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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周易) - 1. 重天乾(중천건)
乾은 元코 亨코 利코 貞하니라
건은 원하고 형하고 이하고 정하니라
[本義] 元亨하고 利貞하니라
[朱熹의 본 뜻] 크게 형통하고 이롭고 바르니라.
[傳] 上古聖人이 始畫八卦하니 三才之道備矣요 因而重之하여 以盡天下之變이라 故로 六畫而成卦라 重乾爲乾이니 乾은 天也니 天者는 天之形體요 乾者는 天之性情이라 乾은 健也니 健而无息之謂乾이라 夫天은 專言之則道也니 天且弗違是也라 分而言之면 則以形體謂之天이요 以主宰謂之帝요 以功用謂之鬼神이요 以妙用謂之神이요 以性情謂之乾이라 乾者는 萬物之始라 故爲天 爲陽 爲父 爲君이라 元亨利貞을 謂之四德이니 元者는 萬物之始오 亨者는 萬物之長이요 利者는 萬物之遂요 貞者는 萬物之成이라 唯乾坤이 有此四德이요 在他卦則隨事而變焉이라 故로 元은 專爲善大요 利는 主於正固요 亨貞之體는 各稱其事하니 四德之義 廣矣大矣라
[程頤의 설명] 아주 옛날의 성인이 처음 팔괘를 그으니 삼재(天地人)의 도리가 구비되었고, 인하여 이것을 거듭하여 천하의 변화를 다하였으므로 여섯 번 그어 괘를 이루었다. (작은) 건을 겹친 것을 (큰) 건괘라 한다. 건은 천(天)이니 천(天)은 하늘의 형체이고 건(乾)은 하늘의 성정이다. 건은 굳셈이니 굳세어 쉼이 없음을 건이라고 한다. 하늘은 전일하게 말하면 도이니 ‘하늘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이 이것이다. 나누어 말하면 형체로써 말할 때에는 천(天)이라 하고 주장하여 다스림으로 말할 때에는 임금이라 하고 효용으로써 말할 때에는 귀신이라 하고 신묘한 작용으로써 말할 때에는 신이라 하고 성정으로써 말할 때에는 건(乾)이라 한다. 건(乾)은 만물의 시초이다. 그러므로 하늘이 되고 양기가 되고 아버지가 되고 임금이 되는 것이다. 원형이정(元亨利貞)을 네 가지 덕이라 하니, 원(元)은 만물의 시초이고 형(亨)은 만물의 성장이고 이(利)는 만물의 이룸이고 정(貞)은 만물의 완성이다. 오직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만이 이 네 가지 덕을 모두 가졌고 다른 괘에 있어서는 일에 따라 변한다. 그러므로 (다른 괘에서는) 원(元)은 오직 좋고도 큰 것이 되고 이(利)는 바르고 굳음을 주장하고 형(亨)과 정(貞)의 본체는 각기 그 일에 맞게 하니 네 가지 덕의 뜻이 넓고도 크다.
