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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 느림의 시간
2박 3일 파주 여행기
2018. 8. 향기 이영란
8월 3일에 여행을 가겠다는 결정을 1일 밤 11시 숙소를 예약하면서 내렸다. 방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의 여유는 좀처럼 나지 않았고, 또 다음 주에 이어진 학교 일정, 그 다음엔 아들들의 개학. 그렇게 성급하게라도 일정을 잡지 않으면 집 한번 떠나는 일 없이 여름이 다 갈 일이었다.
우리 집에서 여행에 대해 호의적인 사람은 거의 없다. 이 ‘거의’라는 것은 나를 제외한 사람들에게서 그나마 여행에 대한 긍정적 의도를 박박 긁어모은 양일 것이다. 세상 진지할 일이 없는 아들들은 보충수업과 학원을 빼먹을 수 있는 기회여서 가도 나쁠 건 없다는 계산이 완료었고, 일상의 피로에 찌든 남편 비희망, ‘날도 더운데 그 먼데까지 뭐할라고 갈끼고’의 명분을 내세우는 친정엄마 비희망!
그렇게 우리 셋은 3일 아침 7시,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파주로 정했다. 키와 몸무게로는 성인과 다름 없는 아들 둘과의 동행은 든든했다. 적어도 내 의견을 거스르지는 않을뿐더러 저희들도 나의 경제력과 후방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공생관계가 가능했다. 보통 서울 버스를 타면 실컷 자고 일어나서 너무나 명료한 정신상태로 오디오북을 들으며 감동에 몸을 떨곤 했는데 이번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자고, 또 자고..... 내내 가물거리다가 강남역에 도착했다. 전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갈아타서 첫 번째 목적지인 파주 출판단지에 내렸다.
지식의 메카, 파주출판단지
왼쪽을 한강과 임진강을 두고 버스는 한참을 달렸다. 동남쪽에 살고 있는 우리는 산이 거의 없는 서쪽의 넓은 평야지대를 만나면 당황스럽다. 파주는 주로 평야지역이었고, 도심이 별로 없었는데 출판단지도 높지 않은 건물이 옹기종기 모인 지구를 이루고 있었다. 관광안내서를 보고 <지혜의 숲>을 찾았다. 출판사에서 기증한 책들을 모아 만든 도서관으로 높이가 무척 높은 서가가 많으며 다양한 분야의 책이 많은 곳이다. 책은 읽기만 할 수 있으며 대출은 불가능하다. 사고 싶은 책은 북소리라는 서점에서 살 수 있다. 더위의 정점을 찍고 있는 시절이어서 피서겸, 독서겸, 나들이겸 여러 가지 목적으로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지혜의 숲> 안에는 커피숍과 레스토랑이 있는데 레스토랑은 분할된 공간이지만, 커피숍은 도서관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조금은 편한 자세로, 가족과 지인들과 함께 앉아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무척 자연스러웠다. 책을 읽고 집중하는 데에 오히려 더 도움이 되는 백색소음이어서 조용하고 경직된 도서관보다 훨씬 더 편안해 보였다. 우리는 <다이닝 노을>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조금 늦은 점심을 먹었다. 아들들의 식사량을 기준으로 할 때 양이 좀 적은 걸 제외하고는(우리 수준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다ㅎㅎ) 맛과 서비스 모두 괜찮은 곳이다. <지혜의 숲>은 게스트하우스 지지향을 함께 운영하고 있어서 ‘인제 그만 가자! 엄마!’라는 독촉 없이 조용하게 우아하게 한번 더 방문하고 싶은 곳이다. 출판단지 일대는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북까페가 많아서 차를 마시고, 책을 사고,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고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았다. 더운 날씨에 우리는 조금 걷다가 북까페에서 쉬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나 낯선 공간에 온 설렘 탓인지 더위보다는 책이 만들어내는 문화적 이미지가 강하게 남았다. 양질의 전집 시리즈를 만들어 내는 출판사의 판매장소를 들렀을 때는 손이 근질근질 했지만, 집에서 놀고 있는 많은 책들을 생각하고는 침을 꿀꺽 삼켜댔다. 넓은 출판단지 곳곳을 다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의 지식사업의 메카를 방문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까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남학생 둘은 조금 떨어진 롯데아울렛시네마에 도착하자 눈빛을 반짝였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너희 둘은 영화를 봐라, 나는 쇼핑을 하겠다는 제안은 실패했다. 저희들이 싫어하는 북까페는 함께 갔는데, 엄마는 영화를 함께 봐 줄 정도의 배려도 없냐는 것이었다. 반박의 건덕지가 없어서 나는 백기를 들고 우리는 ‘신과 함께2’를 봤다. 하정우와 주지훈은 우리의 여행을 더 신나게 만들어 주었다.
