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인좌(李麟佐)의 난(亂)
임인(壬寅) 옥사의 진상이 폭로되었다. 충청도 유생의 상소로 인하여 김일경(金一鏡) 목호룡(睦虎龍)을 친국한 결과 목호룡이 김일경을 시켜 임인녹사를 만들어 놓은 진상이 다 폭로되었고 왕 4년 3월에 김일경의 아들 김녕해(金寧海)와 목호룡의 형 목시룡(睦時龍)이 영남사람 이인좌(李麟佐)와 정희량(鄭希亮) 등과 결탁하여 가지고 종실 밀풍군(密豐君) 탄(坦)을 추대 한다 칭하고 또 평안병사 이사성(李思晟)과 통하여 서에서 난을 일으키고 총융사 김중기(金重器)와 남태징(南泰徵)과 내응이 되고 이인좌는 군사를 모아 청주를 엄습하여 부사 이봉상(李鳳祥)과 영장 남연년(南延年)을 죽이고 북으로 안성까지 왔거늘 왕이 듣고 병판 오명항(吳命恒)을 명하여 도순무사를 삼고 박문수 조현명으로 종사관을 삼아 경병을 거느리고 남하할 새 오명항이 제군을 독촉하여 안성 죽산 등지에서 적군과 싸워 대승리하여 이인좌를 사로잡고 경상감사 황선(黃璿)이 또한 적을 파하여 정희량을 잡아 죽이고 경성에 첩보를 올리니 왕이 돈화문(敦化門)에 어하사 헌표례(獻僄禮)를 행(行)하고 지확공고(志確功高) 넉자를 써서 오명항에게 하사하시고 명항이 개선하여 경성에 들어올 때 왕이 숭례문에서 영접하고 출정 장사를 호위하시다.
이 일을 기회로 하여 영상 홍치중(洪致中)과 우상 조문명(趙文命)에게 명하여 힘써 당론을 없이하고 탕평을 주하였으나 그 후 소론의 잔당이 종종 일을 일으키는 지라 왕이 이런 불평 도배는 점차 구축하여 용납지 못하게 하여 당의 불이 점점 꺼지게 되다. 임인옥사의장본인은 소론 괴수 김일경이다. 당론을 주장하던 왕실을 만났다면 소론들의 참화가 극할 것이다.
예를 들면 경신 처분 시에 허영 허새의 일로 남인들의 참화가 어떠하였던가. 이번은 직접 란을 일으켜 국가에 큰 위해가 미치도록 된 일이로되 도리어 소론 오명항을 명하여 토벌하여 난이 평하였으니 공평한 임금이 있고 공평한 신하가 있어 큰 화근을 만들지 않은 것은 공정한 군신의 은덕이라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