[本義] 六畫者는 伏羲所畫之卦也라 一者는 奇也니 陽之數也요 乾者는 健也니 陽之性也라 本註乾字는 三畫卦之名也라 下者는 內卦也요 上者는 外卦也라 經文乾字는 六畫卦之名也라 伏羲仰觀俯察하여 見陰陽有奇耦之數라 故로 畫一奇以象陽하고 畫一耦以象陰하여 見一陰一陽有各生一陰一陽之象이라 故로 自下而上하고 再倍而三하여 以成八卦하여 見陽之性健而其成形之大者爲天이라 故로 三奇之卦를 名之曰乾而擬之於天也라 三畫已具하여 八卦已成이면 則又三倍其畫하여 以成六畫而於八卦之上에 各加八卦하여 以成六十四卦也라
[朱熹의 본 뜻] 6획은 복희씨가 그은 괘이다. 一은 홀수이니 양의 수이고 건은 굳셈이니 양의 성질이다. 본주(本註)의 건자(乾字)는 3획 괘(세 획으로 그은 괘)의 이름이다. 아래란 것은 내괘이고 위란 것은 외괘이다. 경문(經文)의 건자(乾字)는 여섯 획(큰 괘)의 이름이다. 복희씨가 우러러 천문을 보고 굽어 지리를 살펴서 음과 양에 홀수와 짝수가 있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한 홀수를 그어 양을 상징하고 한 짝수를 그어 음을 상징하였으며 한 음과 한 양이 각각 한 음과 한 양을 낳는 형상이 있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고 다시 배(倍)로 세 번 그어 팔괘를 이루었으며, 양의 성질이 굳세고 형체를 이룸이 큰 것이 하늘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세 홀수의 괘를 건(乾)이라 이름하여 하늘을 본떴다. 세 획이 이미 갖추어져 팔괘가 이루어지면 다시 그 획을 세 배(倍)로 하여 여섯 획을 이루어서 팔괘의 위에 각각 팔괘를 더하여 64괘를 이루었다.
此卦는 六畫皆奇요 上下皆乾이니 則陽之純而健之至也라 故로 乾之名과 天之象이 皆不易焉이라 元亨利貞은 文王所繫之辭니 以斷一卦之吉凶이니 所謂彖辭者也라 元은 大也요 亨은 通也요 利는 宜也요 貞은 正而固也라 文王以爲乾道大通而至正이라 故로 於筮에 得此卦而六爻皆不變者는 言其占當得大通而必利在正固니 然後에 可以保其終也라 此는 聖人所以作易하여 敎人卜筮하여 而可以開物成務之精意니 餘卦放此하니라
이 괘는 여섯 획이 모두 홀수이고 위 아래가 모두 건(乾)이니 양(陽)의 순수하고 굳셈이 지극하다. 그러므로 건(乾)이라는 이름과 하늘의 형상이 모두 바뀌지 않은 것이다. ‘원형이정(元亨利貞)’은 문왕이 붙인 말(글)로 한 괘의 길흉을 결단한 것이니, 이른바 단사(彖辭)라는 것이다. 원(元)은 큼이요 형(亨)은 통함이요 이(利)는 마땅함이요 정(貞)은 바르고 굳음이다. 문왕은 건도(乾道; 하늘의 도)가 크게 형통하고 지극히 바르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점을 쳐서 이 괘를 얻고 여섯 효(爻;점괘, 작은 가로 획 하나)가 모두 변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 점이 마땅히 대통함을 얻고 반드시 이로움이 바르고 굳음에 있다고 말하였으니, 이렇게 한 뒤에야 그 끝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성인이 <주역>을 지어 사람들에게 점치는 것을 가르쳐서 사물을 열어주고 일을 이루게 하신 정밀한 뜻이니 나머지 괘도 이와 같다.
初九는 潛龍이니 勿用이니라
처음 양효(陽爻)는 못에 잠겨있는 용(龍)이니 쓰지 말아야 한다.
