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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3
누가복음 4장 16-19절
사도신경이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고 할 때 두 번째 부분은 성자 하나님과 우리의 구속에 대한 것입니다. 사도신경은 여기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이때 예수라는 이름의 의미는 구원자, 구주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사자를 통해 알리실 때는 좀 더 명확하게 말씀하셨는데, 마태복음 1장 21절에 의하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무엇으로부터 구원하시는가? 우리의 모든 죄로부터 구원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로부터 구원하시되 누구를 구원하시는가? 자기 백성이라고 일컫는 자들을 구원하십니다.
이런 구원자가 여러 명일 수 있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중보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으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성자를 세우셨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성자 외에 다른 대상으로부터 구원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가톨릭교회가 성인들에게나 자기 자신에게나 혹은 다른 데에서 자신의 구원과 복락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치는 것은 결코 참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피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다른 명칭인 ‘그리스도’에 대한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31문이 이 부분과 관련해서 설명합니다.
31문. 그를 가리켜 왜 그리스도, 즉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 부릅니까?
답. 그분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정하심을 받고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시45:8, 히1:9, 사61:1, 눅4:18) 우리의 큰 선지자요 교사가 되사(신18:15, 행3:22, 7:37, 사55:4) 우리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은밀한 작정과 뜻을 충만히 계시하셨기 때문이요(요1:18, 15:15), 또한 우리의 유일한 대제사장이 되사(시110:4) 그의 몸을 단번에 제물로 드리사 우리를 구속하셨고(히10:12,14, 9:12,14,28) 우리를 위하여 아버지께 끊임없이 간구하시기 때문이요(롬8:34, 히9:24, 요일2:1, 롬5:9) 또한 우리의 영원한 왕이 되사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를 위해 얻으신 구원을 누리도록 우리를 보호하시고 보존하시기 때문입니다(시2:6, 슥9:9, 마21:5, 눅1:33, 마28:18, 요10:28, 계12:10-11).
먼저 ‘그리스도’라는 말의 의미는 요리문답 질문 자체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헬라어인데, 지난 시간 ‘예수’라는 이름의 헬라어가 구약 히브리어로는 ‘여호수아’라고 했던 것처럼,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메시야’입니다. 요한복음 1장 41절에서는 친절하게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베드로에게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할 때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는 설명까지 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기름을 붓는 행위는 선지자들, 제사장들, 왕들을 그 직분으로 세우는 하나의 의식으로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기름 부음은 하나의 임직 혹은 그 직분에의 부름을 뜻하는 것입니다. 기름 부음을 통해서 그 당사자를 구별하여 세우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름 부음은 해당 직분에 부과된 임무를 시행하기에 필요한 은사들이 베풀어질 것에 대한 약속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르시누스는 조금 더 설명하기를 기름이 육체의 메마르고 연약한 지체들을 강화시키고 힘을 주며 활력을 주고 든든하게 하여 그것들이 그 기능을 능동적으로 발휘하도록 해 주듯이, 본래 선한 일을 이루기에 부적절한 상태에 있는 우리의 본성을 새롭게 하시며, 힘과 능력을 부으사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일을 행하고 또한 우리가 그를 섬기는 중에 갖는 모든 관계들 속에서 부과되는 각종 의무들을 적절히 수행하게 하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고 불린 것은 이렇게 기름 부음을 받아 어떤 직분으로 임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러나 기름 부음은 외적으로 나타낸 것, 다시 말해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것으로 나타낸 것이라면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받으셨는데, 바로 성령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에 대한 예언이 이미 구약에서부터 있었는데, 이사야 61장 1절입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즉 기름 부음의 의미는 주 여호와의 영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누가복음 4장 16절 이하 19절이 이사야 61장 1절 이하를 인용한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께서는 이미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셨는데, 특별히 자신이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읽으셨습니다. 이때 읽으신 부분이 어디냐? 이사야 61장의 말씀입니다. 왜 이 말씀을 읽으셨는가? 21절에 보시면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구약에서 예언해 오던 메시야, 그는 기름 부음을 받으시되 주 여호와의 영이신 성령께서 임하시는 것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실 것인데, 그가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아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이 너희에게 응하였다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 이사야 말씀의 성취를 위해 있다는 것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공적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실 때의 일인데, 누가복음 3장 21절과 22절을 보시면 이렇게 증거 합니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신 것, 이것이 이사야 61장 1절의 성취입니다. 공적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그는 세례를 받으심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임직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 말은 해당 직분에 부과된 임무를 시행하기에 필요한 은사들까지도 충만하게 베풀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요한복음 3장 34절에서는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고 말씀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구원의 표를 나타내는 것이고(벧전3:21), 구원의 표를 나타내는 것인 만큼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아야 할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6장에 보면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6:1-4)고 말씀합니다.
