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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전승민요의 이해> 자료연구 :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1. 거제민요의 이해와 특징
1) 민요는 삶의 현장과 직결된 일반 생활 노래로써, 민중의 노래로 머무르지 않고 민족내면의 노래라 할 수 있다. 민요를 통해서 시대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새로운 창조를 되풀이 해 온, 엄연한 우리의 유동문학이다. 거제민요에는 거제민의 혼(魂)이 담겨있으며, 지역성이 짙게 깔린다. 또한 이 땅 선조의 자족적 본원적인 정신문화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거제도 전승 민요는 총 400여 편에 달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 밖에 중복되거나 한 구절 정도 내용이 다른 민요가 수십 편에 이르는데 이는 제외하였다. 내용적 특성과 관련해서는, 먼저 거제도 전승 민요 400여 편을 노동요(77편), 의식요(20편), 유희요(63편), 비기능요(257편, 노동요 유사계열) 등으로 유형 분류할 수 있다. 거제의 민요 중에 그 가사가 전하는 것은 400여 편이 있으나, 이 중에서 악보화 되어 부를 수 있는 노래는 60여 개이다. 음악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보통 느린 장단에서는 구슬픈 가락으로 부르고, 빠른 템포의 장단에는 흥겨운 노래가 주종을 이룬다. 민요를 김영돈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서민들에 따라 형성․ 발전․ 향유되는 가락과 기능이 융화된 노래로서 서민생활 전반과 직결되는 가장 서민적인 구전문학이다" 민요의 범위는 실로 광활하다. 구전민요 창작민요 동요 등 모든 것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민요는 반드시 구연을 전제하는데 오랜 세월 전통적인 가락에 맞춰 서민의 여러 입을 거치면서 이룩된 재창조의 축척이요 그 결정이다. 민요는 모든 민간전승이 그렇듯이 실연(實演, 口演)될 때라야 진실로 민요로써 생명을 지닌다. 또한 전해져 오는 한 지역의 서민생활 모든 영역을 사뭇 정확하게 집약한다. 지역마다 지리 역사 사회 관습 생산 경제 신앙 및 지역 심리현상 생활 전반이 한 편 한 편 사설 속에 압축되어 드러난다. 민요에 담긴 정신은 서민의 마음 깊이 바닷물처럼 떠다니며 생동한다. 민요의 사설과 가락 기능 전반에 걸쳐 한결 같은 고찰이 필요하며 동시에 음악적 문학적 민속적 고찰로 이어져야한다. 거제민요는 가락과 가사의 억양이 잘 어울리고 장단이 잘 맞는다. 거제의 민요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후 국난과 혼란 속에서도 끊임없이 전승되고 재창조되었다. 예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삶의 형태가 크게 변하지 않은 이유로, 계속 이어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산업화 세계화라는 세태 속에, 설화는 소설로 빠르게 전환되거나 사라져 갔으나, 민요는 그 사설이 다소 줄어들거나 빠진 부분이 나타날 뿐, 민중의 정서에 굳건히 자리 잡은 익살과 해학의 정신으로 전승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거제도의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깊이 탐구되어야 할 숙제를 남겨두고 있다.
