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이끄는 힘이 있는 교회(引力있는 敎會)
사도행전 10:21
敎會中最大問題, 何以則引多人入敎會也. 以故開大會演說, 講究多方, 然無一適法, 紐育某財産家云 我欲不知多人而使成此願者, 與三百円, 吾等欲以雄辯引人, 而傳道人爲此豫備, 然如死灰之信者. 會中欲使死人入來甚難矣. 或曰有 新製風琴可引人, 此人珍視大樂器而已也. 信仰則非也. 或曰高名之美術家作嶄新之壁畵, 排設華席, 引金絲馬之讚揚隊, 羅列壇上, 徒使人興好奇心而信仰則非也. 欲副來會者之脾胃而運動者多矣. 然皆非適法也. 使敎會化作料理店, 一錢아이스크림, 欲得十錢之利益, 彼等欲興料理店陳設珍味, 然人皆不來, 且不注視, 或曰場所狹窄, 有嶄新之建物, 則可以三十萬之大金建石造之大屋, 暑中有大扇風機, 然亦不來. 某敎堂可容一千二百名之大會堂也. 然神學博士法學博士哲學博士之某牧師, 對三百五十名之聽衆, 而朗讀筆記說敎而已, 豈非可憐乎? 吾等每於敎役者會, 每同待遇之不滿, 至於挽回策, 有張皇論說而反不知敎役者皆有缺點, 故不能成功也. 若有天來之火降于祭壇, 燒滅敎職者之傲慢, 使僞敎會化成眞敎會救人靈魂, 然則人之智慧, 皆不足依賴, 而信神者可以興敎也. 博喝采之雄辯, 誇張之演說, 皆不足以團眞理也, 惟聖神使人盡力其感動, 爲方法爲運動, 人欲不能者神能成之, 惟聖神之電力注入人心靈之內, 喚起注意, 使人盡救靈之技術, 使敎會振興矣. 摩西旅行于호렵山, 見棘炎暫不留待, 卽往見之, 此神喚起摩西之注, 卽往見之也. 今日思想運動, 速於地球回轉, 今日奇聞卽入印刷所, 報于數千里之外, 若敎會之內有聖火, 人皆往見, 出三章三. 捷於影響. 僉位不見大鐘乎? 雖夜半有鐘聲則人皆爭集, 若壇上有聖火則多人會集, 火何也? 卽神模寫傳道人繪畵, 五旬節敎會不爲廣告, 或引人而費金錢也. 此時敎人皆有磁石之力也. 能於引人, 某敎會有聖火, 保存三十個月, 酷暑時他敎役者皆往避暑之地, 而敎會內多空席, 此常常滿員, 火焰愈益旺威也. 此聖火不拘時地, 不拘人物, 着之則熱, 不待吹噓而起. 彼敎會內有紛爭, 互相傾軋不已者, 不見聖火故也. 火有祈禱之熱, 禮拜之熱, 看証之熱, 傳道之熱, 故保羅曰 懷熱心事主, 롬十二章. 佛如枯木死灰, 儒則避于東岡, 皆與世人無相關, 而惟主則以救世爲目的至獻身十架也.
