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이야기
보일러 얘기를 엊그제 한 거 같은데 벌써 에어컨의 계절이 다가 왔습니다. 세월이 유수 같아서라기 보단 보일러 마지막 켤 때로부터 에어컨 처음 켤 때의 간격이 계속 짧아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풍요로워지는 건지 인내심이 없어지는 건지.
그 오묘한 원리
선풍기도 귀하던 시절 해질 무렵 시멘트 바닥이던 마당에 물을 뿌려 놓고 마르면 돗자리를 깔고 누워 더위를 식혔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땐 뿌린 물 온도만큼만 시원해지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부르스타 사용 중 가스통을 만져 보면 아주 차가워 물방울까지 맺혀 있는 걸 본적이 있을 겁니다. 다 같은 원리 때문인데, 액체가 기체로 변할 때 많은 에너지를 뺏어 가기 때문이죠.
온도 변화 없이 상태(액체->기체)가 변하는데만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예컨대 0℃인 1L의 물을 100℃로 가열하는데 100㎉의 에너지가 필요한데 100℃의 물을 같은 온도 수증기로 만드는데는 539㎉가 필요합니다.
이 말은 0℃물을 끓이는데 1분이 걸렸다면 그 물이 다 증발하는데는 5분이 걸린다는 말.
수증기는 같은 온도의 물에 비해 5배 이상의 에너지를 갖습니다.(부피는 1,700배나 커지고요.) 주변의 에너지를 뺏어 갖는 거죠.
그래서 주변의 온도가 낮아지는 겁니다.
에어컨은 이 현상을 이용한 건데,
물 보다 이런 특성이 강한 인공 물질을 에어컨 실내기 안에서 증발시킵니다. 그러면 차가워집니다.
여기서 증발된 기체를 실외기로 보냅니다. 거기서 뒷꿈치로 꽉꽉 밟아서 다시 액체로 만듭니다. 이땐 거꾸로 품고 있던 에너지를 토해 내겠죠. 열이 나는 겁니다. 그래서 실외기 앞을 지날 땐 후끈하죠.
이 실외기를 집에 들여 놓으면 난방기로 쓸 수 있겠죠.
냉난방 겸용인 제품은 실제 이렇게 작동 합니다.
그래서 겨울에 난방으로 사용할 때 실외기에선 찬 바람이 나오죠.
에어컨이 전기 먹는 하마인 건 실외기에서 기체를 눌러 액체로 만들 때 힘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소비전력? 전력량?
이때 얼마나 힘든지를 표현하는 말이 ‘소비전력’입니다.
20년 넘게 쓴 우리집 에어컨 옆구리입니다.
요란하게 많은 숫자들이 있지만 그 중 정격소비전력(실제 이만큼을 쓴다기 보다 이만큼 전기를 공급해 줘야 여유있게 쓸 수 있다는 개념)을 보면 620W라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 많은 전기요금 누진제를 보면 1단계가 300kWh입니다.
이 양을 넘으면 기본료, 단가가 오르는 첫 구간입니다.
(여기서 kWh는 전력량이고, 전력량 = 소비전력 × 시간)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는 요즘과 같은 시기, 우리집 전기 사용량을 보면 지난 달 134kWh를 썼더군요. 다른 변수 없다 치고 300kWh를 넘지 않으려면 추가로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은 166kWh인거죠. 166kWh=166,000Wh이고 이를 30일로 나누면 5,533Wh이죠.
이걸 우리집 에어컨 소비전력인 620으로 나누면 8.9시간이 나옵니다. 그래서 매일 8시간 정도 에어컨 사용한다면 1단계 구간 안이기 때문에 3만원 조금 넘게 전기요금이 나오는 거죠.
배보다 배꼽
필수품이 되어 버린 에어컨이지만 누가 버린다 해도 눈길이 가지 않는 이유?
설치비가 비싸기 때문이죠.
뿐만 아니라 복도식 아파트의 경우 복도쪽에 있는 방엔 설치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다보니 요즘 창문형 에어컨이 다시 부상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중소기업 메이커들이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었는데 이제는 대기업들도 뛰어 들만큼 시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아직 소음문제, 응축수 배출문제 등 기술적 아쉬움이 있지만 끔찍한 더위를 생각하면 좋은 대안이 될 수도 있겠죠.
사용 팁
보일러때도 그렇게 말씀드렸듯이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는데 발생하는 전기요금은 그 에어컨에 어떤 기능이 있고, 어떤 모드로 어떻게 운용하냐와 크게 상관없습니다.
요즘 유행인 인버터 방식도 정속형보다 전기요금이 더 나오지야 않겠지만 비싼 가격을 상쇄할만큼 절감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선 개인적으론 회의적입니다.
다만 에어컨으로 온도보다 습도를 제어하겠다는 전략이 효과적입니다.(작동 방법엔 차이가 없음. 설정 온도 높이란 말씀)
100여년 전 캐리어가 에어컨을 발명한 것도 온도보단 습도를 낮추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무더운 여름 선풍기를 켜면 더운 바람이 몰려 온다 느껴지는 건 습도가 너무 높아 땀이 마르지 못하기 때문이죠.
땀도 위에서 말씀드린 기화열 효과에 의해 냉각 작용이 일어나는 건데, 습도가 낮으면 선풍기 바람도 충분히 시원합니다.
습도는 에어컨, 온도는 선풍기에게 분담시키는 거죠.
여름이 건조한 나라를 가 본적이 있다면 나무그늘, 건물실내, 선풍기의 시원함을 경험하셨을 겁니다.
에어컨 사용의 또 다른 골칫거리는 걸레 냄새죠.
이미 더러워진 에어컨은 분해 청소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저도 작년 여름 20년된 에어컨을 처음으로 분해했는데요, 상상을 초월합니다.
저야 어떻게 분해를 하긴 했지만 여간 번거로운게 아니죠.
다시 분해할 일 만들고 싶지 않다면
에어컨을 끄기 전에 에어컨을 충분히 말려 주면 됩니다.
냉방모드에서 송풍모드로 바꾸면 라지에이터가 냉각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응축수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 상태로 5분 정도 유지하다 끄는 겁니다.
최신 제품엔 이 기능이 달려 있긴 한데 어차피 리모컨 스위치 한 두번 더 누르는 차이 밖에 없으니 꼭 기억하시고 적용해 보시길. 효과 있습니다.
시원해지는 만큼 어딘가는 뜨거워진다는 불편한 진실.
조금 불편하게 사는 것도 지혜일 듯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