2) 거제는 고대 해상교통의 요충지로써 교역에 의존해 살아왔다. 우리나라 남부해안 지역과 제주도 대마도 이끼섬 큐우슈우 등지로 왕래하여 재정이 풍부하였고 여러 문화가 용광로처럼 융해되어 다양성과 역동성이 넘쳐난 곳이기도 했다. 고려시대 1128년 중앙정부가 해상족 거제민 820명을 육지로 강제 이주한 사건과 1271년 삼별초의 침입으로 약 1000 여명을 육지로 소개 시킨 이후부터 섬의 풍속이 점점 다양성을 잃게 되었다. 이후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편안한 날이 없었다. 조선후기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또 다시 거제 특유의 풍속이 사라지는 계기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고대에는 육지와 같이 남녀의 구분이 엄중하지 않았으며 남녀의 의복 또한 간편․ 화려하고 세속적이었다. 조선시대로 들어서면서 남녀 가사노동의 구분이 명확해졌다. 이러한 역사의 토양아래 거제 섬의 여자들은 생활력이 강하고 억세며 노동에 능숙해졌다. 무속이 행해지는 일도 육지보다 몹시 현저하고 무당의 수도 매우 많았으며, 주술과 각종 신(神)들이 난무하는 다신사상(多神思像)의 고장이었다. 하지만 현재 전하는 민요의 내용과 사설은 그 바탕이 대부분 조선후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어 육지로부터 들어온 유행민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거제민요는 부요(婦謠)가 대다수를 차지하며, 풍부하고 그 질이 빼어나다. 남요(男謠)는 특별한 일 즉 '상여소리' '뱃노래' '달구질노래' 등에서만 찾을 수가 있다. 이는 노래할 기회가 여인들에게 더 많이 주어진 점도 있지만 세세하고 차분한 여인들의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3) 옛 학자들의 사료에 전하는 거제(裳郡)백성 풍습을 살펴보면, "거제민은 쉬이 친해지기 어렵고 어리석고 완고하여 교묘하게 남을 잘 속인다. 또한 유민이 많고 토착인은 많지 않다. 밤낮으로 바람이 배를 달리게 하여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고 8진영이 섬을 빙 둘러 분포하고 백성은 대부분 물가에서 거주한다. 거제선비와 학자는 단순하고 거친 풍속으로 인해 많지 아니하며 고을 문묘는 비록 있다 해도 심히 처량하다. 북학 실학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부질없이, 다른 고을에다 동당(東堂)을 세우기도 한다. 무당과 박수가 떠들썩하게 잡가를 부르고 신당이 집집마다 관계하지 않는 곳이 없다. 비록 질병에 대해 말을 하더라도 모두 귀신에 씌었다한다. 바다 해조가 많아 밭의 거름은 다 해조류를 사용하여 고맙게도 수확이 넉넉하지만 또 다시 세금독촉에 곤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남쪽 변방엔 자고로 일찍 죽는 사람이 많고 거주민들은 흰털과 검은 털이 대체로 적다. 지역이 협소하니 조가 귀하다. 풍년에도 값이 비싸고 지역에 시장이 활성화 되지 않아 생선을 잡아 육지에 내다 판다. 주민들은 귀신을 숭상하는데 특히 2월이 효력이 있다하여 더욱 심히 두려워한다. 대지(땅)를 위해 무당이 제사 신을 지낸다. 매양 큰 대나무를 가지고 다니며 낚싯대로서 춤을 춘다. 신의 의지라 칭하면서 신과 함께 한다. 돌아가신 부모를 정성껏 받들고 이웃끼리 제사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거제도는 집집마다 푸른 대나무와 배롱나무 꽃이 만발하고 누런 유자가 반쯤 익었을 때에는 아름다움이 넘쳐난다. 소는 산에 풀어 놓고 흩어진 채로 기르고, 노루와 사슴을 소중히 여기며 담장을 만들려고 골짜기 골짜기마다 돌을 쌓고 비바람에 자나깨나 근심한다. 농사와 어업 외에도 감자농사에 힘쓰며 혹은 산 앞쪽에서 칡뿌리를 캔다. 마을 집 문은 열어놓고 사람이 다니도록 비워두며, 풍속이 조용해, 수확이 적어도 마음을 편안히 한다. 좋은 의복과 토삼으로 원기가 왕성하여 거제민은 풍토병을 가벼이 여기며 고향에서 늙어간다. 거제도는 홍수나 화재 등 불의의 재변으로 주택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으면 동리 사람들이 혹은 기둥 혹은 문짝 장판 혹은 돌적이 까지 힘 닫는 대로 가지고 가서 품삯 한 푼 받지 않고 새집을 지어 준다. 소나 말 같은 가축도 농번기 외에는 모두들 다 내어 놓고 찾는 일이 없다. 이렇게 야생을 시켜도 잃어버리는 일이 없다하니 백주시장에 소도둑이 횡행하는 다른 지역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 1759년 거제부읍지(巨濟府邑誌) 풍속(風俗)편에는 "거제풍속은 검소하고 솔선함을 자랑할 만하다"[俗尙儉率 觀風案]하였다.
