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각처 파급
민족자결의 승리가 한번 들림에 그 소리가 각 처에 파급되었다. 경성에서는 3일 국장 당일만 정지하고 날마다 가두행렬이 시작되고 학생은 휴교하고 상인은 철시하고 공장파업하고 관리는 퇴직을 권고 조세는 불납운동 명하고 독립신문을 발행하고 임시정부를 발기하며 북한산 꼭대기에 태극기를 세우고 독립문에 글자를 채식하는 등 독립의사를 표시하는 행사가 도처에 볼 수 있고 일적들의 순경의 탄압이 있을수록 점점 불타오르는 형세 참 놀랍기도 하다.
그리고 33인의 후계 운동이 자꾸 일어나고 3월 28일에는 귀족에 김윤식 이용직은 독립의 허락이 가하다는 장서를 통독부와 일본정부에 제출하였으며 유림 곽종석과 장석영 등은 영남을 중심하고 독립운동을 제창하고 5월 20일에는 김가진을 영수로 하고 황족대표 의친왕과 각계 대표를 망라하여 조선민족대동단이 발기되어 국내 인심은 물 끓듯이 누르기 어렵게 되었다.
고종 국장에 시골서 올라온 민중은 거의 40-50만이 되었다. 슬프고 근심스러운 가운데 뜻하지 못한 독립의 소리를 듣고 각각 결심을 품고 고향에 돌아가 곳곳마다 운동을 일으켰다. 일반 민중은 뛰며 춤추며 만세를 부르고 이 동리가 부르고 저 동리가 불러 서로 향응하여 조선 산하는 만세소리로 화하였다.
혹은 높은 산에 높은 언덕에 올라서 만세를 부르는데 혹 비겁하여 만세를 부르지 않는 동리는 인간적으로 부끄러움을 면치 못한다. 학교 혹 장터 사찰 혹 종청 등이 다 만세를 부르는 곳이요 그렇지 않으면 십 명 혹 수십 명 작대하여 들로나 혹 산에 가서 부르는데 혹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일부러 높이 부른다.
그러다가 일적들의 군경이 총을 놓고 달려들어도 죽음을 맞고 넘어가며 만세를 부르니 우리는 당당한 자유민이요라 하며 죽음을 맞기까지 쾌활하였다. 우리는 손에 무기도 없고 다만 죽음뿐이라는 결심뿐이다. 일적들은 다시 놀래었다. 조선 백성들은 시정이후에 노래하며 잘산다고 자랑하던 것이 속에 쌓여 있던 흉악한 폭정이 하루아침에 폭발되었으니 세계를 향하여 할 말이 없고 다만 독역만 더할 뿐이다.
아무리 폭력을 사용하여 민심을 누를지라도 분수구에 물이 쏟아지는 것 같이 금할 수 없고 저들의 국회마다 조선은 평화스럽다 자랑하고 외국에 대하여도 조선 사람이 자원하여 통치를 잘 순종한다고 자랑하던 것이 그 흉악한 본색이 일조에 폭발하였으니 세계 사람의 미움꺼리가 되고 뿐만 아니라 신의 노여워하는 줄 일적들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