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기고>
종이학과 노동
글. 김태균 (매탄3동)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선물을 준비할 때 얼마나 두근두근하고 좋을까? 요즘은 어떻게 표현하는지 모르겠지만 라떼(?)는 좋은 노래(그것도 가능하면 발라드 종류로) 20여 곡을 꽉 차게 노래 테이프에 담아 전해 주든지, 아니면 커다란 유리병에 종이학 천마리를 접어 주기도 하고, 온 동네를 뒤져 네잎크로바를 찾아 학교 앞 문방구에 가서 이쁘게 코팅해서 선물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을 준비하던 그 시간은 비록 야간작업이고 임금도 받지 못한 노동시간이었지만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가 웃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즐겁게 노동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노동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하고, 본인이 하고픈 일은 쉬고 자야 할 시간을 쪼개서 해야만 한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아침에 흔히 보는 풍경은 산을 가기 위해 부산을 떠는 사람들, 조기 축구를 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 등 본인의 취미 생활을 위해 휴일을 반납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자신이 하고픈 일을 평일에 하지 못하고 쉬어야 할 휴일에 하는 모습들이다. 이러한 모습을 흔히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라 칭한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평일에는 남을 위한 노동을 하고 본인이 원하는 노동은 쉬고 충전해야 할 휴일에 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모습이 바로 ‘노동의 소외’이다. 하고픈 일(예를 들면 조기 축구나 등산 또는 여행 등)을 하면서 임금을 받는다면 그러한 노동은 결코 힘들거나 괴롭지 않을 것이다. 좋아하는 이에게 선물을 주고자 하는 노동처럼 행복할 것이다.
본인의 행복을 위한 노동, 즐거운 노동, 소외를 극복한 노동은 바로 임금을 받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자본주의식 노동이 아니라, 자신이 필요한 재화를 생산하는 노동, 자신의 취미와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는 노동일 것이다. 이렇게 소외를 극복한 자신의 노동은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구조를 극복하는 과정으로부터 시작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