거제는 바다를 생활의 터전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바다를 관장하는 신에 대한 제의가 어민들의 중요한 신앙으로 존재한다. 풍어와 안전한 항해 길을 기원하는 것이다.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신앙형태로 '공수서' 신당' 등의 제의 장소가 거제 곳곳에 있었다. 마을 공동으로 주관하는 '풍어제'와 개인적인 '뱃고사'는 어부들 자신이 제물을 차리고 제사를 지냈다. 또한 육지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성주신앙이 강하여, 어떠한 제사 때에도 주(主) 제사상 왼편에 작은 '성주상'을 차려 가택신(家宅神)께 예를 올렸는데 지금은 사라져 가고 있다. 집안의 복을 지켜주는 '구렁이' '두꺼비' 등을 해하지 않는 업신앙이 유별났다. 두꺼비가 지네와 싸워 주인을 구한다는 설화와 집안 창고와 재물을 지켜주는 큰 구렁이 이야기는 우리네 주위에서 여러 가지 설화 형태로 전해지는 업신앙의 한 형태이다.
4) 거제의 민요를 구분해보면, '노동요' 中 농업노동요에는 ‘상사디 소리’ ‘모찌는 소리’ 딸구노래(어기야차 때리나줌세)', '모심기노래', '모찌기노래', '밭매기노래', '논매는 소리', '농사할 때', '논 매기', '구렁논을 반만 갈아', '뽕따려가세', '맑은 논빼미', '모찌기노래(해가떠서)', '모찌기노래(새야새야)', '논매기 노래(오호디여)' 등이 있고 토목노동요는 ‘달구질 소리’ 딸구앞소리(한 살 먹어)', '다지는 소리(산지조종은)', 방적노동요에는 ‘베틀노래’, '시집살이', '시집살이 육년 만에','방아노래'가 있고, 어업노동요는 ‘뱃노래’ '배선왕노래', '떡타령', '챗배노래', '큰애기노래', '굴까러가세', '뱃노래(그물을 조을 때)', '일본에서 들어온 뱃노래' '조기잡이 그물질노래' '어장배노래' 청어엮기노래' 등이 있는데 거제민요 대부분이 노동요이다. 유희요는 '쾌지나칭칭', '강강술래', '거제봉산타령','거제 나무타령', '자장가', '서울 선비', '달거리' '배꽃은장가가고' '물레돌 잠든 처녀야' '개구리타령' '노타령' '메구치기'등이 있으며 의식요는 '지신밟기노래', '상여소리'가 있다. 비기능요에는 '장기타령', '화투타령', '쌍금쌍금 쌍가락지(삼삼기노래)' '벙거지타령' 등이 있다.
이 외 현재 전하는 거제민요로는 ["사친가․산태농․사랑가․남의 집 며늘애기․메구궂은 안하고․배꽃은장가가고․수건노래․술노래․영동동할마씨․오늘해가다졌는가․자식노래․잡년노래․저건네왕대밭에․저승새․주머니노래․파노래․담바구타령․망건뜨기․성주풀이․거제칠면 다댕기도․분통같은 저젖보소․사촌집에 대를 심어․옥녀봉 산아․가지매나룻배․가지매놋다리․난봉가․도롱바우도 잘있으시오․사랑방에불넣다가․앞니빠진개오지․울오마니․장타령․장기타령․첩년노래․화투타령․계모노래․동동동서야․딸노래(맏딸애기)․머리좋다 수단처녀․모실노래․고사리노래․저기가는저구름아․주치캐는처녀․진주덕산․파랑새․산아지타령․봄놀이노래․동그랑땡․꼴배기군노래․홍두깨노래․대문놀이노래․산양산촌연지등에․어딤이노래․기와밟기노래․칭칭이소리․줌치노래․어긔야소리․진금이타령․산차지물차지․충북숭․고사리끊자․청춘가․날속민요․쌍가락지․새타령․국화노래․한산숲․처자야․왕대밭․점심기다리기․덕석말이․어기야소리․남산밑에다논을지어․방아찧는소리․서울이라․모심는때․서울이라명지읍서․서울찾자․점심기다리기․고장주바지․잠노래․순천땅처녀야․댕기노래․아리랑․거짓말씀․강원도금강산․시리시리실노롱․꽃밭매는 처녀․임금님 장가드시네․은담 놋담․상사총각․질로질로 가네․서랍속 화장솜"] 등이 있다.
