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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에 대한 좋은 책이 있어 이 책에 대한 요약(+기타 자료참고)하여 글 정리했습니다.
원래 11월 정모에서 현대음악을 주제로 하기로 하였으나 불가피하게 모임이 취소되어 카페에 게시글로 정리합니다.
아래 소개된 두 책은 현대음악에 대해 공부하기 매우 좋은 책이니 관심있으신 분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예술가가 기존의 규범을 거부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한 창작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려운 과정의 일부이다. 가령 베토벤은 고전주의의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서 고전주의의 규칙을 철저하게 관철하고자 하였다. 그러한 관철의 결과는 역설적이게도 고전주의의 이상과 규칙(형식)의 불일치다. - 철학으로 현대음악 읽기(박영욱 저) 중에서 |
1. 조성의 발전과 붕괴 과정
※ 현대음악에 대해 설명하기 이전에 고전주의에서 후기낭만주의까지 조성음악이 어떻게 변화해갔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음악 양식의 흐름은 연속선상에 있다. 현대음악 역시 전혀 다른 음악이 아니며, 오히려 근대정신을 더 밀어붙인 것이다. 다만 표현하는 언어가 달라져서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일 뿐이며(우리의 귀에 익숙한 음악 언어는 여전히 18, 19세기 고전, 낭만주의까지만 머물러 있음), 이 변화 역시 갑자기 이루어진 것도 아니며 19세기를 거치면서 조금씩 준비되어 왔던 것이다.
1) 조성의 구심력이 완성되는 고전주의
- 바로크 시대 ‘학식 있는 양식(learned style)’에서 고전주의의 쉬운 음악 언어의 시대로 변화. 음악에 조예가 깊은 귀족에서 상대적으로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받지 않은 시민들로 음악의 수요층이 확대됨. 보편적 진리, 자연주의 사상이 음악에도 반영.
- 투명한 구문법의 기승전결이 있는 음악, 민속음악 등에서 소박한 선율이 차용되거나 주제가 단순하고 분명한 음악들이 작곡됨. (바로크 시대에는 선율이라기보다는 음형에 가까운 형식, 기승전결 형태보다는 고정된 정서)
- 주제와 조성을 이용한 발전수법 : 조성을 이용한 운영방식은 바로크 시대에도 있었으나 고전주의 시대에 들어와서 조성이 가지는 구심력을 의식적으로 음악의 구성에 활용하기 시작
- 으뜸화음(Ⅰ) - 딸림화음(Ⅴ) - 으뜸화음(Ⅰ)의 구성 : Ⅰ의 구심력에 Ⅴ의 원심력(긴장상태, 때로는 버금딸림화음(Ⅳ)도 비슷한 역할), 그리고 다시 Ⅰ로의 해결. 발전과정이 아무리 복잡하고 확장된다 하더라도 큰 틀에서 Ⅰ-Ⅴ-Ⅰ의 긴장과 해결의 구조.
2) 조성의 표현력을 넓힌 베토벤과 슈베르트
- 조성을 표현의 수단으로 확장한 베토벤 : 조성의 방황을 더 멀리, 복잡하게 하여 음악의 드라마를 파란만장하게 만듦 -> 조성은 형식이 아니라 표현 수단. 조성 와해의 첫 단계.(당대의 청중들은 베토벤의 음악을 야만스럽다고까지 표현)
- 조성으로 꿈을 꾸는 슈베르트, 자유자재로 조를 옮겨다니는 선율
이전까지는 드라마적 표현으로서 어색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전조가 이루어졌으나 슈베르트는 자유자재로 조성을 넘나들며 표현력을 확장시킴. 화성 어휘가 풍부해짐으로서 조성에 의한 통제력이 약화됨.
3) 바그너, 구심력을 상실한 조성
- 조성은 남아 있으나 구심력을 상실해 조성이 형식적 역할을 못하게 됨.
-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의 구별 없이 연극과 음악이 같이 진행되는 악극에서 오케스트라로 극 중 복잡하고 다면적인 상황과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과제 : 무한선율과 라이트모티브(유도동기)
- 음악이 연극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음악의 구문법을 길게 늘이거나 모호하게 만듦(이전까지의 음악적 문법은 화성의 진행과정에 맞춰 압축적이고 빠를 수밖에 없었음)
- 무한선율 : 음악의 매듭을 일부러 무시하고 지연시킴. 불분명한 종지. 형식을 듣는 음악이 아닌 감정의 고조를 따라가며 듣는 음악. (악보2 예시)
- 조성의 응결력이 사라진 상태에서 조성은 하나의 악곡을 만드는 힘이 되지 못하고 연극의 감정적 기복을 만들어주는 수단이 되어버림.
- 라이트모티브(유도동기) : 조성의 운영을 바탕으로 한 주제의 발전이 이전까지 음악의 주요 진행 방식이었으나 조성이 그 형식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조성은 더 이상 음악적 사건이라 할 수 없음. 동기에 형식을 싣는 대신 내용을 싣기로 함(유도동기). 음악의 진행과 발전은 감정의 변화와 발전에 맞추어짐.
- 고전주의 음악이 만들어놓은 공통음악언어의 중요한 기반이 사라짐. 조성은 외형만 남고 종말 직전까지 옴.
https://youtu.be/iTKTV0c7Cno?si=Zumh3oXzlLH73lnB
4) 화성 진행의 문법을 해체한 드뷔시
- 인상주의 : 사물의 형체, 구도, 의미 등은 중요하지 않고 대상물로부터 받은 인상 그 자체를 표현
- 상징주의 : 일상적인 사용으로 인해 타락해버린 기존 언어와 문법들로부터 해방되어 오직 개인에게 지각된 인상을 표현하기 위해 낱말을 감각에 따라 사용.
- 바그너는 조성의 형식적 의미는 없앴어도 조성의 어법 자체는 바꾸지 못했으나(조성의 표현력을 극한으로 이용, 하부구조로서의 조성은 남겨 둠), 드뷔시는 하부구조로서의 조성어법 자체를 무너뜨림.
