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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로하기
2025.3. 향기 영란
학교를 옮긴 후의 내 상태는 썩 좋지 않은 상황이다. 목은 뻐근하고, 눈은 불편한 이물감으로 괴롭고, 학년 초에 해야 할 업무와 기본적으로 진행하여야 할 수업 부담들까지, 머리와 어깨에 내려앉은 괴로움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다.
26년 차 경력이라는 말을 쓰기가 무색할 정도이다. 사실 늘 해왔던 일이고, 학교 규모와 물리적 환경 정도만 바뀌었을 뿐이다.....가 아니라, 학교 규모와 물리적 환경의 변화는 사람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나는 옛날과 지금을 비교하는 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다한 인연을 붙들고 어쩌자는 건지, 예전 동학년 모임, 여교사 모임 등 억지로 만남을 지속하는 것을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한다. 새 자리에서 어쨌든지 적응하기 위해 애를 썼지, 한숨을 짓거나 눈물 바람을 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나는 예전의 학교 도산이 그립다. 내가 대체 왜 이러고 있는지 되묻고 싶어진다. 이 글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익숙한 공간이어서?
그건 아니다. 나는 어느 학교든 5년을 미련스럽게 눌러앉아 있었다. 같은 장소에서 5년을 근무하면 그 곳은 모두 익숙한 공간이 된다. 내 기억으로 눈을 뜨면 그저 다시 가고 싶어지는 학교가 있었던가? 편백숲으로 가는 입구, 중앙현관으로 들어서기 위해 이순신 장군의 동상 앞에서 90도를 꺾어 들어가서 위에서 두 번째 왼쪽에서 세 번째 칸에 있는 신발장에서 실내화를 꺼내 신고, 교무실에 들러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커피 머신기로 가서 누르는 부분이 약간 들어간 검정색 버튼을 눌러 에스프레소 샷을 내려, 아주 뜨거운 물을 섞어 강화 유리컵에 담는다. 그리고 나서는 교무실 교무행정원, 방과후실무원 두 분과 흰 소리, 까만 소리를 늘어놓는다. 창가에 박스에 과자가 한 가득 담겨있다.
“아이고, 누가 이리 간식을 많이 샀나예?”
“5학년 선생님이 줄넘기 하는 여학생들 주는 간식이라 했어요.”
“우와, 맛있는 거 많네. 나중에 씬에이스는 좀 달라고 해서 얻어 먹으면 좋겠다.”
그 냉장고 앞, 주무관님 두 분의 책상이 있던 곳은 참새 방앗간이었다. 그 깔끔하고 사근사근한 두 분이 계셨고, 자주 높은 웃음소리가 솟아올랐으며, 교감 교무는 어깨너머로 우리의 수다를 모른 척 듣고 있는 교무실의 아침의 흔하디흔한 풍경이었다.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
3월 5일과 6일 도산초의 급식 메뉴를 보자. 5일에는 통영식비빔밥/두부탕국/돼지갈비오븐구이/배추김치/과일(귤)/꿀떡/저당요구르트이고, 6일 메뉴는 친환경발아현미밥/도다리쑥국/굴소스닭날개조림/시금치무침/베이컨감자볶음/배추김치/사과이다. 불시에 검사하러 가도, 어느 날을 선정해도 이 정도 메뉴는 보통 수준이다. 영양사님, 조리사님, 반지르르한 식탁에 오렌지 색깔 의자. 야채를 안 먹겠다는 아이에게 조리사님이 “조금만 맛만 봐라~”고 내지르는 말도 정겹기 그지 없는 곳이다. 70여 명 모두에게 따뜻하고 푸짐한 밥을 내어주던 곳이었다. 그러나 400여 명의 학생과 교직원이 먹는 이 식당은 양도 질도, 밥을 내어주는 인심도 감질나다.
그 넓은 땅이 다 내 것만 같았지
한 바퀴 돌면 25~30여분 정도 걸리는 편백숲이 있었다. 늘씬한 나무둥치를 자랑하는 숲을 걸으면 마음 속의 미움이 다 헹구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대로 가서 뛰놀수 있었던 체육관 안, 체육관 건물 앞 마당도 운동장을 내려다보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흔들그네가 있어 아이들이 참 좋아한 곳, 제비가 집을 짓던 곳이었다. 오이, 방울토마토, 고추, 상추가 잡초 속에서 어설프게 자라던 텃밭도 좋았다. 재활용 분리수거장도 얼마나 깔끔하게 정돈되었는지. 그 모든 곳을 내 집처럼 활보하고 다녔었다.
