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새로운 가족이 된 녀석들이 있습니다. 20여 년 전 시골살이 연습을 시작하면서 처음 떠오른 상상이 있습니다. 나무와 풀들이 농원의 가장 중심되는 가족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에 못지않은 또 다른 생명체, 자연물이 존재하지요. 그리고 사람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가축을 생각할 수 있지요. 그 상상은 노란 햇병아리 떼를 몰고 푸른 풀밭 위를 구구대며 종종거리는 닭의 모습이었습니다. 울타리를 두르고 풀밭에서 닭을 기르면 닭똥을 치우거나 냄새에 신경을 쓸 일도, 닭장에서만 키우는 닭처럼 먹이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도 생각했습니다. 이후 농원에서 닭을 기르는 일은 내 로망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지난해 귀촌을 앞두고 집수리를 마치는 시점에서 닭장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이런저런 분의 자문이 있은 뒤였습니다. 다들 생각처럼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특히나 밖에 풀어서 닭을 키우면 들개는 물론 매나 독수리의 좋은 먹잇감이 되고 만다고들 입을 모았습니다. 쥐, 족제비, 뱀 따위의 포식동물이 구멍을 뚫고 들어와 닭을 해치지 않도록 대비를 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점을 알려주었습니다. 풀어서 기르는 이른바 방사(放飼)는 올바른 사육 방식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육 방식을 다소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닭장의 크기를 약 30평, 100㎡ 정도의 면적으로 줄이되 사각형 닭장 주위에 말뚝을 세우고 여기에 꿩 망을 두른 뒤 그 위를 그물망으로 덮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닭장 안 한쪽에 닭들이 비나 눈을 피하고 잠도 잘 수 있는 닭집을 짓는 것은 물론이고요.
닭장을 만들면서는 집안사람들로부터 닭장의 이름부터 공모했습니다. ‘계란옥(鷄卵屋)’, ‘친목계(親睦鷄)’라는 생뚱맞은 한자 이름부터 ‘에그힐(Egg Hill)’, ‘코커두들두(Cock-a-doodle-doo)’, ‘꼬꼬댁’이라는 이름도 나왔습니다. 쌍둥이 손녀들이 제안해온 이름은 ‘꼬꼬하우스’와 ‘나래실꼬꼬홈’이었습니다. 마을의 이름이 들어간 닭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농원이 있는 곳은 나래실마을 중에서도 큰골이라고 불리는 계곡 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래실 대신에 큰골이라는 말을 넣어서 ‘큰골꼬꼬홈’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닭장의 이름을 나무판에 새겨서 현판을 달기로 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손녀들에게 이름자의 디자인을 부탁해서 귀여운 모양의 현판을 손수 새겼습니다. 나무판에 글자를 새기는 서각(書刻)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가장 처음으로 새긴 판각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닭장을 짓자마자 지인 한 분이 기르고 있는 병아리 네 마리를 입양해 왔습니다. 봄에 부화해서 3개월쯤이 지난 병아리라고 했습니다. 한 배 모두 8마리 중에서 암수의 구별이 아직은 확실치 않은 것들이지만, 수탉으로 보이는 한 마리와 암탉으로 보이는 세 마리, 모두 4마리를 상자에 넣어 가져왔습니다. 닭은 ‘로즈컴(Rosecomb)’라고 하는 희귀한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자바섬 서부 반탐(Bantam)이라고 하는 작은 항구도시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항해하던 선원들이 항해를 지속하기 위해서 식량의 하나로 채워 넣던 닭이 영국으로 건너가서 로즈컴이라는 이름으로 사육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닭벼슬이 마치 붉은 장미꽃의 색깔과 같이 짙붉은 탓에 로즈컴이라는 이름을 가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수탉의 모습은 제법 크고 늘씬한 데 비해 암탉은 아주 작고 아담합니다. 반려동물로 길러 보고 싶을 만큼 멋지고 귀엽습니다.
녀석들에게는 각각의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가장 덩치가 큰 수탉은 ‘루키(Rooky)’란 이름을 암탉들에게는 ‘복실이’, ‘쿠크’, ‘초코’라는 이름을 달아주었습니다. 가장 체구가 작은 암탉인 초코는 그 색깔이 갈색의 초콜릿과 같아서 얻게 된 이름입니다. 그런데 병아리들이 자라면서 살펴보니 암탉으로 알았던 복실이와 쿠크도 수탉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수탉과 암탉의 비율이 3:1, 수탉보다는 암탉이 더 많아야만 한 공간에서 순조롭게 기를 수가 있는데 낭패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서 초코가 낳은 알로 부화를 시도했습니다. 우선 인공부화로 여남은 개의 알을 부화시켰는데 네 마리만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다고 깨어난 네 마리의 병아리가 모두 수탉이었습니다. 다행히 초코가 다섯 개의 알을 품기 시작했는데, 알을 품고 나서 15일쯤 지난 시점에서 다섯 개의 알 모두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누구의 소행일까 하는 이런저런 추측이 무성했는데,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닭장 안으로 들어온 먹구렁이가 품고 있던 알을 모두 먹어치운 것이었습니다. 얼마 뒤 닭장 안에서 먹구렁이가 쥐를 잡아먹는 것이 목격됨으로써 그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구렁이는 알을 먹고 자신의 배를 바위 따위에 부딪혀서 알이 깨지면 그것을 섭취한다고 합니다.