- 장, 단조 음계 대신 선법, 오음음계, 온음음계 등을 사용, 2도, 3도 병행 화음 등 유기적이지 않은 화성 진행, 불협화음을 해결을 요구하는 화음이 아닌 음향효과의 하나로 이용하며 여러 개의 불협화음을 병렬함.(상징주의 문학에서 관습적인 문장 구성법에서 벗어남으로 인해 개별 낱말의 고유한 의미가 드러나는 것과 비슷함)
- 느리고 불분명한 화성적 리듬을 사용함으로써 화성의 추진력을 무력화함. 바그너의 무한선율이 해결과 종지를 회피하는 방식이라면 드뷔시의 무한선율은 유기성을 잃은 화음과 움직이지 않는 화성적 리듬으로 인해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모르게 되는 방식. 화음을 조성적 맥락 안에서가 아닌, 화음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색채로 보려고 함(미술에서의 인상주의 화법과 비슷)
https://youtu.be/cVMGwPDP-Yk?si=z9eY2rVUprer1WxW
2. 새로운 시대의 음악들
1) 쇤베르크의 무조음악과 12음기법
#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 1874~1951) : 오스트리아의 빈의 유대인 가정에서 출생. 정규 음악교육은 많이 받지 못했고 16살 때부터 아마추어 실내악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면서 지휘자 쳄린스키에게 3개월간 대위법을 배운 것이 전부, 나머지는 모두 독학으로 공부. 초기에는 주로 말러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영향을 받아 후기 낭만주의의 색깔이 짙은 곡들을 작곡. 1910년대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조성을 포기. 이 때에 「관현악을 위한 5개의 소품」, 연가곡 「달에 홀린 피에로」등을 썼고, 본격적으로 낭만주의에서 벗어나 표현주의 음악으로 접어들게 됨. 1차대전 후 그의 대표적인 업적인 12음 기법을 만들어내 이 기법을 사용해 「피아노 모음곡」, 「관현악 변주곡」, 「현악 4중주 3번」 등을 작곡. 나치 집권 후 미국으로 이주. |
- 19세기 말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상황 :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국력은 쇠퇴하는데 세기말의 문화 예술은 황금기를 맞음. 당시 빈에서 가장 유행하던 음악은 춤음악과 오페레타. 새로운 소비계층인 부르주아 계층의 영향력이 확대됨에 따라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작곡가와 자신의 예술적 소신을 견지하는 작곡가로 나뉨.
- 불협화음의 해방 : 조성음악은 더이상 새로운 음악의 틀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느낌. 조성은 자체의 고유한 힘이 있어 작곡가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한 인력으로 작용. 일단 조성을 무력화함으로써 그동안 조성이라는 틀 때문에 사용할 수 없었던 선율과 화성의 표현이 가능해짐(마치 대상의 기본 형태와 구도를 무너뜨린 추상화와도 같은 음악).
- 12음기법 : 조성음악은 으뜸음, 딸림음 등의 특정 음들을 편중적으로 사용하는데 반해 12음기법은 12개의 반음을 동등하게 사용한다는 전제. 12개의 반음을 골고루 사용해 하나의 음렬을 만들고, 이를 역행(거꾸로), 전위(음 진행의 위아래를 바꿈), 역행전위 등을 해가며 악곡을 써 나감.
https://youtu.be/bQHR_Z8XVvI?si=dFqfeN9KqrLWBEVu
- 음악을 통해 감정의 고조와 이완을 전달하는 바그너, 여러 음향의 병렬을 통해 음악적 인상을 전달하려는 드뷔시와 달리 쇤베르크는 음악의 재료들을 구축해 하나의 음악 구조물을 만들려 함 -> 이런 면에서 고전주의 작품과 비슷한 성격. 대신 조성 변화의 파노라마를 따라가지 않기 때문에 고전주의 음악보다 훨씬 빠르고 압축적인 동기와 주제의 발전, 변화가 이루어짐. (그래서 감상이 어려움)
- 표현주의 : 밖에 있는 무언가를 표현하려는 인상주의와 달리 표현주의는 안에 있는 것을 표출하려는 시도. 미술의 경우 보이지 않는 것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고 상징의 강조나 대상의 변형으로 이어짐(클림트, 쉴레, 뭉크 등). 더 나아가 추상미술로 발전(칸딘스키).
쇤베르크의 음악 역시 불협화음을 통해 내적 불안, 긴장, 공포 등을 적극 표출하는 표현주의적인 작품(「기대」, 「달에 홀린 피에로」)에서 보다 추상화되고 형식화된 작풍(12음기법을 이용한 후기 작품들)으로 발전해나감.
https://youtu.be/bd2cBUJmDr8?si=IWtsDiY9yfpspU8g
2) 민속 전통음악을 흡수한 현대음악
- 스트라빈스키 : 러시아 민족주의 + 화려한 관현악법, 발레 뤼스(프랑스에서 활약한 러시아발레단)에 합류. 발레음악 「불새」(1910), 「페트루슈카」(1911), 「봄의 제전」(1913) 작곡.
쇤베르크가 형식에 의해 구축된 절대음악이라면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발레와 결합한 줄거리가 있는 음악.
강렬한 리듬. 무조성을 고집하지는 않고 다채로운 화성과 다양한 음계, 복조성, 불규칙적인 변박 등 다양한 요소들을 사용. 음악적 재료가 스스로 발전하기보다는 여러개의 층들을 덧쌓으면서 구축해 감(텍스쳐의 확장).
- 바르토크 : 코다이와 함께 헝가리 민속음악에 관심을 갖고 연구.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지에서 민요 채집. 작곡된 민요(채집이나 차용이 아닌 작곡가의 고유한 작품임에도 민요다운 음악).
스트라빈스키와 달리 독일적 형식을 따름. 조성, 무조성의 여부가 뚜렷하지는 않고 장, 단조의 중심음과는 다른, 하나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중심음이 쓰임(중심음에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닌, 중심음 위에서 자유롭게 음악이 움직여감).
