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문화사(9)-안동(安東)
경상북도 북부 낙동강 변에 자리하고 있는 안동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음과 동시에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지명의 변화가 매우 심했던 지역이라는 특이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제시하고 있는 안동의 땅이름을 보면 고구려 시대의 이름인 ‘고타야(古陁耶)’를 시작으로 약 13개에 이르는 명칭이 등장하고 있는 점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조선 시대의 여러 문헌 기록에서는 안동의 시대별 지명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창녕(昌寧), 고창(古昌), 지평(地平), 고령(古寧), 석릉(石陵), 일계(一界), 화산(花山), 고장(古藏) 등은 모두 신라 때의 지명이고, 안동, 영가(永嘉), 길주(吉州), 복주(福州), 능라(綾羅) 등은 고려 때의 것이라 서술하면서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안동을 공식적인 행정명으로 삼았다고 했다. 이처럼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안동의 옛 지명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지역의 풍습, 혹은 문화적 특성을 기반으로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해당 공간의 지형적 특성을 중심으로 한 것이다.
현존하는 자료로 볼 때 ‘고타야(古陀耶)’가 처음이므로 이것에 대한 해석에서 출발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고타+야’의 방식으로 된 고구려 이두(吏讀)인데, 앞의 두 글자는 뜻(訓)을 취해오고 뒤의 한 글자는 소리(音)을 빌어와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古陀耶’의 뜻이 무엇인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는데, 이것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한자로 되어 있는 후대의 땅이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안동이라는 땅이름이 가지고 있는 의미, 역사, 문화적 맥락을 제대로 짚어내기 위해서는 ‘고타야’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필수일 수밖에 없다.
‘十’과 ‘口’가 결합한 형태인 ‘古(옛 고)’는 지금과 아주 멀리 떨어진 과거의 시대를 기본적인 뜻으로 한다. ‘十’은 많음이고, ‘口’는 말이라는 뜻이니 아주 오랜 옛날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내려온 긴 시간을 상징한다. 오래되었다는 점에서 하늘(天)이라는 뜻으로도 쓰이며, 옛것을 숭상한다는 점에서 질박(質朴)하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고타야’라는 지명에서 ‘古’는 ‘검소하고 소박하며 도리에 밝은 데다 옛것을 따르면서도 단정한 품격’이라는 뜻을 취해온 것으로 된다.
‘陀’는 비탈진 언덕, 혹은 작은 산이나 언덕 등을 기본적인 뜻으로 하지만 독자적인 쓰임은 거의 없는 글자이다. 그러나 불교와 관련된 용어로는 많이 쓰였는데, 부처를 지칭하는 범어(梵語)인 ‘amita(阿彌陀)’를 음차한 것으로 자주 사용된다. ‘a’는 ‘無’, ‘mi’는 ‘量’, ‘ta’는 ‘光’인데, 여기에 ‘陀’가 ‘밝음(明)’, ‘빛(光)’, ‘깨달음(覺)’, ‘슬기(智)’ 등의 뜻으로 쓰였다. 그 외에는 이와 비슷한 뜻으로 지명에도 쓰이는데, 고구려 이두에서는 이 뜻을 빌어다가 쓴 훈차 표기로 땅이름을 나타내는 데에 사용했다.
‘耶’는 이두 표기에 자주 등장하는 글자이다. 같은 뜻으로 이두식 땅이름에 쓰인 것으로는 ‘忽’, ‘城’, ‘內’, ‘川’, ‘州’ 등이 있는데, 이 글자들은 모두 물가에 있는 높고 넓은 공간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살 수 있는 지역이라는 뜻이다. 또한 모두 소리를 빌어다 쓴 음차(音借)에 해당하는 이두 표기이다.
