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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러움을 읊음(恨詠 八首)
오시수
- 여러 역관들이 말을 바꾸며 화가 장차 어느 지경으로 번질지 모르겠는데 평일의 친구들 중에 그 실상을 아는 자가 하나 둘이 아닐 텐데도 그 억울함을 밝히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겠으니 한스러운 뜻이 없을 수 없어 대략 여기에서 심정을 토로함
諸譯變辭 禍將不測 平日故舊之知其實狀者非一 而未聞有明其冤者 不能無憾恨之意 略及之
교묘한 말이 황(簧. 관악기의 해. 이것을 불면 진동하며 소리를 냄)과 같아 세상 의심을 빚으니
큰 속임이 밝혀질 날이 다시 어느 때인가?
사막에 떨어지는 달은 서리 맞은 풀을 슬퍼하고
흰 갈대에 부는 슬픈 바람은 이슬 젖은 해바라기를 울리는 구나
한 조각 마음은 오직 귀신에게 물어봐도 당연한 것을
천 년의 애통함은 혹시 성명(聖明)께서는 아실런지?
옛날 놀던 일 돌이켜 생각하니 모두 꿈이 되었는데
이 궁한 길에 누가 실낱같은 목숨 위태로운 것 알리
세상일이 옮기고 변해지니 혀도 또한 변하는데
임금 계신 곳 멀고 머니 다시 무슨 말을 하리
푸른 하늘은 즐겨 어린 이의 노여움 불쌍히 여기지 않고
흰 해는 엎어진 동이 속에서 비추일 수가 있을까?
높은 의리 백 년에 그 누가 어려운 것을 구급(救急)하리요마는
조그만 창자는 천 년이 가도 다만 원통함을 품을 뿐
양춘(陽春曲이란 樂曲名. 높은 의논을 보통 사람이 해득지 못한다는 비유로도 쓰임)의 옛 곡조 외로이 읊는 속에
두 소매에 아롱아롱 피눈물 흔적뿐일세
원통함 호소하랴 해도 이 마음 펼칠 길 없으니
천 척 되는 장대 끝 같은 외로운 목숨만 남아 있네
뒤집는 것은 오직 세 치 혀를 놀리는 것만 방자하고
옳고 그른 것은 어찌 백 년 후에 보기를 기다리리
화의 불꽃이 들판을 몹시 태우는 것에 이미 놀랐고
임금의 은혜가 바다 같이 너그럽기를 바라기도 어렵네
또 세상의 일 이제 와서 다시 누구에게 바라랴
평생 동안 스스로 내 마음에 비치는 것만을 믿을 수밖에
피눈물 흘리며 변방 성 밖에 홀로 사립문 닫고 있는데
지극히 원통함 덮을 길 없어 자취가 위태롭기만 하네
강리(江蘺)의 잎이 시들으니 맑은 서리가 차고
고개 계수나무의 쇠잔한 향기에 이그러진 달이 슬프네
부모의 모습은 매양 외로운 꿈꾼 뒤에 놀라고
임금의 얼굴은 편벽되이 이른 아침에 떠오르네
인간이 영구히 작별하고 하늘에 사무친 한을
평생에 남겨 두어 친구들이나 알게 하려나?
약수(弱水. 강 이름으로 仙境에 있다 함)가 아득하여 대궐을 격했는데
변방의 담이 천 리 외로운 마을을 가렸네
하늘이 추우니 골짜기의 나무에 가을은 벌써 와 있고
비 개였던 관새(關塞)의 구름은 저녁에 다시 모여 드네
슬픈 눈물이 옷깃에 가득하니 한갓 스스로 감회가 일고
지극한 원통함이 가슴을 메우니 누구와 함께 의논하랴
맑은 세상에서 한번 죽는 것을 면키 어려움을 알지라도
만 년이 가도 눈 못 감은 넋이 응당 마음 상하리
큰 사막의 사나운 구름 땅에 닿아 그늘지는데
하늘에 가득한 서리와 이슬은 관문(關門)을 깊이도 닫았네
나무 끝에는 쌀쌀하게 찬 소리 일어나고
처마 머리에 컴컴하게 어두운 빛 찾아오네
짝 부르는 외로운 기러기는 함께 그림자를 찾고
붉게 타는 쇠잔한 촛불은 심지마저 태우고 있네
단서(丹書. 天子의 詔書. 옛날 功臣에게 주어 免罪하게 하는 글)로 한(恨) 씻을 날 그 언제일런지……
우러러 저 하늘을 보며 부질없이 시(詩)를 읊네
홀로 지팽이 끌고 빈 뜰을 거닐려니
가을빛 저 멀리까지 곳곳에 모두 와 있네
아름다운 기운은 매양 하늘 북쪽 끝(北極. 임금 계신 곳)을 보고
차가운 소리는 시내 서쪽 언덕에서 많이 들리네
비 내리는 밤의 어둡고 어두운 한(恨)이 제일 불쌍하고
개인 아침 슬픈 회포를 어이 참으리
천지 사이 백 년 동안에 이 몸은 나뭇잎과 같은데
원통함 하소연하기 위해 대궐 문도 밀치지 못하네
울면서 하늘가 옛 새방(塞方)에서 허물을 뉘우치니
뫼처럼 죄가 중하여 꾸지람도 오히려 가벼우네
하늘과 땅이 포용해 주니 임금의 은혜와 같이 크디크고
해와 달이 밝고 밝아서 이 마음 보여줄 수 있었으면...