3) 공통음악언어의 부활을 시도한 힌데미트
- 이전 시대까지는 조성이라는 공통의 언어가 있었으나 조성으로부터 벗어난 이후 각자 개인의 음악언어를 사용하게 되어 음악을 통한 소통이 어렵게 됨. -> 음악이란 미술이나 건축처럼 구체적인 매개물에 의존하지 않고 순수하게 시간의 흐름 안에서 구축과 전개를 통해 감상되기 때문에 고도의 감상능력을 요구함, 조성이 있었을 때는 형식과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 조성이 사라지니 형식과 틀이 더 압축적이고 밀도가 높아짐.
- 많은 사람들이 예술음악에 흥미를 잃고 오락음악에만 관심을 갖게 되자 힌데미트는 이 음악과 청중 사이의 괴리를 채우고자 노력함. ‘Sing und Spielmusik(부르며 즐기는 음악)’, 모든 악기들을 위한 레퍼토리 개발.
- 공통의 음악언어를 만들고자 함 : ① 전통적인 조성을 이용하지 않고, ② 새로운 화성과 선율을 만들 수 있어야 하고, ③ 모든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원리르 담고 있을 것
오랜 연구 끝에 「작곡 지침서」 저술 -> 정교한 음향학적 원리(자연배음에서 시작)와 논리전개를 통한 복잡한 체계의 작곡 지침들
이를 통해 균형감 있는 음악을 지향(조성의 근본이 되는 자연배음에 대한 신념)
- 그러나 자연발생적이지 않은 누군가가 만든 공통의 음악언어라는 것은 그 자체가 또 다른 개인언어일 뿐. 아무도 힌데미트의 ‘새로운 공통음악언어’를 사용하려 하지 않음. 새롭고 실험적인 것을 추구했던 작곡가들은 힌데미트의 시도를 보수적 회귀에 불과하다고 생각.
4) 리듬과 선법의 작곡가 메시앙
#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 :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 실험적인 작품, 신비주의적인 종교음악들 작곡. 아마추어 조류학자로서 새 소리를 음악에 접목시킨 작품도 있음. 2차대전 후 파리음악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불레즈, 슈톡하우젠, 크세나키스 등 쟁쟁한 음악가들을 배출하는 등 현대음악의 아지트 역할을 함. |
- 리듬의 독창성 : 전체를 분할하는 방식의 전통적인 리듬을 탈피하고 짧은 음가를 추가하거나 삭제악보5해 섬세한 리듬변화를 추구, 좌우 대칭형의 리듬악보6, 수열처럼 단위음가가 하나씩 늘어나는 리듬악보7 등 (전통적인 리듬에서는 박자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이렇게 다양한 음가를 자유롭게 늘어놓을 수 없음)
- 음렬 대신 선법을 선택
음렬기법의 경우 작곡가가 처음 정해진 음력의 순서에 따라 음을 선택해야 하지만 선법에서는 작곡가가 그 범위 내에서 임의로 음을 선택할 수 있음.
메시앙은 음높이만 선법을 사용하지 않고 음가(박자), 강약도 선법화 함(작곡가가 임의로 음을 선택하여 곡을 만들지만 음악에서 사용되는 음높이, 강약, 음가, 어택을 미리 계량화, 프로그램화한 상태에서 작곡) -> 이는 훗날 제자들에 의해 음악의 모든 요소를 음렬화하는 전음렬음악(총렬음악)을 낳는 계기가 됨.
- 음악의 전개 방식으로 형식주의적 주제의 발전이 아닌 병렬과 모자이크 방식으로 진행. 서로 다른 것 사이의 연결고리를 놓아 매개시키려 하지 않고 충돌하게 놓아둠. 동시에 하나의 통일된 형태가 될 수 있도록 함.
5) 빅뱅과 결정론적 우주, 전음렬주의(총렬주의)
-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연구소 : 전쟁 직후 젊은 작곡가들 사이에서 쇤베르크의 음렬음악이 주로 연구되며 이 기법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모색. 불레즈를 중심으로 전음렬음악이 탄생
- 불레즈는 메시앙의 영향을 받아 음악의 여러 요소들을 가능한 한 모두 계열화하는 것을 시도.
쇤베르크의 음렬주의 + 음의 길이, 강약, 어택(음을 때리는 방식. 악센트, 스타카토 등)
고도의 수학적 논리를 이용해 계열화를 해 놓고 이 논리에 따라 악곡의 진행은 작곡가가 임의대로 바꿀 수 없음. 모든 음악의 요소가 도표에 근거하고 한번 도표가 완성되면 자동으로 음악이 만들어짐.
- 마치 우주의 빅뱅처럼 최초의 창조 작업은 작곡가의 의지에 의해 이루어졌으나, 이후의 진행과정은 신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는 시간의 흐름처럼 모든 것이 필연적 질서에 의해 진행되는 음악. 현대의 무신론적 객관주의 지성 철학의 극단을 보여줌. (실제로 들어보면 음악 속에서 질서를 느끼기보다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데, 우주의 운행 원리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면 마찬가지로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6) 우연성과 불확정성의 음악(전음렬음악의 반대 극단)
# 존 케이지(1912~1992) : 미국의 현대음악 작곡가. 4분 33초 등의 우연성 음악을 시도하여 많은 음악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전위예술가이자, 아방가르드 음악가. 피아노 줄에 나사못, 고무, 유리, 깃털, 핀 등 온갖 잡동사니를 끼워놓고 희한한 소리를 만들어내는가 하면, 12대의 라디오를 동시에 틀어 여러 방송에서 나오는 음악, 강연, 드라마를 마구 섞이도록 하고, 항아리에 물을 쏟아붓거나 휘파람을 불어 곡을 만드는 등...기상천외한 시도로 청중들에게 때로는 신선한, 때로는 파격에 가까운 충격을 안겨주곤 함. (백남준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백남준은 1959년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라는 곡(?)을 작곡해 공연(정확히는 퍼포먼스)했는데 도끼로 피아노를 부수면서 내는 소리로 케이지에게 찬사를 보냈으며 1년 뒤에는 존 케이지를 만난 자리에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이란 공연으로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는 공연을 함.) |
- 존 케이지의 우연성 음악 : 선불교와 주역의 영향(우주의 삼라만상은 항상 변한다는 전제). 음향 재료를 차트로 펼쳐놓고 동전을 던져가며 템포, 음가, 강약, 소리 등을 결정. 하나의 음악이 완성돼도 그것은 수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 즉 음악은 잠재적으로 존재하지만 확정적인 상태로는 존재하지 않음.
