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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9일 주일 메시지
시리즈 주제: 바이블 스토리-하나님 나라의 대서사시
Bible Story-The Grand Epic of God’s Kingdom
네 번째 설교
제목: 출애굽 – 약속을 붙들고 떠나는 여행
설교 목표
출애굽의 이야기를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그 일에 믿음으로 동참하는 것이 무엇이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결단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제시한다.
설교 개요:
1. 출애굽 이야기
2. 출애굽 이야기의 의미
3. 출애굽 이야기의 목적
4. 제사장의 나라
5. 새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그루터기
출애굽 이야기
출애굽 이야기는 성경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내용 중 하나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살다가 그곳을 떠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세계인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한 부족을 이루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과 에서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열 두 아들을 낳았으며, 그 열두 아들도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아들 중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 종으로 팔려 애굽에 도착했습니다. 많은 날이 지나고 요셉은 애굽에서 국무총리가 됩니다. 세상에 큰 흉년이 들었는데 마침 야곱의 가족도 가나안 땅에서 고생을 하다가 애굽에는 양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애굽에 양식을 사러 갔습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양식을 관리하는 총 책임자가 요셉인 것을 알고 깜짝 놀랬습니다. 요셉은 자기 가족을 애굽에 와서 살도록 초대했으며, 그렇게 해서 야곱의 가문은 모두 애굽으로 이주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70명이 애굽에 들어와서 세월이 흐르자 그 수가 늘어 큰 민족으로 성장했습니다. 처음에는 애굽의 왕이 국무총리 요셉의 가문을 환대했으나 시간이 지나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그리고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자기 나라의 종으로 부렸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더 늘어나지 않도록 고생을 겪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억누를수록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수가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애굽 왕은 새로운 꾀를 냈습니다. 그 나라의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이스라엘 여인이 출산하러 오면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했습니다. 양심적인 산파들은 도저히 어린 아이들을 죽일 수 없었고 왕의 말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애굽 왕은 강력하고 가혹한 법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을 말살하고자 했습니다. 그 법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들을 낳으면 무조건 나일강에 던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가정에서는 아들을 낳으면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들에게 자기 아들을 빼앗겼고 그 소중한 갓난 아들들이 나일강에 던져져 악어와 물고기의 밥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고통은 정말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라는 남자 아이를 나일강에서 기적적으로 건져 애굽 왕의 딸에게 발견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애굽 왕의 공주는 이스라엘 사람인 모세를 아들로 삼아 잘 양육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세가 자라나 이스라엘 자손을 건져내는 일을 합니다. 처음에는 자기 백성이 듣지 않아서 실망합니다. 하지만 광야에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난 모세는 마침내 애굽으로 돌아와 애굽 왕과 정식으로 대면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 왕의 손에서 건져냅니다. 하나님의 분부를 따라 열 가지 재앙을 애굽의 땅에 내렸을 때, 애굽 왕은 마침내 항복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으로 향해 출발합니다. 그리고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고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면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도착하여 거기에 정착합니다. 그곳은 하나님이 본래 아브라함에게 주시리라고 약속하신 땅이었습니다.
출애굽 이야기의 의미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 나오는 출애굽 이야기를 이야기 할 때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이 세상에서 종살이 하던 하나님의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건짐을 받아 홍해와 요단강을 건너가 마침내 천국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출애굽 이야기가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광야 40년은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평생이 되고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요단강을 건너는 순간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출애굽 이야기를 해방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애굽에서 학대 받던 이스라엘 민족은 이 사회에서 고초를 겪는 ‘을(乙)들의 고통’과 ‘민중의 고통’을 보여주며, 하나님의 뜻은 그렇게 압제를 겪는 사람들을 건져내는 것, 해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민주화 운동을 하며, 사회적 약자를 돌보며, 사회의 구조적인 악을 철폐하고 법을 새로 만들어 학대 받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출애굽 이야기를 이해하기도 합니다.
출애굽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람들은 많은 영감을 얻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두 가지 질문을 통해서 출애굽 이야기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건져주셨는가?
둘째, 하나님은 결국 이스라엘 자손을 건져내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심은 무슨 목적이 있는가?
출애굽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동기와 목적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록하여 보여줍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일하심 속에 무슨 뜻이 있는지를 살피는 것은 우리에게 바른 관점을 가질 것을 요구합니다. 성경교사가 된다는 말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는 건전한 관점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첫째, 출애굽 이야기에서 그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동기를 살펴봅시다. 하나님은 왜 그 백성을 구원하셨나요?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봅시다:
출애굽기 2:23~25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의 고통을 보시고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에게 약속하시기를 큰 민족이 되게 하겠고, 가나안 땅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400년이 지나 이스라엘은 애굽의 왕이 두려워할 정도로 큰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제 두 번째 약속을 이루실 차례입니다. 그것은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리라는 약속입니다.