세례가 이런 의미라면 예수님은 세례 받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라는 이름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자기 백성을 위해서입니다. 방금 읽은 로마서 6장의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와 함하여 세례를 받은’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27절에도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는 말씀이 있는데, 세례의 의미에는 연합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는가? 자신을 자기 백성과 연합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연합을 잘 보여주는 표현이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 데 있습니다. 이런 연합으로 인하여 그의 것이 우리의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본래는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셨지만 세례를 받으셨던 것입니다. 세례만이 아니라 사실은 그의 성육신과 성육신 이후 그의 공생애 사역 전체가 자기 백성이라고 칭해지는 자들을 위한 것으로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4장 4절과 5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기도 합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어쨌든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실 때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기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4장으로 넘어가면 1절 이하에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시는데, 1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을 받으셨는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3장 34절의 표현으로 하자면 성령을 한량 없이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셨는데, 이 또한 자기 백성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살핀 바 있지만 아담은 모든 인류의 대표로 하나님께서 그와 맺은 언약은 아담 자신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들과도 맺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순종하면 모든 인류가 순종한 것과 같고, 반대로 그가 불순종하면 모든 인류가 불순종한 것과 같습니다. 이때 아담은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같은 자를 다시금 세우셨는데, 그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롬5:14), 첫 사람 아담과 비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마지막 아담’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고전15:45).
물론 차이는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모든 인류의 대표라면,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의 대표가 아니라 믿는 자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모든 택자의 대표가 되십니다. 아담의 경우는 모든 인류의 대표로 불순종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택자의 대표로 불순종이 아니라 순종의 열매를 맺으십니다.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시되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다면,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마귀의 모든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만 순종한 것입니다.
그리고 난 뒤 누가복음 4장 14절과 15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시면서 직분을 받으셨고,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시고 난 뒤 이제 성령의 능력으로 회당에서 가르치시면서 받으신 그 직분을 시행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오늘 본문, 예수님께서 자라나신 곳에서 이사야 61장의 말씀을 읽으셨던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시면서 받으신 직분은 무엇인가? 구약에서 기름을 부어 세웠던 세 가지 직분 모두를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보면 그분은 우리의 큰 선지자요 교사가 되신다고 말하고 있으며, 또한 그분은 우리의 유일한 대제사장이 되신다고 말하고 있으며, 또한 그분은 우리의 영원한 왕이 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선지자와 관련해서는 우리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은밀한 작정과 뜻을 충만하게 계시하셨다고 말하고 있으며, 제사장과 관련해서는 그의 몸을 단번에 제물로 드리사 우리를 구속하셨고 우리를 위하여 아버지께 끊임없이 간구하시는 것으로 말하고 있으며, 왕과 관련해서는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를 위해 얻으신 구원을 누리도록 우리를 보호하시고 보존하신다고 설명합니다.
이제 하나하나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텐데, 첫 번째로 선지자 직분에 대해서입니다. 일반적으로 선지자란 현재나 미래의 일들에 관하여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고 설명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를 지칭합니다. 특별히 구약 선지자들을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아 그의 백성들에게로 보내심을 받습니다. 그리고는 백성들의 오류와 죄를 책망하고 형벌을 경고하면서 회개를 촉구합니다. 또한 참된 교리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선포하고 해명합니다. 나아가 거짓과 부패에서 그것을 보호합니다. 그들은 메시야에 대한 약속과 그의 나라의 은덕을 알리고 예증하고 장차 임할 일들을 미리 예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내용이 성경으로 기록되었다고 할 때 그들 자신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불완전함을 보호하시어 결코 오류가 없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만을 남기도록 사용하셨습니다.
구약에만 선지자들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신약에서도 선지자들이 있었는데, 비상직분으로서의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세우신 사도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선지자로 할 수 있습니다. 사도는 아니지만 사도행전에 나오는 아가보라는 인물도 선지자였는데(행11:28, 21:10) 성경을 이해하고 설명하며 적용시켜 교회와 성도들을 강건케 하는 은사를 지닌 자들에 대하여 선지자라고 불렀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예언의 은사에 대하여 말하는데, 이 부분 역시 선지자 직분과 관련된 말씀 사역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이런 선지자 직분을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다시 말해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통해 받으셨는데, 구약의 선지자 그리고 신약의 선지자와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만유의 주이십니다. 따라서 스스로가 권위를 가지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자들은 사람일 뿐입니다. 자신의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께 혹은 예수 그리스도께 의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으로서 선지자 직분을 감당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그 직분을 감당한 것입니다. 그 말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가장 위대하신 선지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성육신하기 이전부터 자신이 선지자 직분을 행하셨다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의 종들 다시 말해 구약의 선지자를 세워 자신이 그 일을 행하셨던 겁니다. 성육신 하시고 난 뒤에는 친히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는데,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 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심으로(요1:18) 친히 말씀하시고 또한 말씀에 일치하는 행동으로 선지자 직분으로 행하셨습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님께서는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난 뒤 승천하셨지만 지금도 그의 종들, 그러나 비상직분으로서가 아니라 항존직분으로서 세우시는 목사를 통해 그의 사역을 계속해서 하시는데, 그의 사역은 반드시 성령을 통한 진리에로의 인도하심 안에서만 선지자 직분을 행하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목사를 통해 일하신다고 할 때 성령의 조명 없이 거짓되거나 오류가 있는 가르침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도구로 일하신다고 할 때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 일하실 때에 한해서 예수님은 지금도 선지자 직분을 행하고 계시는 겁니다.