5) 거제도(巨濟島)는 크고 아름답다. 제주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섬으로 해안선만 900리에 달하며 60여개 섬을 알처럼 품고 있다. 조선 초기 이행(李荇)은 거제를 “나무들은 빽빽이 우거지고 맑은 물은 콸콸 쏟아진다. 항상 구름이 머물러 있고 천년의 아름다움 간직했구나”라고 했다. 거제도는 전형적인 반농반어촌의 특징을 보여준다. 주민들은 예로부터 농사는 물론이거니와 고기잡이, 각종 해산물 등을 채취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농업노동요와 어업노동요가 풍부하게 전승되어 있다. 거제지방의 대표적인 토속민요인 <굴까러 가세>와 같은 민요는 춘궁기의 어려운 식생활 해결을 위해 아낙네들이 바닷가에 나가 굴을 캐면서 불렀던 노래이다. 이 노래는 해변가 마을 아낙네들이 봄이 되면 허기진 배를 채우고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해 바닷가 주변에 널려 있는 작은 바위섬 등에 자생하는 굴을 따면서 불렀던 노래로 우리 조상들의 애환이 담겨 있으며, 가사 또한 익살스럽고 흥겨운 것이 특징이다. 의식요 <상여소리(길끄는 소리)> 발인제를 마치고 상두군이 상여를 매고, 걸음을 옮기기 전에 부르는 것이며 꾕과리를 두드리고 앞소리를 하면, 상두군이 뒷소리를 받아 준다. 떠나는 이가 죽음의 슬픔을 달래면서 상주와 조객을 위로하고 모두에게 회한의 정서를 노래한다.
거제지방의 노래는 구전(口傳)에 의해 육지로부터 전해 온 것들이 많다. 둔덕․사등․거제․동부․남부지역은 호남지역의 판소리가 많이 유입되었고, 고현․연초․하청․장목․장승포지역은 내륙의 농요가 흘러들어 왔다. 이러한 농요가 거제에서 거제의 노래로 다시 태어났는데, 뱃노래나 귀양살이 노래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해학성과 낙천성이 두드러지며 한(恨)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멋이 있다. 요즘 교과서와 수학능력시험에도 등장하는 <거제 강강술래>는 해마다 음력 8월 한가윗날 밤에, 곱게 단장한 부녀자들이 마을 공터 등 일정한 장소에 모여 손에 손을 잡고 원형을 만들어 가며 돌면서 부르는 노래로, 한 사람이 선창을 하면 모인 무리들이 '강강술래'라는 후렴구를 제창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인생무상과 즐거운 삶을 추구한 민요로서 널리 알려졌다. 그 외에도 거제지명과 특징이 반영된 민요가 많이 불려지고 있어, 따로 거제도요(巨濟島謠)로 분류할 수 있을 정도이며 이것은 거제의 지역성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 다른 지방과 비슷한 민요도 다수 있다.
