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다큐] 누구보다 조국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후손, 고려인들의 기나긴 여정, 카레이스키150 3편 “오딧세이-기나긴 여정” (KBS 140829 방송)
조회수 811,746회 ,•2020. 12. 24.
명작다큐 카레이스키150 3편 “오딧세이-기나긴 여정”(2014.08.29 방송)
3편 '오딧세이-기나긴 여정'은 러시아공영방송 RTR의 여자 앵커 고려인 5세 마리나 김의 1인칭 시각으로 강제이주 이후 현재까지의 고려인들의 역사를 살펴본다.
러시아 공영방송 RTR의 고려인 앵커우먼 마리나 김
-마리나 김은 고려인 5세다 올해 33세인 그녀는 러시아 공영방송 RTR의 기자이자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 중이다. 취재능력과 빼어난 미모로 러시아를 대표하는 저널리스트로 성장중이다.
-마리나 김은 2차세계대전 참전 베테랑들을 취재하던 중 우연히 1918년생인 고려인 2세 정상진을 만났다. 정상진은 소련 태평양한대 소속 해병대원으로 1945년 8월13일 청진항 상륙전에 선봉대로 참전했다. 그는 한반도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 유일한 한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온 노병이었다.
-마리나 김은 정상진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고려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끼면서 점차 정상진의 일생을 취재하는 과정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평양과 서울을 취재하는 마리나 김의 분단조국 체험기
-마리나 김은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평양과 서울을 차례로 취재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평양에서는 아리랑공연을 보고 유치원과 지하철 백화점 그리고 판문점을 취재하면서 북한의 속살을 살폈다. 서울을 방문하여 임진각을 찾고 세종시를 취재하고 명동과 강남에서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남북을 오가면서 분단된 할아버지의 나라에 대해 한없는 연민과 아픔을 느낀다.
3천만 한인들 중 가장 풍요로웠던 1930년대 연해주 고려인들
-1930년대 고려인의 숫자는 20만 명에 이르렀다. 소비에트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고려인의 근면성이 어울려 연해주 고려인 사회는 활기가 넘쳐 흘렸다,300개가 넘는 고려인 학교가 생기고 순한글 신문 '선봉'을 비롯하여 각종 잡지와 신문이 발간되고 한인라디오 방송국, 고려극장 등이 생겨 수준 높은 교육과 문화를 향유할 수 있었다.
학살과 강제이주 고려인 사회를 덮치다.
-1937년 스탈린은 일본이 만주와 중국을 연달아 침입하자 연해주 고려인들이 일본에 동조할 것이란 판단 하에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학살한다. 지금까지 공식 발표된 학살자는 2,000여명이었으나 고려인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6,500명이 넘는다.
-지도자를 처형한 후 소련 당국은 고려인 18만 명을 전원 중앙아시아 오지로 이주시킨다. 18만 고려인의 강제이주는 엄청난 시행착오를 일으키며 숱한 희생자를 낳았지만 고려인들은 하소연할 곳조차 없었다.
고려인 집단농장 폴리타젤, 시온고, 북극성 등의 눈부신 성장
-맨손으로 중앙아시아에 던져진 고려인들은 척박한 땅을 갈무리해 중앙아시아에 벼농사 재배를성공시킨다. 김병화, 황만금,김만삼 등의 헌신적인 지도와 고려인들의 협동심이 어우러져 마침내 소련 영방에서 최고의 생산성을 자랑하는 민족으로 거듭났다.
-소련 최고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가 고려인 농장을 방문하고 베트남 호치민 수상이 고려인 농장을 방문하여 모내기를 하고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이 고려인 마을 찾았다.
소련파 고려인- 북한정권을 수립하다.
해방이 되고 북한을 점령한 소련은 북한에 사회주의 정권을 세우기 위해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엘리트 500명을 북한으로 보낸다. 이들 고려인들을 소련파라 부른다. 허가이 박정해 박창옥 남일 등이 대표적인 소련파다. 그러나 이들 소련파들은 1950년 후반 김일성과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 중앙아시아로 쫓겨 난다. 또 다시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다.
질기고 질긴 조국의 뿌리 김치,
- 현재 고려인은 50만 명 정도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유라시아 대륙 20여개 국에 살고 있다. 스탈린의 한국어 교육 금지조치로 인해 고려인들은 한국말을 거의 잊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밥상에는 여전히 짐치라고 부르는 김치와 밥이 오른다. 고려인들이 있는 곳 어디나 김치 시장이 활기를 띈다.
고려인 한민족의 북방 진출의 파트너
-지난 8월16일 고려인 자동차 랠리 팀이 모스크바를 거쳐 중앙아시아 연해주 그리고 평양에서 8.15 경축행사를 한 후 개성을 통해 서울로 들어오는 대장정을 성공리에 마쳤다. 고려인들은 한국말을 모르지만 150 전 조국을 떠났던 할아버지의 나라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남북분단에 대한 한없는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명작다큐 카레이스키150" 관련 영상 보기
1편 “디아스포라 이산” https://youtu.be/n4iPCVjLR2c
2편 “레지스탕스 항전”https://youtu.be/d8Yy9iSer5w
3편 “오딧세이-기나긴 여정”https://youtu.be/WNCzzVizAMc
#카레이스키 #고려인 #독립군
2012.11.20 "방송인으로서 아시아적인 외모가 오히려 저의 성공에 도움이 됐어요."
