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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정죄=정죄하지 않노니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요8:11)
본문은 요8:1-11의 말씀까지고, 11의 말씀이 오늘 주제입니다. 우리가 지난번 말씀에서는 뭐에 속
지 말라 했습니까? 율법에 속지 말라, 다시 말해 '율법을 가지고 참소하는 사단에게 속지 말라'라
는 말씀으로 다 이해가 됐고 능력이 된 줄로 믿습니다. 자기 믿음을 위해 속지 않아야 하는 것,
자기가 원치 않음에도 죄를 지었을 때 참소 받음으로 인하여 자기 안에다가 죄책감을 두고 자신을
정죄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아셨습니까?
그다음 자신을 정죄하지 않아야 하는 것과 또 누구를 정죄하지 않아야 할까요? 남을 정죄하지 않
아야 합니다. 오늘도 자신을 정죄하지 않아야 하는 것과 남을 정죄하지 않아야 하는, 정죄에 대한
말씀입니다.
아담 이후 가인부터 인류는 죄악의 종자가 되어 죄악을 행하며 사는 데 거리낌 없는 인생이 되었
습니다. 여자의 후손의 약속을 받은 그 계보조차도 육체의 정욕을 따라 나가 가인으로 합류가 돼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貫盈)함에, 사람의 죄악이 차고 넘쳐 하늘에
까지 닿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시며 근심하시고 홍수를 보내 노아의 가족
만 두시고 다 멸하셨습니다. 노아의 가족으로 새 세상을 이룩한 인류 또한 죄악의 길로 나가버렸
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세상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시고 그의 후손을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 백
성에게 긴 항목들의 율법을 주시고 범하는 자는 죄인으로 정죄당해 죽는다 하시며 지키라고 하셨
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죽이려는 것에 뜻을 두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지 못한 자신들의 죄성을 보고 죄인임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또한, 인류는 죄에 팔
려 죄 아래 있게 되었음을 알게 하시면서, 곧 하나님이 보내시는 메시아, 하나님의 독생자가 율
법에 정죄당한 죄에서 구원하여 영생 얻게 하시는 뜻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뜻을 깨닫지 못하여 철저히 지켜서 구원받으려고 했던 사도 바울이 그것을 깨닫게
되어서 롬7:10에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다
라고 했습니다. 율법 때문에 사망이 이른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켜내지 못하는, 지키려고 하면 할
수록 무너지는 자신 속에 본질적인 죄의 성품에 의해서 율법이 정하고 있는 그것을 범함으로 인해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7:21-24에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
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
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고 탄식
하던 사도 바울이 곧이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사망의 몸에서 건짐을 받아 자유
하게 되었다고 그 자유를 외쳤습니다.
그래서 롬3:20에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을 지키므로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께 나올 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했습니
다. 그러므로 율법에 정죄당하여 사망 아래 놓인 인류를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시려고 예수 그리스
도께서 대신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이제 자신에게 처한 이 같은 사정과 하나님의 뜻을 알고 예수
님을 믿는 자는 의롭다 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자기의 잘한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아니므로 자기를 자랑할 것 있습니
까, 없습니까?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봉사도 했고 충성도 했고 헌금도 했다고, 고개 뻣뻣이 하고 누가 자기 좀 알아주라고 나오
는 것이면, 그것은 다 외식 자요. 교만입니다. 행위로는 하나님께 나올 수가 없는 존재요, 그렇기
에 자기를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롬3:24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구속은 값을 치렀다 그 말입니다.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
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엡2:8,9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전6:20에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삶으로 영광을
돌리라. 바로 성전이 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인 것입니다. 벧전1:18,19에 너희 조상
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
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했어요. 하나님을 거역한 것은
망령된 행실로서 사단의 저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저주에서 구속하시려고 예수님께서 대신
형벌을 받아 피 흘리고 죽어야 하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이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이같이 십자가의 구속을 이루신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었으니,
이제는 어떤 종류의 율법이든지 십자가에서 폐하여졌으니 더는 지킬 필요가 없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롬3:31에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 얻었으니 그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겠느냐 그럴 수 없다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라고 단호하게 말했습
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얻었으니 율법은 이제 필요 없다고 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은
혜로 구원 얻는 사람에게 믿음을 굳게 세우는 데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믿음을 바로 세워
주는 교훈이요 훈계요 채찍이요 선생입니다. 율법으로 경계가 없으면 믿는다는 것은 오만방자함으
로 나갈 것입니다. 믿음의 첫 단계는 율법으로 경계와 제재를 받지만, 믿음의 성숙은 경계와 제재
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삶이 된 거룩한 성전의 삶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도 마5:17
에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
로라고 하셨습니다. '완전케 하려 함이라'는 율법에서 폐할 것은 완성하여 폐하고, 율법의 뜻은
더 강화한다, 더 굳게 세운다는 말입니다.