암탉의 숫자를 늘리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나의 사정을 안 지인분께서 마침 청계닭이 다섯 마리의 병아리를 깠다는 소식과 함께 그들을 가져다가 기르라는 또 한 번의 배려를 해주셨습니다. 얼씨구나 알에서 깬 지 두 달쯤 되는 디섯 마리의 병아리와 엄마 닭을 함께 가져와 닭장 안에 작은 닭집 하나를 더 짓고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지난 7월, 이후 녀석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중닭이 되었는데 이게 웬일, 이들 다섯 마리의 병아리 중에 암탉은 단 한 마리. 14마리의 닭 중에 암탉은 어미 닭까지 포함해서 모두 3마리에 불과하고 수탉이 11마리나 되는 언밸런스가 되고 말았습니다.
닭이 알을 품어 병아리가 태어나고 녀석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신비로운 자연의 섭리를 엿보게 되고 자연의 현상이 사람 뜻대로 만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닭이 알을 품은 뒤 21일이 지날 즈음 병아리가 알을 까고 나오고 어미 닭은 깨어난 병아리를 보듬어 보살핍니다. 어미 닭이 알을 품는 20여 일의 동안 닭은 어쩌다가 한 번씩 둥우리에서 나와 물을 먹는 일을 빼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습니다. 태어나고 나서 엄마의 품을 벗어나는 시기가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높은 곳이나 낮은 횃대 위로 올라가 잠을 잡니다. 모이를 쪼아 먹고 물을 먹고 머리를 하늘 쪽으로 들어올리는 모습은 얼마나 귀여운지요. 아기 닭들은 엄마를 중간에 두고 곁에 나란히 앉아서 잠을 잡니다.
병아리가 5개월쯤이 지나면 녀석이 암컷인지 수컷인지가 그의 외양에서 확연하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수탉은 이쯤부터 울기 연습을 시작해서 곧 목청껏 꼬끼오 소리를 뽑아댑니다. 바로 이웃집의 수탉이 울면 이쪽에서도 화답의 목소리를 냅니다. 텃밭에서 일하면서 좀 멀리서 녀석들이 우는 소리를 들을라치면 그리도 정겨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녀석들의 본성은 그리 온순하지만은 않습니다. 성비의 불균형에서 오는 수탉 간의 싸움은 피를 튀깁니다. 큰골꼬꼬홈의 상황이 좀 특이하기는 하지만 한두 마리밖에 되지 않는 암컷을 두고 수탉들은 사투를 벌입니다. 목과 몸통의 깃을 세우고 서로 노려보다가 벼슬과 같은 취약부위를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 드잡이하기도 하고 뒤를 쫓아 한 녀석이 도망을 치게도 만듭니다. 잠시 휴전하는 사이 번갈아서 암컷을 올라타는가 하면 곧이어 싸움이 이어집니다. 수탉들의 공략을 받는 암탉은 아예 알 낳는 둥지 안으로 숨어 들어가고는 합니다. 그래서 한 마리의 수탉을 제외하고는 다른 수탉들의 공간을 별도로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나마 1년여의 기간 동안 닭을 기르면서 품고 있는 알을 도난당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그런대로 무난히 녀석들을 보살핀 셈입니다. 고양이나 개처럼 뒤를 가리지 못하고 이곳저곳에 똥을 싸기도 하고 주둥이와 발로 곳곳을 파헤치기도 하지만 닭다운 모습으로 잘 자라고 있습니다. 암컷이 9개월쯤이 되면 알을 낳기 시작합니다. 암탉 셋 중에 두 마리가 알을 낳고 있고, 수컷들은 분리된 공간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늦봄부터 초겨울까지는 손수 재배한 배추, 열무, 상추, 양배추, 곤드레, 브로콜리, 콜라비 따위의 채소 등으로 닭들의 입맛을 돋워주기도 합니다. 겨울 동안은 온실에 보관해 둔 배추를 이따금 꺼내주기도 합니다.
닭을 돌보는 일이 내 일상의 패턴에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밖으로 나와 향하는 곳이 바로 닭장입니다. 일찍부터 활동을 시작하는 녀석들의 먹이와 물을 챙겨주며 하루의 일과를 시작합니다. 녀석들을 상시 보살펴야 하니 이틀이 넘는 외출은 삼가게 됩니다. 낮의 한동안은 닭들이 닭장 바깥으로 나가서 놀도록 닭장 문을 열어주기도 합니다. 저녁 시간이 되면 닭들을 닭장 안으로 몰아넣고 알을 챙긴 뒤 문단속을 하고요. 저녁 식사 후 진돗개 산이와 산책을 하며 빠짐없이 한 번 둘러보는 곳이 닭장이기도 합니다. 나의 로망 하나가 이루어진 곳이지요.
이제 곧 새해를 맞으면 닭 기르기 3년 차에 돌입합니다. 새봄에 알을 품기면 병아리들이 태어날 테죠. 닭장의 공간이 아직은 넉넉하니 토종닭 병아리도 몇 마리를 암컷으로 구해서 길렀으면 합니다. 겨울을 맞이한 큰골꼬꼬홈의 닭들이 추위를 잘 견뎌냈으면 합니다. (2024.12.14.)
첫댓글 야샨에서 닭 키우기가 쉽지 않겠군요. 기후는 둘째 치고 야수들과의 싸움. 불침번이라도 서야 하지 않을까요. 전방 관사에서의 경험이 떠오릅니다. 잘 키우시길....
요즘 나는 스크린 골프후 오찬에는
토종닭도리탕을 즐겨먹지요
아침에는 계란후라이를 먹고요
닭들도 소중한 생명체인것만큼
한적한 농원에서 닭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갖게됨은 훈훈한
삶이 아닐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