우리는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이유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세우신 약속을 이루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과 맺으신 언약을 결코 잊지 않으시며 그 백성이 당하는 고통을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그 백성에게서 아들을 빼앗아가는 자는 결국 자신의 아들도 잃게 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물도 그들의 길을 가로막을 수 없도록 길을 내시는 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은 단지 큰 민족에 대한 것과 가나안 땅을 주시리라는 것뿐이었습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런 언약을 맺으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어떤 ‘큰 그림’을 가지고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셨습니까? 그것이야말로 출애굽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읽어내야 할 진정한 의미일 것입니다.
출애굽 이야기의 목적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셨을 때 그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목적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며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성경을 읽어봅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세기 12:1~3)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새로운 땅으로 인도하시고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며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여 아브라함은 복이 되고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이 피조세계를 만드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으로 아담과 하와를 인도하셔서 그곳을 잘 경작하고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동산에서 발원하는 강이 온 땅을 적시며 생명으로 세상이 충만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리인인 인간의 배반으로 말미암아 그 동산에서 쫓겨나고 땅은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노아의 가정을 부르시고 새롭게 세상을 만드신 후에 그들에게도 동일한 복을 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9:1). 그렇게 다시 한번 새로운 세상을 주시고 노아 가족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후손들은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만 온 땅에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서로 소통할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다시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제 그를 큰 민족으로 자라나게 하시며, 그에게 한 땅을 주시고 그리로 인도하신 후에 그들이 복이 되게 하시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그 민족으로 말미암아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게 되며 약속의 땅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출애굽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은 온 세상에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며 하나님도 그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지 못하고 자신의 길로 가버립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든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며 순종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소돔성에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과 에서는 둘 다 하나님의 언약을 들었지만 에서는 그것을 가볍게 여겼고 야곱은 그것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고초를 겪지만 하나님은 언약을 붙든 야곱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붙든 요셉은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지만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사람을 결국 그 말씀이 단련하고 믿음의 사람으로 세웁니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시편 105:17~19)
요셉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음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그가 붙든 그 말씀은 요셉을 단련하여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세워주었습니다. 그래서 온 세상은 요셉을 통하여 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기근의 죽음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큰 그림’ 속에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이루시려고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셨고 요셉은 아버지 야곱과 온 가문을 애굽으로 초청했으며 마침내 큰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그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려고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스라엘 자손을 건지시는 목적은 하나님이 본래부터 갖고 계신 목적, 곧 온 세상에 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나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은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시려고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으로 인도하시고 큰 민족으로 자라나게 하시며,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민족을 애굽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셔서 그 민족을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자손은 어떻게 온 세상의 축복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건지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기 전에 그들을 하나님의 산인 시내산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성경에서 이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출애굽기 19:1~6)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따라 큰 민족이 되었고 이제 약속의 땅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더 큰 계획을 위해 그 백성들과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것은 이제 약속의 땅에 들어가 하나님에 대하여 제사장의 나라가 되는 것이며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열국 가운데서 구별하여 선택한 백성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이 구체화 되는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가 되어 열방을 축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열방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며 거룩한 행실로 본이 될 것입니다. 그런 생활을 가능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율법과 성막을 주셨습니다. 율법은 그 백성이 열방의 빛이 되게 하는 길잡이가 될 것이며, 성막은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성막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자신들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과 만나고 사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막(聖幕)을 회막(會幕)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을 잊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애굽에서 그 백성을 건지셨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처럼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열방의 복이 되리라는 제사장 나라로 자신들을 세우셨음을 기억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참 이스라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말씀을 즐거워합니다. 참 이스라엘 사람은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 하심을 믿고 정직하고 진실하며 이웃을 축복합니다. 그가 아무도 없는 무화과나무 아래서 주의 말씀을 묵상하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아십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요 1:47~48)
참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간사한 것이 없습니다. 여기서 간사한 것은 낚시의 미끼와 같습니다. 뭔가 숨겨진 목적이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 여기서 말하는 간사하다는 단어에 담긴 의미입니다. 하나님께 헌신할 때에도 뭔가 숨겨진 동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 이스라엘 사람은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에 다른 의도가 숨겨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내가 이렇게 잘 하면 주님도 나를 인정하셔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실 거야!’ 이것이 바로 간사한 생각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에 살고 율법책을 연구하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주님은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이었지만 신앙심은 없었고, 그들은 세속적인 열망은 강했지만 하나님이 열어가시는 새로운 세상에 동참하고자 하는 열망은 잊은 지 오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간사한 것만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망각하면 에덴동산에서도 쫓겨나는 원인이 될 배신의 열매를 따먹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통하여 하실 일에 대한 비전과 꿈을 망각하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큰 민족이 되었어도 열방에 끌려가는 종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세월이 지나 다시 바벨론의 포로가 되며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음을 알려줍니다. 그들에게 있는 율법과 성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유익도 되지 않습니다. 제사장 언약 때문에 율법과 성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열방을 위한 제사장의 나라가 된다는 비전과 믿음이 없다면 율법과 성전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새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그루터기
여기서 우리 교회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 교회는 지난 37년간 고초를 겪으며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달려왔습니까? 때로는 예배당을 얻고자 애를 태웠습니다. 때로는 목회자를 인하여 애를 태웠습니다. 때로는 우리 자신의 가정과 삶의 문제 앞에서 애를 태웠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예배당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일곱 번째 목회자와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가정도 과거와 비교할 때 발전과 안정을 얻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붙들고 있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언약 안에 있습니까? 아니면 언약을 잃어버리고 그저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삶입니까?
