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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미진이
김현숙
“내가 장담한다. 너희들이 4반한테 이기면 내가 말자 신랑이다.”
우영이는 여느 때처럼 같은 말을 자꾸 내질렀다. 꼭 개구리 입같이 생긴 입으로 끔찍한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아 등짝을 확 후려 패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우영이는 빠르기도 만만찮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해 보았자 나만 손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꾹 참았다.
우리 6학년에서는 합동체육시간에 몇 가지 종목을 정하여 다른 반과 돌아가며 경기를 한다. 경기에서 이기면 2점, 비기면 1점, 지면 0점의 점수를 내서 점수가 많은 반이 이기는 것이다. 모든 아이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종목을 한 가지씩 골라 참가할 수 있다. 나는 그 중에서도 피구를 하고 있다.
오늘 5교시 합동체육시간에 4반과 붙으면 이제 경기는 모두 끝난다. 하지만 4반은 이때까지 3승을 올린 최강의 적이다. 그에 비해 우리 반은 2무 1패로 아직 한 번도 다른 반에 이겨 본 적이 없다. 더구나 우리 반 아이들이 선택한 종목 중에서 2승 1패로 가장 성적이 좋은 축구팀의 골문지기가 우영이고 보니 성적이 안 좋은 피구 팀에게 할 말이 많겠지. 그러니 우영이가 타박을 준다 해도 속만 상할 뿐 대꾸할 아무 거리가 없다. 이미 우리는 배구나 축구, 발야구, 농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해 우리 학년 다섯 반 중 1등은커녕 4등 아니면 꼴찌에 가까이 가고 있다. 1등한 반에서는 공책을, 2등한 반에서는 연필을 받게 되어 있지만 우리는 이미 물 건너 간 셈이다. 그렇지만 꼴찌 할 때는 하더라도 꼭 한 번만은 이기고 싶다.
우리는 아침부터 모여서 작전을 짰다. 우영이는 그런 우리들의 작은 노력마저도 짓밟는 소리를 해댔다. 그런데 나는 나중에야 우영이의 그 개구리소리를 진작 막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줄이야.
점심시간이었다.
“내가 장담한다. 너희들이 4반한테 이기면 내 말자 신랑이다. 말자 신랑!”
우영이는 같은 소리를 또 몇 번이나 꾸엑꾸엑 내뱉었다.
말자는 다름 아닌 ‘이미진’이다.
6학년 올라와 학급 규칙을 정할 때였다. 흔치 않게 손을 든 미진이가,
“……하지 말자.”
하고 발표를 했는데 앞 말은 전혀 들리지 않고 끝에 ‘말자’라는 낱말만 길게 늘여서 하는 바람에 그 말만 겨우 알아듣게 되었다. 우리는 어리둥절하다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 때부터 미진이의 별명은 ‘말자’가 되었고 짓궂은 남자 아이들은 수시로 미진이의 옆에서,
“떠들지 말자!”
“까불지 말자!”
하고 놀려댄다.
그러면 미진이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눈을 새초롬하게 뜨고 그 아이를 쬐려 보는 것이었다.
미진이는 장미반(특수학급)에 가는 아이다. 덩치는 우리 반 여학생 중에서 가장 크고 키도 크다. 하지만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말을 하면 들릴 듯 말 듯 한다. 특히 글을 읽거나 발표를 할 때면 붕어처럼 입만 벙긋벙긋해서 바로 옆에 있는 짝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을 지경이다. 공부도 가장 못하고 공부 시간에는 잠자기 일쑤다. 그나마 깨어 있는 시간에도 종이접기를 하거나 자주 옆에 있는 친구에게 말을 걸어 선생님께 벌을 받게 만든다.