- 모든 소리는 음악이다 : 불확정적으로 그 존재 자체가 열려있는 작품 「4분 33초」. 피아노 앞에서 4분 33초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기만 함. ‘침묵도 음악이다’, ‘그 시간 속에서 청중의 숨소리, 동요하는 소리 등도 음악의 내용이다’, ‘기존 통념적 음악에 대한 반항이다’ 등등 많은 해석들이 있음. 어떤 해석이든 음악과 음악이 아닌 것 사이의 구별이 모호해지기 시작.
우리가 하려는 것은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찾으려는 것이나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내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 일단 우리가 마음과 욕망을 접어두고 삶이 스스로 움직이면 불 수 있는 그 멋진 삶에 눈뜨게 하려는 것이다. - 존 케이지의 주장, 작곡가 이건용의 현대음악 강의(이건용 저) 중에서 |
- 불확정성에도 등급을 마련한 슈톡하우젠 : 우연을 다양한 방식으로 도임. 연주자에세 선택권을 주지 않은 경우, 선택권을 주되 그 선택한 것 내에서는 정해진대로 연주하는 경우, 선택한 것 내에서 임의로 연주할 수 있는 겅우, 정해진 범위 내에서 임의로 연주하는 경우 등등.
어떤 방식으로 연주를 해도 음악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클라이맥스와 전체적 구성이 완결된 구조를 가짐(독일적 감수성의 고집)
https://youtu.be/PnH7IJFxJlc?si=8hhXEDioJOAsNczo
7) 구체음악과 전자음악
- 녹음기술은 근현대의 음악 문화에 강한 영향을 끼침, 작곡 자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줌.
- 셰페르 : 기존의 악기 소리들이 자연이나 일상생활 속에서 들리는 소리와는 다른, 정련되거나 규격화된 소리를 낸다는 의미에서 추상적 음악이라 생각하고 이와는 대조되는 개념으로 ‘구체음악(Musique concrète)’이라는 것을 제시함.
- ‘구체’라는 것은 미술에서의 ‘오브제(object)’와 비슷. 음악을 하나의 구조물로 본다는 점에서 비록 재료가 구체음이라 하더라도 음악에 대한 상부구조의 개념은 크게 바뀌지 않음. 그러나 음악의 순간순간을 이어주는 것이 음이 아니라 말소리, 기차소리, 거리의 소음 등 일상적인 소리들이므로 이 소리들을 연결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 필요해짐. -> 구체음악에서 등장하는 여려가지 소리 재료들을 구성하여 음악작품이 되도록 하는 이론을 시도. 전자음악의 시발점.
# 오브제 : 작가가 창조해낸 회화나 조각과는 달리 찌그러진 자동차, 변기, 유리병, 벽시계 등 거의 손질되지 않은 일상생활에서의 사물들이 조형적 미적 경험으로 결합하게 되는 것. |
- 전자음악 : 구체음악을 넘어 일상의 소리가 아닌 전자적 음향도 사용. 테이프 녹음기 외에도 여러 음 높이를 내거나 음색을 변형시킬 수 있는 기계, 소리를 섞는 장치 등이 개발 -> 신디사이저라는 소리합성 기계로 발전.
- 신디사이저에서 나오는 여려 음향, 악기 음향, 구체음악에서 사용되는 음향 등을 채집. 전자기기의 도움으로 기존의 악기들이 낼 수 없는 소리, 세분화된 미분음, 백색잡음에서 특정 주파수 골라냄으로서 우연적인 새로운 소리 얻어내기도 함.
-> 테이프를 느리게 또는 빠르게 돌리거나 역재생하거나, 에코나 잔향 처리를 하는 등 다양한 기법을 통해 작곡가는 각 음악의 단편을 구성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꾸며냄
8) 음색의 작곡가 펜데레츠키, 리게티
- 음악의 주된 표현수단을 음색에서 찾기 시작. 여러 음의 집단적인 움직임, 전체적인 효과에 집중.
마치 비둘기 떼나 송사리 떼처럼 한 마리 한 마리의 움직임보다는 전체의 무리가 보여주는 움직임에 관심.
-> ’Klangkomposition’ 직역하면 ‘음향작곡가’
- 펜데레츠키 「히로시마의 희생자에게 바치는 애가」 : 현악기가 연주함에도 마치 전자악기에서 나오는 듯한 소음들만 들림. 예를 들어 특정 구간에서 12명의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장3도 남짓한 음역 안에서 가장 낮은 음부터 높은 음까지 4분의 1음씩 나누어 각각 다른 소리를 한꺼번에 내는 것. 아예 오선보와 세로줄을 없애버리고 음의 행방을 나타내는 검은 띠와 시간을 표현하는 세로줄만 남김. (악보9)
-> 선율도 화성도 리듬도 없이 그저 크거나 작거나, 넓거나 좁거나, 둔탁하거나 날카롭거나, 움직이거나 고정되어 있거나 한 소리 덩어리(Klangband)만 존재.
- 리게티 「Atmosphères」 : 소리 덩어리 안에서도 움직이는 음들. 예를 들어 10명의 악기 주자들에게 일일이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움직임을 지시함. 펜데레츠키의 검은 띠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정밀한 뉘앙스를 표현할 수 있음. 펜데레츠키가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음악이라면 리게티는 섬세한 변화의 음악. (악보10)
- 주제나 대상이 없고 분위기만 있음. 사진에 비유한다면 배경만 있고 눈길을 모으는 피사체가 없는 사진.
https://youtu.be/Pu371CDZ0ws?si=4w2Mfmmeja8xcY7N
https://youtu.be/RCNzwdLwA8g?si=z9gglaiqPSiELfgX
9) 음악적 반복의 새로운 시도, 미니멀리즘(최소주의) 음악
- 소리의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억제해 패턴화된 음형을 반복시키는 음악. 1960년대 미국에서부터 출발.