다만 두려운 것은 옛 원통함 스스로 밝히기가 어렵고
새로운 한이 가만히 서로 얽히는 것 어이 견디리
임금과 부모를 영결(永訣)했으니 심정이 얼마나 아프랴
남쪽으로 돌아가는 구름을 보자니 눈물이 갓끈에 가득하네
巧舌如簧釀世疑 大誣昭晢更何時 黃沙落月悲霜草 白葦凄風泣露葵 一片心應神鬼質 千秋冤或聖明知 舊遊回首渾成夢 窮道誰憐縷命危
世事推遷舌亦翻 君門綿邈復何言 蒼天不肯憐嬰弩 白日無由照覆益 高義百年誰急難 寸腸千古只含冤 陽春舊曲孤吟裏 雙神龍鍾血有痕
籲冤無處可披丹 千尺竿頭一線殘 翻覆只憑三寸掉 是非何待百年看 已驚禍焰焦原烈 難望恩波蕩海寬 浮世卽今誰復藉 平生自許照心肝
泣血邊城獨掩扉 至冤難暴迹阽危 江蘺葉悴淸霜冷 嶺桂殘香缺月悲 鶴髮每驚孤夢後 龍顏偏記早朝時 人間永訣窮天恨 留與平生故舊知
弱水茫茫隔九閽 塞垣千里掩孤村 天寒峽樹秋先落 雨歇關雲夕更屯 哀淚滿襟徒自感 至冤塡臆共誰論 淸時一死知難免 萬劫應傷不瞑魂
大漠頑雲接地陰 滿天霜露閉關深 樹頭颯颯寒聲起 簷角依依瞑色侵 喚侶孤鴻同弔影 啼紅殘燭共燒心 丹書洗恨知何日 仰視蒼蒼謾費吟
獨携藜杖步空階 秋色迢迢處處皆 佳氣每瞻天北極 寒聲多聽磵西崖 偏憐雨夜冥冥恨 叵耐晴朝悄悄懷 宇宙百年身似葉 訢冤難得午門排
泣玦天涯古塞城 丘山罪重譴猶輕 乾坤納納恩同大 日月昭昭膽共明 祇恐舊冤難自暴 可堪新恨暗相縈 君親永訣情何極 南望歸雲淚滿纓
첫 절에 자신이 처한 억울한 상황을 대변하는 이 없는 한스러움을 그대로 표현했다. 둘째 절에서는 그런 처지를 받아들이고자 하나 그 억울함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만 흐른다 표현했고, 셋째 절에서는 체념의 마음이 읽혀진다. 넷째 절에서는 그러한 상황에서 한 가닥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의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이리저리 궁리해 보았고 여섯째 절부터는 하나하나 하소연하고픈 애절한 심정이 가득한 가슴 아픈 장편의 시이다.
편지로 홍평사 종지(洪評事 宗之 萬朝)에게 줌
(簡寄洪評事宗之 萬朝 二首)
오시수
- 들으니 북청을 지나면서 한번 만나지 못하고 간단 말을 듣고 이 글을 주어 회포를 푼다.