가슴아픈 역사의 현장, 임진각 관광단지
다녀 오고 나서의 말이지만, 조금 넉넉하다 싶었던 2박 3일의 시간은 수박의 겉껍질을 대충 만져보는 시간에 지나지 않았던 듯 싶다. 마지막 날 들렀던 임진각 일대는 그저 가보았다는 도장만 찍은 시간에 불과했다. 임진각 전망대에서 북한 땅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민간인통제선을 보고 납북자 송환을 기리는 기념관을 둘러보는 것이 전부였다. 엄청나게 넓은 평화누리 고원은 적나라한 태양빛에 엄두도 못 내었고, 투어버스로 진행되는, 도라산 전망대, 개성시내 망원경 관람, 제 3땅굴견학 등을 둘러볼 수 있는 비무장지대 안보관광은 다음 일정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납북자 송환기원 기념관에서는 가슴 아픈 사연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기념관에서는 6.25 전쟁 납북자들의 현황과 가족들의 기다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6.25 전쟁 납북자란 6.25전쟁 이전에 남한에 거주하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6.25전쟁 중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북한에 강제로 끌려가 북한지역에 억류되거나 거주하게 된 사람을 말한다.
6.25전쟁 중에 북한은 점령했던 모든 지역에서 우리나라 각 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인사들 뿐만아니라 사회 발전의 근간이 되는 다수의 청년과 장년을 북으로 납치해갔다. 북한 정권은 전쟁 전부터 납북을 계획했으며, 전쟁 직후에는 조직적으로 납치를 실행에 옮겼다. 북한의 남한 민간인 납치는 북한 체재를 확립하는 데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여 남한 체제의 인력활용에 타격을 주고, 전쟁 수행에 필요한 인력을 보충하려는 목적 등이 혼재되어 있었다. 현재 6.25전쟁 납북 피해자는 대략 10만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지만, 납치 이후의 행방을 확인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로 정확한 수치를 알기는 힘들다고 한다. 특히 남한사회의 저명인사, 우익인사. 지식인 계층 등의 납치를 통해 체제선전도구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나 미국의 참전으로 인해 전시가 불리해 지자 일반 남성들의 납치 역시 점점 더 조직적이고 폭력적으로 전개되었다.
너무나 준비 없는 갑작스런 이별로 인해 남은 가족들은 커다란 고통을 겪었으며, 순식간의 이별은 68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나는 납북자 가족들의 곱고 단란한 사진을 보면서 이별의 아픔 속에서 지내 왔을 삶의 슬픔과 고단함이 느껴졌다. 전쟁으로 인한 직접적인 인명 피해뿐만 아니라 납치와 납북, 민간인 살상, 보도연맹 사건 등의 비극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조용필의 노래 ‘일편단심 민들레’와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납북된 남편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에 음악을 붙인 노래들이다.
영원한 아름다움을 그린 르느와르
고통을 얘기하지 않으리, 나는 꽃과 여인, 인생의 환희를 그리노라.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영원하다.
그림은 영혼을 씻어주는 선물이어야 한다.
여자들은 삶을 아름답게 하는 재주가 있다네.
르느와르
다시 서울로 내려 온 시간이 오후 1시 경이었다. 우리는 르느와르전을 감상한 후 터미널로 갈 예정이었다. 여행에서의 전시관람은 무척 오랜 인상과 기억을 남긴다. 샤갈전, 이중섭전, 모네전, 고흐전 등 작품을 사진으로 대하는 일과 실제 작품으로 만나는 일은 사랑하는 연인을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만나는 것과 비교해도 될까? 특히 가난했던 고흐가 캔버스를 아끼기 위해 뒷면과 그림 아래에도 여러 번 스케치가 되어있던 모습, 화가 이중섭이 아이들의 모습을 담배를 싸는 은박지에 그렸던 모습이나 그 그림의 생동감을 느끼는 일은 실제 작품을 통해 훨씬 더 실감나게 느껴지는 듯 싶다.
모네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였던 르느와르는, 모네가 빛의 각도와 양에 따른 풍경의 모습을 자연과학자처럼 그렸다면 르느와르는 옥외의 아름다운 색채에 집중한 화가이다.