의도적으로 리듬이나 선율, 화성 등을 단순화시킴. (장식적인 것이 빠져 있고 기하학적인 특징이 강조되며 표현적 테크닉이 회피된 미니멀리즘 미술과 비슷)
정제된 화성, 저음 지속음, 맥박처럼 일정한 리듬으로 흐르는 펄스(pulse)와도 같은 지속적인 비트.
청취 도중 심리적이고 음향적인 효과로서 의도하지 않았던 선율 등이 인지되기도 함.
- 라 몬테 영 : 미국 미니멀리즘 음악의 선구자. 음렬주의로 대표되는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
역설적이게도 베베른의 음렬주의에서 출발하여 이를 발전 극복함으로써 탄생하게 됨 (마치 미니멀리즘 미술가들이 추상표현주의로부터 출발한 것과 비슷. 미니멀리즘과 추상표현주의를 구별하는 기준은 단순성의 형태가 아니라 재료를 어떠한 방식으로 사용했는가) -> 현악삼중주에서 ‘베베른의 대칭음’(E♭, C♯과 그 중재음인 D)의 균형으로 하나의 소리 덩어리를 만들어 이를 지속시킴. 이것이 하나의 사건의 배경이 되지만 미리 결정된 서사를 배제함으로써 무수히 많은 우발적 가능성을 지니게 됨.
https://youtu.be/Nvqu_HnQtk4?si=VxMCZ9gCTR7R54Yx
- 테리 라일리 : 라 몬테 영이 음의 지속이라는 것 이용했다면 라일리는 미리 주어진 모듈을 반복에 의해서 무한 증식하는 방식. 반복은 어떤 주제를 동일하게 실현시키는 기제가 아니라 차이를 발생시키는 기제.
작품 「In C」에서 일정한 속도로 피아노 맨 위의 C음을 쉬지 않고 내는데 이는 화음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맥박과도 같은 메트로놈, 시각적으로 비유하자면 ‘격자(grid)’역할을 하는 것. 이는 곡이 어떤 방향으로든 전개될 수 있도록 만드는 중립적인 역할을 함(무한한 잠재의 가능성).
- 스티브 라이히 : ‘위상변위과정(Phase Shifting Process)’ -> 마치 동일한 소리를 독음한 두 개의 테이프를 동시에 작동시켰는데 기계적 이유로 속도가 미세하게 다르게 재생될 때 만들어지는 효과와도 같음. 반복이란 작품 속에서 예술가의 내면에 담긴 불변의 주제를 확인시키는 것이 아니라 위상변위에 의해서 매 순간 차별화되어 나타나는 하나의 즉물적인 유희과정에 불과함.
https://youtu.be/i0345c6zNfM?si=wQX6EyaQZMhZWr62
- 필립 글래스 : 라이히의 반복구조와 유사하지만 일정한 패턴에 몇 개의 음을 첨가하거나 생략하는 반복의 형식. 어느 쪽도 원본이 아닌 그저 서로 비슷함을 보이고 있는 상태, 즉 각기 고유한 차이를 유지하고 있는 평등한 관계를 나타냄(전통적 음악 구조는 원본(주제)와 그것의 변형과 복제를 통해 원본의 정당성을 입증).
매우 몽환적인 느낌을 줌으로서 이 모호성은 미리 결정된 서사구조를 배제시키는 역할. 이렇게 붕괴된 서사의 자리에서 과거의 기억과 자유롭게 만나는 현재의 순간.
10) 사회주의 동구권 음악
- 2차 대전 이후 냉전체제로 들어감에 따라 동구 사회주의권 음악은 서구 음악과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제각각의 길을 가게 됨.
- 헝가리 음악교육의 기초를 다진 졸탄 코다이
조성적 균형에 기초하면서도 새로운 어법의 음악. 민요 채집 활동, 어린이의 음악교육에 매진(민족음악의 신념). 많은 나라에 코다이 음악연구소 설립.
- 프롤레타리아와 동행한 한스 아이슬러
쇤베르크의 제자로서 무조성의 높은 밀도의 음악을 작곡했으나 이후 사회주의자로서의 의식이 굳어지며 합창운동, 노래운동을 벌여나가기 시작. 현대음악에 회의를 느끼며 노동자와 농민들의 삶과 연결된 음악, 정치적인 내용을 담은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 브레히트와 친분을 쌓으며 공동작업을 함. 나치 정권 때 사회주의 운동의 탄압으로 미국으로 망명을 갔으나 미국에서의 매카시즘의 영향으로 다시 동독으로 귀국해 새로운 음악문화 건설을 위해 여생을 보냄.
#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 : 독일의 극작가 겸 연극연출가, 시인. 그가 남긴 무수한 작품들은 지금도 여전히 연구대상이며 무대에 올려지고 있으며 그의 극작론은 연극계를 넘어 다른 학문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 '소격효과(Verfremdungseffekt, 낯설게 하기)'라는 기법으로 극작계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줌. |
https://youtu.be/d9eUGMvXoZk?si=d-frHWc29r_JM-3y
- 가장 소련적인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자신의 작품에 대한 명확한 해석을 꺼렸고, 그의 행적 역시 우유부단, 자기모순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런 사료에 기반한 평가들도 서로 모순적이며 극명히 갈리는 작곡가. 공산주의자이자 정권 친화적인 음악을 창작한 어용 성향의 작곡가라는 해석, 소련 체제의 비판자였다는 해석, 절충적으로 레닌이나 러시아 혁명 등 초기 혁명가들에 대한 경외심을 계속 유지했지만 스탈린 등 이후 집권자들에겐 비판적이었다는 해석 등.
(하이든처럼 귀족에 고용되어 있지만 싫으면 떠나면 그만인 상황과는 달리 억압적인 소련 내에서는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
이런 논란과 별도로 그의 음악은 다른 현대 작곡가들의 음악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들이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작품들이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연주되고 음반으로 발매되고 있음.