교회 가운데서 가장 큰 문제는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을 교회로 불러들일 수 있는가 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때문에 큰 모임을 열어 연설을 하고 여러 방면으로 강구도 해보지만 한 가지도 적법한 것이 없습니다. 미국 뉴욕의 어느 재산가가 이르기를 ‘나는 많은 사람들을 알지는 못하지만 소원을 이루기 바란다’며 삼백 엔을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웅변으로 사람을 끌어 들이고, 전도하는 사람은 이를 가지고 예비하고 있지만 사람들을 오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어떤 이는 ‘새 제품인 풍금을 가져다가 놓아야 사람들을 끌어 들인다’고 하지만, 이런 사람은 큰 악기를 보배로 여길 뿐이지 신앙은 그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는 고명한 미술가를 초빙하여 참신한 벽화를 벽에 그리게 하고, 화려한 자리를 만들어 놓고, 온갖 악기를 연주하는 찬양대를 단상에 나열시키고 있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호기심은 불러일으킬지언정 신앙을 갖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운동은 많지만 모두 다 적법한 것은 아닙니다. 교회를 요리점으로 만들어서 일전짜리 아이스크림을 십전에 팔아 이익을 얻으려고 하며, 아무리 요리점을 발전시켜서 온갖 맛있는 음식을 진열해 놓을지라도 사람들은 오지도 않고 주의해 보지도 않습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장소가 좁다’고 말합니다. 삼십만 금의 큰돈을 들여 석조 건물로 지어놓고 여름이면 큰 선풍기를 틀어놓았지만 역시 사람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어떤 교회당은 천 이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회당을 가지고 있으면서, 신학박사이며 법학박사이고 철학박사인 목사님이 겨우 삼백오십 명의 청중을 상대로 필기한 설교문을 낭독하고 있는데, 이 또한 어찌 가련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들은 교역자회에서 목회자 대우에 대한 불만을 말하고, 대우를 좋게 할 수 있는 계획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장황하게 의논을 하지만 교역자가 가지고 있는 결점에 대하여서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넉넉한 대우를 받는데 성공할 수가 없는것입니다. 만일 하늘로부터 불이 제단에 내려와서 교직자의 오만을태워 없애고 거짓된 교회를 참된 교회로 변화시킨 뒤에 사람의 영혼을 구원한다면 사람의 지혜는 다 의뢰할 것이 못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가 가히 교회를 부흥시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박수갈채를 받는 웅변이나 과장된 연설은 진리를 듣는데 부족합니다. 오직 성신만이 사람으로 하여금 힘을 다하여 감동할 수 있는 방법이요 운동이 됩니다. 그리하여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은 능히 이루십니다. 오직 성신만이 사람의 심령에 전력(電力)을 주입시켜서 주의를 환기시키어 영혼을 구원하여 교회로 하여금 떨쳐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호렙산에 여행하다가 가시떨기에서 타는 불길이 보고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곧바로 나아갔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모세의 주의를 환기 시켜서 곧바로 가보게 한 것입니다. 오늘날 사상운동은 지구의 회전보다 빨라서 오늘 여기에 발생한 기이한 소문은 곧바로 인쇄소로 들어가 수천 리 밖에까지 알려지게 됩니다. 만일 교회 안에 성령의 불이 있으면 사람들은 그림자나 산울림보다도 빨리 가서 보게 됩니다(출애굽기 3:3).
여러분은 큰 종을 보지 않았습니까? 비록 깊은 밤중이라도 종소리가 나면 사람들이 다투어 몰려듭니다. 단상에 성령의 불이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불은 무엇입니까? 오순절에 교회에서 광고를 하지 않았어도 사람을 끌어 들입니다. 교인들은 다 자석과 같은 힘이 발휘하여 사람을 끌어당길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는 성령의 불이 있어서 삼십 개월을 보존하게 되었습니다. 더위가 혹독한 여름에 다른 교회의 교역자들은 모두 피서를 가고 그 교회는 텅텅 빈자리가 많았으나, 성령의 불이 있는 이 교회는 만원이었습니다. 성령의 불꽃은 더욱 왕성한 빛을 발하였습니다. 성령의 불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인물도 가리지 않습니다. 불이 붙으면 열이 생깁니다. 이 불은 불씨를 불어 피워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일어납니다.
저 교회 안에 분쟁이 있고, 서로 다투어 삐걱거리는 일을 그치지 않는 것은 성령의 불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불에는 기도의 열이 있고, 예배의 열이 있고, 간증의 열이 있고, 전도의 열이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라’고 말하였습니다(로마서 12장). 불교는 마른 나무에 불 꺼진 재와 같고, 유교는 현실을 버리고 동산[東岡]에 피신해 있으니, 이들은 세상 사람과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세상을 구원하는 목적을 삼고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바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