율법을 완성하셨다는 것은 구약에서 예수님이 오실 것에 대한 예표로 또는 상징으로 하던 의식법은
예수님이 오셔서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에 완성되어 폐해졌습니다. 의식법이라는 것은 성전에서의
제사나, 절기나 또 그 규범들이나 정결례 등입니다. 정결한 소나 양, 염소 등의 제물로 제사하던
번제, 소제, 속죄제, 전제, 화목제, 또는 상번제 등의 죄를 대속하실 예수님의 희생을 예표 하는
이런 제사 의식은 다 폐해졌고, 매년 일곱 차례 지켜야 했던 절기 안식일 등의 규례들도 다 폐하
여졌고, 부정을 벗기는 정결례의 규례들, 예수님이 곧 인간의 부정을 다 벗겨주실 것을 예표로
했던 의식들도 다 폐하여졌습니다.
그래서 골2:16,17에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
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라고 말했어요.
먹고 마시는 것 절기나 월삭 안식일 등, 구약의 이 모든 절기는 이제 끝났으니 이것은 장래 일의
그림자였으니, 누구든지 왜 안 지키느냐? 하는 말들로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한 겁니다. 장래 일
의 그림자라는 것은 바로 먹고 마시는 것, 절기, 월삭, 안식일, 이런 것은 다 오실 예수님을 예표
하여 한 것이기에 그림자입니다. 실체가 있으면 그림자가 있잖아요. 그 그림자의 실체가 누구냐?
그림자의 그 중심, 그림자가 있게 한 그 몸은 바로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이제 그 실체가 왔으니,
그 몸이 왔으니, 실체의 그림자로 행하던 일은 이제 끝났다. 그러니 누구든지 먹고 마시는 것,
절기 왜 안 지키느냐? 지키지 않는 것은 율법을 범하는 것이라고 헐뜯고 논쟁하는 것들, 이제는
하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는 말입니다.
골2:14에 우리를 거스르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했어요. 엡2: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고
했습니다. 엡2:16에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셨다 했습니다. 율법을 범할 때마다 따라다니면
서 정죄하던 원수 된 율법 증서가, 죄지을 때마다 제물에 죄를 전가하여 피 흘려야 했던 원수 된
그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예수님이 오셔서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 십자가에다 못 박아 버리셨
다. 십자가로 소멸하셨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셨다. 그러므로 이제 온전히 폐지되었으니 예수 그리
스도 안에 있는 자는 이 의문에 속한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고, 롬8:1,2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롬10:4에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했
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율법의 정죄에서 놓여났고 예수님의 의로 살게 되었다
는 말입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이 지금까지 말씀드린 율법의 역할에 대하여 알고, 예수님을 아는
지식으로 받고, 자신을 알고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이 되었습니까? 아니면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요, 자기와 관련 없는 구약의 이야기로만 받습니까? 여러분이 자기와 관련된 것으로 적용
하고 자기 믿음의 뿌리가 돼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가 있다고 했습니까?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믿음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정죄 받지 않습니까? 어때요, 정죄 받지
않느냐고요? 혹시 죄를 범했을지라도...., 혹시 입니다. 죄를 짓는 것 정말 원치 않는데 어느 순간
죄를 범했다면 이제 너는 죄지었으니 죽어야 한다. 너는 죄를 지었으니 구원받을 수 없다. 너는 죄
지었으니 하나님께 심판받는다. 이런 정죄는 이제 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복음이요, 진리
입니다. 그래서 사단이 참소하는 것 자기 양심에 들어오는 참소를 받는 것을 속지 말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자기가 참으로 예수님 안에 있다면 정죄에 속지 말라는 말입니다. 알아듣습니까? 오늘
본문 11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노니"하셨는데 자기
가 속아서 참소 받고 자신을 자기가 정죄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율법 아래 있는 것이 되어서 구원
이 없다고 했던 것, 여러분이 이해되었고, 믿음의 능력으로 받았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의식법은 다 폐하여졌지만, 이제 십계명과 그 외에 따른 도덕법, 사회법은 성도의
거룩한 삶에서는 더 굳게 세운 영적인 법이요, 자유하게 하는 율법, 즉 지키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까 두려워서 지키는 것이 아니고, 성도의 거룩함이 되는 기본법이니,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
랑하여 그것이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1:25에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
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복음으로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하게 되었으니, 이 복음 안에 들어온 자는 율법을 잊어
버리는 자가 아니라 굳게 세운 것으로, 실행하는 자니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는다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복은 받는다는 것은 세상 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영혼이 잘되는 것, 그러므로 범사가
잘되는 것을 말합니다.
