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8. 생명을 보호하자 / 신명기 24:5, 25:4, 22:6-7
여러분은 생명을 보호하고 죽을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고 피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이에 대해 더 말씀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 현상을 볼 때 너무나 실망스러운 점이 많아 제가 깊이 살펴보려 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생명 보호법이 매우 엄격했습니다. 신명기를 보면 새로 결혼한 남자는 군대에 보내지 말고, 곡식을 밟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며, 새의 보금자리에서 새끼를 취하지 말라고 하는 등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생명을 함부로 해치는 나라와 개인을 '야만적'이라 합니다. '야만'이란 무지하고 비인간적이라는 뜻입니다. 만약 우리 자신과 우리나라가 '야만'이라 불린다면 큰 수치가 될 것입니다.
얼마 전 미국 신문에서 우리나라를 '도적들의 소굴'이라 표현했는데, 이것도 큰 모욕이었습니다. 그런데 '야만'이라 불린다면 그 모욕은 더욱 크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죄악이 널려 있어, 강도 살인 기사가 날마다 신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중에 대학생이나 군인이 가해자라는 것은 교육의 문제와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게 합니다.
또한 불법적인 임신을 한 남녀가 그 불법적인 태아를 목 베어 죽이거나 물에 던져 죽이는 이런 참혹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비윤리적인 행동은 실로 참담합니다. 유교에서도 목매어 죽거나 물에 빠져 죽은 이는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했는데, 이는 자신의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는 제사받을 가치가 없다는 뜻입니다.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는 우리 신자들이 이런 참혹한 사회 현상을 볼 때 눈물을 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500년 역사가 사실상 사람을 죽이는 역사였습니다. 황실을 짊어졌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을 죽였고, 진리를 몰라 그르쳤습니다. 그런 죄악을 겪은 뒤에도 기독교가 들어와서는 정치에 관여하다가 실패한 경우가 많았으며, 우리 국민을 살리고자 했다가 죽은 이도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편을 수입하여 중국인들이 아편 중독으로 죽어간 것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6·25전쟁으로 수많은 청년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남을 죽인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우리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