웨스터민스터 소요리문답 제24문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선지자의 직분을 실행하십니까?”에 대하여 간단하게 이렇게 답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에게 계시하심으로 선지자 직분을 실행하십니다(요1:18, 벧전1:10-12, 요15:15, 20:31).”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되 그의 말씀을 위하여 사역자들을 세우시고 또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내적으로 혹은 효력이 있도록 가르치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제사장 직분에 대해서입니다. 일반적으로 제사장이란 예물과 희생 제사를 드리며 다른 이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지명 받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구약 선지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구약 제사장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제사를 드릴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의 뜻과 장차 오실 메시야에 관하여 가르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정하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제사장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도 있었는데, 오직 대제사장만이 매년 한 차례 성소 혹은 지성소에 들어가서 자기 자신과 백성을 위하여 피를 드릴 수 있었고 향을 피울 수 있었고 간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제사장들보다 위에 있다는 의미에서 대제사장이라고 하였는데, 대제사장인 만큼 그의 복장도 다른 제사장들과는 달리 좀 더 화려하고 찬란하게 만들었습니다. 조금 전에 제사장이 가르치기도 했다고 했는데, 그들의 임무는 제사를 드리고 율법과 메시야에 관한 약속을 가르치며 또한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일이었다면, 대제사장은 의심쩍고 무게 있고 애매한 문제들에 대하여 상담하며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답변을 백성들에게 주었습니다.
여기서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가르치는 자로 있다면 어떤 점에 있어서 다른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차이가 있는데, 선지자들은 어느 지파에서든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세우셨으나, 제사장들은 레위 지파 중에서 간접적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선지자들은 비범한 방식으로 가르쳤으나, 제사장들은 일상적인 방식으로 가르쳤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으나, 제사장들은 율법에 근거하여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선지자들에게는 신적인 증언이 있었으므로 오류를 범할 수 없었으나, 제사장들은 가르침에서 실수를 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런 실수를 범하여 선지자들에게서 책망을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때 선지자들은 거짓 선지자가 아닌 참된 선지자에 한해서만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에서도 제사장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참된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예표로 있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성육신하기 이전부터 자신이 선지자 직분을 행하셨다고 할 수 있는 것처럼 제사장 직분 역시 성육신하기 이전부터 제사장 직분을 행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구약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을 통해서는 모형적으로, 예표적으로 이 직분을 시행하셨습니다. 그러나 모형을 통해 예표 된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을 취하신 이후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시면서 참된 제사장의 직분을 받으셨는데, 구약 제사장처럼 하나님의 은밀하신 뜻을 우리에게 계시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화목 제물로 드리시며, 또한 그가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모든 간구들이 언제나 반드시 응답된다는 약속을 지키셔서 그 제사를 우리에게 적용시키십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죄 사함을 얻으시고, 마지막으로 말씀과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그의 교회를 모으시고 조명하시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웨스터민스터 소요리문답 제25문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제사장의 직분을 실행하십니까?”에 대하여 간단하게 이렇게 답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고(히9:14,28)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시려고(히2:17) 자신을 단번에 희생 제물로 드리심으로, 그리고 우리를 위해 지속적으로 중보하심으로(히7:24-25) 제사장 직분을 실행하십니다.”
세 번째는 왕직에 대해서입니다. 일반적으로 왕이란 하나님께서 세우셔서 특정한 백성들을 정의로운 법에 따라 다스리게 하시고, 선한 자들을 상주고 악한 자들을 벌하는 권세를 갖게 하신 자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백성들을 보호하게 하신 자로서 그의 위에 아무도 높은 자가 없게 하신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구약 이스라엘의 왕들을 통해 하셨습니다.