[傳] 下爻爲初라 九는 陽數之盛이라 故로 以名陽爻라 理는 无形也라 故로 假象以顯義하니 乾은 以龍爲象이라 龍之爲物이 靈變不測이라 故로 以象乾道變化라 陽氣消息과 聖人進退하니라 初九는 在一卦之下하여 爲始物之端하니 陽氣方萌하고 聖人側微하니 若龍之潛隱하여 未可自用이니 當晦養以俟時니라
[程頤의 설명] 아래에 있는 효를 처음이라고 한다. 구(九)는 양수가 성한 것이므로 양효를 이름하였다. 이(이치)는 형체가 없으므로 상(형상)을 빌어 뜻을 나타내었는데, 건(乾)은 용을 형상으로 삼는다. 용이라는 물건은 신령스럽고 변화불측하다. 그러므로 건도(乾道)의 변화와 양기의 생겨나 사라짐, 성인의 진퇴를 형상하였다. 초구(처음의 양효)는 한 괘의 아래에 있어서 사물을 시작하는 단서가 되니, 양기가 바야흐로 싹트고 성인이 미천한 때이니, 마치 용이 못에 잠겨있는 것과 같아서 스스로 쓸 수 없으니, 마땅히 숨어 기르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
[本義] 初九者는 卦下陽爻之名이라 凡畫卦者는 自下而上이라 故로 以下爻爲初라 陽數는 九爲老요 七爲少니 老變而少不變이라 故로 謂陽爻爲九라 潛龍勿用은 周公所繫之辭니 以斷一爻之吉凶이니 所謂爻辭者也라 潛은 藏也요 龍은 陽物也라 初陽在下하여 未可施用이라 故로 其象爲潛龍이요 其占曰勿用이니 凡遇乾而此爻變者는 當觀此象而玩其占也라 餘爻放此하니라
[朱熹의 본 뜻] 초구(처음 양효)는 괘의 아래에 있는 양효의 명칭이다. 무릇 괘를 긋는 자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므로 맨아래의 효(爻)를 초(初)라 한다. 양수에 있어 구(九)는 노양(老陽)이 되고 칠(七)은 소양(少陽)이 되는데, 노양은 변하나 소양은 변하지 않으므로 양효(陽爻)를 일러 구(九)라 한다. ‘잠룡물용(潛龍勿用)’은 주공(周公)이 단 말씀으로 한 효의 길흉을 결단한 것이니, 이른바 효사(爻辭)라는 것이다. 잠(潛 )은 감춤이요 룡(龍)은 양의 물건이다. 초양(初陽)이 아래에 있어서 아직 쓸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 형상은 못에 잠겨있는 용이 되고, 그 점괘는 쓰지 말라 한 것이니, 무릇 건괘(乾卦)를 만나고 이 효(爻)가 변한 자는 마땅히 이 형상을 보고 그 점괘를 음미해야 한다. 나머지 괘도 이와 같다.
九二는 見(현)龍在田이니 利見大人이니라
두 번째 양효는 나타난 용(龍)이 밭에 있으니 대인(大人)을 만나봄이 이롭다.
[傳] 田은 地上也니 出見於地上하여 其德已著하니 以聖人言之하면 舜之田漁時也라 利見大德之君하여 以行其道요 君亦利見大德之臣하여 以共成其功이요 天下利見大德之人하여 以被其澤이니 大德之君은 九五也라 乾坤은 純體라 不分剛柔하고 而以同德相應이니라
[程頤의 설명] 밭[田]은 지상(地上)이니 지상에 출현하여 그 덕이 이미 드러났으니, 성인(聖人)으로 말한다면 순임금이 농사짓고 고기 잡던 때이다. 큰 덕(德)을 지닌 군주를 만나보아 도(道)를 행함이 이롭고, 군주 또한 큰덕을 지닌 신하를 만나 함께 공을 이룸이 이로우며, 천하는 큰 덕을 지닌 사람을 만나 혜택을 입음이 이로우니, 큰 덕을 지닌 군주는 다섯째 양효(九五)이다. 건괘와 곤괘는 순체(모두 양이거나 음인 모양)라서 강유(양효와 음효)를 나누지 않고 같은 덕으로 서로 응한다.(원래 爻는 처음과 넷째, 둘째와 다섯째, 셋째와 맨 위가 서로 음양이 달라야 응한다.)
