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아버지 오토바이 운전면허 따던 날
[속보, 기타] 2003년 07월 25일 (금) 22:12
자식들의 간곡한 권유로 밭에 나무를 심은 후 아버지는 요즘 농사를 짓지 않는다. 대신 시간이 날 때면 오토바이로 10여분 되는 거리에 있는 자그마한 텃밭으로 가서 고무마와 상추 등을 키우신다. 칠순을 넘긴 어른이 오토바이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신작로를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오토바이를 탄다는 자체가 어쩌면 위험하게 들릴수도 있다. 그러나 오토바이에 대한 아버지의 애착은 남다르다.
아버지는 비가오나 눈이 오나 한평생을 줄곧 자전거를 타고 다니셨다. 그러던 어느날 작은 형이 동사무소에 근무하면서 업무상 필요에 의해 오토바이를 사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아버지는 환갑을 훌쩍 넘기셨던 때라 오토바이 타실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저 작은형이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할 때 마다 조심해서 타라는 말과 가끔씩 오토바이를 정성스레 닦아주는 일 외에는 타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작은형이 집에서 좀 멀리 떨어진 동사무소로 발령이 나자 부득이 차를 구입하게 되었고 오토바이를 처분하게 될 처지가 되었다. 그때 아버지가 기다렸다는 듯이 반색을 하며 작은 형에게 말했다.
"그거 내가 타면 안 되겠냐?"
"그럼, 그라이소. 근데 이거 탈려면 면허증이 필요한데."
그때 어머니가 불쑥 뛰어 드시며, "안된다. 다 늙은 나이에 오토바이는 무슨 오토바이고, 내 죽기전에는 오토바이 탈 생각일랑 마소"하며 기를 쓰고 반대하셨다. 순간 집안에는 정적과 함께 긴장감에 휩싸였다. 아버지도 어머니의 완고한 고집에 당황하는 눈치셨다. 그리고 오토바이 이야기는 며칠 뒤 다시 저녁을 먹으면서 나왔다.
"내가 면허증을 따면 오토바이 타는 거 니 엄마도 허락해 주기로 했다."
"엄마? 정말이에요?
"나는 꼭 안 탔으면 좋겠구만, 저렇게 타고 싶어 하시니 어쩔 수 없지."
하며 어머니는 아직까지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눈치셨다. 그리고 그날부터 아버지의 운전면허증 공부는 시작되었다. 일제시절,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아버지는 태어나서 시험이라고는 처음이다.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작은 형이 그날 바로 아버지에게 시험문제지를 사드렸다.
그날 저녁부터 아버지는 수능을 앞둔 고3 수험생처럼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셨다. 가끔씩은 작은 형를 불러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셨다. 작은 형은 퇴근 후 틈나는 대로 아버지에게 오토바이 타는 방법을 가르쳐 줬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당시 가끔씩 작은 형에게 꾸중(?)당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이런 설움(?) 다시 안 당할려면 이번에 반드시 면허증을 따야겠다는 오기도(?) 발동했을 거라는 짐작이 간다.
당신이 배우지 못해 자식들에게는 배우지 못한 설움을 대물림하기 싫어 어려움속에도 자식들은 다 공부시키신 우리 아버지. 그러니 시험에 떨어진다는 것은 당신 스스로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시험일 다가왔다. 시험장까지 따라 가겠다는 자식들의 권유를 물리치고 아버지는 혼자 가셨다.
정말이지 집에서는 미묘한 긴장감 속에 온가족이 모여앉아 중요한 고시 발표나 기다리는 것처럼 전화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특히 어머니는 안절부절 못하고 집안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듯 집안을 왔다갔다 하셨다. 그리고 얼마뒤 "따르릉, 따르릉"하며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가 순식간에 전화를 받는다.
"어떻게 됐어요? 잘됐네요. 야들아! 아부지 합격했단다, 어여 들어오이소."
전화를 끊고는 당신이 합격한 것처럼 어머니는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얼마 후 아버지는 예상과 달리 기뻐하는 기색하나 없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집으로 들어오셨다. 자식들은 박수를 치며 아버지의 합격을 축하했다. 그리고 기분이 어떠냐는 나의 질문에 아버지는 약간 어깨에 힘이 들어간 상태로 호기를 띠며 말씀하셨다.
"와 이래, 호들갑들이고. 뭐 별 거 아니더라. 밥 묵자, 배고프다."
아버지는 짧게 얘기하셨지만 얼굴에 나타나는 기쁨을 감추지는 못했다. 이 후 아버지는 오토바이를 정말 아침저녁으로 보물단지처럼 정성스레 돌봤다. 때문에 아버지는 작은형이 탄 오토바이를 10년가까이 탔다. 지금은 그 오토바이가 단종되어 나오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번에 자식들이 오토바이가 너무 오래돼 혹시나 싶어 밭에 나무 심는 기념으로 오토바이를 한 대 사드렸다. 그러나 자식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현대인에게 자가용이 부의 상징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분이 된 것처럼 아버지에게도 오토바이는 이제 생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그래도 뭐니 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입니다.
"언제나 안전운전하세요!"
첫댓글 자식들과 교감을하는 아버지의 부정도 느껴지고,,,,아버지를 생각하는 가족들의 따뜻한 가족애도 느껴지네요,,,^&^ 글 잘읽었습니다..!~~~
좋은글입니다.^^
좋은글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