聞過北靑 未圖一唔 寄此寓懷
하늘 가의 절서(節序)가 이미 늦은 것에 놀라는데
술 마시며 서로 찾던 옛날 즐거웠던 일 생각하네
좌막(佐幕. 將軍의 幕營에서 輔佐하는 사람)인 그대가 듣자니 천 리 길 지나갔다 하고
함께 자는 것 어찌 하룻밤도 어렵단 말인가
나그네 시름은 어두워서 관새(關塞) 달에 걸려 있고
이별의 한은 멀고 멀어 변방 메뿌리를 격해 있네
뜬 세상 백 년 동안에 좋게 만나는 일 쉽지 않은데
원숭이 소리 들으면서 스스로 눈물 흘리네
세상 그물에 마음 걸려 머리 스스로 긁히는데
못 가 거닐며 시 읊으니 이소(離騷. 초나라 굴원이 지은 부로서 초사의 기초가 됨. 참소를 당하여 임금을 만날 기회를 잃은 괴로운 심정을 읊은 글)가 원망스러워
하늘이 옛 모래펄에 차가우니 가을에 달을 보겠고
나뭇잎이 빈 강에 떨어지니 밤에 파도 소리 듣겠네
바라보는 눈은 모래 새방(塞方)이 멀게 희미하지 않고
이별하는 넋은 편벽되이 바다 구름 높은데 둘러 있네
청유(靑油幕. 梁書 宗室傳에 보면 蕭韶가 郢州刺史가 되었을 때 庾信이 江夏를 지나게 되었는데 韶가 信을 몹시 薄하게 대접하여 信을 靑油幕 아래에 앉혔다는 古史가 있음)에서 틈을 타 응당 시(詩) 읊는 날 많으리니
글을 전(傳)한다고 기러기 수고롭다 말하지 말게나
天涯節序已驚殘 尊酒追尋憶舊歡 佐幕忽聞千里過 連牀其柰一宵難 羈愁黯黯懸關月 離恨迢迢隔塞巒 浮世百年良覿闊 應猿淸淚自汍瀾
世網關心首自搔 行吟澤畔怨離騷 天寒古磧秋看月 木落空江夜聽濤 望眼不迷沙塞遠 離魂偏繞海雲高 靑油暇日應多詠 莫道傳筒雁使勞
홍만조는 오시수와 동서 간이었다. 대사헌 홍이상(洪履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부사 홍탁(洪𩆸)이고, 아버지는 현감 홍주천(洪柱天)이며, 어머니는 증 영의정 김광찬(金光燦)의 딸이다. 당시 위에서 인용한 허목의 시를 통해 또는 허목의 『우득록』을 홍만조가 간행한 사실 등을 볼 때도 남인들과 상당히 친분 있는 교류를 한 흔적이 많다.
그러나 외할아버지 김광찬은 김상헌의 양자로서 김수흥, 김수항 형제의 아버지이다. 다시 말하자면 인척들이 한쪽은 서인 노론계이고 한쪽은 남인계에 두루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상태이다 보니 상당히 처신이 어려웠으리라. 특히나 그의 육촌인 홍만용은 오시수를 극력 사사하자 일관되게 주장하는 오시수에게는 원한의 대상이다.
그러니 처형인 오시수에게 기별하기가 쉽지 않아 오시수 편에서는 원망의 감정도 한편 있었겠다고 예측된다. 그러나 그도 그 인연을 떨치지 못하고 남인의 편에 들어서서 후에 연락을 해 온다. 그와 관련된 시를 보자.
홍종지의 운을 빌어서 지음(次洪宗之韻 三首)
오시수
친구의 글이 막혀 죽고 산 것 모르겠는데
홀로 정다운 시(詩)가 있어 만 리에 돌아왔네
나의 한없는 시름은 깊기가 바다처럼 깊게 불쌍하였는데
그대의 높은 의리 산보다 무거움에 감동되네
쓸쓸한 저문 빛은 바람과 서리를 겪은 후요
콸콸 쏟는 차가운 소리는 물과 돌 사이에서 나네
맑은 위수(渭水)의 옛 놀이는 한갓 꿈으로 돌아갔고
짧은 읊음과 긴 탄식만이 한가할 틈이 없네
들 나루에 바람도 없는데 물이 저절로 물결 거칠게 일고
만 겹 푸른 산이 빽빽하니 참 높기도 높아라
서쪽 산에 지는 노을 시름 가에 짧고
북쪽 대궐의 상서로운 구름은 꿈속에 가득 차 보이네
이 신세 생각해 보니 가볍기가 나뭇잎 같은데
인정(人情)들을 사귄 것이 비단 보다도 더 얇으네
훈훈한 향기 세 번 맡고 연이어 세 번 탄식하니
붓이 무디어 백설가(白雪歌. 금곡의 이름. 초나라 곡조로서 청아함. 여기에서는 상대의 격조 높은 시를 의미함)를 화답할 수가 없도다
궁벽한 마을 적막하고 뜻은 거듭 거듭인데
어느 곳에서 이제 한번 가슴을 깨끗하게 씻을 수 있을까?