[本義] 二는 謂自下而上第二爻也니 後放此하니라 九二는 剛健中正하고 出潛離隠하여 澤及於物하니 物所利見이라 故로 其象이 為見龍在田이요 其占이 為利見大人이라 九二雖未得位나 而大人之德已著하니 常人은 不足以當之라 故로 值此爻之變者는 但為利見此人而已니 葢亦謂在下之大人也라 此는 以爻與占者로 相為主賓하니 自為一例라 若有見龍之德이면 則為利見九五在上之大人矣니라
[朱熹의 본 뜻] 이(二;두 번째 양효)는 아래에서 위로 두 번째 효를 말하니, 뒤에도 이와 같다, 구이(九二;두 번째 양효)는 (양이므로) 강건하고 (가운데이므로) 중정하며 잠겨있던 곳에서 나오고 숨어있던 곳에서 떠나 혜택이 사물에 미치니 사물이 (용을) 만나봄이 이롭다. 그러므로 그 형상은 나타난 용이 밭에 있음이 되고, 그 점괘는 대인(大人)을 만나봄이 이로운 것이다. 구이(九二)가 비록 (上卦의 가운데)지위를 얻지 못했으나 대인의 덕이 이미 드러났으니, 보통 사람은 이에 해당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 효(爻)의 변함을 만난 자는 다만 이 대인을 만나봄이 이로울 뿐이니, (여기의 대인은) 또한 아래에 있는 대인을 이른다. 이는 효와 점치는 자를 서로 주인과 손님으로 삼은 것이니, 따로 한 예(例)가 된다. 만약 (점치는 자가) 현룡(見龍)의 덕이 있다면 구오(九五), 즉 위에 있는 대인을 만나봄이 이로울 것이다.
九三은 君子終日乾乾하여 夕惕若하면 厲하나 无咎리라
세 번째 양효는 군자가 종일토록 힘쓰고 힘써 저녁까지도 두려워하면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으리라.
[傳] 三雖人位나 已在下體之上하니 未離於下而尊顯者也니 舜之𤣥德升聞時也라 日夕不懈而兢惕이면 則雖處危地而无咎라 在下之人而君德已著하여 天下将歸之면 其危懼可知라 雖言聖人事나 茍不設戒면 則何以為教리오 作易之義也라
삼(세 번째 양효)은 비록 사람의 자리이나 이미 하체(下體; 아래 괘)의 위에 있으니. 아직 아래를 떠나지 않았으나 높게 드러난 자이니, 순임금의 숨겨진 덕이 위로 올라가 알려진 때이다. 밤낮으로 게을리 하지 않고 조심하고 두려워하면 비록 위태로운 곳에 처하더라도 허물이 없을 것이다. 아래에 있는 사람으로서 군주의 덕이 이미 드러나 천하가 장차 그에게 돌아오려 한다면 그 위태로움과 두려움을 알 수 있다. 비록 성인(聖人)의 일을 말하였으나 만일 경계하지 않는다면 어찌 가르침이 되겠는가. 이는 주역을 지은 본뜻이다.
[本義] 九는 陽爻요 三은 陽位니 重剛不中하고 居下之上하니 乃危地也라 然性體剛健하여 有能乾乾惕厲之象이라 故로 其占如此라 君子는 指占者而言이니 言能憂懼如是면 則雖處危地而无咎也라
[朱熹의 본 뜻] 구(九)는 양효이고 삼(三)은 양(홀수)의 자리이니 거듭 굳세고 중(가운데)하지 못하며, 하괘(아래 괘)의 위에 있으니 위태로운 자리이다. 그러나 본성과 형체가 강건하여 힘쓰고 힘써 두려워하고 위태롭게 여기는 형상이 있으므로 그 점이 이와 같은 것이다. 군자는 점치는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니, 근심하고 두려워하기를 이와 같이하면 비록 위태로운 자리에 처하더라도 허물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九四는 或躍在淵하면 无咎리라
네 번째 양효는 혹 뛰어오르거나 연못에 있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傳] 淵은 龍之所安也라 或은 疑辭니 謂非必也니 躍不躍을 唯及時以就安耳라 聖人之動은 无不時也니 舜之歴試時也라
[程頤의 설명] 못은 용이 편히 여기는 곳이다. 혹은 의문사이니, 반드시 하는 것이 아님을 이른다. 뛰어오르거나 뛰어오르지 않음을 오직 때에 따라서 편안하게 나아갈 뿐이다. 성인의 움직임은 때에 맞지 않음이 없으니, 순임금이 (요임금의) 시험을 거칠 때이다.