3. 현대음악에 대한 철학적 기반
현실의 참모습으로서 진리는 무질서하고 파편적인 산문의 형태를 띤다. 음악에서의 음 역시 예외는 아니다. 현실의 소리들은 파편적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화성과 선율이라는 인위적이고도 아름다운 가상의 세계를 만드는 것만이 음악의 임무는 아니다. - 철학으로 현대음악 읽기(박영욱 저) 중에서 |
우리가 하려는 것은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찾으려는 것이나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내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 일단 우리가 마음과 욕망을 접어두고 삶이 스스로 움직이면 불 수 있는 그 멋진 삶에 눈뜨게 하려는 것이다. - 존 케이지의 주장, 작곡가 이건용의 현대음악 강의(이건용 저) 중에서 |
1) 쇤베르크 음악의 현상학적 환원
- 후설의 현상학 : 사물의 본질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 선입견이나 이론적 세계관적 설명으로 감춰진, 사태 그 자체를 탐구. 의식과 세계에 관해 사유되고 말해지는 기존의 모든 것을 도외시하기를 요구하며 그럴 때 나타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양태를 '현상(Phänomen)'이라고 부름.
- 이는 조성음악에 대한 쇤베르크의 태도와 일치. 전통적인 화음에서는 음들의 관계를 미리 부과된 자연적 질서로 간주함으로써 이미 보편성을 상실하게 된다고 봄. 쇤베르크는 음악적 형식이란 미리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매 순간 새롭게 생성하는 것’이라고 함.
- 전통적 조성음악은 어떤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독단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있음.
자연주의적 태도 : 나를 둘러싼 주변의 세계가 나에게 줄곧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 즉 우리의 일반적인 경험의 세계를 ‘거기에 현존하는(미리 앞서 존재하는) 실제’로서 받아들이는 태도. 현상학은 이러한 자연주의적 태도를 극복하는데서 출발.
- 이러한 ‘판단중지’의 과정을 겪고 난 후에 남아 있는 본질적이고도 보편적인 그 무엇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 본질을 전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보다 광범위한 음의 배열 질서, 조성음악의 일면성을 극복하고 보다 보편적인 질서와 기법을 찾고자 함. -> 쇤베르크는 소리의 응집력의 기준은 유사성 혹은 상동성이라고 생각. (요약하자면 선율의 일정한 간격의 변화, 음군(音群)의 함수적 위치이동 등, 응집력의 근원이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음악적 구성 자체 내에서 음의 질서를 찾고자 함)
2) 전자음악의 혁명성
- 아도르노에 의하면 ‘내용’과 ‘형식’은 절대 구분될 수 없음.
’예술작품 속에서 현상하는 모든 것은 잠재적으로 모두 내용(재료)이자 동시에 형식이기도 하다.‘
-> 이는 예컨대 베토벤과 말러의 음악에서 차이는 단지 형식에서의 차이가 아니라 베토벤에서의 음과 말러에서의 음도 다르다는 것. 이미 곡을 형성하는 내용으로서의 음이 형식적 규정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
-> 진흙이 벽돌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예를 들어봐도 질료와 형식은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없음. 진흙 자체가 이미 질료이자 형식.
- 이러한 통찰을 전자음악에 대해서도 적용
음악가들은 새로운 음악 재료에 천착하기 시작. 기술의 발달과 함께 전자매체에 관심을 갖게 됨
전자음악은 전통음악과 다른 재료로 구성. 전통음악과 전자음악을 재료의 측면에서 비교한다는 것은 음악적 구성의 매체 혹은 인식론적 체계의 매체로서 갖는 함의를 분석해야 한다는 것임.
- 셰페르의 구체음악에서 사용하는 음은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소음이며 음악적인 재료가 될 수 없었음. 이러한 의도적인 소음의 사용은 음의 확장을 의미하며 이 불협화음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예술적 정서에 부합된다고 주장. 소음은 일상적인 소리와 음악의 간격을 없애는 장치이기 때문.
- 전자음악 : 새로운 재료는 새로운 기술과 함께, 새로운 형식으로. 슈톡하우젠은 각각의 음 현상은 단순히 음이 아니라 음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함. 음향은 물리적인 현상으로서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현상. 또한 그가 작곡한 점묘음악은 하나하나의 독립된 개별음이 집단으로 형성된 것이므로 그 음악에서 통일된 형상을 찾는 것은 ‘추상화에서 병아리를 찾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함.
-> 후설의 현상학을 음악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것에 있어 쇤베르크보다 더 진일보한 것. 현재 순간의 의식경험이 미리 주어진 어떤 흐름이나 질서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 종합’ 즉 지금 이 순간의 지속에 대한 미시 직관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것임.
3) 무한한 가능성의 상태, 베베른과 불레즈
- 불레즈의 음악적 시도는 어떠한 진지한 의미를 지니기보다는 하나의 유희에 불과한 것인가? (수식화란 그 자체로는 완결적이지만 어떤 현실적인 의미도 지니지 않은, 그저 하나의 방정식에 불과함)
불레즈의 음악은 수식화를 위한 수식화로서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하는 무의미한 수적 놀이로 간주되어야 하는가? 불레즈는 어떤 음악적 사유를 제시하고 있는가?