율법의 총체는 사랑입니다.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먼저는 누구
를 사랑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그다음은 이웃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입니
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 율법의 대강령입니다. 예수님 안에
서 사랑하는 이것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실행하는 일입니다. 굳게 세운 율법을 행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말씀에서 이웃사랑은 인간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있어 첫째 이
웃이 누가 되어야 합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이웃(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
미암아서 나는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 돼야 합니다. 자유하게 하는 율법을 행하는 것은 곧 하나
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것이지요? 그러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또 누구
예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강령인 하나님 사랑은 누구를 말합니까?(예수님) 또 이웃사랑
은 누구를 말할까요?(예수님) 그러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누구 사랑? (하나님) 예수님을 사랑
하는 것이 또 누구 사랑?(이웃) 바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또한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
을 사랑하면 그것은 하나님 사랑이요, 또한 이웃(사람)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또 옆의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옆의 사람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말뜻
이해됐습니까?
그래서 기독교가 성경이 말씀하는 이 같은 사랑의 정의를 모르면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을 인간
사랑으로만 들입다 연결하고 그 사랑 하겠다고, 사랑 베푼다고, 여기저기 좀 불우하고 비천한 사
람들 찿아다니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뒷전으로 돌려놓아 버리고, 그저 인간 사랑한다는 것으로만
아예 꼭지가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 양심 사랑이요, 인본 사랑입니다. 예수님과
전혀 상관없는 종교인의 행위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요14:15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 사랑은 예
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율법의 강령인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입니다. 그
래서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 옆의 이웃을 또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사랑
은 곧 또 내 이웃사랑입니다. 그 이웃사랑은 어떻게 나타나느냐? 원수 맺었던 마음들을 다 풀고 용
서와 화해를 이루어 복음을 받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주제가 뭡니까? 정죄잖아요? 바
로 이웃사랑은 또 정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의 사람은 정죄하지 않습니다.
율법은 정죄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사람은 남을 정죄합니다. 율법의 사람은 누구를 정죄해요?(남
을) 율법은 참소하고 정죄해서 심판할 줄은 알아도 용서할 줄은 모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자
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니, 이들이 생각할 때는 사람이 하나님일 수가 없는 것이요. 또한,
하나님은 형체가 없는 영이시니, 사람이 하나님이라고 한다는 것은 신성모독이었던 것입니다. 그리
고 자기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는 압제 받는 로마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이웃 나라들에 침략당하지
않는 강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왕이 오실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가난뱅이 목수의 아들이 감히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은 내 아버지라고 하니, 그것은 자기도 신이라는 말이니, 그런
참람한 말을 하고, 율법 폐지자 같은 행동을 하고, 안식일을 범하고,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것으로
당연히 죽여야 했습니다. 율법을 어긴 것만도 죽음에 해당하는데 하나님이 자기의 친아버지라고
하니 더 살려둘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시험하여 죽일 기회를 찾고 책 잡아 고소하려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
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 회중 가운데 세우고 예수님께 묻는 겁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
다가 현장에서 잡혔는데 모세는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이 말은 고소할 조건을 찾고자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용서를 말씀하고,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생
명을 말씀하고 다니셨습니다. 또한, 막2:10에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
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그러면 율법이 간음한 여자를 돌로 치라 했는
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다시 말해 선생은 죄를 용서하여 생명 얻게 하러 왔다고 했으니
율법은 이 여자를 죽이라 명하셨는데 돌로 치지 않으면 하나님의 명을 어긴 것이 되지 않느냐,
그런데 죄를 사하여 생명 얻게 하러 왔다고 한 선생이 만일에 죽이라 하면 그것은 죄인을 살리려
고 온 구세주가 아니지 않으냐? 그리고 하나님의 법은 간음한 자는 돌로 쳐서 죽이라 명하셨는데
'살려주라, 죽이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 또한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니, 선생도 돌로 맞아
죽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몸을 굽혀 땅에다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여자가 율법을 어겨 간음했으니 마땅히 죽
어야 한다. 그러면 너희가 돌로 치라, 그런데 너도 여자보고 음욕을 품고 마음에 간음했으니 너도
죽어야 한다'라는 글을 쓰시고 고개를 들어 누군가를 빤히 바라보셨어요. 또 몸을 굽혀 그들의 죄목
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땅에다 "이 여자가 돌로 맞아야 한다면 너도 돌로 맞을 자다, 너도 돌로 맞
을 자로구나! 너도! 너도!" 쓰시고 일어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또
몸을 굽혀 죄목을 써 나가시자 한 사람 한 사람 뒷걸음질하기 시작한 겁니다. 아무도 모를 줄 알았
던 자기의 숨은 죄가 마음속을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 앞에 드러나니 그 기세와 살기가 등등했던 그
들이, 여자와 예수님에게 던지려고 들었던 돌들을 '율법대로 쳐라! 그러나 죄 없는 자가 쳐라'하신
이 조건부의 말씀 앞에 그대로 다 버려두고 한 사람도 남김없이 다 가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이 예수님을 만나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하던 자들이 없느냐?"물으셨습니다.
