠나지 아니함을 괴로워하사 물러가기를 재촉하시되 경석이 떠나지 아니하고 자기 집으로 함께 가시기를 간청하니 천사 혹 성을 내시며 혹 욕도 하시며 혹 구축도 하시되 경석이 보기에는 모든 일이 더욱 범상치 아니 할 뿐 아니라 수운가사에 「여광여취 저 양반을 간 곳마다 따라가서 지질한 그 고생을 누구다려 한 말이며」 라는 구절이 문득 생각나며 깊이 깨닫는 바 있어 드디어 떠나지 아니하고 열흘 동안 머무르면서 집지하기를 굳이 청하거늘 천사 일러 가라사대 네가 나를 따르려면 모든 일을 전폐하고 오직 나의 가르치는 바에만 일심하여야 할지니 이제 돌아가서 모든 일을 정리하고 다시 이곳으로 찾아오라. 경석이 이에 하직하고 집에 돌아와서 모든 일을 정리하고 유월 초하룻 날 다시 용암리에 와서 천사께 뵙고 정읍으로 가시기를 간청하니 천사 다시 거절하시다가 사흘 동안을 지낸 뒤에야 허락하며 가라사대 내가 깊은 목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벗어나서 발목물을 당하였는데 이제 네가 다시 깊은 길물로 끌어 들인다 하시니라.
자료출처 : 대순전경 제삼장 문도의 추종과 훈회 3:1~3:20
첫댓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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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을 하나 하나 만나시는 모습이 선하게 보여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참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