※ 아도르노의 쇤베르크 이후 세대에 대한 비판 쇤베르크가 전통적인 조성음악을 거부하고 새로운 음악언어를 만들어낸 것은 전통적인 음악이 한정된 화음의 세계를 마치 자연의 질서처럼 간주하고, 그것에 안주하려는 유토피아적 환상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조성음악에서 정해진 화음의 규칙은, 마치 상품을 만드는 기계가 미리 만들어진 규칙에 따르는 것처럼, 작곡가가 따라야 할 음악적 규칙이자 언어로 기능하였다. 이러한 조성음악으로 만들어진 세계는 근대 자본주의의 사회 현실과는 동떨어진 채 아름다운 가상으로 채워진 환상적 유토피아로서의 이데올로기의 세계일 뿐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실상은 조성음악이 묘사하는 화음으로 채워진 아름다운 가상 거리가 멀다.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은 단절되고 고립된 무기력한 개인들의 파편적 집합일 뿐이다. 쇤베르크의 혁명성은 전통적 조성음악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추상적 음악의 언어를 만들어진 것이다. 전통적인 화음을 거부하는 12음기법을 통해서 쇤베르크는 가상적 조화를 깨트리고 음을 파편화시킴으로써 고립된 음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이는 사물화된 사회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전통적인 언어를 비판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새로운 언어라는 것이다. 그런데 쇤베르크 이후 이러한 12음기법이 비판의 기능을 상실하고 하나의 기계적인 도그마로 전락하고 만다. 조성음악의 질서를 마치 자연법칙처럼 따르는 태도를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진 12음기법이 이제 ‘제2의 맹목적인 자연’이 되어버린 것이다. 베베른의 음악은 12음기법을 하나의 자연법칙처럼 하나의 객관적인 법칙으로 사물화시킴으로써 조성음악의 물신주의로 퇴행한다.(또한 이러한 반감은 베베른 노선의 추종자들인 메시앙, 불레즈, 슈톡하우젠 등을 향하기도 함) |
- 아도르노의 비판은 온당한가?
구조적인 측면에서 베베른의 음악은 수학적 형식에만 집착함으로써 곡에 ‘음악적 형상들을 각인시키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음. 음악적 형상이란 하나의 곡을 유기적인 통일체로 인지할 수 있는 정체성의 요소이며, 이 요소는 음악적 주제임. 즉 ‘무엇을 말할 능력’ 자체를 결여.
그러나 이는 베베른 음악의 다른 측면은 보지 못한 아도르노의 한계라고 불레즈는 지적.
- 베베른 음악에서 수직적인 구조의 화음은 수평적인 구조를 결정짓는 기능을 하지 않으며, 수직적인 음들이 모여 하나의 총체적인 순간을 형성할 뿐. 즉 ‘대위법적인 0의 상태’ ->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닌 ‘내재성의 평면’상태, 어느 방향으로든 뻗어나갈 수 있는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의 상태.
불레즈는 이를 ‘대각선적인 것’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이는 수직적인 화음이나 수평적인 멜로디 중 어느 것도 미리 존재하는 좌표로서 음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표현.
- 또한 불레즈는 리듬을 매우 중요한 요소라 생각하며 리듬이 음악의 견인적 요소가 되기 위해서는 화음이나 멜로디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봄. (그런 면에서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높이 평가)
불레즈는 음렬의 세계를 단지 음고(음높이)의 차원에서만 다루는 일면성을 벗어나기 위해 음을 구성하는 다층적 측면, 즉 음고를 포함해서 음길이, 강세, 어택(연주방식)의 4가지 요인 모두로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
- 미리 정해진 수직축과 수평축으로부터 벗어나 음이 지닌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을 해방시키는 일은 ‘파편화’ 전략으로부터. 이는 아도르노가 「신음악의 철학」에서 출발점으로 삼았던 ‘성좌’로서의 진리 개념과 일맥상통함. 음은 하나의 순간으로서 다른 어떤 순간과도 단순히 동질화시킬 수 없는 고유한 사건. 소리의 블록은 미리 정해진 동질적 체계에 의해서 균질화될 수 없는 고유한 내재적 강도를 지니며 이는 곧 음악적 순간이 잠재적으로 무한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는 것.
# 아도르노는 새로운 진리의 정의를 ‘성좌(Konfiguration, 별자리)’이라는 은유적 표헌으로 설명, 밤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들 중 우발적인 영감에 의해서 몇 개의 별을 엮어서 나타나는 섬광과도 같은 현상. 진리란 미리부터 불변의 자태를 갖추고 사변적 이성에 드러나는 것이 아닌 섬광처럼 직관적 사고에 드러난다는 의미를 함축. 진리란 이성적 사고의 대상이라는 근대적 진리관을 거부하고 예술적 직관의 대상이라는 현대적 의미를 담고 있음. 이 표현은 발터 벤야민의 「독일 비애극의 원천」이라는 저서에서 가져왔는데, 벤야민은 진리는 원래부터 무의미한 것이고 어떤 체계성도 결여한 채 단지 파편적으로만 드러날 뿐이라는 뜻으로 사용. |
- 그렇다면 불레즈는 왜 그토록 수식화에 집착하고 있는가?
들뢰즈의 답변 : 어떤 동질성도 없는 고유한 특이성으로서 순간적 강도란 우리에게 ‘기호(암호)’로 나타난다.
‘암호’라는 표현에 주목하면, 그것은 완전한 계량화에 의해서는 애초에 도달 불가능한 대상. 수식화란 완전한 해답을 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질적 차이를 드러내기 위한 방정식에 불과.