청해(靑海. 중국 청해성 동북부에 있는 중국 최대의 鹹水湖)의 빗소리는 바람에 만 리까지 불어오고
백두산(白頭山) 곳곳마다 빛은 눈으로 일천 봉우리일세
아름다운 기약은 관새(關塞)의 구름과 함께 넓고
이별하는 한(恨)은 또 객자(客子)의 신고(辛苦)를 겸했네
뜬 세상 이제 보니 썩는 풀과 같은데
해는 차고 그 누가 후일 시드는 소나무의 뜻을 알리오(歲寒. 추운 겨울철에도 소나무 빛은 푸르다는 뜻으로 역경에서도 지조를 굳게 지키는 이를 비유함)
故人書阻死生關 獨有情詩萬里還 憐我窮愁深似海 感君高義重於山 荒涼暮色風霜後 浙瀝寒聲水石間 淸渭舊遊成一夢 短吟長歎未應閒
野渡無風水自波 萬重蒼翠鬱嵯峨 西山落照愁邊短 北闕祥雲夢裏多 身世算來輕似葉 人情閱盡薄於羅 薰香三沐仍三歎 筆退難酬白雪歌
窮村寂寞意重重 何處人間一滌胸 靑海雨聲風萬里 白頭山色雪千峯 佳期政共關雲闊 離恨還兼客味濃 浮世卽今同腐草 歲寒誰識後凋松
‘친구의 글이 막혀 죽고 산 것 모르겠는데 홀로 정다운 시(詩)가 있어 만 리에 돌아왔네. 나의 한없는 시름은 깊기가 바다처럼 깊게 불쌍하였는데, 그대의 높은 의리 산보다 무거움에 감동 되네’라고 표현하고 있다. 역옥에 같이 엮일까 봐 모두들 몸을 사리는 이때, 이를 넘어서서 홍만조가 연락을 해 와 그에 대한 의리를 칭송한 시이다.
훗날 제주도로 유배 간 김정희에게 책 등을 보내주며 후의를 계속 지켰던 제자인 역관 이상적에게 김정희가 보낸 세한도도 이런 뜻을 세상 사람들이 찬사하는 모습이기에 그와 맥락을 같이했던 이 모습들이 생각만 해도 훈훈하다. 아울러 홍종지와 홍우원의 운을 빌어 지은 시도 살펴보자
홍종지와 명천에서 귀양살이하는 홍판서 우원 창화시의 운을 빌어 지음(次洪宗之與明川謫客洪判書 宇遠 唱和詩韻 五言二首)
오시수
세상이 맑았을 때 함께 쫓겨나니
먼 북방에서 천 리 길을 사이에 두고 있네
임금 그리워하는 것 그대는 무엇이 다르리
부모 생각하는 것 나만 홀로 편벽된 것인가?
죽고 사는 것은 원래 명이 있다는데
영화롭던 것 그리고 시들어 버리는 것 모두 하늘에 따를 뿐이네
이 나라 안 모두가 왕의 땅이러니
저문 해 보내는 심사 같이 참아내야 하지 않을까
말갈 천 년의 땅,
외로운 이 성에서 팔월을 맞는 가을일세
홀로 남쪽 시냇물을 어여삐 여기노니
만 번 꺾어져도 반드시 동으로만 흐르리
淸時同泣玦 絶北路俱千 戀主君何異 思親我獨偏 死生元有命 榮悴只聽天 率普皆王土 猶堪送暮年
靺鞨千年地 孤城八月秋 獨憐南澗水 萬折必東流
‘홀로 남쪽 시냇물을 어여삐 여기노니 만 번 꺾어져도 반드시 동으로만 흐르리’
성리학에서 그토록 주창하던 사상에 이 신하는 철두철미한 원칙주의자로 올곧게 충과 효에 대해 지조와 절개를 지키겠다는 다짐으로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