우리 반은 남학생이 13명, 여학생이 11명 남녀로 짝을 맞추어 앉는다. 남학생 한 쌍 외에는 모두 남녀 짝을 앉게 된다. 그런데 금요일에는 남녀 구분 없이 일찍 오는 차례대로 자기가 앉고 싶은 아이와 앉을 수 있다. 그래서 친한 친구끼리 서로 짝이나 모둠을 맞추어 앉게 되는데 아무도 미진이와는 앉으려 하지 않는다. 늦게 오는 아이는 꼭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뒤에 가방을 맨 채 서 있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도 양보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선생님이 오시면 다시 원래 짝과 앉게 되는 일이 허다하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짝 없이 남겨지거나 서운하면 원래 짝과 앉아야 한다는 규칙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정한 규칙이다.
지난 번 학급회의 때는 ‘미진이를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 돌아가며 앉도록 하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여학생들의 반대로 없었던 의견이 되기도 했다. 찬성과 반대로 손을 들게 되면 당연히 인원수가 많은 남학생들은 모두 찬성을 할 것이고 그 피해는 우리 여학생이 보게 될 것이 뻔했다. 지금은 어차피 남학생과 짝을 하는데 특별법이 만들어지게 되면 여학생도 돌아가며 앉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런 특별법을 만들려고 한 것이 제법 멋진 것 같았다. 하지만 회의가 끝났을 때 선생님은 우리를 타박하시듯이 이렇게 물었다.
“그 특별법이 진짜 미진이를 위한 거냐?”
우리는 자랑스럽게,
“예!”
하고 대답했다. 섭섭하게도 선생님은 칭찬은커녕 고개를 내저으실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셨다.
미진이도 잘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피구를 할 때 그 큰 덩치에도 미꾸라지처럼 잘 피하면서 끝까지 살아남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피구를 할 때면 교실 안에서와 달리 미진이를 서로 자기 편에 넣으려고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 미진이가 계속되는 우영이의 놀림 때문에 발표할 때와는 사뭇 비교도 안 될 만큼 큰소리로 울음을 터트린 것은 점심시간이었다. 미진이의 그 울음은 그칠 줄을 몰랐고 누구도 막을 수도 없었다. 선생님께서는 이 상태로는 체육을 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셨는지 우리 반만 합동체육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셨다. 우리는 억울한 마음을 호소해 보았지만 선생님은 막무가내셨다. 미진이가 아닌 우리 중 누군가가 미진이와 같은 상황이라면 학년체육대회에 나갈 수 있겠는지 물으셨다. 솔직히 내가 미진이처럼 울고 있는데 우리 반 친구들이 체육을 나간다면 나는 너무 외롭고 우리 반이 싫어지긴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선생님의 결정에 대해서 아무 할 말이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우리는 우영이를 몰아세웠다. 덩치 큰 남학생들은 우영이에게 주먹을 쥐어 보이며 나중에 따로 보자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뽑은 것은 우영이였기 때문에 우리는 우영이가 그 책임을 지도록 해 볼 작정이었다. 하지만 우영이는 도저히 그럴 마음이 없는지 뒷머리만 긁적거리고 앉아 있기만 했다. 여학생들이 모두 뾰족한 눈으로 째려보았지만 우영이는 선뜻 용기를 내어 선생님께 자기가 책임지겠노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 봤자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영이 또한 우리 반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선생님의 관심 대상이었다. 선생님이 무슨 말만 하면 그저 조금이라도 끼어들어 보려고 꾸엑꾸엑 소리를 내어 수업 분위기를 흐리기 일쑤다. 지난 번 국어 시간에는 자기가 쓴 글씨를 자기가 못 알아보아서 발표하다가 앉기도 하였다. 입바르게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않아 친구들의 갈등을 부채질하는데 선수였다. 그리고 또 급식시간이면 어디를 돌아다니는지 제자리에 앉아 있지를 않아서 항상 우영이 분단이 가장 늦게 밥을 먹게 만든다.
드디어 점심시간이 끝나고 체육시간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조용히 선생님의 눈치를 살폈다. 마음이 약하고 눈물이 많은 나 같은 여학생 몇 명은 분하고 억울함에 눈물까지 흘렸다. 그런 가운데 벌써 운동장에서는 6학년 아이들이 준비체조를 끝내고 경기 시작하는 소리가 났다. 우리 반은 전 종목 기권을 선언하였다. 우리는 전부 깊고 어두운 웅덩이 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기분은 원망으로 바뀌어 선생님에게로 돌아갔다. 미진이가 놀림을 받고 따돌림 당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 하필이면 오늘 중요한 순간에 이러시는 까닭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결정을 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몰랐다.