-> ‘미분적 차이’ : 순간적인 가속도는 질적인 강도의 차원을 지니기 때문에 애초에 정확하게 정량화될 수 없음. 예를 들어 A지점에서 B지점까지의 평균속도는 쉽게 구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완벽한 등속운동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매 순간의 가속도는 제각각 다름. 불레즈에게 수학적인 차원은 바로 이러한 질적 강도로서의 음악적 시간을 탐구하는 방정식인 셈. (아도르노에게 수학적 대상이란 그 자체로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맹목적인 것이었으나 불레즈에게 수학은 의미론을 배제한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는 대상인 것)
4) 무중력의 음악, 바흐와 리게티
- 무중력이란? : 외부의 다른 힘 때문에 일정한 방향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절대적인 균형의 상태. 이러한 균형의 상태는 정지의 상태가 아닌, 어떤 방향으로도 향할 수 있는 상태. (바흐는 이러한 균형의 상태야말로 완전한 신의 세계라 생각했고, 이것이 바흐 음악이 지닌 종교적 특성이기도 함)
- 바흐의 음악은 하나의 정해진 경로나 진보의 서사를 따르지 않음. 바흐 이후 고전주의 음악 이래로부터 서양음악을 지배해왔던 전통음악은 주제와 발전을 통한 기승전결의 서사를 따르고 이 구조 안에서 딸림화음의 긴장 해소와 으뜸화음 종지를 향한 소리의 중력에 지배를 받게 됨. 그러나 바흐의 음악에서는 주제가 전개되는 방향은 미리부터 정해져 있지 않으며, 유사한 것들의 끊임없는 반복. (물론 바흐의 음악에서도 소나타 형식을 찾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주제의 대립과 갈등이라는 서사적 구성은 아님)
바흐의 음악은 시작과 끝이 불분명한,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 아무것도 전개되지 않은 마치 정지된 것과 같은 느낌. 서사라는 인위적인 힘(중력)이 음악에서 강력하게 작용하게 되면 순간을 이루는 각각의 소리들은 독립성을 상실하게 됨. ‘정지’란 바로 하나의 순간, 즉 소리가 지닌 무한한 방향의 가능성을 펼치는 가능성의 세계로 향하는 문. (바흐의 음악이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이러한 특징 탓)
- 리게티의 톤 클러스터 : 모든 악기들이 서로 하나로 얽혀 뭉개져 있음(소리평면). 리게티의 곡은 서사를 띠지 않는데 거시적 차원에서 서사를 억지로 제거한 것이라기보다는 음악을 이루는 하나의 순간에 집중한 결과임. 음악은 화성이나 멜로디의 커다란 구성에만 의존하지 않고 매 순간의 음악적 사건들에 의해 경험되는 것. (거시적인 구조에 집착하지 않고 개별음의 미시적 차원으로 관심을 확장하는 불레즈의 전음렬주의와 상통)
음의 확고한 윤곽을 파괴하는 것은 음을 정해진 운명에 따라 구성하는 제약에서 벗어나 새로운 잠재적 가능성을 탐구하려는 시도.
- 바흐 음악의 궁극적 목표가 푸가 형식이나 폴리포니 형식의 확립이 아닌 자신의 종교적 가치였기 때문에 ‘무중력의 상태’는 바흐 음악의 본질적 특성에 대한 비유로 적절함. 이렇게 소리 현상에 대한 틀에 박힌 제약에서 벗어나 소리가 지닌 무한한 잠재성을 현실화하는 것이 음악의 진지한 사명이라면 리게티의 음악은 바로 이런한 사명에 충실한 것.
https://youtu.be/wW24RJ6iMXQ?si=TeP61qlDOg421Hwd
5) 반복형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 미니멀리즘
- 들뢰즈는 대립과 화해라는 구조는 사실은 존재가 지닌 고유한 차이를 무시하고 하나의 보편적 틀에 가두어버리는 사유의 폭력 과정으로 봄 -> 음악에서의 전통적 규범체계에도 적용됨.
전통적인 철학에서 어떤 것과 다른 것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개념적 구분이 필요한데 이러한 구분은 오히려 하나의 사물이 지닌 개체적 차이에 도달하기는커녕 그것을 하나의 개념에 얽어매는 의도치 않은 폭력성을 띠게 됨. -> 이러한 억압을 피할 수 있는 기제, 즉 존재의 차이를 억압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실현하는 기제를 ‘반복’에서 찾음.
- 음악에서의 반복은 미리 정해진 주제를 각인시키기 위한 동일성의 기제가 아닌 방식으로 사용. 마치 반복이 개념적 종차가 아닌 그 개체 자체 내에서의 차이를 발현하듯, 음이 지금껏 보편적 개념의 틀에 갇혀 있던 동일성의 논리에서 벗어나 자신 속에 내재한 고유한 차이를 발견하는 것.
- 음악의 목적론적이 않은 진행은 오직 그 자체의 현존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며, 음악 안의 논리적 인과관계를 제거함으로써 음향 그 자체를 자율적인 것으로 만듦. -> 미니멀리즘 음악은 반복을 동일성에 매몰되지 않고 매순간 새로운 고유한 음악적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기제로 바꾸어 놓음.
첫댓글 2024년 3월부터의 발제문들 pdf 파일로 통합해서 같이 업로드 해 놨습니다.
진정 카페의 보물과 같은 자료입니다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현대음악이 아름답게 들리는 그날까지...
카페의 수준이 너무 높아졌습니다.
대단하신 방장님~ 엄지척 👍
오늘부터 다시 음악통론연재 개시해야겠습니다. 방장님 노고에 비해 발로 베끼기인데 논다고 쉬고 있는게 부끄럽네요 ㅋ
검색유입 통계를 보면 맑은하늘님 음악통론에 있는 단어 키워드가 제일 많습니다.
쵝오
자료 너무 대단하십니다. 덕분에 까먹고살았던 사람들 다시한번 기억하게 되네요 ㅋㅋ
이 음악들도 몇백년이 지나면, 지금 우리에게 프로코피에프 음악이 이상하지는 않는것 처럼 그렇게 되는것이겠죠..?
작곡가들의 다양한 시도들은 정말 멋지고 의미도있지만, 그래도 현대음악은 너무 어렵긴해요 😂
100년 200년 후에 인류의 사상은 또 어떻게 변해 있을지, 예술작품들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안 됩니다. 하부구조인 기술 문명의 발달이 이를 선도하겠죠. 200년 전 사람들이 지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던 처럼요.
대단한 내용이네요. 두고 두고 봐야겠어요 ^^
a4문서 -> 카페 PC버전에 복붙 -> 스마트폰화면
이런 변환과정이 있다보니 폰에서의 가독성이 많이 떨어지네요.
링크된 음악들은 따로 따라가며 듣더라도 문서로 출력해서 읽기를 권합니다.
댓글이 마니마니 늦어졌네요... ㅎㅎㅎ
카페에 넘나 오랜만에 들어와놓고선... 못봤던 글들 하나하나 정독중입니다..
빵장님 진짜 판도라의 상자를 여셨군요!!!👍
덕분에 저희는 아주 편하게 보고 카페의 수준도 업업!되구~~!
빵장님은 클래디오의 가장 큰 자산입니당!😁
넘넘 감사드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