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1. 생명의 길을 보여주심 /누가복음 10:28
인간은 유한과 무한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며, 필연과 우연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모르고 살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우연으로 치부하며, 하나님이 필연적으로 이루시는 일도 우연이나 자연현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고, 혹은 속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필연적인 계획을 가지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시지만, 무지한 인간들은 이것을 분석하고 계산하고 따지며, 거기에 비평하고 함부로 판단까지 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화내지 않으시고 지켜보십니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이 사람의 살아갈 길을 보여주셨고, 하나님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길이 하나님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지금은 지식이 발전하여 상식적으로도 신의 존재를 믿지 않더라도 이해는 합니다. 그래서 삶의 길을 찾는 것도 진보적으로 가르칩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반드시 필연적으로 길을 보여주십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일하다가 실패했을 때, 그 실패와 진리는 분명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 원인이 명확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때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고 남을 원망하거나, 심하면 하나님까지 원망하면서 점점 더 실패의 길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회개와 자백은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면 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일들은 분명한 법칙에 따라 일어났습니다. 조금도 남을 원망할 것이 없고, 반성과 회개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삶의 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입니다. 사랑은 곧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곧 사랑이십니다. 삶의 철학은 곧 사랑입니다.
직접적인 삶의 길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보다 더 발전하여, 그것은 곧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발전하여 자신을 중심에 두지 않고 남을 중심에 두는 사랑, 즉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랑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죄인을 위해 돌아가신 그 사랑입니다.
삶의 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기쁨이 있고, 여기에 감사가 있고, 여기에 평화가 있습니다. 여기에 천국이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데 있지 않고 남을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 안에 생명이 있고 천국이 있습니다. 이 사랑이 없어서 죽고 이 사랑 없이는 멸망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바라봅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장군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이 없기 때문에 백성이 정부를 원망하고 정부는 백성을 미워합니다. 부패한 사람들은 나라를 병들게 하고 외국에 곡식을 수출합니다.
길가에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을 본 사람들 중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 지위로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었으나 돌아보지 않고 갔습니다. 그것이 바로 유교입니다. 유교는 살 줄 모르는 가르침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기독교를 상징합니다.
옛날 경상도 홍수 때 안동의 멧목이 물에 떠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멧목에서 자던 사람들은 모두 목수였습니다. 기둥에 못을 박고 줄로 묶어 배처럼 홍수에 떠내려갔습니다. 한 마을에 가서 사람을 살려달라고 외쳤습니다. 그 마을은 양반들이 사는 마을이었습니다. 모두 유교를 믿는 양반들이었습니다. 한 사람도 나와 보지 않았습니다.
또 한참을 내려가 다른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 마을은 양반이 아닌 중인들이 사는 마을이었습니다. 소리를 지르자 마을의 한 사람이 "내 재산을 걸겠으니 누구든지 저 사람들을 구하자!"라고 했고, 마을의 청년들이 모두 나와서 긴 줄로 그 멧목을 끌어 강둑에 매어 살렸습니다. 이 사람들이 바로 살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가난하여 남을 도와줄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대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우리 교회의 본뜻입니다. 지금 미국 사람들이 저렇게 잘 사는 것이 무슨 까닭입니까? 그들은 지금 57개국을 돕고 삽니다. 그들이 복을 받는 이유는 흑인 노예 500만 명을 해방한 그 사랑 때문입니다. 정말 자비로운 일입니다. 흑인 노예를 사고팔 때는 채찍으로 때리고 발바닥을 뚫고 학대가 심했습니다. 그것을 해방했기에 그 은혜로 저렇게 잘 삽니다.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것이 곧 내가 사는 길입니다. 예전에는 하나님을 찾으라, 이것이 사는 것이라 했지만, 지금은 발전하여 하나님을 찾는 길은 곧 사랑이라고 합니다. 이 사랑이 곧 사는 길인데, 사랑은 자기를 중심한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중심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정신이요, 믿는 자가 힘써야 할 바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너도 살고 나도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