그런데 왕직과 관련하여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는데, 맨 처음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진단하신다는 데 있습니다. 사무엘상 8장 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그 말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자들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왕으로 여기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사사기 말씀이 이 부분을 잘 보여주는데, 사사기 21장 25절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런 점에서 왕이 가장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신명기 17장 18절과 19절입니다.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어쨌든 분명한 것은 구약 시대 때도 왕이 있었다는 것인데,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시요,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지만 구약에서는 족장을 통하여, 사사를 통하여, 그리고 왕을 통하여 그들에게 속한 백성들을 다스리고 보호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시고 난 뒤 자기 백성의 유일한 왕,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피로 사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왕직을 행하실 때 말씀과 성령으로 교회를 다스리시되,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그의 인도하심을 기꺼이 따르게 하십니다. 또한 모든 원수들로부터 교회를 보호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 왕의 권세로서 모든 원수들을 영벌에 던지실 것이고, 자기 백성인 교회는 영생을 주실 것입니다.
웨스터민스터 소요리문답 제26문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왕의 직분을 실행하십니까?”에 대하여 간단하게 이렇게 답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신에게 복종시키시고(행15:14-16), 우리를 다스리시고(사33:22) 보호하시고(사32:1-2), 그와 우리의 모든 대적들을 제어하시고 정복하시므로(고전15:25, 시110편) 왕의 직분을 실행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구약의 세 가지 직분을 행하시는데, 선지자직과 제사장직과 왕직이 그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에 의해 성령으로 기름을 부음 받아 우리의 큰 선지자가 되셔서 우리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은밀한 작정과 뜻을 충만하게 계시하십니다. 또한 우리의 유일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그의 몸을 단번에 제물로 드리사 우리를 구속하십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아버지께 끊임없이 간구하십니다. 또한 우리의 영원한 왕이 되셔서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를 위하여 얻으신 구원을 누리도록 우리를 보호하고 보존하십니다.
이런 그리스도를 따르기 때문에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32문을 보시면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묻고 답합니다.
32문. 그러면 그대는 왜 그리스도인(행11:26)이라고 불립니까?
답. 내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고(고전6:15) 또한 그의 기름 부으심에 참여한 자가 되어(요일2:27, 행2:17) 그의 이름을 고백하고(마10:32, 롬10:10, 막8:38), 나 자신을 감사의 산 제물로 그에게 드리며(롬12:1, 벧전2:5,9, 계5:8,10, 1:6), 또한 이 땅에 사는 동안 자유롭고 선한 양심으로 죄와 마귀를 대적하여 싸우며(벧전2:11, 롬6:12, 갈5:16,17, 엡6:11, 딤전1:18,19), 그 이후로는 그와 함께 영원히 모든 피조물들을 통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딤후2:12, 마24:34).
일단 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사도 시대 안디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행11:26). 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는가? 그리스도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곧 그의 가르침과 삶을 따르며, 또한 그리스도께 접붙임 받아 그와 연합된 교제를 갖기 때문입니다. 이때 지상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다 그리스도인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겉모양뿐인 그리스도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문에 참된 그리스도인은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자들, 또한 그의 기름 부으심에 참여한 자들, 그의 이름을 고백하는 자들, 나아가 고백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감사의 제물로 드리는 자들, 그러면서도 이 땅에 사는 동안 자유롭고 선한 양심으로 죄와 마귀를 대적하여 싸우는 자들입니다. 좀 더 간단히 말하면 참된 믿음과 그 믿음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자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특히 그의 기름 부음에 참여한 자가 되었다고 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직이 우리에게서 나타나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선지자직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에 대하여 참된 믿음의 고백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의 말로, 그리고 우리의 행동으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절과 2절이 이에 대해 잘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왕직을 통해 우리는 그분의 모든 통치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다스림만 받아야 하며, 그분의 보호 아래 있기만을 바라야 합니다. 그저 율법의 저주와 공포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거기서 우리를 구속하셨기 때문에 기꺼이, 자유롭게, 선한 양심을 따라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는 여전히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기 때문에(벧전5:8) 이런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기 위해 영적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와 함께 이 땅에서부터 왕노릇하는 자로 있어야 합니다. 영적 무장에 대해서는 에베소서 6장을 통해 가르침 받을 수 있는데,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6:13-18) 이 부분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4:5)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일을 위하여,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 사역자들을 세우셨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엡4:11) 이들을 통해 하시고자 하시는 바가 무엇인가? 이어지는 구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2) 이때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는 비상직분이고, 항존직분은 목사, 목사로서의 교사뿐입니다. 그리고 말씀 사역자 외에 성경에 보면 다스리는 장로와 집사를 지상교회를 위하여 주셨는데, 비상시대 이후 주님께서는 이 세 가지 직분을 통해서 주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가길 원하십니다. 이때 모든 신자가 이 직분을 맡을 수 있는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가르칩니다(고전1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