르느와르의 말처럼 그는 인생의 그늘이나 고통보다는 꽃과 여인, 인생의 환희에 주목하여 그린 화가이다. 그러나 현실 자체가 행복한 삶은 아니었다. 가난한 양복점 집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르느와르는 정식기관에서 그림을 배우지 못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그림 그리는 재능이 있다고 여긴 르느와르는 도자기 공장에서 그림을 시작하여 일하지 않는 저녁시간 동안 데생을 배우면서 화가의 길에 입문했다. 전문적인 화가로서의 배움을 시작하고, 루브르 미술관을 끊임없이 방문하며 여러 거장의 작품을 보고 배워 나갔다. 화가들은 삶과 세계의 한 단면을 관찰하여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르누와르는 삶의 긍정성에 주목했다. 어려운 환경에서 그림을 시작한 그이지만, 작품 속에서까지 어두운 삶의 단면을 담아내고 싶지 않았다. 꽃과 소녀, 여인들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인생의 아름다움과 희망을 놓지 않았다. 삶의 비극과 부조리를 미학적인 작품을 통해 승화시키고자 했던 르느와르의 감수성과 가치관은 작품 속에 그대로 내재하여, 현재까지 아름다움의 가치를 전해주고 있다. 그는 잠시라도 삶의 아름다운 한 단면을 느끼게 함으로써 그것이 가져다 주는 영속적인 기쁨을, 그리고 고통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살아낼 수 있는 동인을 제공하고 있다.
기획전시의 의도는 내게 잘 먹혀 들었다. 나는 화가의 삶에 대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긍정성에 주목했다. 그가 포착한 아름다움은 사람들에게 보다 삶이 주는 환희를 한번 더 살펴보도록 만들었다. 사랑이 넘치고, 관능적이고,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는 그의 그림을 보고서는 아름다운 삶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짧은 시간이 아쉽긴 하였지만, 화가가 추구한 방향과 의도만 파악하여도 충분히 이해가능한 부분이 많았다. 물론 그의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에는 화가와 함께 한 뮤즈(여인)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쫓기듯 나와서 기념품 샵에 들렀다. 무언가를 기념하고 싶었는데 요즘 들어 화제가 되는 황금빛 색채, 키스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에 관한 책을 하나 구입했다. 오스트리아 빈에는 클림트를 보지 않고서는 공항을 떠나지 말라는 메시지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클림트는 전통적인 작업방식을 거부하고 나체와 성을 대담하게 표현하면서 대중들의 고상한(?)-빈은 그 당시 세기말의 혼돈과 퇴폐, 매춘업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고 한다. ‘고상한’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라고 한다.-취향과 멀어졌다. 단체와는 어울리지 않는 고집과 강한 개성으로 그는 혼자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또한 그는 평생 혼인하지 않고 많은 여인들과 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그가 죽자 무려 14명의 여인들이 친자확인 소송을 냈다고 한다. 예술적 성취 속의 한 부분이었던 사생활 부분은 그다지 거론되지 않는 듯 하다. 그는 지극히 논란의 대상이 된 인물이었지만 그의 예술적 수준을 높이 평가한 후원자들의 주문을 받아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의 작업실에서는 많은 스캔들이 피어났으며, 그의 아들을 낳은 모델들에게는 생활비를 지급하였다고 한다. 1980년대 이후 대부분 여인들을 대상으로 그린 그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으며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의 한사람이다. 존 말코비치가 클림트 역을 맡아 만든 <클림트>영화도 있는데 영화의 헤드라인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 곧 쾌락이다’ 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관심을 받지 못했으며, 별점도 그리 신통치는 않게 매겨져 있다.
이틀째 일정은 파주 헤이리예술촌마을과 아름다운 프로방스촌이었는데 여행기에서는 생략했다. 헤이리예술촌에도 북까페가 많고, 그냥 까페도 많다. 아기자기한 소품들도 많이 판매하고, 근현대사 박물관에서도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한길사에서 운영하는 박물관과 까페에서 그림책도 읽고, 한나 아렌트의 책도 구경하였는데 무게상, 혹은 나의 객관적 독서력상 구입은 보류하였다. 조금만 참으면 몸도 가볍고 마음도 가벼울지니.
조금 걷다가 까페 들어가서 쉬고 먹고를 반복하다보니 배는 꿀렁거리고, 북까페만 들어가는 엄마 때문에 괴로운 아들들은 아빠에게 ‘좀 데릴러 오라’는 전화를 걸기도 하였지만, 길 찾고 지하철 찾아서 가는 건 머리회전이 빠른 아들 덕을 많이 봤다. ‘엄마! 이제 그냥 가자!’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한 아들들도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평을 내렸다.
낯선 곳을 가면 여행하면 시간이 길어진다고 했다. 실제로 그랬다. 해외로 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걸 보고 느끼는 데에는 장소가 중요하지 않았다. 핑계 삼아 여행을 정리해 본 시간이었다. 늘 핑계를 함께 만들고, 또 그 핑계를 함께 소중하게 여기는 책갈피언들이 또 고마운 벗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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