다시 말해 "너를 정죄하여 끌고 온 그들이 어디 있느냐? 율법 아래 있는 모든 인간은 너는 죽어야
할 죄인이고 나는 죄인이 아니라 할 자가 없게 되었구나. 율법이 복음 앞에 오니 할 말이 없게 되
었구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셨습
니다. 마귀가 율법을 내세워 간음한 여자를 죄로 꽁꽁 묶어서 사망으로 끌고 가려고 했는데, 예수
님을 만나게 되자 살게 된 것입니다. 사망이 물러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죄가 없는 것처
럼 죄인이 아닌 것처럼, 스스로 의로운척하여 남을 정죄하며 돌로 쳐 죽이려고 했던 그들도 예수
님 앞에 서니 모두가 다 죄인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너나 나나 똑같은 죄인이므로 누
구도 정죄할 자격이 없다는 것도 드러났습니다.
여러분! 율법에 정죄당해 예수님 앞에 끌려 나온 이 여자가 예수님을 만나니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
씀하신 것입니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주이심
을 믿고 예수님 앞에 나오는 자는 정죄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임임을 알아 예수님의
죄 사함의 피를 믿고 나온 이들을, 하나님이 정죄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정죄하
지 않으신다는 것, 죄인인 나를 용서하여주시고 모든 죄에서 깨끗게 하여주셨다는 것을 믿는 자는
이제 어쩔 수 없는 죄를 지었을 때마다 그 죄까지도 예수님의 피로 깨끗게 되었다는 것을 믿고 죄
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단이 '너 죄지었잖아? 너 죄짓고도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냐? 하나님께서도 너 같은 것은 사랑하
지 않는다. 네가 양심이 있으면 네가 지은 죄를 네가 알잖아! 죄짓고도 뻔뻔하게 하나님께 나갈 수
있겠냐?'하는 등등으로 생각 속에다 가져다주는 참소에 속지 말고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만일에 자기가 원치 않음에도 어쩌다가 짓는 죄들로 이 같은 참소를 받고 자기가 자신
을 정죄한다면, 자신 안에 죄책을 두고 '아, 나는 안 되는구나! 가망 없구나! 하나님이 나 같은 것
을 사랑할 리가 없지!'하는 정죄를 스스로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정죄하지 않겠다'하신 것을
받지 않고, 율법에 붙들려 있는 것이 되어 구원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의 이 말은 죄짓고
싶은 대로 짓고 뻔뻔해지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예수님이 분명
히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짓는 것은 사단에게 자신을 종으로 내주는 것이 되므로, 그것을 안다면
죄짓지 않을 수 있지 않으냐는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죄짓지 않으려 함에도 순간 죄짓고
마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하신 말씀을 받아 자신을 정죄하지 않는 것에서
구원을 받았으면, 이제 남을 정죄하지 않는 능력이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정죄 받지 않은
믿음이 되었음에 대한 표시는 바로 남의 죄를 보고 정죄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
나님이 나 같은 것을 정죄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시는 그 은혜를 입었는데, 그래서 나도 다른 사람
의 죄를 보고 정죄할 자격이나 권리가 없음을 알고 정죄하지 않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나도 너
를 정죄하지 않겠다"하신 은혜받은 자의 증거입니다.