지금까지 고찰한 내용을 종합하면, ‘고타야’는 ‘단정하고 검소하면서 도리를 아는 슬기로운 사람들이 사는 강가의 땅’이 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땅이름이 이런 점을 강조해서 붙였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안동 지역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다운 도리가 무엇인지를 잘 아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던 작은 나라, 혹은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참으로 흥미로운 땅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창녕(昌寧), 고창(古昌), 지평(地平), 고령(古寧), 석릉(石陵), 일계(一界), 화산(花山), 고장(古藏) 등의 지명이 모두 ‘고타야’의 뜻을 그대로 이어받아 붙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고창(古昌)을 들 수 있다. 고창은 신라 경덕왕 때(725년)에 ‘고타야’를 변경하여 국가 공식 지명으로 한 것인데, 이 속에 고구려 지명의 뜻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古昌’에서 ‘古’는 고구려 지명의 그것과 같은 뜻으로 쓰였기 때문에 별다른 해석이 필요 없다. ‘昌(창성할 창)’은 ‘日(해 일)’과 ‘口(입 구)’가 아래위로 결합한 회의자(會意字)인데, 아침에 해가 떠오르면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 내는 소리라는 뜻이다. 부르는 소리에는 일정한 리듬이 있었으므로 이 글자는 노래(唱)의 원래 글자가 된다. 후대로 오면서 ‘口’는 ‘曰’로 바뀌었는데, 이것은 소리를 낸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어 그 쓰임이 점차 넓어지면서 ‘창성하다’, ‘밝다’, 아름답다‘, ’번영‘, ’훌륭하다‘, ’아름다운 말‘ 등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고창이란 지명은 ’검소, 도덕, 도리, 슬기 등을 숭상하고 높이는 아름다운 고장‘이라는 뜻이 된다. 한마디로 말해 아름다운 고을이라는 것이 안동의 진짜 모습이라는 점을 강조한 땅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창녕(昌寧), 지평(地平), 고령(古寧), 석릉(石陵), 일계(一界), 화산(花山), 고장(古藏) 등도 고창의 뜻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화산은 아름다운 고을, 고장은 옛사람의 도리와 슬기를 이어받아 지키는 고을, 석릉과 지평은 물과 땅과 사람이 아름다운 고을 등의 뜻을 가진다는 점에서 이러한 사실을 엿볼 수 있다.
후백제와 고려가 경쟁하던 시기인 930년에 고창(안동)에서 견훤과 왕건이 크게 싸웠는데, 견훤의 참패로 끝나면서 후백제는 더 이상 신라 지역을 넘보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을 기념하고 잊지 않기 위해 고려 태조는 고창이었던 신라 지명을 안동으로 바꾸었다. 글자 그대로 보면 동쪽이 안정되었다는 뜻이지만 여기에는 왕건의 좀 더 큰 야망이 숨어 있다. 이 지명에서 말하는 동쪽은 단순히 안동 지역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라 전체를 상징적으로 지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동쪽이 안정되었다고 하는 것은 신라는 더 이상 독립된 나라가 아니라 고려의 속국이라는 사실을 선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고창 전투가 있은 지 약 5년 뒤에 신라가 고려에 귀순했으니, 왕건의 뜻대로 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고려 시대에 붙여진 것으로 기록된 영가(永嘉), 길주(吉州), 복주(福州), 능라(綾羅) 등의 지명은 안동 지역의 지형적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永(길 영)‘은 사람이 물속에서 나아간다는 것으로 여러 물줄기가 길고 아름답게 흐르는 모양을 나타낸다. ‘嘉(아름다울 가)’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음식을 풍성하게 차려놓은 모습에서 유래된 글자인데, 아름답다, 경사스럽다, 길(吉)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영가’는 ‘물이 아름다운 고을’이라는 뜻이 된다.
길주와 복주에서 ‘吉’은 옥으로 된 기구를 놓은 모습에서 유래한 글자로 좋다, 아름답다, 성실하다, 선(善)하다 등의 뜻을 기본으로 한다. ‘福’은 신에게 술과 음식을 바치는 것에서 유래한 글자로 갖추었다. 물이 풍부하다, 아름답다, 경사스럽다 등의 뜻을 가진다. ‘州’는 물가의 언덕으로 사람이 살 수 있는 고을이라는 뜻이므로 길주와 복주는 모두 영가와 비슷한 뜻이 된다. 능라는 질이 좋고 화려하며 아름다운 비단을 나타내는 말인데, 아름다운 물결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길주, 복주, 능라 등은 모두 물이 아름다운 안동 지역의 지형적 특성을 충실히 반영한 땅이름이 된다.
안동 지역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성실 근면하면서 검소하고 사람의 도리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낙동강 변에 살면서 삶의 터전을 갈고 닦아온 고장이라는 점이 그곳의 땅이름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이것은 매우 특기할 만한 일인데, 대한민국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강조하는 지방자치 정부의 홍보 표어가 바로 이런 점을 고려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