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감시가, 제도를, 만든다
글. 이인신 (수원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얼마 전 성황리에 극장상영을 마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라는 영화가 있다. 시기는 95년. 삼진그룹에서 근무 중인 상고출신의 계약직 ‘여성’직원들이 회사의 비밀을 파헤치며 삼진그룹을 집어삼키려는 해외자본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주인공들은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지만 심부름이나 단순 업무 정도를 맡아 남성 직원들을 보조한다. 그런 그들이 우연히 오폐수방류를 목격하고 그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처음 도입부에 나온다. 자신들의 한계를 딛고 감시자가 되기로 결정하기까지 고민의 과정도 영화의 볼거리 중 하나다. 영화 속 감시자의 이야기는 즐거운 소재다. 누군가는 지나칠 수 있는 사실에서 부자연스러움을 발견하고 규명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능력에 기반했을까? 우린 못하는 걸까?
수원에선 2014년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삼성전자 우수관으로부터 나온 폐수로 인해 원천리천에 살던 물고기 만 여 마리가 집단 폐사하는 일이 발생했다. 영화에서처럼 비가 오는 날 한 명의 제보자가 원천리천에 물고기가 배를 내밀고 죽어있는 것을 목격했다. 이를 바로 수원하천유역네트워크에 제보했고 당시 수원의 환경단체들이 현장을 확인하고 언론에 이슈화하고 시청과 삼성 측에 사실관계 확인 과정을 거쳤다. 그 일을 계기로 수원은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화학사고대비 조례가 제정됐다. “수원시 화학사고 대응 및 지역사회 알권리 조례”가 그것이다. 이 조례가 우수한 이유는 “알권리”에 있다. 화학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지만 지역에서 취급중인 화학물질을 알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차원의 문제다. 조례에서 알권리는 사고 이후가 아닌 사고가 나기 전에도 충분히 정보를 습득할 권리를 말한다. 그것을 토대로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이 조례는 다른 지자체에서 화학사고관련 조례를 만들 때 참고가 되고 있다.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권리인데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고발과 단체행동 등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야 보장받게 됐다. 그리고 그 시작엔 감시자의 눈과 입이 있었다.
영통은 유독 감시자의 역할이 중요한 곳이다. 최근 영통을 들끓게 하고 있는 소각장이 삼성전자에는 따로 존재한다. 유독 삼성은 국가와 시민들의 감시로부터 자유롭다. 우린 감시자의 능력이 국가기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원천리천 물고기집단폐사 사건으로 알게 됐다. 영화 <킹스맨>은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수원의 사례는 이 말을 이렇게 바꿀 수 있다. 감시가, 제도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