[本義] 或者는 疑而未定之辭라 躍者는 无所緣而絶於地니 特未飛爾라 淵者는 上空下洞하여 深昧不測之所라 龍之在是에 若下於田이나 或躍而起면 則向乎天矣라 九陽四陰이니 居上之下하여 改革之際요 進退未定之時也라 故로 其象如此요 其占은 能隨時進退則无咎也라
혹(或)은 의심하여 결정하지 못하는 말이다. 약(躍)은 인연한 바가 없이 땅에서 떠남이니, 다만 날지 못할 뿐이다. 연(淵)은 위는 비고 아래는 뚫려 있어 깊고 어두워서 측정할 수 없는 곳이다. 용이 이 곳에 있을 때에는 밭보다 아래에 있는 듯하나 혹 뛰어 일어나면 하늘로 향한다. 구(九)는 양이고 사(四)는 음의 자리이니 상괘(上卦)의 아래에 있어서 개혁의 즈음이요 진퇴를 결정하지 못한 때이다. 그러므로 그 형상이 이와 같으며, 점은 때에 따라 나아가고 물러나면 허물이 없는 것이다.
九五는 飛龍在天이니 利見大人이니라
다섯 번째 양효는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大人)을 만나봄이 이롭다.
[傳] 進位乎天位也라 聖人이 既得天位면 則利見在下大德之人하여 與共成天下之事로 天下固利見夫大德之君也라
[程頤의 설명] 천자의 지위로 나아가는 것이다. 성인이 이미 천자의 지위를 얻었으면 아래에 있는 큰 덕을 지닌 사람을 만나보아 함께 천하의 일을 이루는 것이 이롭고, 천하 사람들은 진실로 큰 덕을 지닌 군주를 만남이 이롭다.
[本義] 剛健中正으로 以居尊位하니 如以聖人之德으로 居聖人之位라 故로 其象如此하고 而占法은 與九二同하니 特所利見者가 在上之大人爾라 若有其位면 則為利見九二在下之大人也라
[朱熹의 본 뜻] (양효이므로) 강건하고 (上卦의 가운데이므로) 중정함으로 높은 자리에 머물렀으니 성인(聖人)의 덕으로 성인(聖人)의 지위에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 형상이 이와 같고, 점치는 법은 구이(九二)와 같은데, 다만 만나봄이 이로운 자가 위에 있는 대인(大人)일 뿐이다. 그러나 만일 (점치는 자가) 군주의 지위에 있다면 구이(九二), 즉 아래에 있는 대인을 만나봄이 이로울 것이다.
上九는 亢龍이니 有悔리라
맨 위의 양효는 끝까지 올라간 용이니, 뉘우침이 있으리라.
[傳] 九五者는 位之極中正者니 得時之極이요 過此則亢矣라 上九는 至於亢極이라 故로 有悔也니 有過則有悔라 唯聖人은 知進退存亡而无過하니 則不至於悔也라
[程頤의 설명] 다섯 번째 양효는 지극히 중정한(가운데이고 바른) 자리이니, 때를 얻음이 지극하고, 이것(上九)을 지나면 지나치게 높아지게 된다. 맨 위의 양효(上九)는 지나치게 높은 곳에 이르렀으므로 뉘우침이 있는 것이니, 지나침이 있으면 뉘우침이 있다. 오직 성인(聖人)은 진퇴와 존망의 때를 알아 지나침이 없으니, 뉘우침에 이르지 않는다.
[本義] 上者는 最上一爻之名이요 亢者는 過於上而不能下之意也라 陽極於上하여 動必有悔라 故로 其象占如此하니라
[朱熹의 본 뜻] 상(上)은 가장 위에 있는 한 효(爻)의 명칭이고, 항(亢)은 높음이 지나쳐서 내려오지 못하는 뜻이다. 양(陽)이 위에서 지극하여 움직이면 반드시 뉘우침이 있다. 그러므로 그 상(모양, 형상)과 점이 이와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