거제에 구전되고 있는 민요로는 노동요가 많은데, 농업노동요와 어업노동요 모두 풍부하다. 어업노동요로는 〈챗배노래〉를 들 수 있는데, 주로 멸치를 잡는 챗배에서 그 절차에 따라 부르는 노래이다. 그물을 당길 때 부르는 노래는 주로 여음으로만 구성된 2박자의 빠른 노래이고, 멸치를 퍼담는 노래도 “받어라 받어라/ 연해연방 받어라. ”고 하는 사설이 단조로운 노래이다. 앞소리꾼(선창자)이 "올리라, 저어라, 불넣어라, 내리라"등의 작업에 꼭 필요한 말로써 지시하면, 뒷소리꾼이 이를 받아 "어어이" 등으로 화답하며 지시에 따른다. 규칙적인 리듬감이 선원들의 행동에 일체감을 심어준다. 노래의 리듬이 서로의 행동을 맞추도록 해주는 구령과 같은 구실을 해주기 때문이며, 일꾼들이 일을 보다 즐겁게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만선과 귀가의 기쁨을 노래하는 것은 사설이 농업노동요들과 넘나듦이 있으나 “아애야 애이디야/ 애야 애이디야/ 동무는 작아도 소리는 크네에/…애야 애이디야/ 일락서산에 해떨어지고/ 월출동풍에 달 솟는다아.”에서와 같이 여음이 어업노동요의 것이고, 사설 마지막의 ‘크네에’와 ‘달 솟는다아’에서 ‘에’·‘아’가 갑자기 저음으로 변하고 여음처럼 소리 내는 특징이 있다. 어로작업과 관련되지는 않지만 <뱃놀이가자>는 여흥노래가 많은데, 〈떡타령〉에서도 “떡떡떡 가래떡/……해변놈으는 파래떡/ 산에놈으는 쑤욱떡/ 연해놈으는 홍합떡/ 고성놈으는 가래떡”이라고 하면서 각 지방 떡을 늘어놓고 이 떡을 다 모아서 술·기생을 싣고 ‘뱃놀이가자’고 한다. 여자들은 해변에서 조개를 캐면서 주로 〈큰애기노래〉를 부르는데, "…구조라 땅땅 큰 애기는/ 열이 다시러(홍합 따러)나가고/ 영북 땅땅 큰애기는/ 개조개 따러나가고/ 큰애기마다 다그런가/ 그런사람 따로있제.”라고 하여 여러 곳의 특징을 말하면서도 창자(唱者)가 속한 곳의 큰 애기만은 편하다고 자랑한다. 또 ‘야아옹 야아옹’이란 여음을 삽입하여 다른 곳의 큰 애기를 놀리는 투로 부르기도 한다. 농업노동요 <모심기노래·모찌기노래·밭매기노래> 등이 거제민요 중에 가장 많이 전하고 있으며, 나무하는 노래 등도 여러편 전한다. <모심기노래>는 ‘상사디어’를 후렴으로 사용하면서 “소년과수 슬피운다 (후렴)/ 니아무리 슬피운들(후렴)/ 살썩히는 날만하나(후렴)/...” 와 같이 내용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도 있다. 정월 초순경 집집마다 다니며 매구치기할 때 부르는 <성주풀이>는 독창 혹은 합창으로 부르는데, 첫소리와 끝소리가 나뉘어져 있는 것이 내륙 지방의 것과는 차이가 있어 흥미롭다. 굿거리장단에다가 그 시김새(표현기법)에 변화를 주어 맞춰 부르는데, 춤을 곁들이기도 한다. <밭매기노래>로는 친정부모 부고를 받고도 달려가지 못하는 시집살이를 내용으로 한 서사민요가 있다. 산에 나무하러 다니면서 부른 〈거제봉산타령〉은 “홍두깨 방마치 팔자좋아/ 큰애기 손질에 다달느니”라고 하면서 뒷동산 나무가 홍두깨·가마채·곶감꼬챙이 등으로 다 나가도 그것이 여자 손길에 닿으니 팔자가 좋다고 해학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야기를 갖춘 서사민요로는 <거제 시집살이>가 대표적인 민요이다. 형식은 4음보가 연속되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연(聯)의 구분이 없다. 거제의 서사민요는 일하거나 놀면서 어울리는 동안에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 서사민요는 반드시 3인칭 시점에서 전개되지 않고, 구연자가 주인공의 심정을 직접 토로하기도 한다. 서사민요는 삶의 고난을 해결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는 것을 공통적인 구조로 삼는다. 해결에 이른다 해도, 역설적 해학적 해결에 지나지 않는다. 화자(話者)인 며느리, 남편, 시어머니가 각각의 입장에서 마치 마당놀이처럼 부른 "거제시집살이"는 4언 나열식으로 거제만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봉건사회에서 겪는 여성의 한을 화자와 청자의 대화형식을 통해서 절실하게 그려내고 있다. <메구굿은 안 하고>도 화자(話者)인 처녀와 메귀꾼이 대화 형식을 취한다. <동그랑뗑>은 놀이할 때 청중을 웃기고 즐겁게 하는 노래로써 한 많은 비렁이의 구걸하는 노래에 후렴구로 사용한 민요이다. 오빠가 누이를 모함한 데 대한 항변으로 이어지는 사설로써 경상도 지방에 널리 불러진 유행민요 <쌍금쌍금 쌍까락지>, 노동요 중에 망건이나 양태, 갓모자, 탕건 등을 짜면서 불렀던 관망요(冠網謠) <망건뜨기 노래>는 갓을 만들 때 무료함과 정신집중을 위해 부른 '통영갓 양태' 민요와 거제의 삼 삼기 노래"와 가락과 사설이 거의 유사하다. <사친가(사모가)>는 조선 시대 내방 가사로써 시집간 여자가 친정 부모를 그리워하며 읊은 내용이다. 그러나 거제도 '사친가'는 이런 일반적인 내용인, 부모를 사무치게 그리는 '사모가(思母歌)'내용과 더불어, 고아가 된 동생과 함께 숙부집에서 의탁하여 겪는 신세 한탄의 내용이 아주 구체적이고 가시적(可視的)이다. 거제민요의 박자는 대부분 한 음보를 2/4 박자에 곡조를 붙여서 경쾌하게 노래한 곡이 많다.
