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소개
■ 개설 「피아노 협주곡 a단조」는 1868년 여름, 덴마크의 쇨레뢰드에 자리한 목가적인 별장에서 작곡되어 이듬해인 1869년 4월 3일에 파울리(Holger Simon Paulli)의 지휘와 노이퍼트(Edmund Neupert)의 피아노 연주로 코펜하겐에서 초연되었다(노르웨이에서의 초연은 같은 해 8월 7일에 그리고 1872년 독일, 1874년 영국에서 공연되었다).
당연히 그리그 자신이 피아노 독주를 맡았어야 했지만, 그는 크리스티아나(현 오슬로)에서의 지휘자 업무 때문에 초연에 참석하지도 못했다. 닐스 가데(Niels Gade), 안톤 루빈스타인(Anton Rubinstein) 등 저명한 음악가들이 배석한 초연은 성공을 거두었고, 작품의 악보는 1872년에 출판되었다. 노르드로크(Rikard Nordraak)에게 헌정된 이 초판본은 출판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고, '피아노의 제왕' 리스트에게서도 격찬을 받았다. 리스트는 그리그와 두 번째 만났을 때 이 곡을 직접 연주했는데, 작품에 큰 감동을 받은 듯 마지막 부분을 다시 한 번 연주한 다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그 자신은 작품에 만족하지 못해서 적어도 일곱 번 이상 개정을 시도했다. 개정의 방향은 주로 전체의 구성과 관현악법을 보다 세련되게 다듬는 쪽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마지막 개정작업은 1907년 9월에 그가 세상을 떠나기 몇 주 전까지 이어졌다. 그 결과로 1917년에 출판된 악보가 오늘날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개정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곡에서 그리그의 젊은 날의 열정과 시정, 그리고 원숙기의 관현악 기법을 동시에 마주할 수 있다.
■ 곡 해설 이 협주곡은 피아노와 관현악의 우아한 조화와교묘한 표현, 그리고 민족음악을 뼈대로 한 그리그의 전모를 잘 나타내고 있다. 오늘날 가장 널리 보급되어 있는 명곡이다.
▲ 제1악장 : 알레그로 몰토 모데라토, a단조, 4/4박자 상단에 일명 '그리그 사인(Grieg'ssign)'으로 불리는 유명한 도입부로 시작된다. 팀파니의 롤링 크레셴도에 이은 오케스트라의 투티와 함께 피아노가 튀어나와 강렬한 하행화음을 짚어나가는 이 도입부는 슈만 협주곡의 직접적인 영향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슈만의 영향은 이뿐이 아니다. 슈만 협주곡의 첫 악장과 마찬가지로 이 협주곡의 첫 악장도 제1주제의 지배를 받으며, 두 곡 모두 낭만적인 정열과 동경의 느낌으로 가득하다. 제1주제 선율은 목관파트에서 제시되는데, 오보에로 연주되는 전반부는 소박한 북유럽 민요풍이고, 클라리넷으로 연주되는 후반부는 낭만적 동경의 느낌을 머금고 있다. 아울러 이 선율의 배후에서 현악기로 새겨지는 토속적 리듬도 귀담아 들어둘 필요가 있다. 피아노가 제1주제를 다룬 후 음악은 계속해서 아니마토(animato, 생기 있게)의 경과부로 진행하는데, 여기에서 부각되는 경쾌한 리듬은 노르웨이의 도약무곡을 연상시킨다. 이어서 피우 렌토(piulento, 한층 느리게) 부분으로 넘어가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첼로에서 가요풍의 제2주제 선율이 등장한다. 피아노가 이 감미로운 선율을 이어받아 충분히 확장시키면, 음악은 점차 고조되어 첫 번째 클라이맥스에 이룬 후 제시부를 매듭짓는다. 제1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발전부는 상당히 짧은 편이고, 재현부는 고전적인 형식에 충실하다. 이 악장의 진정한 클라이맥스는 종결부 직전에 나오는 카덴차에 놓여 있는데, 작곡가 자신에 의한 이 화려하고 당당한 카덴차 역시 제1주제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구축되어 있다.
▲ 제2악장 : 아다지오, D♭장조, 3/8박자 (7:06) '북유럽의 쇼팽'으로 일컬어지는 그리그 특유의 시정이 아로새겨진 완서악장이다. 제1부에서 약음기를 단 현악기에 의해서 폭넓게 펼쳐지는 주제는 다분히 명상적이면서도 동시에 뜨거운 기운을 내포하고 있다. 제2부로 넘어가면 피아노가 이 선율을 영롱한 음색으로 노래하는데, 그 흐름에 섬세하고 우아한 장식이 가미되어 음악은 점차 화려한 모양새를 띠게 된다. 제3부는 제1부가 충실히 되풀이되는 가운데 피아노가 곁들여져 한층 더 풍부하고 고양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 제3악장 : 알레그로 모데라토 몰토 에 마르카토, a단조, 2/4박자 (10:44) 론도 소나타 형식으로 구성된 피날레. 목관악기들의 독특한 앙상블로 행진곡풍 리듬이 부각되며 출발한다. 론도 주제는 경쾌하고 재기 넘치는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 역시 노르웨이의 도약무곡을 연상시킨다. 또 관현악이 이 리듬을 넘겨받아 한층 강렬한 이미지를 자아내는 부분에서는 북유럽 전설 속의 '트롤들의 행진'이 떠오른다. 이 악장은 이처럼 '노르웨이의 이미지'들로 가득한데, 무엇보다 중간의 정적인 부분에서 플루트로 제시되는 제2주제가 돋보인다. 노르웨이의 전원, 북유럽의 청명한 하늘 등을 강하게 환기시키는 이 주제는 아마도 그리그가 작곡한 가장 매혹적인 선율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특히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이 선율이 A장조로 더없이 힘차고 뜨겁게 울려 퍼질 때는 피요르드의 웅대한 절경 위로 그리그의 정신이 드높이 비상하는 듯한 느낌에 듣는 이의 가슴마저 벅차오른다. 한편 이 작품은 역사상 최초로 녹음된 피아노 협주곡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1909년에 이루어진 그 역사적 녹음의 주인공은 독일의 거장 빌헬름 박하우스이다. 또 1868/1872년의 초판은 1993년 스웨덴의 피아니스트 로베 데르빙예르의 독주, 준이치 히로카미가 지휘한 노르쾨피니 교향악단의 협연으로 처음 음반에 수록되었다(B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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