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묵상 / 2022년 1월 21일 금요일
시편 20편
1.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2.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3.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셀라)
4.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5.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6.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
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8. 그들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9.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시편 20: 1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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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를 위한 축복기도
시편 20편을 읽었습니다. 어젯밤에 읽을 때는 몸이 피곤해서 그런지 아무런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럴 때는 답답하지만 잠을 청하지요. 이제 아침이 되었습니다. 정신이 깨어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새로운 감동을 줍니다. 성경을 읽을 때 벌써 느낌이 다릅니다.
오늘 아침에 이 본문을 읽으면서 마음 속에 드는 생각은, ‘이것은 모두 축복이로구나!’ 마치 명절 날에 자녀와 손자들에게 들려주는 덕담과도 유사합니다. 사랑과 기원이 가득 담긴 말씀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시편 18편이 평안을 찾은 다윗의 감사시라면, 그리고 19편은 하나님의 영광을 자연과 역사, 그리고 말씀 속에서 발견하고 그 기쁨을 노래하는 것이라면, 시편 20편은 그 모든 감사와 영광을 맛본 사람의 축복입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나오는 대제사장이 백성을 향하여 내리는 축복 선언과 같습니다. 제사장의 기도로 알려진 민수기 본문을 보면 성소 밖에서 제사가 마치기를 기다리는 백성에게로 제사장이 나가서 다음과 같이 축복합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민수기 6:24~27
‘꼰대라떼’라는 말법이 있습니다. 선배가 후배들의 어려움을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과거를 들먹거리며 후배들을 힘들게 하는 언사를 가리키는 신조어입니다. 그런 말은 대개 ‘나 때는 말이야~’ 라는 말로 시작하기 때문에 그런다지요? 그런데 ‘미련한 사람은 자기 경험에서 길을 찾고 현명한 사람은 선배에게서 길을 찾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수동적인 삶도 문제지만, 도무지 남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만의 방법을 고집하는 태도도 문제입니다.
요새 디자인 관련 프로그램 코렐드로우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림을 편집하고 색상을 선택하며, 책을 읽기에 편하도록 만드는 법을 배웁니다. 유튜브에는 이런 지식과 기술을 알려주는 수많은 선배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팁을 보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시범으로 보여주기에 인도인의 기술도 배우고 아랍인에게도 배웁니다.
제가 필요하기에 배우지만 그 사람들과 나 사이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기 때문에 배움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선배와 후배 사이에서는 이런 배움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그 둘 사이에는 배움 이전에 관계가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맺어지고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이지 않으면 배움과 가르침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억지로 가르치려 하면 ‘꼰대라떼’라는 말을 들을 수 있고요, ‘후배가 예의가 없구먼!’ 하는 마음과 함께 씁쓸한 경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신앙을 전수하는 과정에서는 어떤 배움과 가르침이 이루어질까요? 성경은 신앙의 전수라는 과제가 일차적으로 부모에게 주어진 임무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양육하며 사랑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그들의 승리에 대하여 가장 먼저 가장 크게 기뻐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의 필요를 채워주며 자녀의 유치원 발표회에 참석하여 그 재롱을 동영상에 담고 즐거워합니다. 그렇게 사랑과 신뢰의 관계 속에서 부모는 자녀에게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전수합니다. 신앙의 전수는 그런 이유로 부모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잠언은 부모의 이런 과제를 다음과 같이 일깨워줍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언 22:6, 개역개정성경
공동번역은 더 실감나게 표현했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마땅히 따를 길을 어려서 가르쳐라.
잠언 22:6, 공동번역성경
하지만 이제 자녀는 다 성장하고 부모의 품을 떠났습니다. 부모로부터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뿐 아니라 어린 시절의 가르침과 추억까지도 가슴에 담고 한평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 추억에는 즐거웠던 날과 쓰라린 날이 모두 포함됩니다. 부모는 이제 뒤에서 기도하고 격려할 뿐입니다. ‘꼰대라떼’가 되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부담을 줄까 두려워서.
부모는 오늘도 이런 멋진 말씀을 만날 때면 자녀에게 축복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너를 높이시고 네 기도를 들으시며
네 소원을 이루어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승리하는 날 우리는 기뻐 춤추며 즐거워할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니
반드시 너를 구원하시고 도와 주실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경계의 말씀도 주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재능을 의지하거나 운을 바라지만,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며 살자 꾸나!
그들은 넘어질지라도 우리는 반드시 일어나 굳게 설 것이다!’
부모는 이 모든 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하나님을 향하여 이렇게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주님이 택하신 자를 구원하소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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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기:
1. 나는 시편 20편과 같은 내용으로 축복해줄 누군가가 있습니까? 그와 나의 관계는 어떻게 더 발전할 수 있을까요?
2. 지식경영학에서는 지식을 형식지와 암묵지로 나눈다고 합니다. 형식지(形式知)는 학교에서 배우는 문자화 되고 정형화된 지식이라면, 암묵지(暗默知)는 학습과 체험을 통해 개인에게 습득되어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는 상태의 지식이라고 합니다. 신앙에도 형식지와 암묵지가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 있는 오랜 세월 경험을 통해 축적된 신앙체험과 지식이 후배들에게 전수될 때 그 공동체는 더 강건해지고 발전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려는 시도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함께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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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주님,
한평생 함께 하여 주시고
걸음을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나
높고 찬란한 정상에 서서 ‘야호!’를 외칠 때
그 모든 시간이 주님의 은총과 섭리 가운데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돌아보니 저는 이만큼 멀리 왔고
후배들은 저만큼 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여정을 가고 있지만
동시대를 살고 있는 동반자들로서
서로를 격려하고 밀고 당겨줌으로써
우리의 후배들이 우리들의 어깨 위에
우뚝 서서 우리들보다 더 멀리 보고
달음질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느다란 실처럼 연약한 선후배 사이의 연대가
두툼한 동아줄이 되어 우리를 붙들어 매서
다가오는 도전들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주여, 우리에게 지혜를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