무한한 자율성
앞의 것들이 눈에 보이는 환경이었다면, 이것은 보이지는 않지만, 가장 아쉽게 생각되는 부분이다. 모든 행사를 기획하고, 학교를 운영해 가는 일에 교사들이 함께 의견을 모으고, 의견을 반영했다. 많이 고민한 사람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고, 역할분담을 나누어서 행사를 진행하면 또 일이 그렇게 잘 돌아갔다. 학교 예산은 너무 투명하여 의지를 가지고 일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예산을 쓰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우쿨렐레 수업, 민요 수업, 각종 체험 활동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마음껏 고민할 수 있었고, 또 그것을 얼마든지 반영할 수 있었다. 여기서는 담임이 아이들과 수업만 하란다. 수업 시수가 엄청나다. 회의를 해도 주로 듣는 입장이다. 예산은 재량껏 쓸 수 있도록 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4층 선생님과 카풀을 하고 다니다가 지난 월요일에는 혼자 출근을 했다. 주말 내내 재미는 1도 없지만 해야할 일들을 하느라 피곤한 주말이었다. 게다가 지난 목, 금요일에는 당돌한 녀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것이라 아무리 다독여도 소용이 없었다.
비폭력대화 공부에서는 공감과 위로법이 있다. 다른 사람이 공감하고 위로해 주지 않으면 나 스스로가 나에게 위로해 주어야 했다. 커피값 5300원과 아침 시간 15분을 투자해서 위로를 얻는다면 그것은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스벅에서 차를 세우고 주문한 커피가 나올동안 나는 노트북을 켜고 서둘러 수술하는 의사처럼 나를 눕히고 시술에 들어갔다. 다음은 내가 나에게 시술한 공감기법의 내용들이다.
관찰
나는 지금 아침에 여유시간이 많이 없고, 1,2교시 사이에는 쉬는 시간도 없어. 너무 바빠. 하루에 수업 시간이 보통 5~6시간을 해야하니, 그동안 해 왔던 수업 양과는 하루 수업양이 1~2시간 이상 차이가 있어. 중간놀이 시간 30분, 여유롭고 풍요로운 급식의 차이도 커. 아침 커피도 마실 수 없어. 그나마 가져온 이디야 스틱커피는 맛이 없어. 그리고 선생님 앞에서도 욕을 서슴지 않는 아이가 있어. 실은 그것에서 충격을 받은 것 같아.
느낌
나는 지금 곤혹스러워. 피곤하고. 다른 사람들의 고충 앞에서는 충고나 여유를 잃지 말라고 하는 조언을 했는데, 막상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니 힘들기 그지 없어. 1년내내 이런 사이클로 생활해야 한다는데 대해 절망스럽기까지 해. 적응이라는 것이 될까 하는 비관적인 마음이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아. 고녀석과는 내가 배운 대로 하면 될 건데, 감정이 먼저 앞서서 말이야. 이론과 실제의 차이. 현실은 얼마나 혹독한지. 그 아이에 대한 비호감도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려움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 하지만 지금 아침 출근길에 들른 스타벅스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향과 까페의 분위기가 좋아. 이걸 느끼려고 이 바쁜 아침에 들렀지 뭐니. 사치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커피값, 쫓기는 출근시간, 그냥 드립커피로 사 갈걸~ 하는 고민을 다 물리치고 들어와서 잠시라도 앉은 건 잘 한 것 같아. 꼭 와야할 것 같았어.
욕구
나는 수업을 잘 하고 싶고, 또 새학교에서 적응도 해 나가고 싶어.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 비호감 녀석과도 어찌됐든 될거야. 오늘 아침에 가면 또 없었던 일처럼 무심하게 앉아있을거야. 나도 그렇게 할 거야. 그리고 실은 악조건 속에서 희망이나 커다란 업적은 빛은 발한다고. 그래 반짝반짝 기다리는 아이들을 향해서 걸어가면 되지.
부탁
자, 이영란. 일어나서 출근하자. 이렇게 잠시 여유를 찾은 건 너무 잘 한 것 같아. 수업준비도 잘 했고, 너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니? 그래그래. 오늘 아침 스벅 카페 참 좋다.
그렇게 나는 수술대를 나와 가운을 벗고 유유히 문을 열고 나와 차를 타고 동쪽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달려 출근을 했다. 출근 시간을 8분 정도 늦었지만 그런 것 쯤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