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3년 7월 8일 일본 우라가(浦賀/현재의 요코스카) 앞바다에 나타난 "시커먼 배(黑船)"에 일본인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미국이 일본에 파견한 동인도함대 소속 기함 사스케하나(USS Susquehanna)였다. 1852년 11월 24일 미국 동부 노포크(Norfolk)를 출항해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을 거쳐 7개월의 항해 끝에 일본에 도착했다.
미국은 지리적 특성상 상호 단절된 두 개의 해안을 갖고 있고, 상호 왕래를 위해선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동부 해안의 뉴욕에서 서부 해안의 샌프란시스코까지 가기 위해서는 대서양을 남하, 남미 대륙 끝 마젤란 해협을 돌아 태평양을 북상해야 한다. 동부해안에 기지가 있는 미 해군 함정이 극동지역을 가기 위해서는 일단 남대서양으로 남하한 뒤,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아니면 남아메리카 남단 마젤란 해협을 통과해 태평양을 횡단하는 두 가지밖에 없었다.
파나마 지협은 마치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를 가느다란 실로 연결한 형태다. 이곳을 운하 적격지(適格地)로 맨 처음 주목한 것은 1869년 수에즈 운하를 건설해 명성을 얻은 프랑스인 페르디낭 마리 드 레셉스(Ferdinand Marie de Lesseps)였다. "운하 박사"답게 자신만만하게 공사를 시작했지만 수에즈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난공사, 역병 등이 원인이 되어 중도에 포기하고, 1889년 운하 회사는 파산한다.
파나마 운하의 필요성을 절감한 미국이 사업권을 인수해 난공사 끝에 1914년 완공했다. 공사 당시 파나마는 콜롬비아의 1개 주였지만, 현지인들의 독립 열망과 미국의 필요가 결합되어 "파나마 공화국"이 태어났다. 1914년 운하가 완공되고, 1978년까지 운하 운영권을 미국 정부가 갖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운하 양옆 8km는 미국의 배타적 주권이 미치는 사실상 미국의 "역외 영토"였다. 이와 관련하여 현지인의 불만과 갈등이 수그러들지 않자 1978년 새로운 조약을 체결했고, 이 조약에 따라 20세기가 끝나는 1999년 12월 31일 운하 운영권을 파나마 정부에 이양한다.
미 해군은 태평양과 대서양으로 분리된 영해 방위와 패권적 제해권을 유지하는데 있어 파나마 운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역(逆)으로 미국의 적대세력은 파나마 운하의 탈취나 파괴가 필요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태평양에서 일본 해군을 상대한 미 해군은 "반쪽짜리"였다. 나머지 "반쪽"은 독일을 상대하기 위해 대서양에서 작전 중이었다.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대서양에서 작전 중이던 미 해군 함정들이 태평양으로 이동해 기존의 미 태평양함대로 합류하는 것은 불문가지. 이것을 의식한 일본 해군이 잠수함을 동원해 파나마 운하 파괴를 시도했다.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러한 시도는 교전국으로서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다.
대만 해협과 남지나해에서 미 해군과 "냉전"중인 중국 해군도 80년 전의 일본 해군처럼 파나마 운하를 노려보고 있을 것이고, 미국도 지피지기(知彼知己) 차원에서 중국의 수를 읽고 있을 것.
중국이 홍콩 기업을 앞세워 파나마 운하 태평양 쪽의 크리스토발 항구와 대서양 쪽의 발보아 항구의 운영권을 확보했다. 중국이 두 항구를 활용해 파나마 운하를 통제한다면 미국 해군에겐 치명적인 상황이 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 개연성은 낮지만, 미국으로선 신경이 거스르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 이것은 1962년 당시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배치한 것과 비슷한 사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 역시 예상대로 트럼프는, 케네디가 후르시쵸프에게 최후 통첩한 것과 유사한 공세를 취했다.
< 조선일보 기사에서 캡쳐 >
마크 루비오 국무장관이 파나마 대통령을 만나 파나마 운하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제거를 요구했다고 한다.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회담 직후, 곧바로 중국과 맺은 일대일로 협정을 연장하지 않고 조기에 탈퇴하겠다고 했다. 홍콩 CK 허치슨 홀딩스 자회사가 운영하는 운하 양쪽 입구의 발보아항과 크리스토발항 운영권 연장 계획도 파기하는 걸 검토 중이라고 했다. 운하를 되찾기 위해 군사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겠다"라고 한 트럼프의 위협에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조선일보 기사 인용-
중국이 순순히 물러서지 않을 것이란 것을 파나마 대통령이 모를 리 없겠지만, 트럼프의 메가톤급 엄포와 1989년 파나마 실권자 노리에가를 마약 혐의로 미국이 군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체포한 다음 종신형에 처해버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몰리노가 즉각 두 손을 든 결정적 이유일지도 모른다.
미국이 아무런 대책 없이 파나마 운하를 파나마 정부에 넘기는 바보같은 짓을 하진 않았을 것. 졸부가 된 중국이 순진하게(?) 파나마 운하를 노린 것이 미국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것 같다. 1842년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패한 청은, 그 후 영국의 교묘한 "채무 함정"에 빠져 흐물거리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영국이 사용해 재미 봤던 그 방법을, 졸부가 된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란 이름으로 바꾸어 파나마에서 써먹다 트럼프에게 강펀치를 맞은 것 같다.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즉각 중국을 손절하겠다고 했지만, 중국이 순순히 물러설지는 미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