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님 '문학인신문'의 작가조명이라는 란에 "이기종 시인 아픔과 미움 시로 승화하다"라는 기사가 떴습니다.
은사님들 감사합니다.
2023 .5.15 이기종 올림
http://www.munhakin.kr/news/articleView.html?idxno=1106
그를 만났을 때 시와 시인이 일치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멋 부리지 않은 문장으로 학창 시절과 군 생활을 담담히 형상화한다. 다시 말해 그는 사랑하는 가족과 은사를 추억하고, 동식물을 소재로 시를 쓴다. 시는 곧 그이고, 그는 곧 시인 듯.
그는 시집 <건빵에 난 두 구멍>(천년의 시작 2022) ‘시인의 말’에서 “누가 뭐라 해도 시는 나를 알아줬고 대접해 줬습니다. 늦은 나이에 첫 시집을 낼 때까지 변함없이 기다려 준 시(詩)라는, 내 따뜻한 친구여 고맙다”라고 했다. 시를 대하는 그의 진실한 마음을 헤아려 본다.
인터뷰 요청은 어쩌면 남들 앞에 나서서 자기를 내세운 적 없었을 그에게 무리한 요구였을지도. 그는 문학으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용기를 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시인의 인생과 문학 이야기는 진솔하고도 겸손했다.
-시를 보면, 감성 있는 어린 시절을 보낸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좀 사색적이었어요. 아버지가 교직 생활을 하셔서 좋은 책이 많았어요. 어릴 때부터 선반에 꽂아 둔 책을 하나하나 빼서 읽었죠.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작문 선생님(임윤자)이 단편소설을 읽어주었어요. 나도향, 김유정, 강신재 등등. 저는 작문 시간 자체가 너무 좋았고, 그때부터 글을 써야겠다, 생각했어요. 또 물리 시간에 책을 몰래 읽다가 들켰는데, 선생님(김진성)이 오히려 책을 설명해 주셨어요. 40여 년 지나서 선생님을 다시 만나 뵈었어요. 아버지처럼 맞아주시더군요. 시집도 보내드리고 했지요(웃음).”
-등단은 언제 하셨어요? 목회 활동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2014년에 기독교 잡지 <창조문예>로 등단했어요. 아버지가 상업 교사를 하라고 해서 대학에서 상업교육을 전공했어요. 적성에 맞지 않아서 군대 다녀와서 신학대학에 입학했지요. 본격적으로 신앙을 갖게 된 계기가 있어요. <신앙계>에 게재된 ‘작가 김승옥 다시 태어나다’라는 간증문을 보고 나서죠. 지금은 양주에서 목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참 후에 천안대(현 백석대) 기독교예술대학원에서 문예창작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지요. 어찌 보면 시를 쓰려고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어요.”
-아버지가 교사였으니,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었을 듯한데요.
“제 고향은 전북 무주예요. 80년대 군대 생활을 울진에서 하면서 지독하게 괴롭힘을 당했어요. 단지 전라도 사람이라고요. 화장실에서 시를 썼어요. 아버님이 원고지 뒷면에 편지를 써서 보내주셨는데, 그 원고지에 시를 썼어요. 괴롭히는 이들을 이겨내고 나를 이기기 위해서.
‘포플러나무밭에서 휴식하던/ 우리들의 차가운 손끝에는/ 흰 눈송이에 젖어 들던 담배가 있었고/ 포플러의 굵은 맨몸에 기대어 듣던/ 까치 소리 시린 귀를 밝혔지’(‘훈련소의 포플러나무’ 중에서)
-군 생활 당시 지역감정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셨다면, 저항 시 같은 걸 쓰셨을 듯한데요. 한데 시집에는 그런 시가 없더라고요.
“군 생활할 때 반항하는 시를 <전우신문>에 냈었는데요, 군대가 발칵 뒤집혔어요. 다행히 경상도 분이었던 중대장님이 인텔리였어요. <전우신문>에 실린 제 시를 동료들 앞에서 읽어주셨어요. 저를 핍박했던 이들에게 한 방 먹인 셈이죠. 그러고 나서 비난하는 글을 쓰면 진정한 문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글은 쓰지 않아요(웃음).”
-시를 보면, 음악에도 조예가 있으신 듯해요.
“고등학교 때 점심시간에 졸지 말라고 30분 정도 자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음악을 틀어줬어요. 클래식이나 세미 클래식을 틀어주었죠. 폴 모리아 음악들이 마음에 와닿았어요. ‘위대한 사랑’, ‘로망스’ 같은 것들요. 다른 애들 다 잘 때 자는 척하고 들었어요. 정서적으로 영향을 받았죠.”
‘분명 ‘위대한 사랑’은/ 내 마음을 두드려 여는 장중한 서곡이었다/ 이 곡을 들으며 창밖을 볼 때/ 김제 만경 넓은 들판 위로 날던 비행기가/ 바이올린 활처럼 내 가슴에 획을 그으며/ 먼 하늘로 사라지곤 했다/ 때때로 교실 창가에 앉은 참새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폴싹거리면서 나를 쳐다보다/ 눈이 마주치면 얼른 사라지곤 했다’(‘오수 시간과 폴 모리아’ 중에서)
-군대 생활이 선생님 인생에서 제일 힘들었던 시기였네요. 결국 시를 통해 미움을 미움으로 갚지 말라는 교훈을 주시는 듯해요.