우리의 기분이 이쯤에 이르자 선생님도 그 압력을 이기기 어려웠는지 말문을 여셨는데 이 사건의 시작이 꼭 우영이의 놀림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 사건은 바로 어제 있었던 일부터 시작되었다.
어제였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려서 두 달 만에 찾아온 자리 바꾸는 날이었다. 우리는 손꼽아 이 날을 기다려 왔다. 그런데 심지 뽑기로 짝 정하기가 끝나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우리 반에서 가장 키 큰 남학생 창선이가 미진이와 짝이 되자 굵은 눈물을 안경알이 뿌옇게 되도록 흘리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미진이와 다툼이 일어났다. 선생님이 나서서 창선이를 달래 보았지만 창선이는 더욱 큰 소리로 울었다. 선생님은 잠시 말없이 창선이를 내려다보셨다. 나는 우는 창선이보다 미진이가 더 안돼 보였다. 누가 나와 짝이 되지 않으려고 저렇게 운다면 얼마나 불행할까? 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창선이와 자리를 바꾸어 줄 것을 부탁했지만 나를 비롯한 모든 아이들은 선생님의 눈을 피하느라 고개를 숙였다. 미진이가 불행해 보였지만 그렇다고 내가 불행해질 수는 없었다. 지난번에도 공부 잘하고 착한 가영이를 선생님이 억지로 함께 앉도록 했지만 가영이가 그 일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만은 않았다. 결국 선생님은 어제 미진이와 창선이를 각각 혼자 앉게 하였다. 그리고는 인사도 받지 않으시고 우리를 돌려보내셨다. 우리는 그 일을 깜빡 잊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또 미진이를 놀려서 울렸으니 선생님이 화나실 만도 하다.
어제 일을 말씀하시고 선생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하고 물으셨다. 우리는 대답할 기분이 아니었다. 아직도 다 풀리지 않은 억울함을 침묵으로 버텨 볼 생각이었다. 오히려 무슨 잔소리를 하시려고 저러시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토론을 좋아하는 정환이가 불쑥,
“돈이요!”
하고 말했다. 정환이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짠돌이로 통하기에 그 대답은 정환이 다운 대답이었다.
“저는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책을 많이 읽어 상식이 풍부한 현수가 의자를 똑바로 자리에 밀어넣고 일어나 대답했다. 미진이를 위한 특별법을 만들자고 했던 것도 현수였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심드렁하였고 더욱 이 상황이 싫어 못 견디겠다는 표정들이었다. 다행히 선생님도 더 이상 설명도 잔소리도 하지 않으셨다. 더 이상의 대답도 나오지 않았고 정답도 없었다. 우리는 그 긴 5교시를 6학년 들어서 처음으로 분노와 원망과 미진이의 점점 작아지는 울음소리 속에 조용히 보냈다.
5교시가 끝나고 6교시는 창체 시간이었다. 우리는 창체 시간에 짝수와 홀수로 팀을 나누어 발야구를 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래서 5교시에는 합동체육을 하고 6교시에는 발야구를 하며 보낼 생각에 얼마나 기대하고 있었던 오늘이었는데……. 우리의 마음은 정말 설명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6교시마저도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우리는 힘을 내어 다음 시간은 계획대로 하자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셨고 우리는 평소에 잘 넣지도 않던 의자를 소리 나게 책상 아래로 밀어넣고 무슨 큰 위세나 하듯이 발을 쿵쿵 울리며 운동장으로 나갔다. 주혁이랑 수빈이가 주전자에 물을 떠오고 공을 준비하였다.
가위 바위 보로 우리 짝수 팀이 먼저 공격을 하게 되었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공차기 실력의 차이를 고려하여 남학생은 왼발로만 공을 찰 수 있었다. 하지만 여학생들이 오른발로 차는 것보다 훨씬 멀리 보내었다.
