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초한지(楚漢志) -제13화, 여불위 자초와 진나라를 향해 오천리를 탈출하다. 주희가 아들을 낳자 겉으로는 자초를 칭송하면서도 내심으로 가장 기뻐한 사람은 여불위였다. 전국칠웅(戦国七雄) 중에서도 가장 강한 나라인 진(秦)나라를 자기 아들이 물려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여불위는 꼭 물려받게 하겠노라고 굳게 다짐했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 아들이 대왕이 되면 나는 저절로 진나라의 태왕(太王)이 될 것이 아니겠는가.” 여불위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웃음이 돌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생각을 이어갔다. “그래, 내 아들을 훌륭한 왕으로 만들자면 어렸을 때부터 왕자의 교육을 제대로 시켜야 한다. 그것은 아비인 나의 의무이다.” 여불위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정(政)을 어린아이 때부터 전하(殿下)라고 깍듯이 불렀다. 자기만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자초와 주희에게도 어린 아기 때부터 깍듯이 <殿下>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자기가 그렇게 부를 뿐만 아니라 자초와 주희에게도 충고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 무릇 사람은 어릴 때부터 교육을 제대로 받아야 큰 인물이 되는 법입니다. 두 분께서도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정(征)을 꼭 대왕전하(大王殿下)라고 불러 주시옵소서. 사람은 부르는 것만큼 이루게 되는 법입니다. 그래야만 후일에 와위에 오르셔서 훌륭한 통치자가 되실 것입니다” 자초와 주희도 그 말이 기뻤다. 자기 아들을 왕으로 만들어 준다는데 좋지 않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는 충고까지 해주었다. 자초와 주희도 자기 아들을 위대한 인물로 만들어 준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여불위는 한 수 더 뜨기 시작했다. 아들 정이 어렸을 때부터 온갖 떼를 쓰든 간에 허용했다. “대왕의 명은 누구도 거역하지 못하는 법이옵니다. 전하께서는 어떤 일이라도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옵소서. 왕명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것은 신하 된 저희들의 의무인 것이 옵니다.” 여불위는 아들 정 앞에서도 늘 소신(小臣)이라고 불렀다. 정은 어린시절부터 그렇게 대접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성품이 매우 오만하였고 독선적이었다. 누구든 비위에 거슬리면 호통을 치고 혼 줄을 내었다. 그것은 여불위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번은 여불위에게도 호통을 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경은 신하의 몸으로 내 비위를 거슬렸으니 괘씸하게 짝이 없구려, 그 죄로 초달(楚撻) 열 대를 때려야 하겠소.” 아들이 감히 아비에게 초달을 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정이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그럴때마다 여불위는 혈육 관계의 비밀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절대로 발설할 수 없는 비밀이기에 여불위는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종아리를 걷어 올리고 초달을 맞으며 말했다 “소신은 전하의 초달을 맞아도 마음은 무한히 기쁘옵니다.” 여불위의 포부는 너무나도 원대하여 왕자 교육도 철저하게 진행했다. 어려서부터 글을 배운 정은 여섯 살이 되었을 때에는 춘추재씨전(春秋在氏傳)도 좔좔 외우게 되었다. 그러나 오만하고 예의가 없어 무슨 일이나 자기 마음대로 하는 폭군 행세를 했다. 정이 훗날 진나라의 대왕이 되어 가혹한 독재 군주가 된 것도 갓난 아기때부터 여불위에게 잘못된 행실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어느날 자초가 여불위에게 말했다. “우리 언제쯤 되어야 고국에 돌아갈 수 있겠소. 하루라도 발리 고국으로 돌아가 대왕을 비롯하여 아바마마와 어마마마에게 내 아들의 영특한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구려.” 여불위는 그 ‘내 아들!’이란 말에 속으로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정 전하께서 얼추 자라셨기 때문에, 이제는 탈출을 본격적으로 기도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궁리중입니다.” 여불위는 반드시 그들을 진나라로 데려가야만 모든 일을 이룰 수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며 그것은 여불위의 평생 소망이었다. 재산 여불위는 그때부터 서둘러 조(趙)나라를 탈출할 계획을 세밀하게 세우기 시작했다. 조나라의 수도인 한단에서 진나라 국경까지는 머나먼 5천여 리 길이었다. 많은 인원이 일시에 탈출하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여불위는 아무도 모르게, 우선 가산(家産)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가산을 정리하는 데만도 무려 반년 가까이 걸렸다. 가산이 다 정리되자 여불위는 아녀자들은 국경을 쉽게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주희 모자와 자기 가족들을 비밀리에 진나라로 먼저 보냈다. 다음에는 푸짐한 선물을 마련하여 공손건을 찾아갔다. 공손건은 반갑게 맞아 주며, 말했다. “이 사람아! 요새는 만나기가 왜 그리도 어려운가.” “자주 찾아 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우리 내기 바둑이나 한 판 두어 볼까.” “좋습니다. 장군님과 내기 바둑을 둔다면, 차마 돈 내기는 할 수 없는 일이옵고, 술 턱을 내기로 하는 것이 어떠하신지요.” “그거 좋은 생각일세.” 바둑 실력은 여불위가 공손건보다 한 수 위였다. 하여 실력대로 둔다면 공손건이 다섯 점은 놓아야 할 판이다. 그러나 여불위는 언제나 흑을 가지고 적당히 져 주어 왔었다.
이날도 여불위는 흑을 들고 세 판을 두었는데, 세 판을 연달아 져 주었다. “장군님에게는 도저히 못 당하겠습니다. 오늘은 약속대로 장군님을 저희 집으로 모시고 가서 술 턱을 내기로 하겠습니다.” “자네가 내 집에 온 손님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손님이라도 내기는 내기니까 오늘은 자네 집에 가서 술을 얻어먹기로 하겠네.” 여불위는 공손건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술판을 성대하게 벌였다. 물론 그 자리에는 자초 공자도 참석했다. 여불위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독주(毒酒)를 공손건에게 연달아 권하여 마시게 했다. 공손건은 인사불성으로 취하여 잠이 들어 버렸다. 여불위는 밖으로 나와 대기 중인 공손건의 호위병들에게 말했다. “지금 장군님께서 몹시 술이 취하여서, 오늘 밤은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내일 아침에 돌아가시기로 하였네. 그러니까 자네들은 일단 집으로 돌아갔다가 내일 아침에 다시 오도록 하게나 이것은 장군님의 명령일세.” 호위병들은 그말을 듣고 모두 돌아가 버렸다. 여불위는 때는 ‘바로 이때다’ 하고 자초와 함께 말을 타고 어둠을 뚫고 진나라를 향해 힘차게 달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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