* 참고로, 현재 전하는 거제시의 민요는 대부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간한 전국 구비문학자료 조사집 『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文學大系)』 8-1권, 8-2권에 수록되어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1979년 7월 29일부터 8월 10일까지 조사원들이 직접 방문해 마을 회관에서 채록한 것들이다.
6) 거제 '무형문화재'를 간략히 소개하면,
(1). <거제 칠진 농악>임진왜란 당시 왜군에게 아군(我軍)이 많음을 보이기 위한 시위 전술로 행하여진 진풀이 농악은 민속무형문화재 제도가 설립된 후 1975년 거제시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국민속예술 경연대회에서 그 위력을 떨치기 시작했다. 진풀이 농악대의 구성은 군령을 뜻하는 영(令)을 새긴 깃발 2개와 꽹과리 2, 징2, 장고․북․소고가 짝수로 이루어지며 꿩포수와 무용수도 포함된다. 이 농악은 크게 5가지 형태로 그 내용이 이루어져 있는데 ① 원돌기 ②덕석(멍석) 몰기와 풀기 ③ 양편 가르기 ④ 마무리 의식 ⑤악기끼리 놀기와 퇴장으로 되어 있다.
(2). <거제 풍어놀이> 사면이 바다인 거제의 갯마을에서 고기가 잘 잡히고 온 마을의 안가태평(安家太平)을 비는 놀이이다. 바닷가에 배를 띄어두고, 선왕기와 만선기를 꽂고 온 마을 주민이 흥겹게 놀면서 뱃노래를 하는 것으로 정월 대보름부터 2월중에 행해지는 민속놀이이다. 진행순서는 입장 ➡ 용왕굿(뱃고사) ➡ 그물 당기기 ➡ 뱃노래 ➡ 고기 퍼기 ➡고기퍼는 노래 ➡ 농악
(3). <팔랑개 어장놀이> 거제시 옥포동 파랑포 마을에서 풍어를 빌며, 마을 공동으로 고기잡이하는 세시풍속놀이로 예부터 이 지방에서 내려오는 배신굿과 풍신제를 변형한 독특한 민속놀이 마당이다. 첫째마당(질굿마당), 둘째마당(도리깨마당), 셋째마당(용왕제), 넷째마당(그물소리), 다섯째마당(가레마당 만선놀이)으로 구성되어 있다.
(4). <남해안 별신굿> 거제도를 중심으로 통영시 일대의 어촌과 한산도․시량도․욕지도․갈도․죽도 등지에서 이루어지는 어촌 마을의 공동제의(共同祭儀)이다.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82-라호로 지정되어 축제적이고 통합적이며 정치적․예술적 기능을 가진 우리 고유의 공동체적 신앙의 모습을 간직한 중요무형문화재이다.
[주] 참고문헌 : '한국구비문학대계', '경남지역의 무형문화재와 향토음악 현황', '한국 민속학의 이해'에서 일부 인용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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