첫 번째 선수는 우리 반 남 부회장인 호규였다. 공은 하늘을 가르며 높이 날아올랐고 덩치 큰 기훈이가 달려갔지만 벌써 키를 넘기며 떨어졌다. 호규는 1루를 돌아 2루까지 갔다. 높이 뜬 공을 보니 웬일인지 속이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어느 새 교실에서 있었던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다음은 깜보 연미였다. 연미는 몇 번이나 망설이다 1루와 2루 사이로 공을 찼고 앞에 있던 민국이가 그 공을 받고 말았다. 다음은 수학은 잘 못하지만 태권도를 잘하는 석문인데 홀수 아이들은 뒷걸음질을 치며 수비 자리를 늘였다. 공은 빈틈없이 날아가 2루타를 기록했고 그 덕분에 우리는 1점을 내게 되었다.
그 다음은 나다. 아이들이 수비를 앞으로 바짝 당겼다. 키도 작고 몸이 약한 나는 차례만 돌아오면 가슴이 못 견디게 방망이질을 해댔다.
우리 편인 우영이는 또 꾸엑꾸엑 소리를 질렀다.
“이제 끝난 거나 마찬가지다. 나가자 나가, 수비하러!”
나를 무시하는 소리다. 아이들이 모두 우영이한테 달려들 듯이 쳐다보자 눈치 없는 우영이도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첫 번째 공은 애기볼이 되어버렸다. 다시 찬 공은 주혁이가 받아 3루로 가던 석문이 몸을 찍어버렸다. 그래서 우리의 공격이 아쉽게 끝나고 말았다.
그렇게 1회가 지나고 역전에 역전을 거듭한 끝에 7회 초의 점수는 9대 8로 우리 편이 앞서고 있었다. 남학생들은 열심히 경기 규칙을 여학생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내가 찰 때도 남학생 몇 명이 공차는 방법이며 방향을 귓속말로 알려 주기도 했다. 그 덕분에 나는 1루까지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반 남학생들이 축구를 할 때면 늘 골키퍼를 도맡아 하는 우영이가 얄밉지만 예쁘게도 홀수 남학생이 높이 날린 공을 목숨 건 아이처럼 몇 번이고 받아내었다.
우리가 경기에서 위기를 맞은 것은 7회 말 수비를 할 때였다. 벌써 투아웃이 된 상황에서 남학생도 두려워할 만큼 손이 맵고 당찬 성은이와 몸집 좋은 기훈이와 가영이가 연거푸 공을 차 만루가 되었을 뿐 아니라 다음 타자는 우리 반의 메시인 민수의 차례였던 것이다.
우리는 바짝 긴장한 채로 수비 거리를 늘였다. 민수는 있는 힘껏 발을 뻗었고 공은 2루로 똑바로 가는 것 같더니 이내 곡선을 그리며 수비가 엉성한 1루 근처로 굽어 드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차!’ 하며 공을 올려다보았다. 아이들에게서 멀찌감치 서있던 미진이에게로 떨어지는 공을 안타깝게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준원이가 열심히 뜀박질을 하는 모습도 마치 정지화면처럼 보이는 듯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미진이가 자세를 잡더니 눈을 질끈 감고 두 팔로 공을 꽉 껴안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우리는 일제히 소리를 질렀고 공을 향해 뛰어가던 준원이가 두 손을 번쩍 치켜올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선생님! 미진이가 눈 감고 공을 받았어요!”
우리는 남녀 할 것 없이 미진이에게로 달려갔고 여학생들은 미진이의 손을 잡고 팔짝팔짝 뛰었다. 미진이도 쑥스러운 듯이 씩 웃었다. 웃는 눈가에 말라붙은 눈물 자국이 하얗게 얼룩져 있었다. 이 순간 우리는 선생님이 말한,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를 만난 듯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우영이는 또 꾸엑꾸엑 소리를 질렀다.
“말자가 눈 감고 공 받았대요! 말자가 눈 감고 공 받았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