남의 죄를 보고 정죄하는 것이 드러난다면 예를 들어서 '아이고, 저것도 사람이야! 저런 사람은 죽
어야 해! 저런 것은 살 가치가 없어! 하나님이 너 같은 것을 구원하시겠냐? 그러고도 어떻게 네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느냐?' 여러분 티브이 앞에 앉아서 정치인들 많이 정죄하죠? 얼마나 정
죄합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지만, 그들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다 죄 가운데 살
고 있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다 그 속에 속했던 사람
들입니다. 그러니까 정치 잘못한다고 말이죠, 비웃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말들을 제가 차마 입으로
표현은 못하겠습니다.
제가 택시를 탄 적이 있습니다. 이 기사 양반이 습관이 돼서 그런지 상대가 누구인지 개념도 없고
"아휴 요새 정치인들 어쩌고저쩌고 다 죽일 놈들 하면서 보통 심한 욕설을 해대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한 나라의 대통령 이름을, 그것도 자기가 사는 나라 대통령의 이름을 자기 개만도 못한 이
름처럼 입에 올리면서 정죄하더란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에 속한 사단의 종이니 그렇다고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정죄할 수 없습니다. 누가 되었든지 티브이 보면서 정죄하므로 자신에게 죄
를 쌓을 일이면 아예 보지 않아야지요. 물론 자기가 '지옥 가겠다'한다면 그건 자기 권리니 제가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그런데 비판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은 만일 자기가 그 자리에 있으면 더할
사람들입니다. 정죄하는 사람들 보면 자신은 더 정죄 받을 짓을 하는 사람들이라 말이에요. 생각
해보면 믿는다는 사람들이 티브이 앞에서 정죄는 더하는 것 같습니다.
많든 적든, 크든 작든 마음속에 자신은 의로운 척하면서 남을 정죄하는 것, 그것 지금 구원받았어
요? 받은 거 아니에요. 믿는다는 사람 누구든지 정죄가 나간다면,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지 못한 죄인임을 여실히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오늘 말씀에 정죄하고 나온 자들이 누구입니까?
자기는 의롭다고, 자기는 죄 없다고, 자기는 죄를 안 짓는 것처럼 자신을 감추고, 간음한 여자를
예수님 앞에 끌고 온 자칭 의인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드러내 네가 죄인 아니면 네가 죄 없
으면 돌로 치라 하시자....., 예수님이 죄를 다 드러내셨잖아요. 그러니까 양심의 가책을 받고 다
물러갔잖아요.
예수님 앞에 굴복하고 엎드려 '내가 죽을 죄인입니다. 저 여자만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죄인입니다'하지 않았어요. 다만 양심의 가책을 받아 차마 돌로 칠 수 없어,
어른으로 시작해서 젊은이까지 다 예수님에게서 물러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남을 정죄하는 자는
예수님과 관계없는 것임을 스스로 나타내는 행위입니다. '저 죄인을 죽여라, 저 죄인을 심판하라'
고 밤낮 참소하던 사단의 종노릇하는 자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자신을 정죄
하는 것과 남을 정죄하는 것은 비중이 같기 때문에 구원 없습니다. 얼마나 자신이 더러운 죄인이
요, 그래서 예수님이 아니면 구제받을 길이 없는 죄인이라는, 그것을 안다면 어느 누구도 자신이
정죄하고 심판할 자격이 없다는 것도 아는 것입니다.
사람이 말입니다. 심사가 그래요. 사단의 근성을 물려받은 그대로 '저 사람이 그래서 나도 그랬다'
라고 물고 들어가는 못된 근성들이 있습니다. '저 사람이 그래서 나도 그랬지, 저 사람이 안 그랬
으면 나도 안 그랬다'고 물고 들어가 변명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남의 죄를 물고 들어가면 자기는
책임이 없는 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믿는다 하면서도 사단의 근성을 여전히 벗지
않고 있는 것이요, 그는 아직 예수님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 일입니다.
저는 오늘 이같이 간단한 말씀으로 자기를 정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
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받은 믿음이 되어, 자기 안에 참소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을 정죄하지
않는 믿음이 되었으면, 남을 정죄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을 드리면서, 참으로 정죄하지 않
는 예수님의 사람으로 구원 안에 푹 들어간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를 이 같은 정죄의 죄악에서 건지신 은혜와 말씀으로 자유의 능력을 갖추게 하신 우리의 주
예수님께 큰 감사를 올립니다. 아멘!!
2014년 (2)정죄=정죄하지 않노니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p295-p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