출애굽 이야기는 우리에게 언약을 붙들고 살아가는 삶이 중요함을 가르쳐 줍니다. 출애굽에 동참한 이스라엘 백성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에게 광야의 삶은 고통과 괴로움이었으며 뜻 없는 방랑의 시간이었을 뿐입니다. 최희준 씨의 노래, ‘하숙생’에서 노래하는 대로 인생은 나그네길이며, 벌거숭이입니다. 정이랑 미련이랑 두어서는 안 되는 길입니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입니다. 과연 그것이 인생입니까?
지금, 우리는 출애굽 이야기를 통해서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달려간 믿음의 사람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다른 이들과 같이 홍해를 건넜으며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으며, 메마른 땅을 걸었으며, 목마른 시간을 지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은 약속의 땅을 바라보았으며, 그들의 마음에는 그 땅에서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한 기대와 소망으로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신 하나님이 하실 일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리고 그 임무를 잘 감당하라고 주신 그림이요 이야기요 미래로 안내하는 지도인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보며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은 언제나 시온의 대로를 향해 달려갑니다.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향한 사모함이 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기뻐하셨으며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들은 ‘새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그루터기’로 부르셨음을 믿고 인정하고 확신합니다. 우리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실 것이며, 우리는 세상에 대안이 되는 공동체로 세워질 것입니다. 그런 목적을 위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경륜’이라는 언약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닥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를 잘 엮어 우리의 삶으로 살아낼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새로운 시대는 우리 가슴 속에 있는 새로운 이야기가 이끌어가는 새로운 세상입니다. 우리 가운데 잘 엮어진 이야기가 굵고 튼튼한 동아줄이 되면 우리 교회는 수많은 난파선을 구조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낡은 이야기를 버리고 새로운 이야기, 우리를 미래로 인도하는 등불과 같은 새 이야기를 배우고 익히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배우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모여 주님의 이야기를 듣고 배웁니다. 우리는 소그룹으로 모여 주님의 그 이야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그 이야기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인도해 가는지를 돌아봅니다. 우리는 그렇게 모이는 소그룹 모임을 ‘그루터기 모임’이라고 이름을 짓고 올해 초부터 시작했습니다.
광야를 지나던 모세가 매일 하던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회막에서 하나님을 뵙고 주님을 만나 새로운 희망을 얻고 주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로 그의 마음을 밝힌 것입니다.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출 33:7~9)
예수님은 매일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한적한 곳에 나가셔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만나셨습니다. 우리들도 매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 그분이 주시는 언약을 기억하고 우리의 미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일에 선포된 말씀을 읽고 듣고 그것을 믿음의 가족이나 형제들과 서로 나누며 피차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며 새로운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질 수 있게 할 것입니다.
광야를 지날 때 수시로 원망하고 불평하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때로는 주님의 뜻을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무지하고 희미해질수록 삶은 길을 잃고 동력을 잃으며 꿈마저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생기 있고 목적이 분명한 삶을 살아가려면 하나님의 언약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나눌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건강한 그리스도인, 건강한 교회가 되는 비결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가 새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그루터기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우리 교회의 공동체 정체성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앞으로 이 일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됩시다:
새소망교회의 공동체 정체성
http://cafe.daum.net/Wellspring/5UF5/37
바이블 스토리-하나님 나라의 대서사시4(설교안).docx
설교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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