“저는 제가 느끼지 못하고 체험하지 않은 것은 쓸 수 없어요. 군대는 저를 참 힘들게 했지만, 사랑해야 할 인생의 한 부분이에요.”
그의 시 ‘몽돌 소리’는 고통으로 무뎌진 그의 마음을 표현한다. 몽돌처럼 상처받다가 다시 끌어안는 게 그만의 화해 방법은 아닐는지.
‘차르르 처르르/ 처르르 차르르// 하도 반복하여 돌 날이 없어졌다// 서로 긁다가 긁히다가/ 서로 끌어안는 소리/ 얼싸 부둥켜안고/ 먼 곳까지 다녀온 소리// 함께 달려가 들판을 적시다가/ 함께 돌아와 수평선에 잦아드는 소리// 나를 먼 곳까지 미끄러뜨리는 소리’(‘몽돌 소리’ 중에서)
-선생님이 생각하는 시는 무엇일까요?
“이렇게 나이를 먹고 나서야 알았어요. 내 주위에는 나하고 눈 맞추는 생물과 사물이 있다는 것을요. 어느 날 저수지에서 사진을 찍는데, 개망초의 꽃이 지고 대만 남았어요. 거기 왕잠자리가 앉아 있더라고요. 그 잠자리와 눈이 마주쳤는데, 영 날아가지 않더라고요. 믿을지 모르겠지만, 그때 잠자리가 나에게 “너 언제쯤 입을 열래?”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언제쯤 글을 쓸래?” 하는 얘기였죠. 하나님이 잠자리를 통해 제게 말을 걸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듯 살아 있다면 나와 눈 마주치는 사람이 있고, 사물이 있어요. 응시라고 할 수 있죠. 응시해야 시를 쓸 수 있어요. 그게 사랑인 것 같아요. 감정을 교우하고 나누는 것. 그럴 때 시가 쓰여요.“
그는 모두가 알맹이가 되려는데, 누군가는 쭉정이로 알맹이를 감싸야 한다고 말한다. 시 ‘나머지 한 톨’에서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읽는다.
‘알밤 두 톨은/ 땅에 굴러 줍기 쉬웠으나/ 밤송이 속에는 아직도/ 네가 꺼내지 못한/ 한 톨이 있다고/ 두 톨을 감싸느라/ 밀려나 쭉정이가 된/ 나머지 한 톨이 있다고/ 쭉정이를 비우지 못한 밤송이가/ 푸시시 웃고 있다’(‘나머지 한 톨’ 전문)
‘건빵에 난 두 구멍을 유심히 쳐다본다/ 모래알이 빠져나올 정도로 작은/ 두 구멍 중에 한 구멍에다 초점을 맞추려고/ 한쪽 눈을 감으면/ 내가 들여다볼 수 없었던 한쪽/ 저 작고 어두운 구멍 속으로도 저절로/ 내 따스운 콧숨이 흘러든다// 내가 초점을 맞춘/ 뻥 뚫린 구멍 하나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 내 엄지에 눌린 옆 구멍이/ 내 손끝을 얼마나 간지럽히고 있는가/ 내 콧구멍 둘은 저 가려진 구멍 하나보다/ 얼마나 크고 넓은가// 건빵이 구워지며 꿈틀꿈틀 숨 쉬었을/ 저 작고 어두운 구멍 속으로 내 따스운 콧숨을 넣어 줘야/ 내가 먹을 수 있다’(‘건빵에 난 두 구멍’ 중에서)
‘푸른 얼굴 뒤쪽으로/ 감추고 있던 꼭지를/ 붉힌 얼굴 숙여 보여 준다/ 무성한 잎들 때문에/ 꼭지가 잘 보이지 않을 때는/ 떫더니 떫기만 하더니/ 무성한 잎들 져/ 꼭지가 잘 보일 때는/ 달다 달콤하다/ 꼭지가/ 돌같이 단단한 땡감을/ 대롱대롱 가눌 때는/ 떨어질 리 있을까 했지만/ 이제는 물컹한 홍시가/ 떨어질까 조마조마하다’(‘감꼭지’ 전문)
그는 ‘건빵에 난 작은 두 구멍’을 통해 세상을 관찰한다. 그 구멍은 아주 작아서 세심하게 봐야 한다. 시인은 그 ‘좁은 통로’로 미약한 사물과 자연에 시선을 두고 시를 쓴다. 그의 시가 “무성한 잎에” 가려지기보다, “달콤한 홍시”로 사랑받기를 바란다.
☞이기종 시인은…
1960년 전북 무주 출생. 2005년 개혁신학연구원 목회학석사(M.Div) 과정 졸업. 2008년 천안대(현 백석대) 기독교예술대학원 문예창작교육학과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4년 <창조문예>로 등단, 2019년 <문예연구>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 <건빵에 난 두 구멍>이 있다.
강수연 기자
출처 : 문학인신문(http://www.munhakin.kr)
첫댓글 기사에 오타가 좀 있습니다.
(1) 기자님이 채록하다보니 네 번째 질문 답변 내용 중 앞부분 내용은 좀 다르게 기록되었습니다.
(2) 다섯 번째 질문 중 "조회"란 말을 "조예"로 수정합니다.
(3) 여섯 번째 질문 답변 중 "무생물일지라도"를 "내 주위에는"으로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