러시아의 국영방송인 RTR의 프라임 시간대 뉴스 앵커인 마리나 김(29.여) 씨는 러시아 방송계에서 자신이 고속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스스로 이렇게 진단한다.
"러시아의 화두 중 하나가 다민족, 다문화를 포용하려는 것이죠. 그런 분위기에서 제가 빠르게 성장했죠. 제 성공의 50% 이상은 고려인 출신인 저의 아시아적인 외모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모스크바의 외교관계대학을 졸업한 그는 현재 프라임 타임대인 8시 뉴스의 앵커를 맡고 있으며 러시아판 '댄싱 위드 더 스타'에도 출연할 만큼 현지에서 유명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전 근처에서 태어난 그의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때 러시아 연해주에서 살다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됐고 흑해 인근 카바르디나 발카리아로 다시 옮겨 정착, 그곳에서 그의 아버지를 낳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김씨는 제주도에서 여름휴가도 보낼 만큼 이미 한국에는 여러 차례 왔다.
"제주도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좋아요."
김씨는 러시아의 고려인들로부터 페이스북 같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많은 응원 글을 접하고 있고 모스크바 내 고려인 단체의 모임에도 적극 참여한다고 한다.
"구소련 해체 때까지는 고려인 후손임을 드러내지 않는 분위기가 컸던 것으로 아는데 요즘은 단합이 잘 돼 신기할 정도예요. 저도 1년에 세 차례 정도는 꾸준히 참석하고 있고요."
하지만 김씨는 고려인으로서 자신이 기여하는 부분은 무엇보다 방송 활동을 통해 한국에 대해 많이 알리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꼽는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터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요즘은 일제 강점기를 끝내고 광복을 맞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기획 중이라고 한다. 러시아의 앵커는 언론인으로서 프로그램 기획, 대본 작업에도 참여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광복 직전 3주 간에 초점을 맞춰 구소련의 소비에트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조명할 생각이예요."
현재는 대본을 쓰는 단계로, 내년 8ㆍ15에 맞춰 방송을 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20.11.05 沿海州(4/러시아에서 立身한 高麗人)
*프리모르스키(연해주)=연안 + 바다
*모스크바-(시베리아횡단철도:9.288km)-클라디보스토크(부동항, 러시아의 태평양 전진기지)
*러시아극동: 한반도의 28배, 인구는 600만
★1995 국가두마(하원)선거에서 2명당선
⦁정홍식(러시아 명 유리 텐/工員출신, 이르쿠츠크에서 계속 3선)
⦁최발렌틴(하바롭스크)
2003년 의회진출
*장류보미르(니제고로드 선거구)-2007 재선 실패
-고려인 복지 및 정착을 위해 맹활약
★2011.12총선에서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으로 2명당선)
⦁엄유리(스타브로폴주(러시아 남부)/육군소장 출신, 아프가니스탄, 체첸 전장에 서 유공, 체첸공화국 부총리 역임, 2008년 이후 스타브로폴 주 군사 위 원장 역임)
⦁정세르게이(이르쿠츠크 정홍식의 자)
★문화계
⦁방송인 김 마리나 (1983년생, 고려인 3세)
-러시아 국영TV방송RTR의 메인뉴스 8시 앵커
-고려인 유일의 앵커
⦁공훈배우 남 류드밀라(고려인 3세, ‘97작고)
-알마아타 탄생, 세계적인 예술가
-모스크바 볼쇼이 오페라단 프리마돈나 활동
★경제계
⦁김 아고르 전MDM은행장(2008, 97위 부호)
⦁태 스타니슬라브(레이저 프레프트 사장)
★기타
⦁김알렉산드르(사하공화국 국회부의장)
⦁박아나톨리(블로그다주 부지사)
⦁김뱌체슬리프(흑해함대 부사령관)
⦁김아파나시(육군 소장/법무관에서 진급)
Comment
이 밖에도 많은 經濟人 成功事例가 있다.
⚫祖國은 高麗人들에게 갚아야 할 빚을 졌다. 그들은 19世紀 末과 20世紀 初에 依支할 祖國이 없었다. 그들은 豆滿江 어름 판을 건너 荒蕪地 沿海州로 간 것이다.
⚫그래서 「朝鮮」과 「韓國」을 다 버리고 「高麗人」이 된 것이 아닐까?
⚫差別待遇, 强制追放과 수많은 虐殺을 당해가면서 끈질기게 살아남았으며, 러시아와 中央 아시아에서 勤勉性과 誠實性을 認定받아, 優秀農業人으로 또는 指導階層으로 부상(浮上) 하였다.
⚫그들의 입신(立身)과 成功은 普通의 境遇와 같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 偉大한 人間勝利는 勿論, 우리 民族의 優秀性과 不滅의 生命力을 世界 사람들에게 立證한 것이다.
⚫筆者가 高麗人에게 關心을 갖는 것은 그 때문이다.
김 씨는 20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12차 한러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19일 입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